<연산군을 위한 변명>
최근 각종 자료에 의하면, 중종반정은 燕山君의 폭정이 원인이 아니라, 갑자사화로 인하여 재산과 특권을 빼앗긴 관료들과 아울러 숙청의 위협을 느낀 여타 대신들의 반발로 인하여 일어났다는 說이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갑자사화는 연산군 혼자 벌인 참극이 아니라, 연산군의 최측근 신수근 형제와 임사홍 등 궁중파가 연산을 부추겨 일으킨 일종의 친위 쿠데타적 성격을 지닌 史禍에 다름 아니다. 史禍를 일으킬 당시, 연산군은 지지기반없이 어떠한 우군도 자기세력으로 갖지 못하고 권신 모두를 적대세력으로 몰아세우는 아둔한 정국운영을 하였다. 중종반정은 갑자사화로 재산과 특권을 빼앗긴 훈신들에게 동병상린한 당시 권신세력들에 의한 반란이다.
연산군이야말로, 500여년간 사대부들의 붓끝에 의해 철저하게 폭군으로 이미지가 곡해되어 채색된 왕이다. 아울러 한미한 가문출신의 어머니를 둔 죄로 어미조차 권문세가 출신의 왕대비에게 구박을 받아 죽어간 불쌍한 젊은이에 불과하다.
조선은 정도전이 꿈꾸었던 백성이 주인이 되는 나라가 아니라, 여진족 출신의 이성계일파와 고려시대부터 권문세가였던, 청한•안권•파윤의 연맹국가였다. 가끔, 현명한 왕들이 이러한 카르텔을 깨려고 부단한 시도를 했지만, 그때마다 기득권 세력의 반격을 받아 반동정치로 돌아가야만 했으며, 급기야 정조의 잘못된 판단 - 김좌근을 너무 믿었던 어리석음 - 으로 순조이후 외척세력이 발효하여 망국(亡國)하였다.
서인과 노론이 좌지우지한 선조 이후의 조선은 글자 그대로 당파싸움으로 해가 뜨고 해가 지는 나라였다. 그런 와중에 왜란과 호란으로 백성들은 피폐해졌다. 사림의 후손인 선조 이후 조선의 閥閱(벌열)들은 국가쇠망에 상당부분의 도덕적, 역사적 문책을 당해야 한다.
*조만간 저의 견해에 대한 문헌적 논거를 첨부한 글을 게시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