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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정치는 국가의 결정이나 행위로 환원되는가?
우리는 국가적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왔는가?
현대 정치사상의 주요 문제와 학설에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강력한 교과서
『국가에 관한 질문들』은 파리8대학 철학교수이자 프랑스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정치철학자 중 한 명인 기욤 시베르탱-블랑이 쓴 정치철학서로, 프랑스대학 출판부PUF가 대학 학부생들을 위해 기획한 교과서(리상스 총서)이다.철학의 여러 갈래 중에서도 정치철학을 공부하고자 할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 맞닥뜨린다. ‘정치철학은 무엇을 대상으로 하며 어떤 것을 탐구하는가’ ‘정치철학의 한계와 경계는 무엇인가’. 이 질문들에 답하고자 할 때 피할 수 없는 주제가 바로 ‘국가’다. 저자는 여러 층위의 복잡성을 띠는 국가를 구체적이고 실증적이면서도 역사적이고 비판적인 방식으로 탐색해보자고 제안한다.
이 책은 19~20세기, 즉 프랑스혁명에서 시작해 러시아혁명을 거쳐 사회주의 체제의 몰락에 이르는 200년간의 정치철학의 역사를 다룬다. 프랑스혁명 이후 철학자들과 정치가들은 공화정, 파리 코뮌, 러시아혁명, 사회주의체제 몰락을 거치며 굵직한 담론과 이론을 양산했다. 저자는 그 200년간 국가를 위시하여 축적되어온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현상들에 대해 철학자들이 어떻게 대응했는지, 역사와 철학 그리고 정치 담론의 연대기를 비판적이고 체계적으로 담아내고자 했다. 이 시기 동안 정치철학은 국가라는 역사적 현실과의 관계 속에서 고유하고 독특한 담론으로 구성되어왔다. 무엇보다, 프랑스혁명 이래로 국가라는 현상은 수많은 양상으로 등장하며 변화해왔고, 정치철학 또한 그에 발맞춰 매우 다양한 갈래로 변화해왔다. 이 같은 상황에서 근대 정치철학은 “불안정한 이론적 종합”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갖는다. 이 책은 그 한계를 성찰하며 국가라는 현상이 역사적으로 변화해온 과정과 원인들을 분석한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어떤 형태의 국가가 어떤 형태의 법과 권력, 그리고 지식과 실천과 결부되어왔는지 살펴볼 수 있다.
🏫 저자 소개
기욤 시베르탱-블랑
기욤 시베르탱-블랑은 프랑스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정치철학자 중 한 명이다. 피에르 마슈레Pierre Macherey의 지도 아래 질 들뢰즈의 실천 철학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툴루즈-장 조레스 대학 철학 교수maitre de conference를 거쳐, 현재 파리8대학 철학 교수professeur로 재직 중이다. 2015년부터 프랑스의 대표적인 정치철학 학술지 『현재적 마르크스』Actuel Marx의 공동 책임자를 맡고 있다. 박사 논문의 주요 내용은 『들뢰즈와 가타리의 정치와 국가: 역사-기계적 물질주의에 관한 시론』Politique et Etat chez Deleuze et Guattari. Essai sur le materialisme historico-machinique(PUF, 2013)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영어, 스페인어, 일본어로 번역되어 있다. 그 외에도 『들뢰즈와 안티 오이디푸스: 욕망의 생산』Deleuze et l’Anti-Oedipe: La production du desir(PUF, 2010)을 비롯해 현대 정치철학과 들뢰즈 철학에 관한 다수의 책과 논문을 썼다. 최근에는 『분열분석적 추급권: 역인류학과 무의식의 탈식민화』Direito de sequencia esquizoanalitica: Contra-antropologia e descolonizacao do inconsciente(N-1 Edicoes, 2022)를 브라질에서 번역 출간했고, 피에르 클라스트르Pierre Clastres의 인류학 작업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 목차
추천의 글 | 왜 정치철학 교과서가 필요한가? 박이대승 · 5
좌파적인 정치철학 교과서를 쓴다는 것 진태원 · 8
서론 · 13
1부 | 국가의 근거들 · 23
1장 | 국가의 토대: 주권과 법적 질서 · 30
1. 혁명과 반-혁명적 반작용 · 32
2. 혁명과 자유주의적 반응 · 44
2장 | 국가의 정초: 인민과 국민/민족nation · 66
1. nation-국가: 혁명적 전통의 정치적 재정초와 창조 사이에서 · 69
2. 역사 속의 국가, 국가 속의 역사: 민족적 원환 · 83
3. 민족적 패러다임의 확장과 민족국가의 위기들 · 89
3장 | 국가의 이성: 정치와 사회 · 99
1. 이성적 국가 · 99
2. 정치적 비판으로부터 정치적인 것에 대한 비판으로 · 121
2부 | 국가에 대한 지식들과 실천들 · 139
1장 | 경제와 정치 사이에서: 자유주의 국가 패러다임 · 143
1. 관방학으로부터 정치경제학으로: 복지국가, 법치국가, 자유주의 국가 · 147
2. 사회주의적 반응들 · 167
3. “영원한 생-시몽주의”에 반해서: 신자유주의와 가장 작은 국가 · 178
2장 | 사회적인 것에 대한 과학들과 사회적 국가 · 189
1. 사회학 또는 철학: 사회물리학으로부터 정치과학으로 · 192
2. 정치적 사회학자 뒤르켐: 사회주의적-자유주의의 국가 이론 · 199
3. 사회적 국가의 형상들: 공적 업무, 사회적 권리, 연대주의적 공화제 · 221
3장 | 관료주의 국가 · 231
1. 권력의 관료주의화와 정치적 자유 · 236
2. 관료주의와 계급투쟁: 기계-국가 · 243
3. 관료주의적 지배와 사회정치〔학〕적 합리화 · 251
3부 | 양극단의 국가 · 263
1장 | 총체적 국가 · 265
1. 정치, 법, 사회: 총체적 국가 · 269
2. 대중과 당: 전체주의 운동 · 279
3. 경제와 총력전: 자멸적 국가 · 287
2장 | 혁명에서의 국가 · 297
1.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국가와 혁명 · 302
2. 혁명 속에서의 당과 국가 · 307
3. 혁명적 사유 속에서의 위기, 국가에 대한 비판적 사유 · 316
결론 | 국가의 가장자리들에서, 민주주의의 경계들 · 329
참고문헌 · 335
찾아보기 · 347
옮긴이 후기 · 352
📖 책 속으로
국가는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며, 그런 점에서 우리가 흔히 자연 현상들에 돌리곤 하는 무역사성을 갖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국가가 여러 문명들의 역사 속에서 보편성을 지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 p.14
정치철학은 어떤 이론가의 의해 어떤 학설의 맥락 속에서 구상된 문제들, 테제들, 개념들에 관심을 두어야 할 뿐만 아니라, 정치철학 그 자체의 담론과 그 위상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그리고 공동의 삶에 관련된 현상들과 그 현상들이 제기하는 고유한 문제들을 대상으로 하는 여타의 담론들 내지는 지식 형태들이 정치철학 담론과 맺는 관계들이 어떻게 변화하는지에도 관심을 두어야만 한다.
--- p.16
정치철학은 자기 고유의 우연성과 동시에 자기 대상의 우연성을 인정함으로써 마찬가지로 〔자신에 대해〕 비판적이어야만 한다.
--- p.17
국가의 근거를 해명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국가의 필연적 실존을 부여하는 원인들에 국가를 결부시킴으로써, 국가의 근거에 대해 충분하게 설명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또한, 국가는 자신의 토대에 의해서, 즉 국가를 정당하게 만드는 규범적인 원천에 의해서 존재해야만 한다는 점을 국가의 실존에 결부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 p.25
정치적 자유주의가 경제적 자유주의와 결합했다는 것은 19세기 내내 포괄적으로 이루어진 사실이며, 현대 정치사상사에 심오하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결합의 요인들과 그 본성은 복잡하다.
--- p.143
“총체적 국가” 또는 “전체주의적 국가”라는 용어는 주어진 사회적 장 전체로의 정치 개입의 확장에 부여된 실천들 전체와 제도적 구조를 가리킨다. 우리는 전체주의라는 통념이 심지어 국가에 대한 사유에 심대한 난점들을 야기하며, 특정한 측면에서 이러한 사유를 국가라는 범주로 이해되는 것의 극단으로 몰아 붙인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 pp.265~266
문제는 바로 정치적인 것의 공간과 국가적인 것의 공간 사이의 관계들을 새롭게 분석할 수 있게 해주는, 따라서 정치적인 실천들 및 그 문제들의 장을, 공권력을 제도적으로 독점하는 체계로서의 국가의 결정 및 개입이라는 유일한 영역으로 환원시킬 수 없도록 막는 것 또한 분석할 수 있게 해주는 가지성의 도구들을 구축하는 것이다.
--- p.330
🖋 출판사 서평
교과서를 초과하는 교과서의 기획: 좌파적인 정치철학 교과서를 쓴다는 것
애초 학부생을 위한 교과서로 기획되었지만, 이 책은 사뭇 다른 교과서의 기준을 제시한다. 별다른 입장 없이 일종의 객관성을 표방하는 통상적인 다이제스트식의 철학개론서 형식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자신만의 ‘이질적인 지형도’를 그려나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으레 ‘교과서’라는 말 속에서 하나의 정돈된 답안지나 ‘보편학의 가계도’를 떠올리고 그것을 국민적 교양으로 간주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관점에서라면 이 책이 제시하는 복잡미묘하고 다의적인 맥락들과 원인들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할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역사적이고 실천적인 맥락들이 충분히 해설된 ‘철학교과서’다. 좋은 교과서/입문서란 “어려운 내용을 쉽게 설명해주는 책이 아니라, 지식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를 체계적으로 종합해주는 책”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더불어 이 책은 좌파적 입장의 정치철학 교과서를 표방하며 까다롭고도 위험한 여정을 감행한다. 정치철학 교과서를 쓴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모종의 당파성을 견지할 수밖에 없기에”, 교과서의 중립성을 위태롭게 만드는 요소들도 포함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의 실패 가능성에 관한 성찰에서 출발하는 이 독특한 교과서에서 학생들은 물론 전문가들도 얻는 바가 적지 않을 것이다.
단적으로 저자는 프랑스혁명에서 논의를 시작하면서도, 혁명가들의 담론보다 혁명에 대한 대응들인 보수주의와 자유주의의 형성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러시아혁명 이후의 마르크스주의 역시 총체적 국가와의 대비 속에서 조명한다. 그 이유는 혁명의 쓰라린 실패를 성찰하고 사유함으로써 새로운 실패를 거듭하지 않기 위함이며, 이 책을 위해 저자가 택한 방법론적 전략인 3중의 관점(역사적·이론적·비판적)과도 긴밀한 연관이 있다.
저자는 ‘역사적 관점’을 견지함으로써, 국가라는 대상을 실체화하는 대신 “국가의 역사적 이유들을 결정하는 제도, 지식, 실천의 변화들과의 연관” 관계에 근거해 이해하고자 하며, ‘이론적 접근법’을 통해 정치철학이라는 담론조차 불변의 실체가 아닌 신학, 법학, 경제학, 사회학 등 여타의 담론들과의 마주침을 통해 매 시기 새롭게 생성되는 것임을 분명히 한다. 마지막으로 ‘비판적 관점’을 통해서는 정치철학의 고유한 이론적 실천을 제시하고자 한다. 정치철학적 작업들이 발딛고 있는 특정한 정세와 시대적 조건을 인식할 때, 우리는 정치철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해서도 비로소 성찰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성찰은 근본적으로 정치철학이라는 담론 자체의 우연성 및 소멸 가능성과 마주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 작업들의 물질적·지성적 조건들을 인식하고, 이를 토대로 현재의 정세에서 그 작업들을 새롭게 전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사유하기. 그리고 이러한 실천이 생산해낼 수 있는 혀과들의 우연성을 다시금 성찰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이 책이 표방하는 정치철학의 고유한 이론적 실천일 것이다.”(360쪽)
역사의 변화를 재구성하는 정치철학: 국민/민족국가와 개인의 자유
정치철학은 국가 경계 너머의 존재에 대응하는 외교적이고 군사적인 지식으로서, 그리고 국가 내부의 개개인을 결속하는 도덕적이고 법적인 지식으로서 역할을 한다. 이 책의 1부는 민족과 국가에 관한 학설들 속에서 정치사상과 역사적 지식이 어떻게 긴밀히 연관되는지를 살펴보면서, 국가에 대한 가장 첫 번째 현실적인 논쟁들, 즉 프랑스혁명 이래 계몽주의와 합리주의의 논쟁, 자연권 이론과 사회계약 이론 간의 협의와 종합의 과정을 소개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각 시대마다 수립된 정치체들이 얼마나 불확실한지를, 정치적 경험의 축적이 국가에 대한 현실적 학문을 얻기 위해서는 얼마나 오랜 시간이 필요한지를 알 수 있다. ‘국민/민족국가’라는 철학적 문제는 인민주권의 이론과 내내 긴장관계를 형성하며 그 와중에 ‘국민/민족국가’를 형성하는 주요한 요소를 발견해낸다. 이를 위해 정치철학의 여러 개념이 이름을 얻어가는 과정은 녹록치 않다. “자유는, 모든 권력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 그리고 심지어는 정당한 권력을 정초하기 위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권력 그 자체를 그 권력의 정당성 문제에 부침으로써, 정당한 권력에 복종하기 위해서 주어진다.”(60쪽)
19세기 내내 ‘민족’의 해방, 국가 창설을 위한 투쟁이 벌어졌고 ‘민족적 인민’의 실체를 뒷받침해줄 여러 학문이 등장했다. 그중에서도 역사학은 민족 공동체가 독립적인 국가를 창설하는 것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각 시민 주체들에게 정치적 성찰을 호소할 목적으로 등장했다. 다만 민족국가의 조합은 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개개인의 시민들과 조화를 이뤄내는 데 여전한 곤란을 겪었다. 이에 헤겔은 개인의 자유와 사회 조직이 맺는 관계를 주목했고, 개인성이 사회적이고 정치적으로 구성되는 개념임을, 추상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산물임을 분명히 했다. 개인이 주체적 자유를 추구할 때에는 그 같은 인식이 반드시 이성적인 연역 질서 속에서 통합되어야만 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면서, 이제 질서는 개인의 자유를 가족, 시민사회, 국가라는 역사적?사회적 체계 속에서 하나의 현실로 만들어낸다. 또한 이에 더해 자본주의의 기술적이고 경제적인 변화는 각 주체들을 분화하고 분리해낸다.
“(불평등이) 그들의 이익들에 대한 만족을 보장하는 데서 무능력한 사회적 질서 아래 더 이상 그 어떤 ‘이익’도 상상할 수 없는 다수의 개인들(하층민)을 낳는다면, 사적 개인들로 원자화된 집단이 먼저 그것에 대한 추상적 표현을 제공했던 시민사회는 해체될 위기에 빠진다. 이 같은 위협은 염려스러운 거울 속에서 그 위협의 실제적이고 집단적인 모습, 즉 ‘계급’을 발견하게 된다.”(111쪽)
정치철학이 택한 방향들: 경제적 사고가 압도하는 시대를 마주하며
이 책 2부에서는 정치경제학과 사회학이 정치철학과 접합되는 방식을 설명하며, 정치철학에 고유한 생명력을 불어넣는 철학 내부의 변화와 그러한 변화 속에서 정치철학이라는 담론의 장이 어떻게 경제적 자유주의, 사회주의, 신자유주의, 복지국가, 관료주의 국가 같은 수많은 국가 형태의 정치적?이론적 각축장이 되는지를 입체적으로 살펴본다. 여기서 주요한 준거점은 바로 ‘카를 마르크스’다. 마르크스 경제학과 사회학은 자본주의의 태동기에 발생한 산업혁명 등의 대전환을 이해하는 틀을 제공한다. 경제학과 사회학은 국가가 자기 통치를 합리화하는 양상들을 어떻게 쇄신해가며 그 목적과 수단, 고유한 논리를 어떻게 정립해가는지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정치철학은 정치적 제도와 국가 통치술을 한 단계 높이는 데 경제학과 사회학을 적극 활용한다. “지식은 인간학적 지식이나 도덕적 지식, 혹은 역사적 지식이라기보다는 경제적 지식이다.”(144쪽)
경제적 자유주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어느새 효용성과 이익이라는 경제의 범주는 권리와 법 같은 법적 범주에 실질적인 내용들을 부여하기 시작한다. 국가의 관료주의 및 계획화 작업은 경제 주체들에 개입하고자 하지만 결국에는 경제 고유의 합리성에 의해 재규정된다. 이제 정치적인 것은 경제와 과학, 기술에 더욱 크게 의존하고 경제적 주체인 개인의 실존 또한 중요하게 취급된다. 이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에밀 뒤르켐은 신화, 교리, 전통이 사회의 특정 기관의 산물이 아니라 각 개인들에게 공통된 표상들임을 지적한다. 이는 곧 개인들의 권리가 개개인에게 당연히 부여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조직화와 연대에 따른 결과임을 인지해야 한다는 의미다. 개인에 관한 탐구가 본격화할수록, 갈등은 국가와 개인 간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집단들과 국가 관료집단 사이에 발생하며 이를 조정하며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19세기 후반부터 정치철학은 관료주의라는 하나의 현상을 목도한다. 행정 권력은 갈수록 중앙집중화하고, 다른 도덕적 전제 없이 도구적이고 기술적인 합리성에만 종속된다. 이 같은 익명적이고 비인격적인 기능의 종합체로서 행정 권력은 사회 통제를 벗어나 독자적으로 존재한다. 막스 베버는 이 같은 지배 형태의 변화가 단순히 행정과 법 분야의 국가장치의 변화가 아니라 근대 서구세계의 사회적 장 전체가 합리화하는 과정 속의 변화라고 못박는다. 관료주의가 법적 지배를 정당한 지배의 한 유형으로 만드는 문제는 곧 마르크스에 의해 설정된 관료주의와 자본주의 간의 관계의 문제로 전환된다.
정치철학의 가능성을 사유하기: 우연성 그리고 소멸 가능성 속에서
관료주의와 자본주의를 비롯한 다양한 총체적 지배 기획들은 그 자체로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민주주의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었다. 이 책의 3부는 20세기 초반 전 세계의 정치를 위협한 치명적인 혼동의 정치 ‘전체주의’를 카를 슈미트의 시선을 바탕으로 검토하는 데서 출발한다. 여기서는 국가가 ‘총체적 국가’라는 목표하에서 결국에는 전체주의 지배의 단순한 수단으로 어떻게 전락하는지를 철학적으로 점검한다.
슈미트는 법과 정치를 연관지으면서, 법을 실질적으로 만드는 것이 정치이고 법의 실질적인 성격이 정치 영역에 속하며 이로써 법이 그 자체로 정치가 됨을 역설했다. 이런 식의 연계는 각종 사회 현상들이 지녀온 공통의 경험들과 정치적 의미의 상실을 초래하며, 시민사회의 운동들은 국가의 권위에 종속된다. 이와 같은 변화는 국가가 그 자체의 역량과는 상관없이 전쟁을 이끄는 데에 밑거름이 된다. 국가는 전쟁 기계를 완전히 전유하며 그 총체화 기획의 정점에서 전쟁은 시민들의 공적이고 사적인 삶 전반을 장악해버린다.
저자는 정치철학의 고유한 대상으로서의 국가가 양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심대한 양가성을 띠게 되었으며, 그리하여 정치철학이 위기에 봉착했다고 진단한다. 결국 ‘국가’의 문제는 혁명인 것과 혁명 아닌 것, 공상적인 이론과 과학적인 이론, 사회를 개혁하는 원동력과 이를 막는 장애물을 다루는 모든 담론의 핵심 주제다. 국가는 계몽주의, 합리주의, 보수주의, 자유주의, 관료주의, 사회주의 등 모든 사상의 핵심에 놓여 있다. 우리는 국가라는 대상의 우연성과 정치철학이라는 담론 자체의 우연성을 성찰해야 한다. 저자의 이러한 성찰에는 20세기를 특징짓는 양 극단의 국가, 곧 한편으로는 전체주의적인 국가와 다른 한편으로는 혁명적인 국가의 생성의 원인과 그 실패의 이유를 성찰의 중심으로 삼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관점은 보통 세계화라고 부르는 조건 속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국가 및 그에 대한 담론으로서의 정치철학이 근본적인 우연성, 따라서 소멸 가능성에 직면해 있음을 사유하겠다는 뜻 역시 담고 있다. 자신의 불가능성의 조건을 성찰하는 정치철학만이 국가와의 상호정당화라는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제는 국가 장치로부터 독립적으로 확립되어 발전된 특정한 권력 기술들의 ‘국가화’라는 효과들을 역사적 층위에서 분석하는 것, 따라서 이러한 국가 장치들이 이 기술들의 합리성을 변형시켰던 독특한 조건들을 분석하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법이 국가 속에서 계급 관계들의 우위성을 보존하는 마르크스주의 테제와 양립 불가능한 것인지, 아니면 그러한 마르크스주의 테제와 접합되어야만 하며, 이 테제가 자신의 도구주의적인 전제로부터 벗어나도록 강제함으로써 이 테제를 쇄신할 수 있게 해줄지 여부는 열려 있는 물음으로 남아 있다.”(32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