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눈이 콩도 거두지 못하고 떠난 임이시여!
-윤희경 수필가님 영전에 부치는 글-
글: 德田 이응철(수필가,춘천기계공고교사.)
새벽이다.
간밤에 어떻게 잠을 설쳤는지 머리가 어수선하다.
어제 오후 (12일) 아내와 같이 처가에서 담소를 나눌 때였다.
메일 한 통이 사알짝 귀뜸을 한다.
누구일까? 망설인다. 나라고 왜 비밀이 없을까?
어느 여류시인은 누구나 꾀꼬리처럼 울지 못할 기찬 사랑을 가졌다고 했는데
무슨 메일이냐고 아내가 유난히 채근하며 다가온다.
사알짝 열어본 메일은 그야말로 천지가 개벽할 노릇이었다.
-수필가 윤희경님 사망,
찬바람이 분다고 마당에 내놓은 화분들을 정리하다가 우리 둘은 순간
돌부처가 되었다. 무슨 말이 필요하단 말인가! 실어증 환자가 되었다.
아니-,깜빡 무슨 꿈을 꾼 것이 틀림이 없었다.
아! 님이 가시다니-. 수필 문학의 거장이요, 아름다운 언어로 자연을 세세히
노래하시던 우리의 동료이자 선배님이신 솔바우님이 드디어 세상을 하직하셨단다.
T.S엘리어트는 말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병들과 싸우는 거대한 병원이라고-.
30년 간을 교직에서 이미지 좋은 선생님으로 특히 여고생들에게 꿈과 사랑 그리고 지식을
한아름 채워주시던 윤선생님이 우리가 사는 이세상을 서둘러 하직하시다니-.
지난번 여름이었다. 새로 부임한 춘천기계공고에 서너달 되어서다
-이선생이야! 나야, 기계공고로 왔다고? 축하해-.
어때 ! 견딜만 해? 잘 하겠지-.언젠가 내가 거기 교무부장 한 적도 있다고-
김00 선생 지금도 잘 계신지 -.물어봐 근무 잘하고 좋은 글 많이 써!!
교직의 선배님답게 그는 늘 교육 이야기만 나오면 찬란했던 그의 경험담을 털어놓는다.
선배님과 예비군 교육을 받을 때 처음 인사를 나누고 한눈에 반했던 그 시절-.
항상 웃으시는 모습과 연세에 비해 동안이셨던 선생님-.
그러던 분이 교직을 서둘러 접고 시골로 묻혀 솔바우 농원을 경영하시며
특히 그는 창작수필을 통해 황덕중 선생님에 이어 등단하시면서 주옥같은 글, 쉬운 글로
자연을 노래하시지 않았던가!
건강미도 너무 넘치셨다. 솔바우 마을주민이 되면서 농사를 짓고 실제 동네 사람들하고
품앗이를 하셨다고 언젠가 내게 전해 준 말이었다.
품앗이-. 내가 하루 그집에 가서 일을 하면, 다음은 그가 우리집에 와서 종일 일을 해 주는
우리나라의 협동정신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관습이 두레, 계와 함께 전해온다.
그 때 얼마나 놀랐던가? 생전 농사일도 안해보신 선생님께서 억척스러운 농민들과 품을
주고 받다니-. 농사! 예전에 공부 못하면 농사나 지으라고 했지만 사실 농사처럼 어려운 것도 없다.
우선 농사는 체력이 받쳐주어야 한다. 그 체력으로 손에 익어야 한다. 농사는 잡초와의 싸움이다.
초목지시(草木指時) 얼마나 중요한가? 실기(失期)는 금물이다. 모든 농삿일은 때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완두콩(일명 활콩)을 보면 아무 때나 심으면 먹는 줄 알지만, 이른 봄에 심지 않으면
다시 심지 못한다고 한다. 모든 것들이 다 그렇지만 간단한 완두콩을 나는 실제 경험으로 느꼈다.
선생님은 너무 할 일이 많으신데 서둘러 가신 거다.
귀농인으로 전파를 타고 그의 주옥같은 문장들로 자연을 노래한 뉴스, 단문들이 세인의 찬탄을 받으면서
전국에서 몰려들어 북한강 이야기 카페에 회원만도 천여명에 육박한다.
누군가 평한 글 중에 다음과 같이 극찬한 말에 공감이 간다.
-작가는 이간이 자연과 함께 누려야 할 가치와 희망을 쉽고도 간결하게 이야기 하면서도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을 그대로 지나치지 않는다.보잘 것 없는 것들에게 생명의 가치를 부여해주며,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인지를 잔잔하게 일깨워준다.
선생님은 두권의 책을 출간하셨다.
북한강 이야기와 최근에 그리운 것들은 山 밑에 있다-.
처음 책도 물론이지만 두번째 첫장을 넘기면서 그 동안의 눈부신 활동을 전한
한페이지의 화려한 수상경력과 활동하신 부문과 현재의 근황이
너무 눈부시게 적혀 책을 받아보며 그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변변치 못하게 자주 찾아뵙지는 못했던 것이 가슴을 친다.
얼마 전에 손수 심어 수확하신 매실도 사고,너무 좋은 책 받았다고 전화 했더니 너무 그림이
많아 하면서 겸손해 하시며 기뻐하시던 음성이 마지막일 줄이야-.
가을 초입새에 우리는 서 있다.
올해 수없이 큰 별들이 사라졌지만, 나는 간밤에 잠못이루도록 큰별 하나를 잃었다.
윤희경 수필가 ,선배님,선생님이야말로 큰 별이 아닐 수 없다.
자연속에서 자연을 노래하시며 뒷산에서 노래하는 멧새 한마리와 집앞을 서성대던
쪽제비 한마리, 그리고 이른 봄이면 돋아나는 제비꽃에 정겨운 시선을 던지고 생명을 불어 (넣어준다.
나도 고향이 정족리지만 단견(短見)인지는 몰라도 특히 학창시절 농촌이 덜퍽 좋지 않았다.
우선 시내 학교와 이십 여리 떨어져 조석으로 등 하교하기가 제일 여간 힘들지 않고
공부에 전력을 다하려면 농사일을 거들라는 형님의 명령이 늘 불만이었다
얼마나 당시 학교 배움에 방해가 되었던지 첫번째 목표가 도시에 살기였으니 목표는 달성한 셈이다.
그에 비하면 윤희경 선생님은 그 얼마나 자연을 사랑하고 아끼셨는지 그야말로 천부적인 기질이시다.
나 역시 창작수필로 처음 입문해 몇 년 잘 보아서 오창익님의 문체를 잘안다. 등단은 수필과 비평에서지만-.
그 분의 문체는 그곳에서 등단하신 윤희경선생님의 문체와 흡사하다. 구체적이고 잔잔하며 마치 신변잡기처럼 부드럽고 애잔하며 작은 것을 놓치지 않게 써 그야말로 정이 많은 작품임에 틀림이 없다.
아! 그렇게 유명한 선생님이 어제 소천하시다니-.
처음 소식을 접하고 아무것도 못하고 멍하게 서 있었다.
가까운 지인들도 이 허탈감을 공유하면서 그 시간에 돌부처가 되어 아쉬워하셨으리라.
반미(飯米)콩은 반미 녹두 쥐눈이 콩이라 콩을 심고 기다리시던 진실된 마음-.
비둘기 떼를 원망하지 않으시고 콩 세쪽을 심으시던 그 지혜-.
창작수필 동인 문학상을 수상하실 정도의 문학성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이제 선생님은 뵈올 수가 없다. 허무가 전신을 감싼다. 시도 때도 없이 누구나 다 잡혀가는
죽음의 세계야말로 평등하다니 야속하고 전신에 맥이 풀린다.
그는 꽃들의 잔기침 소리를 듣던 분이며,콩 꼬투리가 독립해 나가는 소리와 모습을 들으시며
자연과 대화를 나누시던 자연보호가시며 솔바우동네에서 흔히 쓰는 농학박사이시다.
꽃과 나무와 새, 추억이 함께하는 고향이야기를 더덕더덕 때묻은 도시민들에게
향수처럼 안겨주어 영혼을 맑게 치유해 주시는 윤선생님-.
그의 붓끝으로 쓴 두권의 책은 영원 불멸하리라.
정신차린 새벽이 훌훌 벗겨진다.
날씨마저 간밤에 아픔을 소화하지 못한채 시간을 구별못하고 훨씬 뒤늦게 밝아온다.
더없이 훌륭하신 자연보호가-. 흙냄새, 들꽃 한송이 ,지렁이 한마리, 개구리 합창소리,
환풍기 연통에 둥지를 튼 곤줄박이 모두 이처럼 애정을 가지고 사랑한 환경론자가 누구이던가!
동안(童顔)이시라 늘 허물없이 대하며 농을 했던게 가슴을 친다.
오죽 했으면 첫 북한강 이야기를 쓸때 나를 아는 네가 발문을 쓰라고 까지 하지 않았던가!
아! 선생님-.
항상 저희곁에 살아계시며 강원문학, 강원수필을 지켜봐 주세요.
당신의 몸이 눈에 익은 송암리 산야에 수목장으로 그 山 밑에 계실 것입니다.
드높은 곳에서 늘 내려보시며 새소리, 바람소리 물소리,초목소리와 영혼을 편히 쉬소서-.
아-. 간밤에 뒤척이며 망연지탄에 원흉인 병마에 쫒겨 쥐눈이 콩, 반미콩도 다 거두지 못하시고,
아직 서성이는 후조(候鳥)들보다도 먼저 세상을 하직하신 선생님 영전에 이 글을 바칩니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2009. 9. 13 . 새벽 4시 반에 머리 조아립니다.
첫댓글 서울에서 윤희경선생님의 영전에 마음을 바칩니다. 서양화가: 정정신
특별한 계획 없으시면 이럴 때 오셔서 분향을 했으면 ㅎㅎ
지금 인사동에 전시중에 있습니다. 여기는 인사아트 프라자 3층 전시실입니다. 덕전선생님께서 저의 마음을 전해주소서.... 다시 삼가 윤 희경 선생님 영전에 사랑을 전합니다. 윤희경선생님! 부디 편히 가시오소서......
내일 오후에 찾아가려했는데..... 한 발 늦었습니다. 먼저 가신 길. 좋은 곳에서 영생을 누리십시오.
회장님 잘 다녀오시길 빕니다.
문학인의 큰 별, 님은 가셨습니다. 명복을 빕니다. 빈 자리가 너무 커서 허탈감에 잠 못 이루고 영전에 바친 글 구절 구절 마음을 적십니다.
마침 귀국하시어 같이 아픔을 나눈게 감사해요.
꼿꼿한 선비정신에 모범적인 귀농생활, 향기 그윽한 수필! 일흔 초입에서 이승을 영영 하직하신 고 윤희경 선생님의 명복을 빌며, 덕전님의 애절한 추모사에 마음을 내려 놓습니다.
인생무상 빈손인생-.몇년 지나면 과연 몇이나 기억을 할까요? 모두가 다 사라지는 존재들이지요
문병도 제대로 한 적 없으면서 머리를 조아린다는 것 자체가 허무합니다. 이 허무하고 맥빠지는 세상을 어이 헤쳐가라고 훌훌 떠나버리십니까.
검은 싱글차림에 문상오시는 두분 모습 -. 그날 저녁은 슬픔의 바다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