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 어머니.
더운 날씨에 비는 오지 않고 높은 하늘은 틀린 일기예보를 조롱이나 하는 듯이
연일 쨍쨍 내리쬐는군요.
꽤 더운 편이지만 그럭저럭 견딜만 합니다.
이렇게 더운 날씨에 비취파라솔 밑에서 선글라스 끼고 한가하게 피서 즐기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잘먹고 잘 놀아서 피둥피둥 찐 살을 빼느라고 사우나탕,헬스크럽 다니면서 땀 흘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삼복더위에 라면으로 끼니 때우며
먼지와 기름 냄새로 가득찬 무더운 작업장에서 묵묵히 땀 흘리며 일하는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노동자들에 비하면 저는 신선 놀음입니다.
가족들의 그런 태도는
여기 갇혀 있는 저에게는 진정으로 위하는 것도 아니고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딴 가족들은 면회오면 어떻게든 꿋꿋하게 지낼 수 있도록 용기를 복돋아 주고
바깥 소식들을 전해주고들 하는데 허구헌날 판사님 앞에 고개숙여라, 판사가 무슨 내 할아버지라도 됩니까.
저들이 비록 나의 신체는 구속을 시켰지만
나의 사상과 신념은 결코 구속시키지 못합니다.
저를 포함한 수많은 노동자, 학생들이 구속되어 있는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입니까.
누가 우리를 구속시켰습니까. 미워합시다.
그리고 저들이 저를 편한대로만 만들어 놓은 이 땅의 부당한 사회구조를 미워합시다.
악한 것을 악하다고 말할 용기가 없다면 마음 속으로 진실하게 믿는 용기가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제가 구속되어 있는 사실을 왜 쉬쉬합니까.
한명에게라도 더 이러한 부당한 현실을 알리십시요.
내가 왜 구속되었는가를, 저들의 폭력성을,우리들의 정당성을 사회적으로 고발하십시요.
그럴 용기가 없으면
마음 속으로나마 바깥에서 오늘도 열심히 싸우고 있는
우리 친구들과 저처럼 싸우다 갇혀 있는 친구, 선배들에게 힘찬 격려의 박수라도 쳐 주십시요.
엄마 아버지의 막내는 결코 나약한 인간이 아닙니다.
이만 줄입니다.
칠월 팔일 막내. (..198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