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니즘(Humanism)과 트랜스 휴머니즘
인류의 가치관과 정신은 시대에 따라 바뀐다.
세종 이도는 21세에 왕위에 올라 53세로 타계할 때까지 32년간 왕이었다.
아들 2명이 왕위에 올랐고 이후 단종 이후 모든 왕이 모두 그의 혈통이 었다.
그의 자녀는 子17명,女10명으로 모두 31명이나 되었다.그의 치적은 언급할 필요는 없겠고.
인생길의 시대와 내용을 선택할 수야 없지만,한번뿐인 인생을 선택할 수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굳이 세종의 시대에 세종같은 인생을 택할 것 같지는 않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도 超휴머니즘의 시대에 들어서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스, 로마 철학에 뿌리를 둔 "휴머니즘"이라는 용어와 운동은 르네상스(14~16세기)의
인문주의에서 본격적으로 태동합니다. 신 중심의 중세 가치관에서 벗어나
인간의 이성·자율·존엄을 강조하면서 미술, 문학, 과학, 정치 사상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근대 계몽주의(17~18세기)는 데카르트, 칸트, 루소 같은 사상가들이 이성, 자유, 평등을 강조
하면서 휴머니즘은 인류 보편 가치로 정립됩니다. 근대 민주주의와 인권 사상도 이때 뿌리를
내렸습니다.
20세기 이후 세계대전과 전체주의를 겪으면서, 휴머니즘은 단순한 철학이 아니라 인권·평화·
생명 존중의 근본 가치로 국제적으로 자리잡습니다(UN 인권선언, 평화주의 운동 등).
다시 말해 현대에 와서는 국제 규범과 윤리의 핵심 가치가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대에 들어 휴머니즘은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도 큰 관심과 논쟁점이 되고 있습니다.
트랜스휴머니즘은 20세기 후반부터 제기된 철학·문화 운동으로,인간 능력을 과학기술(유전자
공학, 인공지능, 사이보그 기술 등)을 통해 극대화하거나 초월하려는 사상입니다.
인간 수명 연장, 지능 증강, 신체 능력 개선 등이 주요 주제지요.
휴머니즘과의 접점을 보면 공통점은 모두 인간의 존엄과 가능성을 존중합니다.
인간을 더 나은 존재로 만들고자 한다는 점에서 연속성이 있습니다.차이점은 휴머니즘은 인간
의 본래적 가치와 한계를 존중하지만, 트랜스휴머니즘은 기술을 통한 인간 초월을 강조합니다.
아무튼 인간의 본래적 가치와 기술을 통한 인간 초월은 개인이나 국가나 하늘과 땅 만큼 차이
가 날 것입니다.
정립 방향에서 불 때 트랜스휴머니즘이 휴머니즘과 결별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통한 새로운
인문주의”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견해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생명 연장 기술이 불평등을 심화
시킬지, 아니면 인류 보편의 행복을 높일지는 휴머니즘적 가치판단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여야 된다는 당위가 반드시 현실이 되는데는 항상 많은 난관이 있고 그 극복 여부는
결국 인간 자신이 해결해야 할 문제 일 것입니다.
인간과 그 너머에 대하여 역사를 돌아보면, 인간은 언제나 자기 자신을 묻고 또 되새겼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 말했을 때, 그것은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스스로를 세계의 중심에 세우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긴 세월 동안 신의 권위가 인간을 눌렀고,
인간은 스스로의 존엄을 온전히 주장하지 못했다.
르네상스가 찾아왔을 때, 사람들은 비로소 하늘에서 눈을 거두어 자신을 바라보았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스케치와 셰익스피어의 문장은, 인간이 지닌 이성, 감정, 그리고 가능성
의 무게를 새삼 일깨워 주었다. "휴머니즘"은 이렇게 태어났다. 인간은 단순한 피조물이 아니라,
생각하고 창조하며 스스로를 개선할 수 있는 존재라는 믿음이 자리 잡은 것이다.
근대에 들어와 계몽주의는 이 불씨를 키워냈다.
인간은 자유롭고, 이성은 만인을 평등하게 한다는 사상은 민주주의와 인권의 밑거름이 되었다.
세계대전의 참화를 겪은 뒤, 인간은 다시금 인간다움에 매달렸다.휴머니즘은 더 이상 사치스러운
철학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 붙잡아야 할 가장 단단한 가치였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새로운 질문 앞에 서 있다.
과학기술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이 시점에서, "트랜스휴머니즘"이란 낯선 단어가 들려온다.
기계와 결합한 인간, 유전자를 편집해 더 오래 사는 인간, 뇌와 인공지능을 연결하는 인간. 이들은
과연 여전히 인간일까, 아니면 이미 다른 무엇이 되어버린 걸까.
여기서 우리는 다시 휴머니즘을 불러내야 한다.
인간을 초월하려는 모든 시도 앞에서도, 여전히 인간의 존엄을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 말이다.
기술은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 수는 있지만, 더 인간답게 만들지는 못한다.인간다움은 고통을
나누고, 타인의 얼굴을 기억하며, 불완전함 속에서 서로를 존중하는 데서 비롯된다.
트랜스휴머니즘은 휴머니즘의 적이 아니다.
오히려 휴머니즘이 마련해 놓은 토대 위에서 자라난 새로운 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그 가지가 제멋대로 뻗어나가 인간을 가리게 된다면, 뿌리마저 말라 버릴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술의 속도를 따라가되, 인간의 가치를 잃지 않는 균형을 찾아야 한다.
결국 질문은 다시 하나로 모인다.우리는 어떤 존재로 남고 싶은가.
더 강한 존재인가, 아니면 더 인간다운 존재인가. (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