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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기를 준비하는 힘
처음. 2009. 8. 23
글씀. 배병두
하나. 2학기, 방학을 떠나보내다
방학과 헤어질 때가 왔습니다. 왜냐구요? 이제 2학기의 시작이 다가왔으니 말입니다.
방학과의 헤어짐, 아쉬움이 많을 것입니다.
좀 더 놀지 못한 아쉬움, 벌써 방학 끝난거야? 우와, 다른 학교는 우리학교보다 좀 길던데?
아, 클났다. 숙제 다 못했는데? 또 쌤한테 맞는 거 아닌가? 이런 저런 마음의 고민들로
복잡하지 않은가요?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 보내야 합니다.
사랑한다면 카페라떼 처럼(빅뱅 광고), 방학을 사랑했다면, 이제 카페라테(?)처럼 떠나보내야겠죠.
왜 떠나보내야 할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2학기, 새로운 시간이 친구에게 왔음을 인합입니다.
우리 친구들, 시험치다보면 모르는 문제, 헷갈리는 문제 놓고 씨름하면 풀리던가요?
일단은 쉬운 문제부터 다 풀어야 합니다. 안 그러면 그 모르는 문제에서 걸려서 시간 보내다보면
이거 뭐, 몇 문제 풀다, 시간 얼마 안 남아서 시험 망치지 않던가요?
거기다 오늘 시험 몇 과목 망쳤다고 울고 불고 하다가 정작, 내일 시험 공부 하지 않고 있으면
이거 완전 시험 죽 쑤는거 아니겠어요? 친구여, 첫 숟가락에 배부르지 않듯이, 한 번의 방학으로
만족이 올까요? 아니 계속 와도 아쉬움이 남는 현실 아닙니까?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기 마련입니다.
아쉬움을 떠나 이제 방학을 떠나보내야 합니다.
그래야 2학기 기말고사 후 겨울방학을 맞이할 꺼 아니겠어요?
마치 올림픽 폐회식에서 4년 후 다시, 만납시다라고 하며 인사로 마무리하듯 말입니다.
이제 방학을 떠나보내야 할 시간, 아쉬움은 이제 그만~(텔레토비 버전)
하나. 2학기, 또 다른 시작
2학기, 이것은 또 다른 시작입니다.
즉, 전혀 다른 세계라는 것입니다.
물론 시간의 흐름상으로 보면 1학기 후 오는 자연스러운 2학기이지만
과목이나 선생님의 변동, 교실의 변동 또한 있는 것이 2학기 아닙니까?
완전히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거기엔 다른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국사를 예를 들어 봅시다.
1학기까지 고려시대가 마지막이었다면, 2학기부터는 조선시대입니다.
시대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배워서 알겠지만, 시대의 문화와 의상, 국가적 제도가
완전 다릅니다. 비슷한 형태를 띄고 있으나,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혀 다른, 또 다른 세상을 만나는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친구여, 이 새로운 시작, 어떻게 준비하고 있습니까?
하나. 2학기, 세상의 지혜를 버리고
오늘날 수 많은 친구들이 학원을 다닙니다. 그것도 한 두 개도 아니고, 여러 개를 다닙니다.
밤 늦도록 공부하고 또 공부합니다. 왜 일까요? 자기 꿈과 목표를 위해서일까요? 물론 그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엔 뒤처지지 않겠다는, 뒤쳐질까봐 두려워하는 마음도 함께 있습니다.
무엇보다 좋은 대학을 가야, 좋은 직장을 가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게 되어 있는 우리의 현실에 있습니다.
이른바 명문이라 불리는 대학을 가면 성공한 인생이고, 소위 삼류 대학, 남들이 알지도 못하는
인지도 없는 대학을 간 사람은 낙오자, 혹은 별 볼일 없는 인생으로 치부됩니다.
왜 일까요?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사람을 평가함이고, 무엇보다 우리나라는 성적이라는 단 하나의 것으로
각자 다른 쓰임과 목적으로 하나님께 지음받은 사람을 평가하고 있다는데 그 문제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손을 지으신 것은 무언가를 집고 옮기는데에, 발을 지으신 것은 걸어다니며 어디 가는 것에,
눈을 지으신 것은 무엇을 보는 것에, 코를 지으신 것은 무언가 냄새를 맡는 것에..
이처럼 각각 그 쓰임에 따라 창조하셨는데, 사람은 사람을 성적이라는 단 하나의 쓰임으로
그 사람과 존재의 전부를 결정하는데 그 오류가 있다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학생으로서 배움에 충실해야 하고, 공부에 열심을 내어야 하는 것은 사실이나
마치 공부와 성적 하나로 그 친구의 인생 전부를 논하고, 인격을 말하고, 사람의 내일을 평가한다는 것은
참 가슴아프고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소위 공부를 잘하면 모범생이요, 공부를 못하면 문제아, 혹은 낙오자로 대우(?)받으며
공부하는 친구들은 시원한 에어컨 있는 교실에서 공부한다면, 공부를 못하면 이른바 잠자도록 내버려두거나
밖에서 사회봉사라는 명목으로 풀을 뽑게 합니다.
내어버려둠, 풀을 뽑는 것..
같은 친구들은 공부하는데,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너희들에게 관심 없다.
너희들은 이미 낙오한 인생이니, 포기한다는 뜻 아닐까요? 너무 가슴이 아려오는 일 아닙니까..
그렇다면 친구가 진정 낙오되고, 문제아 된 인생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친구도 귀하게 빚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존재의 가치가 공부로 평가되는 세상의 아픔 속에서 당당히 일어나십시오.
여러 학원 다니는 친구들을 부러워 말고, 친구가 진짜 가려는 길이 무엇인가 생각하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단지 누구 집은 바이올린도 다닌데? 안하면 뒤쳐질 거 같아 보내주고,
누구 집은 태권도도 한데? 안하면 능력 없는 집 같아 보내주고, 누구 집은 박지성 처럼 축구해서 수십억 번데?
누구 집은 박세리처럼 골프 시켜서 돈 많이 번데?
사실 이것이 오늘날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의 목적이지. 그 외에 무엇이 존재할까요?
단순히 돈 많이 벌기 위해 학원가고, 누군가 가라고 하니까 마음에 없는 공부한다고 학원에 있는 것이
그 친구에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단지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좀 초라하게 보이기는 싫은 마음에서 오는
허영으로 가득한 것 안에 무슨 뜻이 있고, 깊이가 있으며, 참된 의미가 있을까요?
친구여, 하나님을 묵상하십시오. 말씀을 읽으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친구가 노인보다 지혜가 있고, 그 어떤 지혜자보다 탁월하다 하십니다.
말씀이 내 삶의 방향과 길을 시원하게 쳐 주는 나침반입니다.
돈을 많이 버는 것? 좋은 곳에 들어가는 것? 이것을 위해 친구의 인생을 드리겠습니까?
그것이 내 인생을 이끌어가지 않습니다.
돈은 필요의 수단이고, 좋은 곳을 추구하는 것은 세상이나 그리스도인이나 같다면
믿음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여기서 좋은 것이란 잘 먹고 잘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인간의 추구하는 1차적 욕망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비전(?)인생은 아파트 평수 늘리고, 멋진 차 타고, 화장실 몇 개 더 달린 집
거기서 인생이 끝이 납니다. 로또 걸리면 인생역전이라 말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역전입니까?
단지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사람의 끝없는 욕심일 뿐, 비전이 아닙니다.
친구는 무엇을 위해 인생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수 많은 사람들의 그 비전(?)에 인생의 목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친구의 길을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그 분을 인정하면, 그 분이 친히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친구여, 친구의 형편을 따라 친구가 추구하는 올바른 방향을 따라 당당히 그 길을 가십시오.
없다면 길을 만드십시오. 부러워하고 보여주기 위함이 아닌, 진짜 추구하는 길을 따라 묵묵히 노력하고
땀 흘리는 친구의 내일이 더욱 멋질 것입니다. 겉만 번지르한 인생이 아니라, 내면의 내공이 살아 숨쉬는 실력과
가치를 위해 달려가기 바랍니다.
하나. 2학기, 학원을 가는 이유
오늘날 학원 가는 이유에 대해서 나누었습니다.
친구는 과연 무엇을 인하여 학원을 갑니까?
학원의 명성은 단지 성적과 얼마나 많은 학생들을 대학에 입학시켰느냐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 명성은 단지 공부와 시험, 성적으로 사람의 존재를 평가받는 안타까움이라는 데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길을 통과해야만 또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힘들지만 걸어가야 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시대의 흐름을 따라 가시겠습니까? 아닙니다.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뜻이 분명하면 단순히 시험점수 잘 나오려고, 대학만 들어가려고 공부하지 않습니다.
실력을 키우려면 전문적으로 배우고, 깊이 알기 위해서 학원을 가는 것도 좋습니다.
다만 보이기 위한 여러 군데 다니는 학원의 의미보다는 내가 가장 뜻을 두고 있는 한 분야의 학원을 하나
택해서 집중적으로 훈련을 받고 배우는 것이 유익합니다.
그 단계를 넘어 더 깊은 단계로 오르려면 그 분야에 더욱 탁월한 배움을 나누는 곳으로 올라서야 합니다.
배움은 끝이 없습니다. 시대는 변해가고, 그 변해가는 세상속에서 수 많은 정보와 소식이 들려집니다.
거기서 내가 배우고, 알고자 하는 것, 뜻을 둔 길에 얼마나 유익한가를 살피며, 배우고 또 배워야 합니다.
그것이 내공을 기르는 것이고, 더 높이 날기 위한 힘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당장, 친구들에 비해 학원을 아예 다니지 않는다하여, 너무 비교되어서 한 두 군데 다닌다하여
이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친구가 어떤 길과 어떤 분야에서 쓰임을 받고자 하는가 입니다.
그 쓰임의 중심과 목적이 친구가 학원을 가는 이유이고, 배움의 뜻을 둔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 2학기, 한 가지를 독파하라
흔히 세상은 여러 사람을 사귀는 것(여자, 혹은 남자)이 능력이라 말합니다.
물론 능력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한 능력은 아닙니다.
그것은 마음이 여러 곳으로 흩어져 100% 온전한 힘을 발휘할 수 없음을 인함입니다.
천 명의 궁녀를 거느렸던 솔로몬을 보십시오.
궁녀가 천 명이라는 것은 그 마음에 둔 여자가 천 명이라는 것인데,
그렇다면 솔로몬 한 사람의 마음 100%가 천 명에게 얼마나 나뉘어져 있는 겁니까?
그렇다면 이것은 바꾸어 말하면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는 뜻이 됩니다.
그렇지 않나요?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두 마음을 품은 자도 쓰지 않겠다 하시는데, 하물며 천 가지의 마음을 품은 자를 쓰시겠습니까?
그 분은 1계명에 이미 하나님 당신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하셨습니다.
이것은 마찬가지로 한 여자가 한 남자를, 한 남자가 한 여자만을 바라는 것이 진짜 사랑이고, 능력인 겁니다.
우리게 그 분은 결정하라 하십니다. 바알에게 무릎꿇을 것인지? 하나님을 섬길 것인지!
모세가 죽은 이후 여호수아는 외치지 않습니까?
너희가 이제 택하라! 세상? 하나님? 그러나 나는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다 선포하였습니다.
이것이 진짜 믿음, 진정한 마음 아닙니까? 바로 이것입니다.
오늘날 친구는 부러워하지 않습니까?
누구집은 저것도 하고, 누구는 이것도 잘하고, 그런데 나는?
저 친구는 공부도 잘해, 운동도 잘해, 못 하는게 없네?
그 가수는 연기도 잘해, 춤도 잘 춰, 노래도 잘해! 만능 엔터테이너네?
그러면 연기 못하고, 춤 못 추고, 노래 못하면 아무것도 못하는 바보인겁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남들이 간다고 나도 그렇게 따라갈 겁니까?
이른 바 소위 개성을 추구한다. 나는 남과 다르다는 것을 추구하는 세대인,
우리는 매우 황당하게도 누군가와 같지 않으면
마치 다른 사람처럼, 소외된 사람처럼, 별 볼일 없는 인생처럼 자신을 평가합니다.
한 가지만 잘하십시오. 굳이 많은 것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필요하다면, 거기에 뜻을 두고 있다면 해야 합니다.
그러나 단지 남들이 하니까, 그들과 같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 취급(?)하니까라면 하지 마세요.
명품을 산다고 명품인생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은 이미 명품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빚으신 걸작(엡2:10)입니다.
지금 있는 모습 자체가 개성이고, 명품이라는 겁니다.
왜냐구요? 우리 살펴보세요. 키가 다르죠. 몸무게 다르죠, 얼굴 다르죠, 세포 다르죠,
안경모습 다르죠, 머리모양 다르죠, 지문모양 다르죠, 학교 다르죠, 반 다르죠, 신발디자인 다르죠
하나부터 열까지 똑같은게 거의 없습니다. 이미 개성있는, 비교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작품 아닙니까!
비슷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슷한 것은 말 그대로 비슷한 것이지, 다른 것입니다.
흔히 쌍둥이 똑같다고 하죠? 아닙니다. 그 안에 무려 100여가지가 다르답니다.
64억의 인구중에 나와 같은 엄지손가락 지문이 똑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섭리, 그 분의 위대하심입니다.
그러므로 단 하나의 존재이기에 특별한 것입니다.
결국 친구의 있는 이 모습 그대로가 특별한, 단 하나의 소중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가지를 독파하십시오.
내가 잘하는 것,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것으로 쓰임받게 하실 특별한 재능말입니다.
이것이 지금 별 볼일 없어보이나요? 누군가와 비교해 하나님께서 주신 친구의 재능, 장점은 별로
가치가 없이 여겨집니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축구를 잘합니까? 축구에 대해서 공부하십시오.
춤을 좋아하세요? 밤새도록 추어도 지치지 않습니까? 춤을 공부하세요.
그림을 좋아합니까? 그림을 그리세요! 스케치북 들고 다니며 그리세요.
전문적인 잡지도 사보고, 같은 뜻을 품은 이들이 모인 동아리에도 가입해서 추구하는 길을 함께 걸어보세요.
믿음에도 동역자가 중요하듯, 재능을 키우는데도 함께하는 친구가 중요합니다.
흔히 공부라면 교과서, 시험치는 것이 공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어떻게 공부가 교과서뿐입니까? 그것은 단지 사회를 살아감에 기본적으로 배우는
교육과정이고, 더구나 시험점수를 위해 존재하는 배움에 무슨 배움의 의미가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친구는 지금 학교를 다니면서 배움을 위해 공부합니까? 아니면 시험점수를 위해 공부합니까?
이것이 또 다른 공부의 세계를 만나는 길이 될 것입니다.
친구와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에서도 배울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길거리를 걸으며, 시대의 흐름을 보고, 사람들의 의상과 눈빛을 바라보는 것도 배움이 있습니다.
서점을 가서 새로나온 책을 보고, 내가 관심있는 책을 몇 페이지 펴가면서 읽는 것도 공부입니다.
광고디자인을 꿈꾸는 친구에게 지하철을 가다가, 길거리의 광고간판을 보고 관찰하는게 공부입니다.
의사를 꿈꾸는 친구가 병원에 가서, 의료학계 잡지를 보고, 아픈 환자분을 도우는 것(간병)도 공부입니다.
포토 디자인을 꿈꾸는 친구가 산 길을 걸으며, 바람과 갈대의 흐름을 바라보는 것, 버스를 타고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는 것
이것 자체가 살아숨쉬는 공부요, 배움입니다.
친구여, 남들이 간다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그 대학 못가면 따라지 취급당하니까 떠밀려서 길을 걷지 말고,
진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재능을 통해 쓰임받을 곳, 내가 필요한 곳, 열정을 불태워도 지치지 않는 즐거움에 거하는
그 아름다운 길에 자신을 드리십시오.
여러 분야의 잡다한 지식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전공하는 하나의 배움의 깊이를 더해가는 것!
그것이 진짜 내공과 살아숨쉬는 실력을 키우는 능력이 될 것입니다.
하나. 2학기, 다시 일어서는 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잘 될 것이다. 긍정의 힘과 자신감,
행복하다고 몇 번 외치면 그렇게 된다는 자기 암시, 자기 긍정, 부정적인 생각을 떠나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거기에 과연 우리의 힘이 존재합니까?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마음을 수련하라고, 명상을 하라 합니다.
그러나 마음을 수련한다고 우리가 달라질까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썩었다고 말씀하십니다.(렘17:9)
그것도 아주 썩었다고 단언하십니다.
솔직히 자신의 마음을 한 번 보세요.
진짜 선한 것이 있는지, 아니면 하나님께 자신의 내면을 해부해달라고 해 보세요.
말씀에 비추어 자신을 보면, 내가 왜 죄인인지 그것밖에 안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선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나는 그래도 누구보다 낫다고 외치지만, 정작 나의 내면을 보면
말할 수 없는 죄악된 서글픔을 포장하고 있는 간사함이 있지 않습니까?
선한 것없는 인간의 마음, 스스로 수련을 한다고 마음을 비운다고
거기에 능력이 존재할까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힘이 당신에게 있다고 하십니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라, 너의 도움이 어디에서 오니?
천지를 만든 나에게 있단다.(시121:1)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엇보다 그 분을 즐거워하는 것이 우리의 힘이라 말씀하십니다.(느8:10)
세상을 즐거워하고, 내가 좋아하는 무엇가를 하는 것이 나의 힘이 아니라,
나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 당신을 아는 자만이 강하여 용맹을 발할 것이라
하신 것입니다.(단11:32)
오늘 나의 힘이 무엇입니까?
내 주먹을 믿는 자신감입니까?
내 썩은 마음을 믿는 마음수련입니까?
나 잘 될꺼야, 몇 번 외치는 긍정의 힘입니까?
오직 우리의 힘은, 세상의 능이 아니며, 사람의 지혜도 아닌
주가 주시는 새 힘입니다.(사40:31)
세상은 자신감으로 살지만, 하나님의 자녀인 친구는 오직 믿음으로 삽니다.(롬1:17)
본 글은 청소년 친구들을 대상으로 함께 나누는 글임을 알려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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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주안에서 언제나 영육간에 강건 하시길 기도 합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