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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농사의 가을걷이로 무지 바쁠 희양산작목반일 텐데 서울살이도 그 못지않은 작금입니다.
딸랑딸랑...
사타구니에서 워낭소리가 그칠 새가 없습니다.
지난주에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지금 그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지난주 월요일 아침에는 교문 앞에서 ‘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1인 시위를 하는 지역 학부모회 대표의 호위무사 노릇을 했습니다. 혹여, 찍자라도 붙는 작자가 있을까 저어하여 봉암사 천왕문의 사천왕처럼 눈 부릅뜨고 학부모 옆에 엉 버티고 서서 사주경계를 했는데.... 괜한 걱정이었습니다.
등교하는 학생들은 목인사를, 출근하는 선생들은 눈인사를 하며 들어갑니다.
그날, 저녁에는 광화문 농성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초겨울비가 조금 흩뿌렸지만 개의할 정도는 아닙니다.
날씨가 추우니 촛불 종이컵의 온기가 참 소중했습니다.
집회에서는 대통령께서 야당 원내대표에게 하셨다는 ‘그년’ 발언이 발언자들 입에 회자되었습니다.
참 독하고 찌질한 대통령입니다.
화요일 저녁에는 분회장 총회에 앞서 지회사무실에 투표소를 설치하고는 노동개악에 반대하는 ‘乙들의 투표’를 했습니다. 기륭누이들의 성화에 따른 투표소 설치입니다. 뒤끝이 어마무시하기로는 ‘그년’에 결코 뒤지지 않는 기륭입니다.
수요일에는 지역의 홈플러스 앞에서 ‘국정화 반대’ 선전을 하고 서명도 받았습니다.
시민들 반응이 가히 폭발적입니다. 그야말로 ‘앗, 떠거라’입니다.
꼬맹이도 꼬물꼬물, 엄마가 불러주는 주소를 조막손으로 적고,
젊은 부부도 가던 걸음을 멈추고 서명을 합니다.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도 서명을 했습니다.
“선생니이임, 저번에 1인시위 했던 분은 누구예요? 그거 해도 괜찮아요? 국정화는 왜 반대하는 거예요?”
학생들의 수업시간 질문에 ‘잘 됐다’ 속드로 쾌재를 부르고 대답을 합니다. 무릇 모든 질문에 답해야 함은 교사의 의무이자 본분입니다.
“근무시간 외에 학교 밖에서 했으니 괜찮다. 우리나라는 표현의 자유가 있다. 조금 귀찮고 성가시더라도 아니다 싶으면 아니라고 의사 표현을 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가 발전한다. 국정화는 내용도 문제지만 시도 자체부터가 큰 문제다. 한 가지 사물도 보는 각도에 따라 제 각각 다 달리 보이는데 하물며 우리나라 5천 년 역사를 국가의 시각으로만 보라고 강요함은 야만이다. 효녀 심청이는 아버지 눈을 뜨게 했지만 효녀 대통령은 온 국민의 눈을 멀게 한다. 지도자를 잘못 뽑으니 이렇게 국론이 분열되고 나라가 어지러운 것 아니냐. 그러니 투표를 잘해야 한다. 반장 선거도, 교육감 선거도, 국회의원 선거도 마찬가지다.”고 일갈하니 아해들이 고개를 주억거립니다.
“선생니임, 이따가 갈게요”
손나발을 불며 외치더니 녀석들이 정말 왔습니다.
와서는 따끈한 ‘헛개꿀물’ 하나를 쥐어줍니다. 손으로 전해지는 따뜻한 촉감이 초겨울 밤공기에 얼었던 몸을 사르르 녹입니다.
수능을 보름 앞둔, 금쪽같은 시간을 쪼개어 일부러 찾아와 준 녀석들의 마음씀씀이가 고맙고 기특해 흠풀러스 푸드코트로 데리고 가서 낙지덮밥을 먹이는 마음이 흐뭇합니다.
“시키덜, 괜히 찾아와 선생님 돈만 축내네. 처먹고 체해라”
저주에 가까운 악담을 퍼부으니 녀석들도 낄낄, 계산대 아주머니도 깔깔, 입니다.
계산만 하고 되돌아와 계속 거리 선전전을 하고 있으려니 요기를 마친 시키덜이 다시 찾아와 ‘맛있게 먹었습니다’ 깎듯이 인사하고 갑니다. 참 반듯한 놈들입니다.
당초 1시간 예정의 선전전이었는데 시민들의 반응이 너무 뜨거워 30분을 더 연장한 다음, ‘좌빨교사’들은 인근 겹살집으로 가 소주 한잔을 합니다.
참이슬 한 잔을 털어넣고 쌈장에 찍어 먹는 삼겹 한 점은 하루 노동의 피로회복 알약입니다.
‘국사 말고 수학은 국정화가 가능하다’는 강 선생 말에 주당들이 빵! 터집니다.
목요일에는 퇴근 후에 하이텍알씨디코리아 구로공장을 찾아갔습니다.
남부열사문화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지순례라도 하듯 그날, 지역의 활동가들은 온종일 관내의 분규 사업장을 찾아다니며 집회를 가졌습니다.
금천경찰서 앞의 고려수병원, 신림동 한남운수, 독산동의 홈플러스, 가리봉 오거리의 마리오아울렛이 그곳들입니다.
항의집회를 마친 대오가 저녁 7시에는 파업농성 중인 하이텍 공장에서 마지막 똬리를 틀고 집회 겸 문화제를 한다기에 퇴근 후 집으로 가 옷을 두툼하게 껴입고는 하이텍으로 가는데 장대비가 거칠게 퍼붓습니다.
‘이 비에 어떡하고들 있나’ 걱정했는데 막상 가보니 그새 공장 마당에는 차일이 처져 있고 앰프도 설치가 끝났습니다. 어디서 구했는지 객석 앞쪽에는 스치로품 방석이, 뒤쪽에는 플라스틱 의자가 놓여 있습니다.
천막 한쪽에는 주방기구도 마련하여 콩나물국에 찐고구마를 무한리필하고 있습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훈훈해집니다.
사실, 노동자들과 어울리면서 감탄하는 것 중의 하나가 그들의 일처리 솜씨입니다.
필요한 건 무엇이든 만들어냅니다. 막힘이 없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창조경제’를 실천하는 그들입니다.
덕분에 편안하게 앉아서 기아차 풍물패 공연과 송경동 시인의 시낭송, 세월호 엄마들의 말씀, 몸짓패의 율동, 민중가수 지민주의 노래를 즐길 수 있었는데 정작 문화제의 고갱이인 뒤풀이가 시작될 즈음에 슬그머니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온 것은 으슬으슬 몸의 이상 징후가 감지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루 건너뛰고 토요일 한낮에는 금천구청에 갔습니다.
‘학교를 품은 마을’이라는 예쁜 이름의, 관내 청소년들의 끼를 나름 발산할 수 있는 멍석이 구청 앞마당에 펼쳐졌기 때문입니다.
제가 맡고 있는 풍물반도 그 멍석에 올라 공연을 하기에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는데 군인아저씨가 옆으로 다가와 인사를 합니다. 재작년 풍물반 상쇠였던 호민이입니다. 휴가 나오는 길인데 풍물소리가 들려 소리 쫓아 왔다는 말이 참 기특합니다.
공연 후 짜장면을 함께 먹으며 선후배 만남의 시간을 마련해주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 아이들과 헤어져 광화문으로 내달은 것은, 저녁에 국정화 반대 범국민대회가 열리기 때문입니다.
대회 시작까지는 시간 여유가 있기에 간만에 도심 콧바람을 쐴 요량으로 청계광장을 지나치는데 “쌤!” 부르는 소리가 고막을 찢습니다. 돌아보니 기륭의 종희입니다. 추운 날씨임에도 씩씩하게 ‘乙들의 투표“ 참여를 행인들에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종희 옆의 사내가 눈에 익습니다. 권영국 변호사입니다.
반가운 마음에 냉큼 권 변과 같이 사진을 찍고 나서,
광화문 지하도 쪽으로 갈 때에는 옛 동아일보사 앞에서 ‘국정화 반대’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는 고등학생들을 만났습니다. 흑백 처리만 하면 4·19 때의 광경과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쓰바, 거꾸로 가는 대한민국입니다.
길가에 서서 박수를 치는 마음이 ‘졸라’ 착잡합니다.
행진 대열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발걸음을 세월호 광장으로 돌립니다.
토요일 오후의 넓은 광장이 참 썰렁합니다. 풍물패와 비슷한 수의 구경꾼이 판굿을 구경하고 있는데 아! 그 구경꾼들 틈에 연희 샘이 있습니다.
끝까지 함께 구경을 하고 나서,
육개장으로 배를 든든히 채운 다음 범국민대회가 열리고 있는 청계광장으로 갑니다.
오랜만에 보는, 많은 사람들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차가운 청계천 돌바닥에 앉아 저마다 촛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멍청하면 모질지나 말아야지, 멍청한 게 모질기까지 하니 이렇게 국민들이 고생하누나’
입술 사이에서 쌍욕이 절로 나옵니다.
날은 꽤 추웠지만 대회 열기는 후끈합니다. 특히 고등학생들의 발언과 유기농 가수 ‘사이’의 노래에 시민들 반응이 뜨겁습니다.
2시간 남짓의 대회가 끝난 후 거리행진이 이어집니다.
청계광장 - 종로 2가 - 을지로 2가로 꺾어져 돌던 행진 대오가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앞에서 일제히 멈춘 까닭은, 그 건물 14층 옥상 전광판에서 140여 일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두 명의 노동자를 응원하기 위해서입니다. ‘기아자동차 사내 하청 노동자의 정규직화’가 그들의 요구사항입니다.
100 일 농성쯤은 별 반향을 일으키지도 못하는, 삭막하고 각박한 우리네 현실입니다.
행진을 마치면서 인증샷을 찍었습니다.
투쟁의 현장에서 늘 보는 얼굴들이지만 언제 봐도 반갑고 힘이 되는 ‘꼰대’들입니다. ‘♬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 나를 불러 손잡게 ‘하는 벗들입니다.
아, 그렇게 ‘고난 주일’이 지나갔습니다.
오늘 끝내 국무총리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확정고시 했으니 이 겨울도 편히 지내기는 글렀습니다.
딸랑딸랑...,
멈추지 않는, 멈출 수 없는 워낭소리가 봉암사 풍경소리처럼 사타구니에서 계속 딸랑댈 것 같습니다.
이게 다아 ‘그년’ 때문입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亦君恩(역군은)이샷다‘를 합장 재배하는 마음이 ’닝기리 쓰바 조또‘입니다.
♣ 추신
수능시험일(11月 12日)에 함창에 갈까 합니다.
연식이 좀 되니 작년에 이어 올해도 시험감독 열외입니다.
작년에는 '대기 순번 1번'이었는데 올해는 '6번'으로 더 밀렸습니다.
“♬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입니다.
그 귀중한 ‘평일의 휴일’을 집안에서만 빈둥댈 수 없어 함창 나들이를 할까 합니다.
딱히 밭일에 도움이 못되는 ‘잉..여..인간‘들은 함창으로 오시길 앙망합니다.
ㅎㅎ, 주모가 호들갑 떨며 반가워할 것입니다.
(내 던진 떡밥에 누가 입질을 하는지 그날, 충성도를 약실검사할 것임)
첫댓글 '그년'이 저지른 그간의 만행중에서도 단연 압권입니다. 미래 희망들을 세뇌시켜 그것들과 똑같은 복제품을
만들겠다는 속셈인가본데 정말 소름돋네요. 거리로 나온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울컥합니다.
고난이라며 뭔가 들떠 있는 기는 뭔가요.
열사 문화제날 도망을 가시다니... 쩝
종편이라는 부담감이 있으나... 극복하면서 송곳 열심히 보고있슈~~
11월 14일 (토), 서울에서 만납니다 !! 오후 2시 전국농민대회, 오후 4시 경부터 민중총궐기 !
그럼 그날.. 언니 얼굴도 오랜만에 보겠네.
@검은돌 아, 민중총궐기대회 때 올라들 오는구나. 그래도 이왕 마음먹은 것이니 12日은 함창에서 잎도열병 걸린 쭉정이들이나 까불리고 14日에는 서울에서 이삭줍기를 할 생각.
멍청하면 모질지나 말아야지, 멍청한 게 모질기까지 하니 이렇게 국민들이 고생하누나’ ㅋㅋㅋ/ 진짜 바쁘게 돌아댕기시네요... ㅎㅎ
울 작목반에도 <을들의 투표> 진행하고 있습니다..뭐... 아마도,,, 가장 작은 투표인원이겠지만...요....
참 바쁘신 날인데 그런데도 힘 있어 좋습니다.
요새 엄청 바쁘고 정신 없어 몸이 두 개면 좋겠다 했는데 아무래도 쌤은 진짜 몸이 둘? 진짜 애 많이 쓰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