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놈펜 소녀 - Photo By Bueno
Rocio Durcal - Nostalgias 1936
일 년이 넘도록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동안 아파서 입원한 두어 달을 제외하고는 거의 십개월 동안 두문불출 집 밖의 외출을 삼갔다.
무슨 선방 스님네들의 정혜결사(定慧結社)도 아니고 멀쩡하던 사회인이 일체 외출을 못하고 우물안 개구리처럼 들어 앉아서 지냈으니 누가 보면 속도 모르고 수유리 니트족 출현했다고 여길까 싶다.
금욕에다가 생식에다가 이 생활 자체가 거진 도를 닦는 수준에 근접해 있으나 일체의 경제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고 오로지 하루 세끼 밥에다가 때가 되면 잠자는게 전부이니 하루하루를 허랑방탕하는 것 같아 잠자리에 들 즈음에는 입맛이 쓰다.
하다못해 공작물이라도 만들어서 눈에 보이는 물건이라도 있으면 이게 오늘 하루의 일과거리네 하고 자랑이라도 하지만 그런 것도 아니고 일용할 양식을 살 돈이라도 벌었다면 선뜻 돈이라도 내놓고 시장이라도 보게 할 수도 있으련만 여러가지로 이런 나의 하루하루가 명분없고 낯이 서질 않는다.
한마디로 무위도식하는 식충이의 신세로만 느껴져서 서글프기도 하고 씁스레하기도 하고 자괴감이 드는 것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형제 식구들이야 그런 나를 두고 핀잔 아닌 핀잔을 주며 그런 쓰잘데기 없는 공상 하지 말라며 위안을 주기도 하지만 나 스스로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일체의 사회적인 소속 내지는 소속감도 없이 고립된 상황으로 나날을 보낸다는 것은 그래서 더더욱 감옥살이 같은 생활이 아닐 수가 없다. 속 모르는 사람이야 무위도식이 신간 편하고 얼마나 좋으랴 상상할 수도 있겠지만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흘려보낸다는 것이 얼마나 맥빠지고 재미없는 세월인지는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얼핏 보면 무위도식과 사촌 격인 안빈낙도라도 하니 얼마나 좋으랴 하고 말하기 쉽지만 고담준론 안빈낙도야말로 말이 좋아 도 타령이지 따지고 보면 무위도식하고 오십보 백보 아닌가 싶다. 손발 한가로우면 입도 한가하다고 옛말이 그랬다. 경제적인 부를 추구하지 않고 고담준론하며 맑고 곱게 살면 배는 고플지언정 얼마나 깨끗하고 청빈하고 좋으냐 하겠지만 안빈낙도 안해보고서야 어찌 말을 함부로 할 수 있으랴...
춥고 배고픈 것도 하루 이틀이지 현대를 살아가면서 문명과 이기의 편리성을 거부하고 배격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누추하고 불편한 것인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안빈낙도를 외쳐야 할 종교인과 지식인들이 부와 명예를 버리지 못해 필사적으로 거기에 매달리고 아웅다웅 전쟁이라도 벌일 기세로 투쟁하는 것을 보면 안빈낙도라는 허언이 그들에게 얼마나 위선적인 말인지 가면 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가증스러울 뿐이다.
이제 공맹시대에 울던 맹꽁이 같은 허언은 더 이상 거론조차 하지 말자. 현실을 보면 그 정반대의 길로 치닫고 있는 우리 자신들을 발견할 뿐이기에... 이러한 위선과 가식의 틀을 철저히 깨고 나오지 못한다면 그 누구라도 허위의식의 감옥에서 영원히 탈출할 수 없으리라.
그나저나 어찌되었건
안빈낙도도 아니고 무위도식도 아닌 내 나날들이 정체불명이다. 빈 공책으로 칸칸이 비어 있는 내 24시간... 비록 투박한 글씨일지라도 칸칸이 빽빽하게 무언가를 채워넣고 싶다.
무위도식과 안빈낙도 - 피안의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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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피안의 새 원문보기 글쓴이: 피안의 새
첫댓글 모니 형님이나 스도 성님 다 비슷하게 사신 건 아닌지...
피안 형은 아직도 감사하는 마음이 부족한 건 아닌지...
아직 족보가 한참 처지는 계열인가 아뢰오.ㅎ
웃자고 한 야그입니다만...
무위도식이나 안빈낙도가 도낀 개낀 아닌지...
두개 다 하라면 못 할 것도 없지요.
환자는 당근으로 두개 다 해야하는 사람입니다. ㅎ
많이 좋아 지셨는가 봅니다.
한숨 놓은 표정이 느껴 집니다.
노스딸지아의 손수건 같은 노래도 좋고~~
이제는 적응이 되어 가는 편입니다. 증세는 여전합니다.
감사합니다. 단풍성님.
안빈낙도하고 무위 도식하고는 좀 다르지 싶네요... 하나는 물질적 부족에도 만족하는 심성일 것이고
무위 도식은 뭘 할 수 있는 데도 그냥 일도 안 하고 논다는 뜻 같아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