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산동1가(堂山洞1街)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당산동1가 동명은 당산동을 분할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당산동 동명은 웃당산마을, 지금의 당산동 110번지에 우뚝 솟은 單山이 있었는데 이곳에 당집이 있어서 洞祭를 지냈던 데서 유래되었다.
당산동 지역은 1936년부터 도시계획에 따라 구획정리사업지구로 지정되어 사업을 추진한 결과
-1946년 8월 서울특별시공고 제46호로 환지처분을 마치고
-1947.9.8 구획정리사업을 완료한 곳이다.
-1955.4.18 서울특별시조례 제66호에 의한 洞制 실시 때 당산동은 샛강을 사이로 여의도와 마주하고 있는 동쪽 지역만을 남기고 나머지 서쪽으로는 양평동, 동쪽으로는 영등포동, 남쪽으로는 문래동과 접한 지역을 남쪽으로부터 당산동1가부터 당산동6가로 분할하였다.
당산동2가(堂山洞2街)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당산동2가 동명은 당산동을 분할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당산동 동명은 웃당산마을, 지금의 당산동 110번지에 우뚝 솟은 單山이 있었는데 이곳에 당집이 있어서 洞祭를 지냈던 데서 유래되었다.
당산동 지역은 1936년부터 도시계획에 따라 시행한 구획정리사업이 1947.9.8 완료되고,
또한 광복과 6・25전쟁 이후 인구가 증가하게 되니 샛강을 사이로 여의도와 마주하고 있는 동쪽 지역만을 당산동으로 남기고 토지구획정리사업이 확정된 지역의 일부를 나누어 당산동2가로 삼았다.
당산동3가(堂山洞3街)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당산동3가 동명은 당산동을 분할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당산동 동명은 웃당산마을, 지금의 당산동 110번지에 우뚝 솟은 單山이 있었는데 이곳에 당집이 있어서 洞祭를 지냈던 데서 유래한다.
당산동 지역은 1936년부터 도시계획에 따라 시행한 구획정리사업이 1947.9.8 완료되고,
또한 광복과 6・25전쟁 이후 인구가 증가하게 되니 샛강을 사이로 여의도와 마주하고 있는 동쪽 지역만을 당산동으로 남기고 토지구획정리사업이 확정된 지역의 일부를 나누어 당산동3가로 삼았다.
당산동4가(堂山洞4街)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당산동4가 동명은 당산동을 분할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당산동 동명은 웃당산마을, 지금의 당산동 110번지에 우뚝 솟은 單山이 있었는데 이곳에 당집이 있어서 洞祭를 지냈던 데서 유래되었다.
당산동 지역은 1936년부터 도시계획에 따라 시행한 구획정리사업이 1947.9.8 완료되고,
또한 광복과 6・25전쟁 이후 인구가 증가하게 되니 샛강을 사이로 여의도와 마주하고 있는 동쪽 지역만을 당산동으로 남기고 토지구획정리사업이 확정된 지역의 일부를 나누어 당산동4가로 삼았다.
당산동5가(堂山洞5街)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당산동5가 동명은 당산동을 분할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당산동 동명은 웃당산마을, 지금의 당산동 110번지에 우뚝 솟은 單山이 있었는데 이곳에 당집이 있어서 洞祭를 지냈던 데서 유래되었다.
당산동 지역은 1936년부터 도시계획에 따라 시행한 구획정리사업이 1947.9.8 완료되고,
또한 광복과 6・25전쟁 이후 인구가 증가하게 되니 샛강을 사이로 여의도와 마주하고 있는 동쪽 지역만을 당산동으로 남기고 토지구획정리사업이 확정된 지역의 일부를 나누어 당산동5가로 삼았다.
당산동6가(堂山洞6街)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당산동6가 동명은 당산동을 분할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당산동 동명은 웃당산마을, 지금의 당산동 110번지에 우뚝 솟은 單山이 있었는데 이곳에 당집이 있어서 洞祭를 지냈던 데서 유래되었다.
당산동 지역은 1936년부터 도시계획에 따라 시행한 구획정리사업이 1947.9.8 완료되고,
또한 광복과 6・25전쟁 이후 인구가 증가하게 되니 샛강을 사이로 여의도와 마주하고 있는 동쪽 지역만을 당산동으로 남기고 토지구획정리사업이 확정된 지역의 일부를 나누어 당산동6가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