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생활성서 – 소금항아리]
굳건한 믿음을 위해서는 그분의 상처 입은 얼굴을 자주 바라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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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7/3/성 토마스 사도 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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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복음 20장 24-29절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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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입은 얼굴
토마스가 “보고서야 믿겠다”라고 해서 그를 ‘불신’의 아이콘으로만 이해해야 할까요?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라고 한 제자들도 이미 예수님과 ‘대면’했으니 망정이지, 보지 않았다면 토마스의 반응과 비슷하지 않았을까요? ‘대면’ 후에야 비로소 부활 신앙을 갖게 된다는 점에서 제자들이나 토마스나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유다계 프랑스 철학자 레비나스는 타인의 ‘얼굴’이 그것을 마주하는 주체에게 어떤 존재론적 영향력을 발휘하는지에 대해서 숙고한 바 있습니다. 그는 특히 ‘고통받는 타자의 얼굴’은 강한 호소력으로 내가 가진 존재의 주체성을 회복시켜 준다고 말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토마스는 예수님의 상처 입은 ‘얼굴’을 직접 대면함으로써 그분을 온전히 주님으로 받아들이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제자로서의 자기 주체성을 재확립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토마스가 외친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은 타자로서의 ‘주님 얼굴’을 통해 자기 안에서 신앙의 정체성을 재발견할 때 표출된 ‘신앙 고백’입니다. 우리네 신앙은 ‘대면’으로 형성된 인격적 관계에 근거합니다. ‘보지 않고도 믿는다’는 것이 덮어놓고 ‘맹종’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미 ‘얼굴’을 마주했기에 우러나오는 인격적 ‘순종’입니다. 그리스도교 믿음은 그분 얼굴을 바라봄에서 시작됩니다. ‘보고서야 믿겠다’는 토마스는 어느 정도 정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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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안드레아 신부(의정부교구)
생활성서 2024년 7월호 '소금항아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