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신년(1800, 정조24) 여름, 나는 한가히 지낸 지가 이미 오래되었고, 세상 사람들의 배척도 더욱 심하여 아주 초천(苕川)으로 돌아가려 하였다. 어느 날은 처자(妻子)와 비복(婢僕)을 거느리고 배를 타고 초천에 이르러 날마다 낚시질을 일과로 삼았다. 그때 작은 아버지 처사공(處士公)께서도 한가하고 일이 적었으므로, 날마다 여러 자질(子姪)과 노닐었다.
이에 석호정(石湖亭) 아래에는 어망(漁網)을 쳐놓고 식사하는 기구는 석림(石林) 가운데에 마련하였다. 석림이라는 곳은 고인이 된 이조 판서(吏曹判書) 이담(李潭)의 별장이다. 어망을 건져 보니, 걸려든 고기가 제법 많았다. 조그만 배를 타고 회안수(淮安水.慶安水)를 거쳐 석림의 아래쪽에 배를 대었다. 그곳의 지대(池臺)와 정각(亭閣)의 기묘함은 이미 둘러보았으므로, 그곳에서 나와 시냇가 초정(草亭.풀로 지붕을 인 정자) 위에 앉아서 즐겁게 한 차례 배불리 먹었다.
해도 이미 저물었으므로 다시 배를 타고 석호정 아래에 이르니, 바람을 받은 돛단배와 물새,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와 아득한 물가의 경치가 모두 눈을 기쁘게 하고 마음을 즐겁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이튿날 북강(北江)에 가서 놀려고 하였으나, 그때 마침 내각(內閣)에서 나를 급히 불러오라는 임금의 뜻을 전해 왔기 때문에 상의 은혜에 감격하여 그날로 서쪽으로 돌아왔다. 그리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