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기획] 내년 도입 앞둔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
정부, 전력 생산-수요 균형 위해 지역별 도매가격 차등 적용 추진
“수도권 기업 지방 유도 효과 기대”… 비수도권 민간 발전소 “수익 타격”
전력 비용 부담 큰 기업도 불만… 지자체-정치권 갈등 심화 우려
2026년엔 소매요금 차등화 예정… “상세한 원가 분석 먼저 이뤄져야”《지자체 ‘차등 전기요금제’ 고민
정부가 수도권과 지방의 전기요금에 차이를 두는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를 내년부터 시행하기로 하면서 지자체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전력 사용량이 많은 수도권에는 높은 요금제가, 발전소가 많은 비수도권에는 낮은 전기요금이 적용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정부는 그동안 지역에 따라 차이가 없던 전기요금을 달리해 전력 생산과 수요의 불균형을 해소하겠다는 목표다. 하지만 전국 17개 시도의 전력자급률이 최대 70배 이상 차이가 나는 가운데, 이를 반영해 전기요금이 차등화되면 지역 갈등의 불씨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번진다.
찬 “전기는 주로 쓰는 곳과 만드는 곳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수요, 공급의 지역 불균형이 너무 큽니다. 막대한 송전 비용을 발생시키는 이 같은 불균형을 해소하려면 전기요금을 지역별로 다르게 매겨야 합니다.”
반 “기존의 발전기와 공장을 뚝 떼서 옮길 수도 없는 노릇인데 이제 와서 전기요금을 달리하는 건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불리한 지역의 반발이 본격화되면 실제 지역별 요금제 시행은 쉽지 않을 겁니다.”》
정부가 내년부터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를 도입하기로 하면서 전력 업계와 산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지역에 따른 차이가 없었던 전기요금에 변화를 줘서 전력 생산과 수요의 불균형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전국 17개 시도에서 최대 70배 이상 차이가 나는 전력자급률을 전기요금에 반영하는 방식을 둘러싼 갈등에 지방자치단체와 정치권까지 가세하면서 차등 요금제 논란이 커지고 있다.
● 전력자급률 따라 요금 차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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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올 5월 ‘전력시장 제도 개선 방안’을 통해 차등 요금제 도입 이유와 기본 방향을 제시했다. 전력시장 출범 이후 20년 이상 지속된 단일 가격 체계를 개편해 전력 수요가 많은 지역으로 발전소를 이동시키는 ‘전력 자원의 입지 최적화’를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산업통상자원부는 지역별 송전 비용과 입지 여건 등을 고려해 도매가격(계통한계가격·SMP)을 단계적으로 차등 적용하고 이후에 소매요금까지 차등화하기로 했다. 우선 내년부터 한국전력이 전력거래소를 통해 민간 발전사로부터 구입하는 도매가격에 지역별로 차이를 두고 2026년에는 일반 가정 등에서 쓰는 전기요금(소매요금)까지 차등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계획은 국내의 전력자급률이 지역별로 극심한 편차를 보이는 상황을 개선하려는 노력으로 풀이된다. 산업부가 22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정진욱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력자급률(지역 내 발전량을 전력 소비량으로 나눈 수치)이 서울은 10%에 그쳤지만, 인천은 186%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도권 내에서만 봐도 인천에 위치한 발전소가 인천에서 쓰는 전력의 2배 가까이를 생산해 다른 지역으로 보내는 반면 서울은 대부분의 전력을 다른 지역에서 끌어오고 있는 것이다.
전력자급률은 전국적으로 보면 편차가 더 크다. 경북(216%), 충남(214%), 강원(213%), 부산(174%) 등은 소비하는 전력의 2배 안팎까지 전기를 생산해 높은 자급률을 보인다. 반면에 대전(3%), 광주(9%), 충북(11%), 대구(13%) 등은 발전량이 소비량보다 크게 부족해 대부분의 전기를 다른 시도에서 끌어오는 형편이다. 전국 시도에서 전력자급률이 가장 낮은 대전과 가장 높은 경북을 비교하면 그 차이가 72배에 이른다.
산업부는 우선 전력자급률이 낮은 곳에서는 전기요금을 높이고, 반대로 자급률이 높은 곳에서는 전기요금을 낮추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또 전력자급률이 낮은 곳으로 발전소가 이동하도록 인센티브를 준다는 방침도 정했다. 한국전력 관계자는 “한국은 동해안 지역에 원자력발전소가 몰려 있고 화력발전소도 일부 지역에 편중돼 있어 전력자급률 편차가 크다”며 “이런 문제 때문에 높은 송·배전 비용이 발생하는 만큼 수요지를 고려한 발전소 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이익 급감하는 비수도권 발전 업계는 강력 반발
정부는 지역별 요금제가 ‘발전 불균형’을 바로잡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내년 도입을 앞두고 곳곳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우선 당장 내년부터 시행하는 도매가격 차등제에 대해서는 민간 발전사들이 피해 우려를 제기하고 나섰다.
산업부는 소매요금을 차등화하기 위해서는 지역별 원가를 계산해야 하기 때문에 원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도매가격, 곧 전력 구매 가격부터 차등화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산업부가 수도권과 비수도권을 기준으로 도매가격을 차등 적용하는 방안을 우선 검토하면서 비수도권에서 주로 발전설비를 운영하는 민간 발전사는 수익이 크게 낮아질 수밖에 없는 처지다. 지역별 전력자급률을 수도권과 비수도권으로 나눌 경우 수도권은 65%, 비수도권은 136% 수준이기 때문에 비수도권 발전소는 기존보다 낮은 가격으로 전기를 판매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민간발전협회의 ‘지역별 전기요금제 비수도권 발전기 영향’ 자료에 따르면 지역별 도매가격이 kWh(킬로와트시)당 10원 낮아질 경우 비수도권 발전기를 운영하는 민간 발전사들의 수익은 연간 약 8236억 원 줄어드는 것으로 추산됐다. 도매가격이 20원이나 30원 낮아질 경우 이들의 연간 이익은 1조6473억 원에서 최대 2조4709억 원 낮아지게 된다.
민간 발전사들은 도매가격 차등화가 ‘동일 전력계통, 동일 전력거래가격’이라는 전기사업법상의 원칙과 어긋날뿐더러 그렇다고 비수도권에 있는 기존 발전설비를 수도권으로 옮길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한 민간 발전사 관계자는 “민간 발전사의 발전기는 지역별 차등 요금제와 무관하게 이미 설치, 운영 중인 대형 설비”라며 “새로 도입하는 발전기가 아니라 기존 발전기까지 요금을 달리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말했다.
● 수도권 전기요금 오를 듯… 지자체 셈법 복잡
전력 업계에서는 정부가 내년 도매가격에 이어 내후년 소매요금까지 차등화하는 것이 상당히 힘든 작업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전력자급률이 높은 지역의 소매요금을 낮춰서 전력 생산이 많은 지역으로 전력 수요자가 옮겨가게 한다는 계획이지만 전기요금이 지역별로 달라질 경우 전체 국민과 기업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실제로 전국 지자체와 정치권에서는 벌써 전력자급률에 따른 유불리를 계산하면서 엇갈린 입장을 내놓고 있다. 서울과 경기보다 자급률이 훨씬 높지만 수도권으로 묶여 손해를 볼 수 있는 인천에서는 지난달 지역구 여야 의원들이 잇따라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했다. 전기요금 설계에서 수도권-비수도권 대신 지자체별 전력자급률을 고려하는 내용이 담긴 법률안이다.
부산 울산 경남 대구 경북 등 영남권 5개 시도 역시 지난달 지역별 요금제 도입에 공동 대응하기로 하는 내용의 협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이들 지역에서마저도 영남권 분류로 전력자급률이 13%에 불과한 대구를 포함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냐는 의견이 나온다.
결국 전력자급률에 따른 유불리를 놓고 전국 지자체가 복잡한 계산을 해야 하는 셈이다. 민주당 산자위 관계자는 “전기요금은 주민 생활과 기업 활동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섣불리 추진하면 사회적인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며 “보다 신중한 협의를 거친 다음에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근 한전이 두 차례에 걸쳐 가정용 전기요금 대신 산업용 전기요금만 올린 가운데 산업계에서도 우려가 나온다. 9월 한국경제인협회는 지역별 차등 요금제가 수도권 제조업에 최대 1조4000억 원의 전력비용 상승을 불러올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도매가격 격차가 kWh당 34원으로 설정되고 이 차이가 모두 소매가격에 반영될 경우(고영향 시나리오)를 가정한 분석이다.
한경협은 도매가격 격차가 19원으로 낮아지고 소매가격 반영률이 20%로 떨어져도 수도권 제조업의 전력비용은 8000억 원가량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산업 전력 사용량의 64.2%가 비수도권에 분포하고 있긴 하지만 차등 요금제가 도입되면 수도권 내에서 전력 소비량이 큰 전자·통신 업종을 중심으로 상당한 비용 상승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수도권의 경우 전자·통신 업종에서 최대 6248억 원, 화학 업종에서 최대 1110억 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한경협은 “지역별 차등 요금제는 특정 업종에 비용 부담 요소로 작용하지만 대다수 업종의 입지를 변화시키는 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도매가격의 소매가격 전가율에 대한 신중한 산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 가정용 요금 차등은 최소화할 듯
이 같은 반발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우선 계획대로 추진하면서 지역 단위를 차차 더 세분화한다는 방침이다. 발전소는 수도권으로, 전력 수요가 큰 산업은 비수도권으로 보내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차등 요금제를 통해 송전선로 건설에 따른 사회적 갈등과 비용을 줄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실제 권역 구분 방안은 추가 논의가 필요하지만 큰 권역을 기준으로 우선 차등 요금제를 적용하고 제도가 안착하면 권역을 더 세분화할 수 있을 것”이라며 “소매요금의 경우 산업용 전기 등에 주로 적용하고 가정용 전기요금에는 큰 차이를 두지 않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기요금 때문에 거주지를 옮길 수는 없는 만큼 일반 가정에서 쓰는 전기에는 큰 요금 차이를 두지 않겠다는 것이다. 또 산업부는 이미 요금 관련 혜택을 받고 있는 발전소 주변 주민에 대한 보상 차원이 아니라 국가적인 자원 배분 효율성 측면에서 차등 요금제를 도입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차등 요금제 도입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보다 면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큰 갈등 요인이 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하는 만큼 충분한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송전 비용 자료 등을 기반으로 지역별 전력자급률 자료보다 훨씬 상세한 원가 분석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며 “소매요금 개편이 중심이 돼야 하는데 실제로 얼마나 요금 차이를 둘지 등 중요한 결정 사항이 많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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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김도형 기자 dod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