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준의 마음PT] BTS 슈가를 통해서 본 ‘판단 중독증’ 사회
한국인이 자살률·우울증 1위인 이유
BTS 슈가(민윤기)가 삼성전자 파라과이 법인 광고 모델로 돌아오자 남미팬들은 “슈가는 한국에서 인민 재판을 받는 상황이었는데 삼성전자 감사하다”며 매우 반겼다. 사진은 소셜미디어에 올려진 슈가의 모델 광고 /X(옛 트위터)
# 여느 유명인의 스캔들처럼 BTS 슈가의 전동스쿠터 음주운전사건도 한국인의 정신건강을 테스트할 수 있는 좋은 리트머스 시험지다.
며칠전 국내팬과 해외팬들간 거센 논쟁 기사가 보도됐는데, 아이러니한 것은 “잘못했으니 BTS에서 탈퇴하라”고 하는 쪽이 대개 한국인이고, “가혹하다. 세계적 아티스트를 이렇게 대우하나”며 슈가를 옹호하는 쪽이 외국인들이라는 점이다.
같은 날 우리나라 성인 절반(49.2%)이 만성적인 울분 상태에 있으며 이는 유럽에서 정신적으로 경직됐다는 평가를 받는 독일인(15.5%)보다 3배 이상 높다는 서울대 보건대학원 연구결과 기사도 실렸다.
나는 이 두 기사가 매우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우리나라가 22년째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요, 코로나 이후 우울증도 1위라는 통계와도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다고 본다.
# 지금 밖에서는 한국을 가장 가고 싶은 나라 중 하나로 꼽지만, 정작 안에 사는 한국인들 중에는 스스로 불행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외부적 상황보다 각자 내부의 마음(생각·감정) 프로세스 처리과정에서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지구상에 한국인처럼 남을 과도하게 의식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 항상 비교하고 경쟁한다. 이는 결국 남에 대한 과도한 판단, 그리고 비판으로 이어진다.
늘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사니 화창한(sunny) 날도 우울한(gloomy) 날로, 밝은 모습도 어두컴컴하게 보이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많은 한국인들이 그렇게 살아간다. 그래서 ‘사건의 사건’을 만들어간다.
이를 신경생리학적으로 보자면 불안, 두려움, 분노 등을 담당하는 뇌의 편도체가 과잉 활성화돼 있으며, 자율신경계 중 교감신경계가 종일 쉬지 못하는 바람에 코르티솔, 에피네프린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이 넘쳐난다.
그러니 늘 피곤하고 짜증 나고 가슴이 불끈거리며 화가 치솟고 불안하고 부정적 감정에 쌓여 밤에 잠도 제대로 못잔다.
한국 사회는 분노, 짜증이 일반화된 사회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이웃, 거리, 사업장 등에서의 갈등과 불화가 심하다. /셔터 스톡
특히 만만한 게 연예인이라 무슨 일만 터지면 난리가 난다.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어 처녀 총각이 연애를 해도 난리고, 헤어져도 난리다.
만약 마약과 연루됐다면 천인공노할 수준이 된다. 그래서 이선균이란 꽤 좋은 배우를 저 세상에 보냈다. 헐리우드에서 마약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자살까지 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아니 우리들이 다른 나라에 비해 도덕적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다민족국가인 미국이 마약・총기살인・이혼률이 높다고 도덕적 수준이 낮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가 만난 평범한 미국인들도 남에 대한 이해나 배려, 신뢰성 등 도덕적 면에서 우리보다 못하지 않았다.
청교도 정신으로 이뤄진 기독교 국가 미국의 인간관도 인간이 완전하지 않다는 데서 출발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완전한 인격체’를 전제로 사람을 평가한다.
그러니 슈가를 비롯 실수를 저지르는 누구에 대해서도 오로지 엄중한 도덕적 잣대와 명분론에 입각한 주장들이 나온다. 그런데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과연 얼마큼 도덕적으로 살까, 평소 언행은 어떨까 궁금하다.
오히려 외국인들이 BTS 슈가를 두둔하고 있다. 남미 지역 아미(방탄소년단 팬덤)가 최근 하이브 사옥 인근에 슈가를 응원하는 내용의 배너를 내걸었다. /독자 제공, 조선일보 캡처
# 내게도 한때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나는 너무 많은 생각과 판단을 하며 살았다. 너무 판단했고, 그런 내 생각이 옳다고 생각해서 힘들었다.
그래서 이후 웬만하면 판단하지 않고 사는, ‘비판단(non-judging)’ 마음가짐으로 살려고 노력한다.
생각이나 판단을 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운동이 몸에 좋다고 24시간 운동만 하고 살수 없듯이 ‘생각・판단 중독증’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그러나 판단하고자 하는 마음, 그 유혹과 쾌락에서 벗어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알코올·마약 중독처럼 의지나, 이성으로 잘 안된다. 그러나 노력하면 결국 된다.
꽉 차 있던 머릿속에 여백이 생기고, 이윽고 텅빈 시간이 오면 장자(莊子)가 말하는 무심(無心)의 경지, 즉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어, 충실해지고, 충실하면 잘 다스려진다’는 말을 최소한 이해는 할 수 있게 된다.
내 한 몸 건사하기에도 얼마나 힘든 세상인가. 부디 판단을 내려놓고 남의 일, 문제에 너무 열 받지 말라.
그런 ‘생각 중독증’, ‘판단 중독증’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우리는 만성적 우울・울분 상태서 해방되고 자살률도 뚝 떨어지며, 아름다운 대한민국에 살게 되지 않겠는가.
출처 : 마음건강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