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리(장리쌀)
내가 이기록을 남기고자 하는 것은 내 세대 마저도
매스컴의 홍수속에 과거의 빼아픈 역사를 몸으로 느끼고서도
책상물림들의 농간에 휘둘리고 있는 늙은이들에게
경고함을 주고자 함
내가 57년생이니 1970년까지 장리쌀이 있었고
71년도에 통일벼 보급 이후에는 없어진 것으로 앎(중학교2 경부고속도로 개통)
당시 농촌에서 계모임을 하면 쌀2되/인당
10명이면 2말
이자는 3~5부/월
춘궁기 3월에 장리쌀 먹으면 11~12월 갚아야 하니
10개월이면
1년 후면 두말 6되 혹은 3말을 계금으로 확보하게 된다
대단한 폭리지 그래도 가난한자는 대단히 고맙지
보리날 때 까지만 참으면 되니까
60년대 내초등시절 우리동네 60호 중 3~4호 대상
당시 어른들의 이야기를 재생해 보면
해방전에도 장리제가 있었고
해방 후에 특히 비 정상적 3차 산업의 증대시(국정 교과서)
전당포가 활개를 치던 (도시) 농촌에는 장리제 극심 깡패무리 극심
쌀수출 말도 안되는 소리지
당시는 해방이 되었지만 소작제였지
50년 3월에 토지개혁이 되었으니
6월에 6.25가 났으니 제대로 될리는 없지
해방 전후 우리민초 소작농들은 가을에 추수를 해도
쌀을 만져볼수 없는 실정이지
소작료 절반 장리쌀원금 이자 절반
차포 떼고 나면 항상 3월에 장리쌀
지주들은 쌀이 남지 항상
이 쌀이 일본으로 갔지
서류상에는 수출이지
나도 중학교 시험으로 입학했으니
이병도 이개자식이 쓴 역사가 이따위 역사를 가지고
지금도 추종하는 6.25를 겪은 넋빠진 늙은이들도 문제지
뼈빠지게 격고도 그 원인을 분석치 못하니
통탄할 일이지
환곡 (일명 눅대,늑대)
구율미(빈민(자연재해)을 위한 예비 양곡)
제도는 민중을 위해서는 좋은 제도지
그러나 탐관오리의 치부 수단이지
임금이나 양반 선비란 작자들도 다 묵인 했지
먹기 싫은 구율미를 먹고 장리이자를 주어야하니
이자는 탐관오리 몫이지
민초들은 도둑질 안한 다음에는 매년 먹을 수 밖에
오죽하면 눅대라 했겠나
늑대는 본인만 먹히면 되지만
환곡은 가족까지 다잡아 먹으니
과연 민초들에게 필요한 역사는 무엇인가
우리가 누구의 역사를 배워야 하는가
민란의 원인에 대하여
우리 역사책에 토론의 여지를 남길
단초를 준것이 있는가
출처: 한민족의 뿌리와 미래 원문보기 글쓴이: 강촌인
첫댓글 감사합니다.춥고 배고픈 우리 민초는실제 세상을 움직이는 동력이면서이를 이용하는 자는 역사에남지만 민초들의 쓰라린가슴속의 역사는같은 민초들도 생각을안하지요.개가 사람으로 착각하듯이사람이 귀엽다 하니개는 개 사람은 사람물은 물 산은 산이듯이
첫댓글 감사합니다.
춥고 배고픈 우리 민초는
실제 세상을 움직이는 동력이면서
이를 이용하는 자는 역사에
남지만 민초들의 쓰라린
가슴속의 역사는
같은 민초들도 생각을
안하지요.
개가 사람으로 착각하듯이
사람이 귀엽다 하니
개는 개 사람은 사람
물은 물 산은 산이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