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대호’를 보았습니다.
2015년 들어 첫 감상기이지만, 지난 연말에 관람한 2015년 마지막 영화입니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마무리였다고 생각되네요.


1. ‘대호’는 예상과는 다른 영화입니다.
시놉시스와 예고편을 봤을 때에는 ‘천만덕(최민식) - 대호 - 일본군’의 대결구도 속에 민족주의의 색깔이 가미된 영화일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제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대결구도를 보이는 건 '대호'와 조선 포수대 & 일본군 연합이고, 영화의 색깔은 민족주의적이기보다는 자연주의적입니다.
2. 이 영화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세계와 닮아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에서는 인간의 파괴적인 욕망에 의해 무너져가는 자연, 그로 인해 상실되는 인간성과 공존의 가치 등을 일관적으로 이야기했습니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먹이사슬’이라는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섭리 속에서도 공존하며 살아가는 두 ‘대호(호랑이와 천만덕)’의 처지는 인간의 탐욕과 물질문명의 바람에 벼랑까지 내몰리며 마침내 소멸되어 버린 자연성과 인간성을 보는 듯합니다.

3. 이러한 주제의식 때문인지 영화는 매우 동화적이고 신화적입니다.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인 듯하지만, 오히려 시공간을 초월한 판타지나 할머니에게서 듣는 전설을 보는 듯합니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천만덕’과 ‘대호’의 교감 장면은 이 영화가 갖고 있는 자연주의적이고 신화적인 색채를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드러냅니다.
이 장면이 이 영화의 성패를 결정하는 관건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4. 관객이 이 둘의 교감을 ‘정서적인 애틋함’으로 받아들일 것인지,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받아들일 것인지가 중요한데...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는 중에는 지나치게 감상적이라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종반에 다다라서는 뭉클해지는 감정을 느끼게 되더군요.
영화 중반부터 드러나는 이 둘의 교감이 연출자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인지 대중성을 노린 선택인지 저로서는 알 수 없고, 대중영화로서 작가적 의도와 대중성 사이에 균형을 적절히 맞췄는지도 판단하기도 힘듭니다.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는 이러한 판단은 매우 어려울 것이고, 지나치게 감상적이라고 생각한 영화들이 큰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는 경우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기 때문에 그 판단은 더 쉽지 않을 것입니다.
5. 만약 이들의 교감이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판타지적’으로 느껴진다면 그것은 아마 ‘플래쉬백’의 사용때문일 것입니다. 영화에 담긴 주제와 정서를 부각하고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사용됐지만 결과적으로 몰입을 방해하고, 주제를 덮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플래쉬백’의 과용과 오용이 오히려 관객을 객관적인 자세를 가지도록 하여 ‘이 이야기와 설정이 말이 되는 것인지’에 신경쓰도록 합니다. 주로 가장 중요한 이야기가 진행되는 과정에 배치되어 있어서 그 부작용이 더욱 크게 보이네요.
결과론적이지만 조금 단순할지라도 영화 초반부터 ‘천만덕’과 ‘대호’의 교감이 쌓여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영화 개봉 전에 관객에게 이 영화의 컨셉을 전달하는 것도 성공적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영화의 색깔이 애초에 가졌던 기대와 달라서 실망한 관객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6. 앞에서 이 영화의 성패를 가리는 관건에 대해 이야기 했지만, 애초에 이 영화의 관건은 ‘호랑이’의 사실감 있는 구현이라고 모두가 생각했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CG로 구현된 ‘호랑이 배우’, ‘김대호’씨의 외형과 연기는 매우 높은 기술적 성취를 보여줍니다.
호랑이가 실재하는 동물이긴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땅바닥에 배를 붙이고 늘어져 있는 동물원 호랑이를 본 게 고작입니다. 야생의 포식자로 군림했던 ‘지리산 산군님’의 모습은 신화 속 동물일 뿐이죠.
그렇기 때문에 사실적인 호랑이의 외형을 선보이는 것만큼이나 위압적인 존재감과 파괴적인 전투력을 관객에게 납득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많은 관객이 영화 속 호랑이를 CG로 인식하고 있고, 날렵하게 움직이는 장면에서는 CG의 티가 두드러지는 어색함이 있긴 하지만,
‘김대호’씨가 보여주는 위압적인 존재감은 물론, 놀랍도록 처연한 연기는 이 영화의 불안요소가 아닌 성공요소로도 충분합니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고 며칠이 지났음에도 ‘김대호’씨의 처연한 연기가 자꾸 떠올라 영화를 다시 보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 ‘리차드 파커’를 구현하는데 약 800억이 소요됐다는데, ‘대호’의 총제작비가 약 140억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 성취가 놀랍기도 하면서, 제작진이 얼마나 고생했을까 싶습니다.

7. ‘최민식’ 배우는 연기력에 있어서는 믿고 보는 배우죠. 그렇기 때문에 전작인 ‘명량’은 많이 아쉬운 영화입니다. ‘최민식’ 배우의 연기가 아쉽다는 것이 아니라, 영화가 그의 ‘연기력’이 아닌 ‘존재감’만 취한 듯 하기 때문입니다.
후속작인 ‘대호’에서는 다행히도 ‘명량’보다 돋보이는 연기를 보여줬습니다. 특히 거친 세월의 흔적까지 고스란히 전달되는 거칠디 거친 손과 주름진 얼굴, 아들의 시신을 마주한 아버지의 참혹한 심정을 보여주는 연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영화 중반부까지는 다소 이야기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어서 충분한 연기를 보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정만식’, ‘김상호’ 배우는 언제나 그렇듯,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줍니다. 특히 ‘정만식’ 배우의 강인한 연기는 최근의 출연작 중 가장 돋보이는 연기였네요.
응팔에서 활약 중인 ‘정봉이 엄마’는 등장만으로도 예상치 못한 빅재미를 선사합니다. 작은 비중이지만 ‘도룡뇽 아버지’도 출연하셨네요.
연기적으로 가장 돋보인 배우는 ‘천만덕’의 아들 ‘석이’ 역의 ‘성유빈’ 군입니다. 능청스러운 연기가 ‘짝패’의 류승완 감독이 연상되기도 했는데, 아역배우가 ‘최민식’ 배우와 찰떡궁합의 연기를 보일 수 있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앞으로 지켜볼만한 배우인 것 같습니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4번에서 저도 비슷하게 느꼈어요.ㅎ 뭐 솔직히 이런 영화보다는 자기 전공을 살리는 영화를 빨리 하나 찍어 줬으면 합니다. 아마 다음 영화를 위한 교두보 같은 성격의 영화 같았고,,, 배우나 소재 그리고 요즘 영화 관객수를 볼때 대호는 어느 정도 상업적으로 계산은 되었지만 음,,, 아마 현 시대적 상황(정치, 사회, 문화)에 대해서 감독이 얘기(이런 얘기 자체가 저는 이미 암살이나 여러 영화, 드라마에서 다뤘다고 느꼈습니다.)를 하고 싶어해서 찍은거 같아요.
그냥 간단하게 말해서 저는 노잼이었습니다. ㅎ 하지만 힘들게 찍었겠다는 생각은 들었어요. 다음 작품은 나홍진 감독 부럽지 않게 찍었으면 하네요...
시나리오는 꽤 오랜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시나리오 작가로서, 감독으로서 그동안 비교적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선택했을 것 같습니다. 창작자에게는 필요한 선택이죠. 소재와 기술적 성취가 좋았기 때문에 아쉬움이 더 큰 영화가 된 것 같습니다. 다음에는 자신의 장기인 작품으로 돌아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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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으로서는 아직 아쉽긴하죠
흥행코드(민족주의, 부성애, 대자연, 액션 등등)는 다 집어넣었는데 편집이 이상하게 된 건지 보는 내내 지루했고 호랑이와의 교감은 좀 생뚱맞았음 (극장에서 졸립긴 오랜만임) 신세계 감독이라길래 기대 많이 했는데 좀 졸렸어요. cg는 초반은 괜찮았고 뒤에는 조큼 어색(하지만 거슬리지는 않음). 최민식이 주인공인데 어째 정만식이 더 포스있게 나옴,
진짜 편집 좀 다시 했으면 하는 영화...
개인적인 감상은 140억짜리 전래동화같았어요.;;;;
(박감독은 빨리 신세계2좀...)
신세계2를 기다리는 분이 많으시네요. 올해 안에는 제작 소식이 들리겠죠.
배추도사 무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