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여 년 동안 아버지가 어디에 묻혀 계신지도 몰랐어요…."
이종옥(64·인천 남동구)씨는 유일하게 남은 아버지 사진인 손바닥 만한 증명사진을 만지며 이렇게 말했다.
이씨는 아버지 얼굴을 직접 본 적이 없다. 아버지 고(故) 이성재(사망 당시 22세)씨는 그가 두 살이 됐을 무렵인 1960년 7월께 강원도 홍천의 한 부대에서 사병으로 복무하던 중 사망했다. 당시 군은 고인의 사인을 '변사'로 처리하고 유족에게 알렸다.
이씨는 "아버지는 장례도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가신 걸로 안다"며 "아버지의 급작스런 사망 소식을 듣고 할머니(고인의 어머니)는 식음을 전폐하다 한 달 만에 돌아가셨다"고 토로했다.
유족들은 군에서 화장했다는 말만 들었을 뿐 고인이 어디에 묻혀 있는지도 제대로 듣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이씨는 아버지 부재로 생계가 어려워지면서 홀로 남은 어머니와 함께 어린 시절에는 친척 집 등을 전전해야 했다. 학업을 이어가고 싶었지만 생활고로 중학교 문턱조차 밟지 못했다.
이씨는 성인이 되고서야 아버지 유해가 묻힌 곳을 찾아봤으나 군 당국 등 여러 기관에 문의해도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아버지 유해 찾기를 포기하고 지내던 이씨는 지난 2020년 사촌에게서 '국방부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가 변사 처리된 국군 용사 등을 재조사해 순직 여부를 정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씨는 그해 9월께 재조사를 신청해 이듬해 4월께 고인이 국립 서울현충원에 묻혀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60여년 만에 아버지가 묻힌 곳을 찾은 것이다. 군은 고인이 동료의 시신을 찾는 임무를 수행하던 도중 실족한 것으로 판단해 지난해 12월께 순직을 인정했다.
고인의 사망보상금은 1천200만원으로 책정됐다. 이씨는 터무니없는 보상금에 분통을 터트렸다.
그는 "군은 아버지가 어디 계신지 한 번도 말해주지 않았다. 유품도 하나 남기지 않았다"며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과 그 유족에 대한 위로가 이 정도밖에 안 된다니 아버지 없이 자란 지난 60여 년 세월이 참으로 서럽다"고 울먹였다. 유족은 최근 국방부에 이의 신청을 했다.
군은 '군인재해보상법'에 따라 '군인재해보상심의회'를 열어 보상 기준을 정하고 있다. 현재 순직을 인정받은 군인 등에게 공무원 전체 월 급여(기준소득월액) 평균액의 24배를 사망보상금으로 지급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군 관계자는 "고인에게 사망 당시의 관련법 보상 기준에 따라 5만환(당시 화폐 단위)을 지급해야 하지만, 내부 지침에 따라 1천200만원이 책정된 것"이라며 "군에서도 최대한 보상하려고 노력 중인데 예산 문제 등으로 한계가 있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