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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5년의 파더보른 공의회(Council of Paderborn)를 봅시다. 여기서 성직자들은 소위 마녀사냥꾼이라는 광신자들에게 진절머리가 나서 남을 무작정 마녀라 비방하는 행위가 불법행위이고 마녀사냥꾼들은 사형에 처해야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네, 잘못 보신거 아닙니다. 파더보른 공의회는 마녀가 아니라 마녀사냥꾼이 죽어야한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공의회 자체는 작센의 개종이 메인 주제였고 9년 후 샤를마뉴 대제가 열었던 794년의 프랑크푸르트 공의회(Council of Frankfurt)와 소세지처럼 이어져 작센족의 주류 유럽사회로의 편입 혹은 기독교 유럽에게의 복속을 얘기할 때 절대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 것이지만, 여기선 마녀사냥 얘기하니 넘어갑시다.
그럼 중세시대에 마녀사냥을 옹호했냐면 그건 당연히 아닙니다. 영국 왕 에썰스턴(Aethelstan)이 서기 후 10세기 초반에 쓴 법전을 한번 봅시다. 여기에는 마녀들을 다루는 법이 하나 있는데, 이게 여간 황당한게 아닙니다. 법 자체를 봅시다.
http://www.fordham.edu/halsall/source/560-975dooms.asp#The Laws of King Athelstan
6. And we have ordained respecting witch-crafts, and lybacs, and morthdaeds: if any one should be thereby killed, and he could not deny it, that he be liable in his life. But if he will deny it, and at threefold ordeal shall be guilty; that he be 120 days in prison: and after that let kindred take him out, and give to the king 120 shillings, and pay the wer to his kindred, and enter into borh for him, that he evermore desist from the like.
6. 만약 누군가가 마술, 주술, 주술살해를 한 마녀로 지목됐다면, 그리고 마녀에 의해 누군가가 살해됐다면, 그리고 마녀가 혐의를 거부하지 않는다면, 마녀는 스스로의 목숨을 책임져야만한다(1). 하지만 만약 마녀가 혐의를 거부한다면, 그리고 3파운드의 시련(Threefold Ordeal)에서 유죄로 판정된다면, 마녀에겐 120일간의 감금형을 내린다. 형벌이 끝난 후에는, 마녀의 친족으로 하여금 마녀를 대리고 나오도록 하고, 마녀의 친족으로 하여금 왕에게 120 실링을 바치도록 하고, 마녀로 하여금 친족에게 스스로의 가치값(Wer, Weregild)을 치르도록 하고, 마녀로 하여금 더 이상 마술을 부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버러(Borh, Burh)에 들어가도록 한다.
오역지적 감사히 받습니다. 아마 오역이 여러개 있을겁니다. 번역하다 이게 맞는지 저게 맞는지 헷갈릴 때도 여러번 있었으니까요.
1. 영주와 왕국의 보호를 더 이상 받지 못하고 스스로가 스스로의 안전을 책임져야만한다, 즉 민중이 빡쳐서 마녀를 불태워도 영주나 왕국은 그냥 바라만본다 이겁니다.
용어 설명 시작하겠습니다. 3파운드의 시련(Threefold Ordeal)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우선 중세시대의 시련(Ordeal)이라는 개념을 설명해야합니다. 중세시대의 시련은 한마디로 죄인이 스스로가 무고함을 증명하기 위해 해야만 했던 일들을 말합니다. 중세시대에는 뭐 ㅄ들만 있는건지 스스로의 무고함을 증명하기 위해 칼질해 싸워 이겨야만했다라는 얘기 들어보셨죠? 그게 바로 시련입니다. 보통 대부분의 농노나 자유농들은 그런 칼질 시련 대신 다른 시련들을 택했습니다. 끓는 물의 시련을 예로 들어 얘기해보겠습니다. 이 끓는 물의 시련에서 죄인은, 우선 끓는 물에 손이나 팔을 집어넣고, 집어넣었던 부분을 붕대로 묶어서 교회의 문장으로 봉인한 후, 3일이 지나면 봉인을 깨고 붕대를 풀어 상처를 확인합니다. 만약 화상자국이 남았다면 그 사람은 죄인입니다!? 정상적인 신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죄인이 됩니다. 아니 상식적으로 저렇게 해서 화상자국이 안 남으려면 꼼수나 수작을 미리 부리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있나 의문이 듭니다.
3파운드의 시련 또한 다양한 시련 중 하나입니다. 이건 뜨겁게 달아오른 3파운드의 쇠를 짊어지고 일정한 거리를 걷는 시련입니다. 이 화상은 다시 붕대로 묶여지고, 훗날 풀어서 화상자국을 확인해 화상자국이 남았다면 그 사람은 죄인입니다. 그러니 에썰스턴의 법에 의하면 마녀라 기소 된 사람은 2가지 선택지를 가지는 셈입니다. 혐의를 거부하지 않고 분노한 민중에게 화형당하거나, 혐의를 거부해서 3파운드의 시련을 겪고 120일간 갇히거나. 물론 3파운드의 시련에서 무죄를 입증한다면 무죄로 풀려나겠지만, 금강불괴라도 아닌이상 그건 불가능합니다.
가치값(Wer, Weregild)는 앵글로색슨 법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진 용어인데, 모든 재산과 모든 사람에 대한 가치를 돈으로 환산한겁니다. 저 사람은 몇백 실링, 저 밀가루는 몇 실링, 이런 식으로 정해둔거죠. 그래서 만약 A라는 사람이 B라는 사람을 해치거나 B의 소유인 C라는 재산을 해친다면 A는 B에게 가치값을 지불해야하는거죠. 이 가치값은 기사의 몸값하고도 큰 연관이 있습니다. 몸값과 가치값은 거의 비슷하게 지불됐었으니까요. 그래서 기사나 귀족들은 함부로 낮은 몸값을 지불할 수도 없었는데, 낮은 몸값을 지불한다면 스스로의 가치가 그만큼 낮다고 온세상에 외치는거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대다수의 몸값이 가치값에 해당하는 만큼이니 그럴 걱정 자체가 불필요하긴 했지만요.
버러(Borh, Burh)는 서기 후 9세기~11세기 가량에 잉글랜드에 짓어진 요새를 뜻합니다. 버러는 주로 로마제국이나 그 이전에 짓어졌던 고대 요새들의 잔해 위에 짓어졌으며 방위적인 용도 뿐만 아니라 해당 지역의 상업 및 행정적 중심지의 역활 또한 맡았습니다.
비슷한 법은 하나 더 있습니다. 에썰스턴의 전임자인 웨섹스 왕 에드워드(Edward the Elder)가 쓴 법중에도 마녀법이 하나 있거든요. 이 법은 번역하기 훨씬 더 간단합니다. 한번 봅시다.
11. If witches or diviners, perjurers or morth-workers, or foul, defiled, notorious adulteresses, be found anywhere within the land; let them be driven from the country, and the people cleansed, or let them totally perish within the country, unless they desist, and the more deeply make bot.
11. 만약 마녀나 점쟁이, 위증자나 살인자, 그릇 된 자, 타락한 자, 간통을 범한 여자, 이들중 어떠한 이라도 이 땅에서 발견 될 시, 그들은 이 땅으로부터 내쫓겨지며, 정화되거나, 이 땅에 다시 모습을 보이지 않게 될 것이지만, 그들이 옳지 않은 길을 거부하고 올바른 길로 돌아온다면, 그들이 봇(Bot, Bote, Boot)을 많이 바치면 많이 바칠수록, 이 땅에 받아들여질 것이다.
역시 오역지적 감사히 받습니다.
용어설명 시작합니다. 봇(Bot, Bote, Boot)은 프랑스의 벌채권(Estovers)의 앵글로색슨 버젼 단어인데, 벌채권은 말 그대로 소작농이나 농노가 집을 수리하거나 펜스를 짓거나 불을 떼우거나 하기 위해 땅의 주인으로부터 나무를 벨 수 있는 권리를 허락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것의 앵글로색슨 버젼인 봇은 좋은, 이익, 이런 뜻 또한 내제하고 있기에 보상금이라는 의미 또한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저기서 봇을 바치란건 한마디로 ‘넌 이방인이니까 이 땅에서 살려면 돈 내라’ 이겁니다.
이 두 법을 보면 당시에 마녀라는 계급의 사회적 지위가 보입니다. 마녀는 영주나 왕국의 보호를 받을 자격이 못 되는 사악한 자들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익숙하지 않은 풍습을 가진 이방인들을 마녀라고도 부릅니다. 그러니 마녀는 익숙하지 않은 풍습을 가진 이방인들이고, 이방인들은 익숙하지 않기에 마치 남미의 농촌사회처럼 극도의 폐쇄성을 가진 중세의 농촌사회는 이 이방인들을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이 이방인들은 영주나 왕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었고, 이들의 익숙하지 않은 풍습은 마술처럼 보였기에 이들은 마녀라 불려지며 경연시됐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들은 그저 익숙치 않은 풍습을 가진 이방인이기만 할 뿐이였기에, 역시 노동력과 세금을 제공하는 백성이기도 한 이들을 굳이 죽이고 싶지는 않았던 군주들이 제법 많았고 이들의 이해관계는 프랑크푸르트 공의회에서 마녀사냥을 금지한 것에서 볼 수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중세시대에 마녀는 좋은 것은 아니고 사람들이 자신의 증오와 분노를 해소하는 대상이였지만 그렇게까지 극악한 마녀사냥을 벌인건 아닙니다. 그럼 마녀사냥을 언제 벌이냐고요? 1487년에 벌입니다.
말레우스 말레피카룸(Malleus Maleficarum), 마녀의 망치라는 책은 1487년에 하인리히 크래머(Henrich Kramer)라는 수사에 의해 쓰여졌습니다. 이 수사가 좀 미친놈인데, 티롤, 살츠부르크, 보헤미아, 모라비아, 이곳들의 이단심판관으로 임명되자 티롤에서 벌어졌던 한 종교재판에 참석해서 온갖 깽판을 다 부렸습니다. 왜냐하면 그 그 종교재판은 무죄로 끝났지만 하인리히 크래머는 그걸 받아들일 수 없었거든요. 종교재판 와중에도 종교재판의 대상이였던 한무리의 여인들에게 불필요하고 비정상적이며 사적인 질문까지 서슴치않고 하던 하인리히 크래머는 종교재판이 무죄로 끝난 후에도 여인들을 따라다니며 이 여인들이 마녀라 주장했습니다. 결국 하인리히 크래머는 ㅄ라는 평판을 받았고 하느님을 위해 한 목숨 바쳤다 믿었던 하인리히 크래머는 너무나도 화가 난 나머지 앞으로 수백년간 유럽과 신대륙을 좀먹이며 10만여의 무고한 목숨을 앗아갈 희대의 마서, 마녀의 망치를 썼습니다. 그리고 이 마녀의 망치는 인쇄기의 개발과 함께 무서운 숫자로 출판되며 퍼져나가 18세기까지 서방세계를 괴롭힙니다.
그러니 네, 마녀사냥은 엄밀히 말해서는 중세가 아니라 르네상스와 근세의 산물이라고 봐야합니다. 중세시대에도 마녀사냥은 있었지만 이방인에 대한 적개심 이상은 못됐고, 실질적으로 마녀사냥이 체계화되며 무시무시한 증오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터져나오게 된 계기인 마녀의 망치부터가 중세 이후인 1487년에 쓰여졌으니 이건 르네상스와 근세의 산물이라 봐야죠. 마녀사냥하면 중세가 떠오르는 이유는 아마 중세시대가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이 많은 사람들 머릿속에 제대로 박혀있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하고 추측해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따지고 보면 고대 그리스부터 존재한거니 어떻게 보면 왕따만들기죠 쩝
ㅋ 저번 몽골제국 관련된 논쟁에서도 헛소리만 하더니만....
네눈에는 다헛소리지. 뭐
@크리킹 그때 당신 주장 보면 지금 하는 말처럼 충분히 헛소리였어요. 저 분 눈에만 아니라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 눈에 당신 주장은 헛소리입니다.
크리킹 저 사람 논리 구조를 보면 기승전박정희파쇼중앙집권독재친일매국 수준 ㄷㄷ; 도대체 뭐가 어떻게 흘러가면 마녀사냥 떡밥에서 이야기가 저렇게 흘러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