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번역가
신인감독이던 올리버 스톤을 정상에 올려놓은
영화 '플래툰'은 다른
미국제 전쟁영화들과 달리
베트남전을 미국중심이 아닌 비판적인 시각에서 다룬 첫 영화로서 평가받는다.
베트남전 참전 경험이 있는 올리버 스톤이 직접 각본을 썼고 전쟁영웅보다는 전쟁터의 인간본성의 추악함을 더 생생하게 그려 논란을 일으켰다. 1987년 아카데미상 4개 부문, 골든글로브상 3개 부문, 베를린국제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다. 한국에서도 개봉되어 그 해 흥행 1위를 기록했다.
이 영화를 거액에 수입한 영화사 요청으로 번역을 맡았던 내겐 또 하나의 악몽이었다. 계급장 단 군복을 확실히 갖춰 입고 전투하는 건
한국영화 뿐이다. 열대 정글에서 진흙투성이 속옷 바람으로 술 담배와
불안한 쾌락에 몰입한 미군들이 존, 프랭크 하고 서로 불러대는 것도 "네, 소대장님" "아닙니다, 중위님"하고 위계서열 계급장 따져 (한국식으로)
군대다운 대사의
자막을 만들어줘야 명령불복이나 동료간 살해같은 극적 갈등이 산다.
더욱이 이 영화는 몇 년 뒤 TV에서 방영할 때
더빙 번역까지 맡아서 한숨소리 비명소리까지 완전
한국어로 옮기는 2차례의 고역을 치렀다. 번역은 최대의 정독이니 대사 하나하나와 씨름하는 과정에서 올리버 스톤이 전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내
마음처럼 훤히 기억에 남게 되었다.
그런 그가 제주에 왔다. 베트남전쟁을 다룬 '플래툰'뿐 아니라 케네디 암살('JFK') 워터게이트사건('닉슨')등 미국현대사의 사건을 정면으로 파고들었던 올리버 스톤 감독이 제주 강정마을까지
해군기지
건설을 말리러 제 발로 찾아온 것이다.
그는 전국 108개 환경 및 시민
사회단체가 주최하는 '강정 생명평화대행진'과 3일 제주시의 평화콘서트에 참가해 "제주 해군기지는 결국 미군기지로 사용될 것이며
중국과의 최전선에 서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의 최전선화 반대" 올리버 스톤 감독상하이에서 겨우 500km 떨어진 제주해군기지에 '움직이는 미사일기지'로 통하는 미군의 수천톤급 잠수함과
항공모함이 드나들 경우 이를 막기는 어렵다. 더욱이 위기시 군사작전권까지 제발 외국군대가 계속 맡아달라고 환수연기에 애를 쓰는 한국정부가 아닌가.
"한국정부가 건설하는 제주 해군기지로 인해 제주에서 전쟁 위협이나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는 올리버 스톤 감독의 발언은 전쟁영화 감독의 사견만은 아니다.
일본을 비롯한 군사대국들이 앞다퉈 보유한 잠수함같은 전략무기의 천국으로 알려진 것이 수심깊은
동해다. 중국과 미국의 대결구도가 상당기간 지속될 것을 예측하는 국제전문가들도 동북아의 지정학적 조건상 제주해군기지의 역할을 주목하고 있다. 결국 그 '역할'이란 최전선으로 희생될 가능성의 다른 말일 뿐이다.
'플래툰'은
캄보디아 국경 근처의 미군 수색대 안에서 일어나는 전투원들 중 개인의 불행을 전쟁을 통해 복수하는 데 광분하는 악의 화신 반즈 중사와 인도주의적 면모의 엘리어스 분대장의 대결구도가 축이다.
주인공인 신병 크리스 테일러는 막연한 전쟁영웅의 꿈에서 깨어나 동료끼리의 살육까지 서슴지 않는 극한상황에서 결국 어떤 인간성을 택할 것인지 '선택'을 해야 한다. 그는 악인을 척결하는 쪽을 택한다. 문제는 격전지의 전투나 국제적 갈등의 폭발상태에서는 특정 개인이나 국가의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특히 강대국 사이에 낀 나라에서는.
'아군'의 무기가 가장 큰 생명의 위협영국 왕립육군사관학교의 전쟁학 교수로 유명한 존 키간은 그의 책 '전투의 얼굴'에서 전쟁이란 적군과의 전투가 아니라 군대내 사고와 실수로 인해 더 많이 생명을 잃는 것이라면서 "적이 아니라 바로 옆에 있는 동료의 무기가 가장 직접적인 생명의 위협"이라고 썼다.
특히 군대의 기계화가 극에 이른 현대전일수록 첨단무기의 오작동, 탱크나 장갑차 등 운송장비 사고, 살상력 큰 자동화기의 희생자가 적에 의한 전사자보다 더 많아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해군기지 건설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깨끗한 제주의 수질오염, 환경파괴, 군 범죄같은 문제 외에도 '기지 자체의 존재'가 우리에겐 위협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이지스구축함, 패트리엇미사일, 미군폭격기, 첨단 대량살상무기가 제주도에서 사용되고 발사되는 장면은 영화 속이든 꿈속이든 '가장 보고싶지 않은 악몽'이다. 후손에게 물려줄 자연유산을 통째로 포기하는 너무나 큰 희생이기도 하다. 세계가 제주를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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