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진터널 옛길
묵은해를 보낸 간밤 세밑 마산에 사신 당숙모님이 별세해 장례식장으로 문상 걸음을 다녀왔다. 그리 멀리 떨어져 사는 사이도 아닌데 재종형과 아우들을 자주 뵙지 못하고 지내 마음이 걸렸다. 나보다 윗대 항렬은 뵙기가 어렵고 항렬이 한 대 더 내려간 젊은 조카들은 얼굴조차 입력되어 있지 않았다. 앞으로 자녀가 하나나 둘인 시대이기에 사촌도 드문데 육촌은 더 멀어지지 싶다.
평소보다 늦게 잠들었는데 잠결에 어렴풋이 육중한 종소리가 들렸다. 내가 사는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용지호수가 있다. 호수와 인접한 산자락에 도서관이 있고 산마루에 창원대종 종각이 세워져 있다. 쇳물을 녹여 주조된 우람한 종이다. 보신각종처럼 일 년에 딱 한 번 해가 가고 오는 즈음 서른세 번 종을 울린다. 당목을 밀어 종을 울리는 이들은 공모와 추첨으로 정한다고 들었다.
기해년 새날 아침이 밝아오기 전 동녘엔 동짓달 스무엿새 조각달이 걸려 있었다. 집에서부터 가로등이 켜진 보도를 걸어 창원실내수영장 앞으로 나갔다. 동정동에서 진해 인의동까지 오가는 751번 직행버스를 탔다. 창원병원에서 공단 배후도로를 달려 양곡으로 향했다. 진해로 드는 장복터널을 넘기 전 오봉사 입구에서 냈다. 신호를 기다려 횡단보도 건너 마진터널 옛길을 걸어 올랐다.
차선이 넓혀진 장복터널이 뚫린 이후 진해 옛길은 차량 통행이 뜸하다. 속도를 줄여 가는 아베크족 차량이 있기는 하나 아주 드물게 지났다. 약수터나 민가가 없기에 평소 인적이 드물다. 낮에는 장복산 둘레길을 걷고 내려오는 이들이 가끔 있으나 날이 밝아오지 않은 새벽이라 그들조차 볼 수 없었다. 텃밭농사를 짓는 밭뙈기조차 없는지라 고라니나 멧돼지도 출몰하지 않는 곳이다.
고목이 된 벚나무 가로수는 어둠속 희미한 실루엣으로 드러났다. 나는 낮에는 진해 옛길을 걸어보았으나 이른 새벽에 걷기는 처음이다. 차량들은 모두 길이 넓고 거리가 짧은 장복터널로 넘나들기에 진해 옛길은 무용지물이다. 차들이 다니지 않으니 소음이나 매연으로부터 자유로웠다. 저만치 떨어진 건너편 장복터널로는 진해로 넘나드는 차량들이 전조등을 켠 채 간간이 오르내렸다.
오봉사 입구에서 반시간 넘게 걸려 마진터널에 이르렀다. 남들은 새해 일출을 보려고 먼 곳으로는 차를 몰아 떠나거나 가까운 데 발품을 팔아 나서기도 한다. 내가 오르는 마진터널은 해돋이 명소는 못 된다. 더러 새해 아침이면 천주산이나 정병산으로 오른다. 안민고개나 용제봉이 좋다. 내가 사는 동네 뒷산 반송공원이나 근처 태복산과 남산이나 주남저수지도 해맞이 행사가 열린다.
창원 근교 해돋이 명소는 합포구 현동 사궁두미다. 가포를 지나 덕동 못 미쳐 해안선 모롱이를 돌아가면 합포만 바깥 외진 어촌이다. 작은 섬과 등대 사이로 떠오르는 일출은 사진작가들을 불러 모으기에 충분하다. 진동으로 나가 광암바다가 보이는 고현과 장기 일대 해안도 바다에서 솟아오르는 해돋이 명소로 꼽을 만하다. 진해에서는 진해루 해맞이가 있으나 시루봉 방향에서 뜬다.
차량이 지나지 않는 마진터널을 뚜벅뚜벅 걸어 진해로 넘어갔다. 터널을 빠져나가니 그즈음 날이 밝아오고 있었으나 장복산과 시루봉이 가려 일출을 바로 볼 수 없었다. 나목이 된 채 줄지어 늘어선 벚나무 가로수의 열병을 계속 받으며 장복산 조각공원으로 내려섰다. 소나무 숲속에서 눈비와 바람에도 끄떡없는 몇몇 작품을 감상하고 구민회관을 지나 내수면 생태공원으로 내려섰다.
내수면 생태공원에는 산책을 나온 사람이 몇 보였다. 벚나무와 느티나무는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채 겨울 나고 있었다. 물억새는 야위어졌고 능수버들은 특유의 늘어진 포물선 가지로 제 모습을 드러냈다. 호수를 빙글 한 바퀴 둘러 여좌천 데크를 따라 벚나무 나목 열병을 한 번 더 받았다. 내친김에 북원로터리에서 중앙시장을 찾아가 선지국밥으로 맑은 술잔을 비우면서 속을 풀었다. 19.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