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가를 위한 작은 음악회
““애국가를 사랑해 주시는 한국 국민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땅 속에 있는 제 남편도 애국가를 함께 들으며 기뻐할 겁니다.”
15일 오후 동수원 초등학교 도서실 한쪽에서 소박하지만 감동적인 작은 음악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가야금과 리코더로 ‘굿거리’, ‘도레미 송’을 연주하는 이 학교 어린이들이 무대의 주인공이었고
관객은 안익태 선생의 부인 롤리타 안(90) 여사와 셋째딸 레오노아 안(52),
그리고 안 선생의 외손자 미겔 익태 안 기옌(29)씨 였습니다.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가야금 합주반 학생들이 굿거리와 '톱질하세' '꿈배를 띄우자' 등
민요 메들리에 가야금 병창이 이어지자 롤리타 여사는 흥겨운 박자에 맞춰 손뼉을 치며 즐거워 했습니다.
레오니아 안도 작은 카메라를 들고 이들의 모습을 담기에 여념이 없어 보였습니다.
학생들의 공연에 이어, '한국 환상곡’이 스피커로 흘러 나왔습니다.
애국가의 원곡(原曲)이자
안 선생이 1961년 할리우드 볼 야외음악당에서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니와 한인(韓人) 합창단을 직접 지휘한 곡입니다.
레오노르 안(53)씨는 ‘한국 환상곡’의 한 소절인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을 따라 부르다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떨구었습니다.
이 작은 음악회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숙연해졌습니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롤리타 여사의 기쁨과 회한에 찬 얼굴을 살피던 저도 코끝이 찡해졌습니다.
참 비장하면서도 아름다운 선율이었습니다.
( 이렇게 감동적인 애국가는 두번째인 것 같습니다.
5년 전인가 광복절을 앞두고 광화문 행사 리허설을 하는데 무대에서
조수미씨가 부르는 애국가에 그만 발이 얼어붙어 버렸던 적이 있습니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안익태 선생은 샌프란시스코의 한인교회에서
<올드 랭 사인> 선율의 애국가를 듣는 순간 그는 빼앗긴 조국을 회상하며
<애국가>를 작곡하려는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
1936년 다시 유럽으로 유학을 오르게 되어 베를린에 도착해
그 해 6월 귓가를 스쳐가는 멜로디에 잠을 깬 안익태는
이 선율을 오선지에 적었는데, 두 번 다시 수정하거나 재검토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안익태 선생은 이 악보를 정리해서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대한국민회 앞으로 보냈으며,
자신의 미완성 곡인 <한국환상곡>의 마지막 악장으로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2년 후인 1938년에 이 곡은 안익태 선생이 지휘하는
더블린의 아일랜드 국립교향악단의 연주로 초연되었습니다.
'한국 환상곡'에 이어 롤리타 여사가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어린이 합창단의 손을 잡고 한가운데 섰습니다.
검정색 정장을 곱게 차려입은 롤리타 여사는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가끔 감격에 겨운 듯 잠시 눈을 감는 것 외엔
환한 웃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순서로 학생들과 애국가를 합창할 땐
감정이 북받쳐 오른 듯
주름진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말았습니다.
올해는 애국가 작곡자 안익태 선생이 세상을 뜬 지 40년이 되는 해이고
내년이면 안익태 선생이 태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일본과 미국, 독일, 스페인을 전전하면서 세계적인 작곡자 겸 지휘자로 이름을 날렸으나
정작 국내에서는 홀대받았습니다.
우리의 '애국가'도 그 첫 공연무대는 콘서트 홀이 아니라 운동장 잔디밭이었습니다.
그가 애국가를 완성한 이듬해인 1936년 베를린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했다가
일본 선수단 일원으로 참가한 한국인 선수들과 함께 ‘응원가’ 삼아 부른 것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한국 환상곡'이 국내에서 초연된 것은 1961년의 일이었습니다.
지금은 비록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어 있지만 여전히 국가 유공자 지정도 안된 상태입니다.
애국가에 대한 저작권료를 둘러싸고 "애국가 부르는데도 돈내고 불러야 하느냐"며
네티즌 사이에 불만이 터져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애국가'에 대해서,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에 대해서,
그리고 조국처럼, 한국을 사랑하며 평생을 살아 온 안익태 선생의 가족에 대해서
얼마나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있었던가를 다시 돌아봐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국 땅으로만 떠돌던 그의 예술혼이
탄생 100년을 앞두고 고국에 안착하기를 소망합니다.
롤리타 여사는 16일 문화관광부를 방문, 애국가 저작권을 한국에 조건없이 양도하는 서명을 한 뒤
19일 남편의 유해가 안장된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참배한 뒤 20일 스페인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첫댓글 왠지 숙연해 집니다. 감동적이네예.선배님 감사합니다!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가슴이 뭉클해지네요....충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