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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양한단성방지산개발유한공사 손명식 회장 |
아시아권 물류 중심지 심양을 꿈꾸며! [인물탐구]심양한단성방지산개발유한공사 손명식 회장
● 중국에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 1989년 일거예요.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88년에 서울올림픽이 끝나고 한국이 세계화로 가는 출발점에서 한국에 그냥 안주해 있으면 안되겠다. 내가 꿈을 펼칠 수 있는 나라가 있다면 어디인가라는 고민하다가 앞으로 중국이 세계의 강국이 되지 않겠느냐라는 생각에 중국 방문을 계획하게 되었어요. 이런 동기 자체는 당시 제가 가진 중국이 거대한 나라가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내가 이 거대한 나라에서 꿈을 펼쳐봐야 되겠다고 생각하여 중국을 방문하게 되었어요.
● 그때 중국에 제일 먼저 어디를 방문하셨나요 - 호남성 장사예요. 제가 남의 나라에 왔으니깐 우리가 친구 집에 가면 어른한테 큰절을 하듯이 중국에 왔으니 일단은 어른한테 인사를 드려야 하겠다, 예를 갖추어야 하겠다라는 저 나름의 기준으로 모택동 주석의 고향인 호남성 장사에 가서 모택동 동상에 큰절을 하고 마음속으로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선 것은 당신이 중국의 어른이라 생각하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앞으로 항상 중국과 중국인을 대할 때 오늘 당신을 대하듯 존중하며 같이 일하겠습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 당시는 중국 방문이 수월하지 않았을 때인데 심양은 어떻게 선택하게 되었나요 - 당시에 미국교포가 있어서 오기가 쉬웠어요. 미국교포가 중국하고 무역을 하고 있었어요. 그 사람을 배동하면서 홍콩에서 심천을 통해 장사(長沙)에 2년동안 한 30-40번 정도 방문하였어요. 그때는 백화점 합작관계로 중국에 오다가 나중에 합작이 성공되지 않아 시장조사차 상해도 1년반 정도 자주 다녔어요. 그때부터는 일단은 내가 정착할 수 있는 즉, 보따리를 풀 수 있는 곳을 찾기 위해서 다니기 시작했고 북경을 거쳐서 심양에 왔는데 심양공항에 들어오면서 느낌이 심양이 내가 생각하고 있는 곳이구나라는 느낌이 가슴속에 확 오더라고요. 그때가 1992년 한-중수교하고 몇 달 지났을 거예요.
처음 중국에 들어올 때부터 나도 모르게 이끌려 왔고, 장사(長沙)로 가서 인사까지 했고, 심양에 들어오면서 너무나 가슴에 와 닿는 것이 “내 인생은 여기서다”라는 것이 정말 손으로 만질 듯 싶었어요. 그래서 심양으로 들어왔어요.
● 심양에서 중국에서의 꿈을 펼치기로 하셨는데 먼저 무슨 일을 하셨나요 - 내가 처음 중국에 들어왔을 때 장사(長沙)에서 느낌이 중국사람들과 관계를 만들어야 되겠다, 특히나 중국관료들과 관계를 만들어야 된다. 내가 이곳에서 꽌관시(關係)를 만들고 이곳에 꿈을 펼쳐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당시 북경에서 알았던 사람들을 통해서 심양시장을 만날 기회가 생겼어요. 심양시장을 접촉하면서 시장에게 제안을 했어요. 그때가 심양시에 오자마자 3개월만에 시장에게 제안을 한 거예요. “한국의 구미시와 중국의 심양시가 자매결연을 맺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시장이 묻더라고요. 구미시가 인구는 얼마만한 도시냐고. 그래서 인구는 30만 도시이고 공업도시라고 말했지요. 그랬더니 시장이 들어볼 때는 700만 인구의 심양시가 어떻게 그런 작은 도시하고 자매결연을 맺자고 그러냐고 조금은 비웃듯이 말했어요.” 시장이 비웃는 듯한 말투로 이야기하기에 “구미시는 인구도 면적도 심양시의 1/20밖에 안된다. 하지만 한국경제의 1/10을 담당하고 있다. 그렇다면 심양시는 중국경제에 몇프로 담당하고 있는가.” 한편으로는 좀 건방지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인연이 되어 그때 당시에 부시장을 단장으로 한 경제고찰단 18명을 데리고 구미시를 방문하게 되었어요. 1993년 일이예요. 제 나이 36살 때입니다. 자매결연은 그리고 3년정도 있다가 맺었지요. 그때는 한-중 교류가 적어서 심양에 한국사람이 거의 없었고 영사관도 없었어요. 그렇게 해서 1990년대 중반까지는 심양시의 한국과의 교류는 거의 제가 했었어요. 심양시와 구미시 양시간의 자매결연 후 1995년에 심양시영예시민증을 수여 받았어요. 시장을 만나든 관료를 만나든 중국사람을 만났을 때 저는 한국사람으로서 중국도 도움이 되고 한국도 도움이 되는 일이면 무엇이든 어떻게든 하겠다라는 얘기를 많이 했어요.
● 심양시의 구미시무역관에 대하여 말씀에 주시죠 - 구미무역관을 심양에 설립한 것은 약 7년정도 되었어요. 중국의 관료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방법이 개인에게 없더라 말이예요. 그래서 구미시장한테 부탁했지요. “나를 공무원 신분으로 만들어 달라. 나를 구미시장 대리인으로 사무실의 책임자로 만들어 달라. 내가 중국에서 시장들을 만날 수 있는 라인을 만들어 달라.”해서 구미시에서는 보수도 없는 구미무역관의 관장으로 대외활동을 하게 된거예요.
● 부동산개발에 대해서는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되었나요 - 중국에서 시장이나 관료들을 모시고 한국에 다니다보니까 제가 자연스럽게 한국에서 사람들을 많이 데리고 오기도 하는데 많은 시간을 같이 대화를 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한국사람들이 중국에 와서 투자를 하고 사업을 하러 왔는데, 막상 시작을 해보면 쉴 수 있는 공간, 주택과 불안정한 치안문제, 사무실공간. 이런 것들이 절대적으로 한국사람한테 맞지 않고 시설이 빈약해 우리가 투자유치를 해서오는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기본적이라 할 수 있는 위의 애로사항을 자주 시장과 시정부에 건의하게 되었어요. 그러나 한국의 건설쪽에 있는 사람은 중국을 모르고 중국을 아는 사람은 건설을 몰라 개선이 안되고 있다가 심양시정부에서 오히려 저한테 “당신이 이런 것을 해봐라,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주겠다”라는 방향으로 진행이 되어 추진하게 된 것입니다.
● 중국과 동북3성의 부동산시장 전망은 어떻게 보는지. - 북경이나 상해, 청도, 심천등의 부동산이 활기를 띤다고 해서 하는 말이 아니고, 저는 중국 전체를 보지 않아요. 심양시에서 무엇이 필요하고, 제가 심양시에서 무엇을 할 수 있나를 생각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심양시에서 일등이면 중국에서 일등이다”라는 주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심양시에서 최고의 관시(關係)를 가지고 있으면 중국 어디에서나 다 통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중국이 서부대개발을 할 때 SK가스에서 변호사가 왔어요. 내몽고에 가서 시장을 만나 상담을 해야하는데 좀 소개를 해달라는 거예요. 그래서 심양시정부에 내가 이런 일로 내몽고에 가는데 심양시에서 주선해달라고 하였고 저희는 내몽고에 가서 국빈대우를 받고 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심양시에 현재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제공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제가 심양에 정착하게 된 동기중 하나는 문화적 동질성, 지리적 여건뿐만 아니라 세계경제가 블록화하는 시기에 우리 아세아권의 경제블록의 물류중심지가 바로 심양이다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우리 한국과 일본, 북한, 러시아, 중국등 5개 국가 물류의 중심이 심양일 수 밖에 없잖아요. 앞으로 동북아지역이 아세아경제권의 중심지가 되기 때문에 글로벌시대에 나라의 경계가 없어진다고 봤을 때 우리가 한국에 살아야 되고 내 땅에 살아야되고 하는 개념이 없어지지 않겠어요. 2003년 동북대개발 프로젝트와 남북한 육로가 개통이 되면 특히 물류에 비중이 많은 기업체, 남방이나 연해에 진출한 기업들도 점차적으로 심양으로 옮겨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자연스러운 현상은 부동산에 대한 수요가 많아질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오마이게이쯔가 쓴 ‘차이나 임팩트’란 책을 보면 중국의 개발영역을 6개 부분으로 나누어 놓았는데 동북3성은 일본하고 한국이 긴밀할 수 밖에 없다고 보고 있어요. 그 책을 보면서 제가 10여년전 중국에 들어와서 본 것과 꼭 같아요.
● 회사 이름을 심양한단성방지산개발유한공사라고 지셨는데 ‘한단성’이라는 이름이 독특한데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겁니까 - 제가 잘 다니던 주치의(중국의사)가 지어 주었어요. 한단성이란 말은 한국사람과 중국사람이 첫 태양을 맞이하면서 같이 어울려서 사는 성이라는 뜻으로 만든 겁니다.
● 심양한단성방지산개발유한공사에 대하여 소개해주시죠 - 한단성은 부동산 개발 전문회사들이 합작하여 설립된 회사입니다. 한국의 (주) 혜원종합건축사사무소, 화성종합건설(주), 주식회사 모그린, 심양한단성투자자문유한공사가 합작하여 2003년 10월 15일 심양한단성방지산개발유한공사가 설립되었습니다.
(주) 혜원종합건축사사무소는 한국내 건축설계, 감리공사 수주액 전국 1위인 건축사무소이며, 화성종합건설(주)는 한국내 철도역사 건축, 토목공사 95%을 점유하고 있는 회사입니다. 그리고 주식회사 모그린은 한국의 유수한 대기업의 인테리어 공사를 맡아하는 회사입니다. 이 3개 회사와 심양한단성투자자문유한공사가 합작하여 중국 심양의 부동산 개발을 위하여 부동산 개발회사를 설립한 것입니다.
● 심양한단성방지산개발유한공사에서 시공하는 한국신성에 대하여 소개해주시죠 - 총사업부지 면적은 31,776㎡, 총건축면적은 276,000㎡로 추산하고 있으며, 먼저 1차사업의 부지면적은 11,650㎡, 건축연면적은 116,000㎡으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한국신성 1차사업의 개발은 오피스텔과 아파텔로서 개발하고 있습니다.
● 심양시 정부에서 공식문건으로 심양시한국주를 심양시민의 명절로 만들겠다라는 ‘심양시한국주’에 대해서 - 장단기적인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봐요. 점차적으로 실사구시적인 행사가 되도록 노력해야겠지요. 또한 잔치를 열어 초대를 받았을 때 저희는 손님의 입장에서 저희의 갖추어야 할 예의와 초대한 사람들의 애로와 입장을 배려해주는 성숙함도 필요하다고 봐요. 그리고 잔치를 열어줄 때 이 잔치를 통해서 중국사람들에게 한국에 대한 문화를 전파하고 우리의 뿌리를 심을 수 있는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문화를 서로 이해한다는 것은 서로를 존중한다는 것이고, 서로를 존중하면 서로에게 비즈니스가 생기는 것 아닌가요.
● 오랜 중국 경험속에서 중국과 중국사람들의 장점이라면 어떤 점이라고 생각하는지 - 중국사람들을 사귀기가 힘들어요. 금방 한국사람처럼 말로는 사귀는 것은 똑같아요. 만나면 식사하고 술 한잔하면 친구된 것 같지만 중국인들은 진정으로 마음을 주고 사귀는거 그 관시(關係)를 만드는 것은 적어도 끊임없이 만나면서 5년 이상이 되야지 가능하다고 봐요. 언어상등의 문제로 만나는 것 자체가 힘들지만 그 다음에 만나면은 마음을 서로 주고받는 변하지 않는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전 세계에서 가장 이 사람들이 멋이 있고 정말 의리가 있다고 봅니다. 세계적으로 중국만큼 의리와 관시(關係)를 중시하는 나라는 없지 않습니까.
● 한국기업은행에서 조사한 바로는 한국의 제조기업의 45%가 1-2년내에 생산기지를 외국으로 옮기려고 계획하고 있다고 합니다. 중국에 투자하려 하는 기업인들한테 한 말씀하신다면 - 한국 기업인 가운데 중국에 먼저 들어와서 성공한 기업들의 모델을 연구, 검토하여 투자하라고 권하고 싶어요. 최근에는 지역 영사관과 한인회등이 있으니까 그곳에서 많은 자문을 구하는 것도 좋지 않나 싶어요.
저는 조금 과장하면 “한국은 중국전문가를 만들 수 없는 나라다.”라고 말하고 싶어요. 중국은 관시(關係)의 나라이기 때문에 관시가 안 이루어지고는 비즈니스에 상당히 어려운 점이 있는 것이 사실 아닌가요. 그러나 관시는 5년이상을 끊임없이 꾸준히 접촉을 한 그이후에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한국의 정부나 기업에서 5년간 관시를 만들기 위해서 사람을 두고 투자를 합니까? 기업에서 관시를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서 5년이상 돈을 투자하면 그 사람은 독립하려고 합니다. 공무원들은 중국을 알만하면 본국으로 돌아갑니다. 한국정부와 기업은 중국만큼은 그 나라와 지역에 맞는 어떤 대책을 세우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냥 인건비가 싸니까라는 관점은 이제는 수정되고 있다고 봅니다. 또한 우리 기업들이 공장 자체를 중국으로 옮기는 것보다 중국과 믹스를 잘해서 우리가 기술, 디자인이나 마케팅이 앞서있기 때문에 중국에서 반제품 공장을 세우고, 한국에서 완제품을 만들어서 유통하는 것이 한국도 좋고 중국도 좋지 않나 생각해요. 한국의 산업 공동화현상을 막으면서 중국도 좋고 한국도 좋은 방법이란 생각을 해봤어요. 우리가 보면 한국사람들은 대개 제조업을 들어오고 일본사람들은 유통으로 먼저 들어와요. 이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얘기할 수 있지요. 한국사람이 일본사람보다 더 망하는 이유가 보면 일본사람들은 유통만 가지고 오기 때문에 잘못됐다하면 보따리 싸고 가버리면 되잖아요. 그러나 유통서비스를 하다보면 사람의 습성이나 성격, 남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이해하게 되고 그런 연후에 제조업도 가능하다는 하나의 투자 접근방식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 한국의 중국 유학 청소년들에게 한 말씀하신다면 - 글로벌시대에 중국이 워낙 땅도 크지만 인구도 많고, 전 세계에 화교가 다 퍼져있고 하기 때문에 중국어를 배우는 것만도 상당히 경쟁력이 있다고 봅니다. 젊은 세대들이 많이 진출을 해서 중국말을 배우고 중국의 문화를 배우고 중국의 역사를 배우고 중국에 많이 동화되는 것은 앞으로 한국의 비전을 밝히는 일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젊은 청소년들에게 권하고 싶은 이야기는 공부 못지 않게 중국 친구를 많이 사귀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 중국에서의 또 다른 꿈이 있다면 - 교육사업입니다. 이건 누군가가 좀 했으면 좋겠다하는 것인데 한국에 유학가고자 하는 중국사람들에게 한국에 대한 말과 문화, 역사, 예절을 가르칠 수 있는 그리고 한국사람들이 중국으로 유학을 가려는 사람들에게 중국말과 중국의 문화와 예절을 교육을 시키는 그런 특수교육 사업을 하고 싶어요. 중국인들에게 한국 유학을 장려하여 그들이 한국에서 교육받는다면 그 사람들은 앞으로 한국 비즈니스를 하지 않겠어요. 지금 일본에 얼마나 많은 중국 청소년들이 유학하고 있습니까? 우리 후손들의 미래와 연관하여 고민해야 된다고 봐요.
● 감명깊게 읽은 책이 있다면 - 중국 관련된 책으로는 오마에게이쯔가 쓴 “차이나임팩트”입니다. 중국 관련 업무를 하는 분이나 기업인들은 한번쯤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느낀점은 중국 대륙 심양에 정말 큰 그림을 그리는 한국인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일요신문CHINA 권현진 기자 고경모 사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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