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웠던 여름 8월이 가고 풀벌레 우는 9월, 흥덕왕릉을 찾았습니다.
경주 시내에서 북쪽으로 한참을 올라가 안강읍 육통리에 닿으면, 대중적인 관광지의 북적임 대신 속세를 벗어난 듯 깊고 호젓한 풍경이 펼쳐집니다.
길목 어귀에 세워진 ‘흥덕왕릉’ 표지판을 지나 소나무 숲으로 들어서면, 천 년 세월을 비껴간 듯 고요한 기운이 발길을 붙잡습니다.
굽이진 소나무 두 그루가 묵직하게 문을 열어주듯 사방으로 가지를 드리우고, 그 틈새 너머로 볕이 쏟아지는 초록 잔디밭이 아스라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넓게 펼쳐진 잔디 위에는 천 년의 세월을 묵묵히 버텨온 문무인석들이 삼삼오오 자리를 지키고 서 있고, 그 풍경의 아스라한 끝에 거대한 봉분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냅니다.
흥덕왕릉은 신라 왕릉 중 단연 '신라 왕릉의 끝판왕'이라 불릴 만합니다.
봉분, 둘레돌(호석), 12지신상, 능을 수호하는 4마리의 돌사자, 그리고 문무인석과 거대한 귀부(거북 받침돌)까지 왕릉 제도의 모든 구성 요소가 훼손 없이 온전하게 남아 있는 완벽한 풀 세트를 자랑합니다.
봉분 아래 정교하게 조각된 상석과 주변을 지키는 늠름한 석물들은 통일신라 조각 예술의 정수가 무엇인지 말없이 증명해 줍니다.
봉분으로 향하는 신도의 좌우에 문인석과 무인석이 각 1쌍씩 서 있는데, 특히 무인상은 부릅뜬 두 눈과 뭉툭한 코 모양을 가진 서역인의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석사자상 4구는 능침을 수호하는 신수(神獸)인데 봉분의 내 모서리에 배치되어 각각 서로 다른 방향으로 삼엄한 감시의 눈길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알지 못할 친근함은 왜 일까요~
수호신 신수(神獸)라고 하기에 뒷태가 너무 귀엽지않나요 ^^
거대한 봉분 사면을 올려다보면, 초록 풀숲 사이로 은은한 보라빛을 뿜어내는 야생화 무릇무리가 가을바람에 한참을 살랑거립니다.
그 위로는 초가을 하늘의 하얀 구름이 바람을 따라 흘러가며, 차가운 돌무덤의 긴 그림자 위로 여기저기 풀들이 무성합니다.
문득, 이 세상 누구라도 우리를 불행케하는 이 끈덕진 목마름에 굴복당하면, 비 온 뒤 무성히 돋아난 풀같이 슬픔이 자란다고 하신 진리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오! 가로돌이 없네요?
흥덕왕릉은 봉분 주변으로 난간을 둘렀던 흔적으로 석주들을 세웠고, 기둥에 뚫린 위아래 두 개의 둥근 구멍에 가로돌(관석)을 끼워 연결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하지만 긴 세월 동안 지반이 변형되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문화재가 관리되지 못하고, 전쟁과 인위적인 파괴 등으로 인해 무거운 가로 돌들만 이탈해 땅에 묻히고 유실되었을 것으로 학계에서는 보고 있습니다.
봉분을 감싸 안듯 호석 사이에 배치된 이 12지신상은, 완벽한 '왕릉 풀 세트'를 자랑하는 흥덕왕릉의 품격을 한층 더 높여주는 조형물이자, 천 년 세월 속에서도 능의 기품을 묵묵히 지켜내는 호위무사처럼 다가옵니다.
척박한 능의 사면에 뿌리내린 보라색 무릇꽃만이 거대한 그림자 아래서 홀로 스러져간 이의 쓸쓸한 숨결처럼 가슴 시리게 다가옵니다.
오랫동안 이 유적은 신라 제42대 흥덕왕과 먼저 떠난 왕비 장화부인의 애틋한 합장릉으로 미화되어 왔습니다. 세기의 순애보라고나 할까요.
왕이 즉위 원년(826년) 겨울 왕비가 세상을 떠난 뒤 신하들의 재혼 청구를 거절하고 평생 슬퍼하다 "죽어서 장화부인 묘에 함께 묻어달라" 유언을 남겼다는 기록은, 차가운 권력 다툼이 난무하던 신라 하대의 드문 로맨스로 소비되곤 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문득 의문이 고개를 듭니다.
사서의 기록대로라면 왕이 즉위하자마자 왕비가 사망한 것인데, 대체 어째서 후대와 대중문화는 이를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이어진 절절한 순애보로 각색해 온 것일까요?
그 로맨스의 포장을 걷어내고 냉정히 들여다보면, 이 능이 품은 진실은 전혀 다른 결을 지닙니다. 흥덕왕은 정변을 일으켜 왕실의 적통이자 장화부인의 형제들을 살해하고 권력을 잡은 장본인이었습니다.
장화부인 입장에서 흥덕왕은 자신의 가문을 파탄 내고 친족을 죽인 원수였습니다.
더구나 흥덕왕릉이 신라 왕릉의 중심지가 아닌 외떨어진 안강에 자리 잡은 배경 역시 눈여겨볼 대목입니다.
신라 하대로 접어들며 왕권이 약화되고 호족들의 세력이 커지던 시기, 흥덕왕은 정변으로 집권한 뒤 정권의 기반을 다지는 과정에서 왕실 또는 장화부인 가문의 근거지인 이곳에 능지를 선정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왕실의 정통성을 봉합하기 위해 이루어진 잔인한 정략적 근친혼 속에서, 과연 죽어서까지 가해자인 남편의 유언에 따라 같은 무덤에 합장된 것이 왕비가 진심으로 원했던 구원이었을까요?
사서에 기록된 "왕의 지극한 슬픔"과 "합장의 유언"은 과연 철저히 승자이자 남성 군주의 시선으로 편찬된 기록이 아닐지 물어야 합니다.
능 위를 묵묵히 덮은 흰구름의 그림자와 그 아래 흐드러진 보라색 무릇꽃을 바라보면, 찬란한 자연의 풍경 아래 겹겹이 쌓인 비극과 약자의 침묵이 한층 더 무겁게 다가옵니다.
가을 햇살 속 소나무 숲 빛의 군무를 지나 마침내 마주한 흥덕왕릉 앞에서는, 켜켜이 쌓인 역사의 비정이 자연의 품 안에서 어떻게 가라앉는지 차분히 돌아보게 됩니다.
정변과 살생으로 권력을 쥐고, 죽어서까지 합장을 명하며 인연에 매달린 행보는 결국 가해자와 피해자가 차가운 무덤 속에 함께 갇히게 된 또 다른 무거운 고리를 짐작게 합니다.
로맨스로 각색된 피비린내 나는 업과의 집착에 해피엔딩을 바라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그러나 능의 사면을 묵묵히 떠도는 흰구름의 그림자와 바람에 흔들리는 무릇꽃은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진리를 조용히 일깨워줍니다.
치열했던 권세와 맺힌 원한의 서사도 느릿하게 흐르는 대자연의 섭리 속에서 흩어져 마침내 그 날카로운 모서리가 깎여 나갑니다.
왕릉을 내려오는 길, 유난히 교회가 발걸음을 붙잡는 육통마을 어귀에서 문득 시선이 머뭅니다.
자그마한 종탑 앞에 묵직하게 버티어 선 거대한 '육통교회'의 돌비석은, 한때 이 땅을 지배하던 불교의 거대한 세도가 세월의 풍파 속에 어떻게 저물어 새로운 풍경으로 채워졌는지를 묵묵히 보여줍니다.
천 년의 영화도, 뼈아픈 비극도 흐르는 시간 앞에 스러져가는 덧없는 허상일 뿐입니다. 그 덧없음을 실감하며, 흥덕왕에게도 윤리를 넘어서는 평안이 함께하기를 바라며 키요자와 만시 스님의 글을 옮깁니다.
고맙게도 무량광 아미타부처님의
은혜로우신 가피에 힘입어
진리를 꿰뚫어 보는 눈이 열린다.
갈망과 고통의 얼음이 녹아
깨달음의 물로 돌아간다.
갈망과 고통은 깨달음의 근원.
얼음과 물처럼
얼음이 많으면 물도 많듯이
갈망과 고통이 많으면 깨달음도 크다.
첫댓글 가을하늘이라 맑고 깨끗합니다.ㅎㅎ
모든사람들이 얼음에서 녹아 물로만나면 정말 좋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
오! 대단한 글 솜씨!
한강작가도 무릎 꿇고 흐느끼고 가겠습니다. 그려!
흥덕왕릉이 이런 역사 스토리를 안고 있었는지 놀랍습니다.
왕릉 투어를 이렇게 하시다 신라왕을 다 돌고 나면 고려왕조로 가시려나?
이리 좋은 필력과 포토 실럭 혼자 보기 너무 너무 아쉽네요.
잘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_()_
나무아미타불 🙏🙏🙏
나무아미타불 🙏🙏🙏
나무아미타불 🙏🙏🙏
앗싸~감사합니다!
암만 팔은 안으로 굽는다지만 너무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요.^^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한강 작가를 건드리시면 만인의 지탄을 받으십니다.~
ㅋㅋ
신라왕릉의 결정판이라고 하는 흥덕왕릉은 정말 도반들과 해질녘에 한 번 더 가고싶은 곳입니다.
꼬옥.
이 날은 초행길에 경주에서 외진 곳이라 석양의 마법을 차안에서 경험했거덩요.
아마 해질녘 소나무숲 석양의 군무 속에서 신라왕릉의 결정판을 보면 숨이 벅차 산소호흡기 지참해야 할 것입니다.♡
이 글로서 왕릉투어의 대미를 장식하려 합니다. 빠진 곳 있으면 알려주세요 ~
함께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_()_
해운대아줌마가 정견으로 본 문화유산답사기.
재미없는 ’유홍준의 문화유산답사기’저리가라하세요!
최곱니다 ㅎㅎ
나무아미타불 ~~🙏🙏🙏
큰스님께서 정견으로 보고싶어도 볼 수가 없다꼬 하신 법문을 박원장이 글 올리셨는데요~헐
아이구야~
이번엔 인세 수입만으로도 깔려죽을 국립중앙박물관 관장 유홍준님도 등장하셨네용~
히히히 ^^
절은 좋은데를 다녀야징♡♡♡
아줌마가 왠 정견입니까~
유홍준씨 학벌에 벌써 기죽사옵니다.
아시지예? 겁나는 스펙.~
서울대학교 미학과 나오고 홍익대학교 미술사학 석사에 동양철학박사랍니다^^
하지만, 제가 원효센터에서 전문가 공파큰스님께 대승기신론 해동소 배운 자부심은 쪼매 있다고 솔직히 고백합니다. 비록 졸업장은 없지만^^
촤고의 찬사를 어떻게 보내야 할까~~~
도반님들께서~
이미 위대한 찬사를 다 하셨군요~~
저도~~미투 입니다~~
자랑스런 도반님 항상 감사합니다 ~♡
가을하늘 쨍하도록 파란빛깔로 장엄하고~
초록의 대지가 내려앉은 가을 소풍~
함께 동참하고 하고 싶습니다~
날 잡아 주시지요~~ㅎㅎ
나무아미타불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