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두 전설

[남성원]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이 1패 후 3연승을 거두며 2015년 챔피언십에 1승만 남겨두게 되었다. 1차전 직전에 가진 미디어 데이에서, 두산 김태형 감독은 ‘5차전으로 끝내겠다’고 장담했다. 다분히 삼성의 기를 꺾기 위한 심리전이었겠지만, 아닌 게 아니라 시리즈가 그의 장담대로 되어가고 있다. 오늘 잠실에서 벌어질 5차전에서 두산은 ‘굼벵이 투구’의 대가 유희관 투수를, 삼성은 한때 제1선발이었던 장원삼 투수를 예고했다. 그러나 두산은 여차직하면 대구에서 벌어진 2차전 승리투수 니퍼트를 조기에 등판시킬 게 틀림없으므로 우승 가능성이 그만큼 더 높다. 정규 시즌 같으면 사흘 휴식으로는 인터벌이 짧아 무리겠지만 포스트 시즌에서는 종종 있는 일이다.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최동원은 혼자서 4승 1패를 거두기도 하지 않았던가. 더구나 부상 때문에 정규 시즌 때 팀에 기여하지 못한 니퍼트(연봉 150만 달러) 자신이 강력하게 원하고 있기 때문에 성사 가능성이 높다.

한국시리즈에 올라온 삼성과 두산은 만신창이다. 먼저 삼성은 해외 원정도박 혐의로 에이스 윤성환, 시즌 홀드 1위 안지만, 시즌 마무리 1위 임창용 등 주축 투수 세 명이 전력에서 제외되었다. 車砲에 馬 한 마리까지 떼고 결전에 임하게 된 것이다. 조직폭력배와 엮여 마카오까지 가서 벌였던 도박이 들통난 건 안지만 때문이었다. 임창용은 똔똔이었고 윤성환은 7억을 잃어 귀국한 뒤 조폭에게 갚았는데, 안지만은 딴 돈 11억을 내놓으라고 조폭을 조르다가 조폭의 폭로로 경찰의 수사를 받게 된 것이다. 순진하게도 조폭이 그 돈을 줄 줄 알았던 모양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태생적으로 사행심이 높다 보니 예로부터 도박으로 패가망신한 자가 많았다. 요즘도 연예인이나 운동선수 등 본인이 지닌 가치보다 고소득을 올리는 자들은 손이 근질거려 못 참는다.

같은 만신창이라도 두산은 급이 다르다. 준 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를 거치면서 여러 선수가 여기저기 다치는 바람에 팀 전체가 부상병동이 된 것이다. 더욱이 10개 구단 가운데 투수 리드가 가장 좋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포수 양의지는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NC 나성범의 파울 타구에 맞아 오른쪽 엄지발가락에 미세골절상을 당했고, 외야 수비의 핵심이자 교타자인 중견수 정수빈은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번트를 시도하다가 삼성 투수 박근홍의 투구에 맞아 왼쪽 검지에 6바늘을 꿰매는 열상(裂傷)을 입었다. 시즌 중이라면 당연히 엔트리에서 제외되어야 할 부상이지만 두 선수는 진통제를 맞아가며 투혼을 발휘하여 팀을 챔피언 문턱까지 이끌었다. 타격할 때 왼손 검지를 치켜들고 치면서도 맹타를 휘두르는 정수빈의 앳된 표정을 보노라면, 저 애가 정말 스물다섯살이 맞나 싶을 정도로 대단한 투지다.

잠실에서 벌어진 한국시리즈 3차전에는 쌀쌀한 날씨에 비까지 내리는 데도 불구하고 삼성과 두산의 구단주가 야구장에 나와 팬들과 어울렸다. 삼성의 이재용 부회장은 어머니 홍라희 여사, 동생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 및 그룹의 주요 임원들과 함께 삼성 응원석 지정석에서, 두산 박용만 회장은 두산 베어스 구단주인 육촌동생 박정원과 함께 두산 응원석 일반석에서 열심히 응원했다. 이재용은 비로 경기가 중단된 사이 한 팬이 다가와 악수를 청하는 돌발상황을 맞았는데, 미소 띤 얼굴로 악수를 나누며 끝까지 팬과 대화를 주고받는 여유를 보였다. 비로 두 번째 게임이 일시 중단된 사이, 박용만은 삼성 응원석으로 찾아가 이재용과 홍라희 여사에게 인사를 하기도 했다. 이재용은 대구에서 벌어진 2차전도 관람했을 정도로 프로야구 열혈 팬인데, 그가 관람하는 경기의 승률이 높아 ‘승리의 요정’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두 경기 다 패하는 바람에 명성이 다소 퇴색했다.

어제 벌어진 4차전에는 두산을 응원하는 유명인들도 많이 찾아왔는데, 김한길‧최명길 ‘양 길’ 부부의 다정한 모습이 단연 압권이었다. 국회의원 김한길을 볼 때마다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장편소설 「여자의 남자」「낙타는 따로 울지 않는다」를 비롯하여 주옥같은 작품들을 남긴 썩 우수한 작가다. 수많은 단편소설과 묵직하게 다가오는 에세이도 많이 썼다. 특히 조영남과 술잔을 기울이며 담소를 나누다가 즉석에서 쓴 <화개장터> 가사는 구수한 향토색이 물씬 풍기는 명작이다. 그 아까운 재능을 썩혀둔 채 정치판에 들어가서는 친노‧비노 틈바구니에서 만신창이가 되고 있다. 그 동네는 눈이 아예 없거나 하나뿐인 인간들이 많아 두 눈 가진 사람은 누구나 병신 취급을 받는다. 당 대표에서 쫓겨날 때도 얼마나 모욕적인 대접을 받았는가. 하루 속히 정치판을 떠나 문학동네로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한다.

부익부 빈익빈의 고약한 행태는 프로야구판도 예외가 아니다. 투수 장원준은 FA 자격으로 롯데에서 두산으로 이적하면서 4년 총액 84억 원을 받았다. 물론 일시불로 지급된 것은 아니지만, 연봉 21억 원에 해당하는 고소득자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장원준은 올해 12승을 올렸는데, 연봉과 승수를 상계하면 1승당 1억 7500만 원을 받았다는 계산이다. 이에 비해 NC 손민한 투수는 연봉 5000만 원을 받고 올해 10승을 올렸다. 1승당 500만 원이라는 계산이니, 장원준과 비교하자면 35분의 1을 받은 것이다. 프로 선수들도 이 지경이니 그들만큼 전문성이 없는 나 같은 장삼이사는 끽 소리도 못하고 한쪽 구석이 찌그러져 있어야 할 밖에.

이승엽은 성인군자다. 한국 최고는 물론 한일 통틀어 한 시즌 최다 홈런(56호) 기록을 가지고 있는 대선수로서, 다른 선수들을 배려하는 그의 겸손한 자세는 다른 종목 선수들에게까지 귀감이 되고도 남는다. 이승엽은 원정경기에서 홈런을 쳤을 때 절대로 세리머니를 펼치지 않는다. 홈 팬들을 배려하는 자세다. 홈런을 맞은 투수가 어릴 때는 베이스를 다 돌 때까지 눈도 마주치지 않고 고개도 들지 않는다. 비록 상대편이지만 어린 투수의 기를 꺾지 않기 위해서다. 이런 선수는 다른 종목에서도 없고 외국에도 없다. 왜인 타자 이치로는 워낙 실력이 출중하여 메이저리그에서도 매년 대기록을 세우고 있지만, 건방지기 짝이 없어 2008년 베이징올림픽 야구 한일전을 앞두고 ‘한국야구는 30년 안에는 우리를 이길 수 없다’며 기고만장했다. 결국 그 경기에서 왜국은 8회 말 이승엽의 투런 홈런 한 방에 무너졌고, 우리는 우승했다.

오늘은 역사적인 ‘시월의 마지막 밤’ 행사가 있는 날이다. 반가운 친구들 만날 생각에 새벽부터 잠을 설쳤다. 한편으로는 한국시리즈 5차전이 벌어지는 날이기도 하다. 두산이 이겨 챔피언에 오르기를 기대하는 마음도 작지 않다. 결과를 뻔히 알면서도 여기저기 채널을 돌려 한국시리즈 4차전을 보고 또 봤다. 겹경사를 맞이하러 점촌으로 간다!

[기원섭]

방금 경주 김종태 친구의 전화를 받았는데,
그 친구도 새벽 1시에 깨서 뒤척뒤척 잠 못들다가,
안되겠다 싶어, 지금 점촌으로 출발한다고 하더라고...
고향 찾아가는 마음이 다 그렇지 않겠나.
오후에 현장에서 보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