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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의 역사는 무에서 유로의 천지창조는 물론 구약과 신약 시대, 구주 예수님의 공생애, 초대교회 공동체, 2000년 교회사,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더 나아가 세상 끝 날과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 뿐만 아니라 영생에 이르기까지 단 한 시라도 부재이거나 별개였을 수는 없는 것으로 여러 가지 모양과 특성과 실제들로 나타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좀 더 근원적으로 다시 말하면 우리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또한 세상 끝 날과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모든 중심과 근본과 실체가 아니실 수 없는 것이고..
실상 삼위일체라는 그 존재와 개념 상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 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분이 아닐 수 없는 것으로 그렇기에 성령님께서도 당연히 모든 일들에 있어 단 하나, 단 한 번에 있어서까지 결코 분리되시거나 동떨어지실 수가 없는 것이며, 다만 그 모양과 정도와 강도 등에 따라 다양한 방법과 형태로 나타나시고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몇 가지를 살펴보면 우선은 무에서 유로 천지만물이 창조되고, 홍해 바다가 갈라지게 되며, 여리고 성이 무너지게 되고, 또한 구주 예수님께서 처녀의 몸에서 잉태되시며, 물이 포도주가 되고, 죽은 지 나흘이 된 나사로가 다시 살게 되며, 게다가 구주 예수님의 이름 한 번으로 나면서부터 못 걸었던 자가 그 자리에서 일어나게 되고, 에베소 성의 마술사들이 은 오만이나 되는 마술책들을 불태우게 되며, 2000년 교회사와 오늘날 우리들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모양의 하늘의 힘과 응답과 이적들, 더 나아가 세상 끝 날의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 등과 같이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에 있어서..
우리들이 알게 모르게 언제나, 어떻게든 역사하시면서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이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대로, 특히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넘어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하나하나 모두 다 실제가 되고 경험이 되며, 실질적으로 나타나고 성취되어 지게 하시는 일들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의 역사들에 있어서 성령님의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가장 기본적이고 원론적이며 전반적인 것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다, 사실은 성령님으로 인한 모든 하늘의 힘과 권능들, 실제와 경험들이 크게는 모두 다 그 전자 속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는 것이겠지만 그 중에서도 성령님께서 조금 더 구체적이면서 특별하게 감동하시며 강권하시는 때들이 중간 중간에 실질적으로 보여 지고 알 수 있게 되며 표면적으로 부각되어 지기도 하는데..
예를 들면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율법 말씀을 받게 된 경우나 성막이나 제사나 직분이나 방법 등에 있어서의 구체적인 내용을 받게 된 때, 또한 선지자들과 사도들과 믿음의 선배들이 구약과 신약의 말씀들을 하나하나 기록하게 된 때인 것이고, 뿐만 아니라 민수기 11장 25~26절에서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 강림하사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그에게 임한 영을 칠십 장로에게도 임하게 하시니 영이 임하신 때에 그들이 예언을 하다가 다시는 하지 아니하였더라 그 기명된 자 중 엘닷이라 하는 자와 메닷이라 하는 자 두 사람이 진영에 머물고 장막에 나아가지 아니하였으나 그들에게도 영이 임하였으므로 진영에서 예언한지라"라고 증거되어 있는 것과 같이 모세와 장로들에서도, 사사기 15장 14절에 “삼손이 레히에 이르매 블레셋 사람들이 그에게로 마주 나가며 소리 지를 때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시매 그의 팔 위의 밧줄이 불탄 삼과 같이 그의 결박되었던 손에서 떨어진지라"라고 증거되어 있는 것과 같이 삼손과 같은 사사들에서도, 역대상 12장 18절에서 “그 때에 성령이 삼십 명의 우두머리 아마새를 감싸시니 이르되 다윗이여 우리가 당신에게 속하겠고 이새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함께 있으리니 원하건대 평안하소서 당신도 평안하고 당신을 돕는 자에게도 평안이 있을지니 이는 당신의 하나님이 당신을 도우심이니이다 한지라 다윗이 그들을 받아들여 군대 지휘관을 삼았더라"라고 증거되어 있는 것과 같이 다윗의 용사인 아마새에게서도, 역대하 20장 14~15절에 “여호와의 영이 회중 가운데에서 레위 사람 야하시엘에게 임하셨으니 그는 아삽 자손 맛다냐의 현손이요 여이엘의 증손이요 브나야의 손자요 스가랴의 아들이더라 야하시엘이 이르되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과 여호사밧 왕이여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라고 증거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사람인 야하시엘에게서도, 더 나아가 사도행전 4장 25절에서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라고 증거된 것, 또한 사도행전 11장 28절에서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라고 증거되어 있는 등에서도 알 수 있는 것이듯이 초대교회 공동체 전반에 있어서도, 특히 사도행전 13장 4절에서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라고 증거된 것과 같이 바울과 바나바의 선교 여정의 시작에 있어서도 잘 발견할 수 있는 것이며, 심지어는 사무엘상 10장 10절에서 “그들이 산에 이를 때에 선지자의 무리가 그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영이 사울에게 크게 임하므로 그가 그들 중에서 예언을 하니"라고 증거되어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는 것이듯이 이스라엘의 첫 왕인 사울에게서도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 상황과 필요와 섭리에 따라 나타난 것을 볼 수 있는 것으로 성경 전체적으로 적지 않은 곳들에서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성령님의 충만하심에 대해 구체적으로 표현되고 강조된 곳들도 많은데 예를 들면 사도행전 4장 8~9절에서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이르되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아 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라고 증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고, 사도행전 4장 31절에서도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라고 증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사도행전 6장 5절에서도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라고 증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고, 사도행전 7장 55절에서도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라고 증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등 신약 성경의 수많은 곳들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고..
뿐만 아니라 구약 성경에서도 출애굽기 31장 1~5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내가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을 지명하여 부르고 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 가지 재주로 정교한 일을 연구하여 금과 은과 놋으로 만들게 하며 보석을 깎아 물리며 여러 가지 기술로 나무를 새겨 만들게 하리라"라고 증거되어 있듯이, 또한 신명기 34장 9절에서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영이 충만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더라"라고 증거되어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이듯이 상대적으로 많지는 않더라도 필요에 따라 구약의 때에도 얼마든지 실제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특히 아래 본문에서의 구주 예수님의 말씀과 같은 성령님의 세례는 성령님의 역사의 형태와 실제들에 있어서 우리 인생들에 있어, 세상의 현실에 있어 가장 직접적이시고 적극적이며 생생하시고 강력하신 역사와 형태와 특성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통치 안에서 그의 시간과 계획과 섭리에 따라 구주 예수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구주 예수님에 대해 미리 보이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될 수 있게 하신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을 통해서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했던 구약의 때, 곧 임시나 모형이나 예비나 몽학 선생적 특성이 강했던 시기들나 상황들에서는 그 정도까지의 사례는 확인될 수 없는 것이고..
다만 요엘 3장 28~30절에서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라고 증거되어 있는 것에서와 같이 구약에서의 요엘 선지자를 통해 구체적으로 약속되고 계시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며, 특히 사도행전 2장에서의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또한 사도행전 10장에 이방의 군대 백부장 고넬료의 가정 등에서 실제로 성취되고 나타나며 경험되고 명료하게 확인이 되는 것으로 마치 불길과 같고, 우리들이 생각하고 세상이 짐작하는 그 이상의 강렬함으로 우리 인생들 안에, 사역의 현장들, 인류의 역사적 상황들에 있어서 임하시어 방언이나 예언 등과 같은 사람이 할 수 없고 세상이 짐작도 할 수 없는 하늘의 은사와 권능과 이적들로 정말 생생하고 강렬하게 누리고 경험케 되는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러한 성령님의 모든 역사들은 오늘 이 시간, 바로 우리들에 있어서도 결코 별개일 수 없는 것으로 참으로 바로 그 성령님께서는 단적으로 말해 말씀의 영이시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진장 그 자체가 말씀이시며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다 실행하시고 모두 이루시는 분인 것이기에 다른 그 무엇보다도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 계획, 시간과 섭리 안에서의 그러한 성령님 역사들에 있어, 곧 그 모양과 정도와 강도들의 실제와 경험들, 생생함과 강렬함들에 있어 본질적으로는 말씀의 신앙과 전적으로 직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인데..
다시 말해 진정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 얼마나 죄악들과 싸우며 어느 정도로 말씀의 신앙이 되고, 말씀의 열정이 될 수 있느냐가 생각 이상의 기준과 관건, 방법과 통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사도행전1:5)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2월 21일(수)1/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