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통한 삶의 비결
잠 18:16-24
16 사람의 선물은 그의 길을 넓게 하며 또 존귀한 자 앞으로 그를 인도하느니라
17 송사에서는 먼저 온 사람의 말이 바른 것 같으나 그의 상대자가 와서 밝히느니라
18 제비 뽑는 것은 다툼을 그치게 하여 강한 자 사이에 해결하게 하느니라
19 노엽게 한 형제와 화목하기가 견고한 성을 취하기보다 어려운즉 이러한 다툼은 산성 문빗장 같으니라
20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
21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22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니라
23 가난한 자는 간절한 말로 구하여도 부자는 엄한 말로 대답하느니라
24 많은 친구를 얻는 자는 해를 당하게 되거니와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하니라
잠 18:16-24 / 선물은 사람의 앞길을 열어 주어 높은 사람 앞까지 가게 해준다. 17) 법정에서 원고의 말이 옳아 보여도 피고의 말을 들어 보아야 진실이 밝혀진다. 18) 주사위를 던져서 하늘 뜻을 알아보아야 송사가 그치고 권력이 막강한 사람들 사이의 잘잘못도 가려진다. 19) 형제끼리 서로 싸워 의가 상하면 다시 화목하게 지내기가 든든한 성채 빼앗기보다도 더 어려우니, 형제간의 다툼을 풀기가 성문의 문빗장 열기보다 어렵다. 20) 사람은 모름지기 말을 잘해야 배불리 먹는다. 말을 잘못하면 배를 채울 수 없다. 21) 사람이 죽고 사는 것도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으며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자신에게 돌아오는 몫도 다르다. 22) 아내를 얻는 이는 행운을 잡은 사람이며 여호와께 사랑을 받는 사람이다. 23) 가난한 이가 도와달라고 간절히 애원해도 가진 것 많은 부자는 쌀쌀 맞고 우악스럽게 대답한다. 24) 괴로움만 더해 주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동기간보다도 더 잘해 주는 친구도 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는 사람과의 바른 관계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영성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지혜입니다.
그의 길을 넓게 하며(16-19) 이웃과 주고받는 선물은 상대방에게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뇌물과 선물의 차이는 사람에 대한 사랑의 유무에 따라 갈라질 것입니다. 뇌물은 상대방에 대한 관심은 없고 자신에게 돌아올 이익만을 위해서 전해주는 아첨거리입니다. 하지만 선물은 상대방 자체에 전해주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우리의 삶을 더욱 형통하고 행복하게 합니다. 다른 사람과의 풍성한 관계 안에서 사랑도 느끼지만 옳고 그름을 더욱 정확하게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의 대화가 유익할 때가 많습니다. 이러한 소통 속에서 우리는 더욱 균형 잡힌 삶을 살게 됩니다. 삶에 균형이 잡혀 있는 사람은 여러 면에서 지혜를 발휘하고 주변의 다툼거리를 원만하게 정리하며 살아 갈 것입니다. 한번 틀어진 관계를 바로잡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애초에 다툼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 균형 잡힌 사고와 삶을 살도록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열매(20-24) 사람의 말에는 결정짓는 권세가 있습니다.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며, 사람을 회복시키기도 하고 낙심에 빠뜨리기도 합니다. 말의 문제는 주님을 사랑하는 영성에서 시작하는 훈련을 해야 할 중요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쉽지 않습니다. 야고보 사도가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약 3:6-8). 우리의 입술에 찬양이 끊이지 않는 단 물을 담은 샘이 되어야 할 것처럼, 다툼과 갈등을 일으키거나 사람을 슬프게 만드는 일을 하지 않는 말에 승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말에 권위가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말의 권위는 그가 살면서 쌓아온 진심과 옳음 그리고 긍휼에서 비롯될 것입니다. 한편 22절은 결혼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은총의 통로라고 알려줍니다. 문맥 안에서 생각하면 좋은 아내를 얻는 것이나 좋은 친구를 얻는 것도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서 시작한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의 말을 잘 연단하고 훈련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적용: 타인에게 선물을 할 수 있음이 능력이며 행복입니다. 주고 사는 편에 서도록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나의 입술의 모든 말이 모두에게 유익과 즐거움을 주어야 합니다.
잠언은 사람 혀의 열매를 먹는다는 의미로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18:20) 열매에는 맛있는 과즙도 있고, 독소도 있습니다. 누구나 맛있는 과즙을 먹고 싶어 합니다. 우리가 혀를 통해 내뱉는 말이 결과적으로 내 자신이 받아먹게 된다면 과즙 같은 말을 하고 싶어 할까요? 아니면 독소 같은 말을 하고 싶어 할까요? 혀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죽고 사는 것마저 달렸다는 이 말을 늘 기억하고 조심해야겠습니다.
< 설 교 >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
잠언 18:17-24 / 이한규 목사
1. 다툼을 그치게 하는 자
본문 17절을 보라. “송사에서는 먼저 온 사람의 말이 바른 것 같으나 그의 상대자가 와서 밝히느니라.” 송사에서 먼저 온 사람은 원고를 뜻하고 그의 상대자는 피고를 뜻한다. 원고가 하는 말이 바른 말 같아도 피고의 말까지 들으라는 뜻이다. 두 사람 말을 다 들어야 할 진실 공방에서 한 사람 말만 듣고 같이 욕부터 하면 사탄에게 미혹되기 쉽다. 다 듣고 법과 양심에 따라 의롭게 판결하거나 판단해야 다툼과 미혹됨을 줄일 수 있다.
판결하기 힘들면 어떻게 하는가? 본문 18절을 보라. “제비 뽑는 것은 다툼을 그치게 하여 강한 자 사이에 해결하게 하느니라.” 구약시대에는 제비뽑기가 하나님의 뜻에 맡기는 행위로 인정되었다, 특히 강자를 위한 불의한 판결이 없도록 허락되었지만 신약시대에는 제비뽑기보다 말씀을 바탕으로 성령충만한 리더가 정당하게 판결하고 선택하는 것이 성경적이다. 그렇게 잘 판결해도 다툼을 없앨 수는 없다. 특히 형제간의 소송은 더 해결이 힘들다(19절). 그런 소통과 다툼을 줄이려면 필요한 것이 성령충만이다.
성령충만의 핵심 증거는 온유와 겸손이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1장 29절에서 말씀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성령충만이란 예수님 마음이 충만한 것이기에 죽었다가 살아난 기적을 체험하고 성령의 9가지 은사가 있고 신비한 언어로 방언도 하고 신비한 몸짓으로 방무를 해도 예수님의 2대 성품인 온유와 겸손이 없으면 헛된 성령충만이다.
영성을 자랑하는 사람은 이렇게 묻는다. “성령 체험을 했습니까?” 그렇게 묻는 사람은 넘어지든지, 깔깔대든지, 괴성을 내든지 하는 자기가 생각하는 어떤 개념의 은사가 있어야 성령 체험이라고 생각한다. 편협한 생각이다. 또한 과거에 성령 체험 한번 하면 평생 최고의 신앙과 영성을 계속 가지는 줄 안다. 엄청난 오해다. 사실 그렇게 오만하게 질문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성령이 사라진 증거다. 성령 체험은 한번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일 성령님과 동행하며 삶에서 나타내야 한다. 성령충만과 가장 상극되는 것은 영적 교만이다.
성령충만하면 “당신 성령 체험 했소?”라고 교만하게 묻기보다 예수님처럼 낮은 곳에 내려가 남을 힘써 성겨주며 늘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산다. 간절한 소원이 이뤄지지 않아도 감사하는 것이 진짜 성령충만이다. 과거에 몇 번 어떤 체험을 했다고 영성을 은근히 자랑하면 안 된다. 그것은 영성이 아니라 미성숙이다. “성도님! 제가 기도하고 있어요.”라는 말도 주의하라. “내가 기도하는 사람이에요.”라는 말로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후일에 영적인 산전수전을 다 겪은 후에 돌아보면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나는 84년 은혜를 체험한 후 몇 년간 영적 교만에 빠져 영성이 깊은 척 했던 것이 얼마나 큰 죄와 수치와 허물이 되는지를 나중에 깨달았다. 믿음과 영성 자랑은 영혼의 치명적인 암이고 성령충만과 참된 축복을 가장 막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일상에서 묵묵히 헌신하고 성령의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그런 성령충만한 사람이 어디에 가든지 다툼을 그치게 하고 화목하게 만들어서 결국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다.
2. 입술이 지혜로운 자
본문 20절을 보라.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 입과 입술을 잘 사용해 좋은 말을 하면 그 말대로 되어 배부르고 만족하게 된다는 뜻이다. 본문 21절을 보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혀는 생사도 좌우한다. 더 나아가 입술의 신앙고백은 영생도 좌우하고 하나님의 보상과 보응도 좌우한다.
부드러운 말을 훈련하라. 대개 은혜가 사라지면 말이 거칠어지고 은혜를 받으면 말이 부드러워진다. 말이 부드러워지면 행동도 부드러워지고 병의 면역력도 강해진다. 보약을 멀리서 찾지 말라. 건강한 언어가 보약이다. 죽고 사는 것이 혀에 달렸다고 했다. 긍정적이고 부드러운 말은 죽어가던 세포도 살려 건강 가능성을 크게 높여준다.
입술에 교만도 없게 하라. 회의할 때 발언이 너무 많은 사람은 가급적 멀리하라. 그는 아주 잘난 사람일 것이다. 진짜 잘난 것은 좋지만 잘난 척하는 것은 좋지 않다. 교만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다. 교만한 사람과 어울리면 실패 가능성과 하나님의 목적 있는 시련 가능서도 크게 높아진다. 늘 겸손하게 기쁨을 주는 말 훈련을 하라.
어느 날 아이젠하워 장군이 장병들 앞에서 연설하고 강단을 내려오다가 빗물에 미끄러져 진흙탕에서 뒹굴었다. 참모들은 주변 청소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한 무서운 질책이 있을 줄 알고 불안해했다. 그때 아이젠하워가 별일 아니라는 듯이 다시 강단에 올라가 말했다. “여러분! 재미있었나요? 그러면 한 번 더 넘어질까요?” 그 말에 그곳 분위기가 밝아졌고 군의 사기도 높아졌다. 아마 그 에피소드가 군인들을 통해 일반인에게 전해지면서 그가 나중에 대통령이 되는 데에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어떤 행사를 하면 계획대로 안 될 때도 있다. 날씨가 받쳐주지 않고, 교통 체증으로 짜증이 나고, 무도한 사람을 만나 속상한 일을 당하고, 행사가 기대에 못 미치고, 심지어는 큰 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 그래서 행사 주관자가 노심초사하고 미안해할 때 사고 당사자나 짜증을 낼만한 당사자가 별일 아니라는 듯이 이렇게 말해보라.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지요. 그래도 감사할 일이 더 많아서 감사해요.” 그 말은 행사 주관자의 마음을 상쾌하게 만들 것이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귓전을 울려 인물 되는 삶에 크게 반영될 것이다.
성공하려면 입술부터 성공하라. 말로 남을 기쁘고 편하게 해주라. 좋은 말과 안색과 행동으로 서로 화답하고 힘써 격려해주는 공동체에 하나님의 은혜도 넘친다. 혀가 감정이 아닌 말씀에 사로잡히게 하라. 초대교회에 성령이 임할 때 가장 먼저 혀가 하나님께 붙잡혔다.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충만은 부드럽고 지혜로운 말을 낳는다. 한 유명한 저술가 교수는 학생들의 리포트를 보면서 지적하고 싶은 것이 많아도 지적은 줄이고 격려는 늘인다. 자기가 다 바꾸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글과 말을 지혜롭고 겸손하게 표현하는 사려 깊은 성도에게 은총을 내리신다.
3. 사람의 마음을 얻는 자
본문 22절을 보라.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니라.” 결혼한 남자가 복 받은 자라는 뜻이 아니다. 이 구절의 ‘아내’는 ‘좋은 아내’를 뜻한다. 좋은 배우자를 얻는 것이 복이다. 더 나아가 이 구절에서 ‘아내’는 ‘좋은 사람’의 뜻도 된다. 누구든지 좋은 사람을 얻는 자는 복된 자이고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자다.
좋은 사람을 얻으려면 수동적으로 하나님이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하시는 은혜만 바라보지 말고 능동적으로 좋은 사람을 만날 준비도 하라. 자신의 사람됨을 인정받아 사람의 마음을 얻을 때 좋은 사람도 얻고 좋은 대답도 얻는다. 반면에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좋은 대답은커녕 엄한 대답만 얻는다.
본문 23절을 보라. “가난한 자는 간절한 말로 구하여도 부자는 엄한 말로 대답하느니라.” 재물 유무에 따라 사회적 대우가 달라지기도 하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빈자의 간절한 말을 모든 부자가 엄한 말로 대답하지는 않는다. 부자가 빈자를 존경할 때도 있다. 목회자는 대개 가난한 편이지만 부자 친구들이나 교인들의 존경을 받을 때가 많다. 존경받지 못하는 이유는 대개 인격과 사람됨의 문제 때문이다.
가난해도 간절히 달라고만 하지 말라. 부자는 달라는 말에 많이 시달려서 인격적인 부자도 나중에는 엄한 말로 대답할 때가 많다. 그것을 무조건 탓하지 말라. 계산적으로 달라는 사람이 너무 찾아오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인정해주라. 인격적인 부자는 비계산적인 좋은 사람에게 자기 것을 나눠주고 싶을 것이다. 스스로를 비하하지 말고 간절한 말로 구하기보다 넉넉한 말로 베풀면 가난해도 천시 받지 않고 오히려 존경받는다.
부자는 빈자가 간절히 무엇을 구할 때 겉으로는 엄한 말로 대답할 수 있다. 그래도 속으로는 늘 빈자를 생각하고 은밀하게 최선을 다해 돕는 삶을 펼쳐야 한다. 그 모습을 사람은 보지 못해도 하나님은 다 보고 갚아주신다. 외적인 모습으로 남을 평가하거나 나를 저울질하지 말고 사람의 마음을 얻는 믿음의 능력을 키우라. 그런 사람이 인간적인 매력도 풍기면서 좋은 사람도 만나고 하나님의 은총도 넘치게 받는다.
4. 좋은 친구를 가진 자
본문 24절을 보라. “많은 친구를 얻는 자는 해를 당하게 되거니와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하니라.” 친구가 많으면 오히려 해가 된다. 형제보다 친밀한 소수의 친구를 가지는 것이 복이다. 그런 친구를 얻으려면 분별력이 필요하다. 친구 하자고 다가오는 사람 중에는 계산적인 사람도 많다. 그와 엮이면 자기도 함께 추락한다. 그래서 물질과 권세가 있는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를 지지한다는 사람도 함부로 친구 삼지 않는다. 그들 중에 섞여 들어온 계산적인 한 사람이 자기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지하겠다고 찾아오는 사람을 무조건 받아들이지 말라. 물론 사람을 외적인 모습만 보고 거절하고 무시하면 안 된다. 그러나 사람의 형상 뒤에서 함께 잠입해 들어오는 계산과 청탁과 욕심의 영은 잘 분별해 걸러내야 한다. 꽤 오랜 기간 검증된 믿음과 인격과 사람됨과 비계산적인 마음을 보고 친구의 자리를 허락해야 사탄의 구덩이에 빠질 가능성을 크게 줄일 수 있다. 그래서 진실한 친구는 소수일 수밖에 없다.
왜 유명인이 의외로 고독한가? 사방에서 친구 하자고 계산적인 사람들이 달려드는 것을 느끼고 사람에 대해 실망한 경험이 많기 때문이다. 계산적인 사람은 유명인의 지위와 이름을 이용해 “내가 그를 잘 알아.”라고 하면서 자기 사업과 청탁에 활용한다. 그런 가짜 친구와 가짜 후원자를 멀리하지 않으면 이번 주에 자기를 던진 의원처럼 될 수 있다. 그 의원이 유서에서 말했다.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계산적인 의도를 가진 사람이 찾아와 후원해주고 도와주고 기도해주겠다는 것을 잘 물리치지 못하면 인생의 공든 탑을 다 무너뜨릴 수 있다. 특히 기도해주고 낫게 해주고 천국의 한 자리를 확실히 보장해주겠다는 이단 교주에게 넘어가는 것은 인생 최대의 불행이다. 높아지면 사람을 더 조심해서 만나라. 겸손한 모습으로 만남을 지혜롭게 거절하지 않으면 돈 벌어주겠다는 사람이나 후원하겠다는 사람과 엮여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다.
저희 <월새기(월간새벽기도) 사역도 커지니까 가끔 화려한 약속으로 <월새기>를 이용해 청탁 작업이나 다단계 작업에 활용하려는 의도로 접근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더 주의하는 편이다. 오래 사역하다 보니까 진짜 신실한 후원자는 말없이 실제로 후원하지 화려하게 약속부터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임을 알게 되었다.
남의 이름을 사칭해 사람을 미혹하고 또한 지지하겠다면서 자기 뜻을 이루려는 사람이 도처에 많다. 그런 사람은 힘써 멀리하라. 교회에서도 청탁문화는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사랑이 없다는 소리를 들어도 어쩔 수 없다. 사실상 그런 태도가 진짜 사랑이다. 거짓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교회의 순수한 사랑을 이용하는 사람에게 “교회니까 사랑으로 봐주어야지.”라고 하면서 이용당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과 교회를 망치는 것이다.
계산적인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친구인 척 하고 후원자인 척 하는 블랙 친구를 잘 걸러낼 줄 알아야 비극적인 추락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혼자서도 죄를 이기기 힘든데 다른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는 사람과 엮이면 죄의 유혹을 이기기가 훨씬 힘들어지고 결국은 추락한다. 겉으로 좋게 보이는 제안도 금방 덥석 물지 말라. 친구를 사칭하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으면 반드시 피해를 입고 결국 추락해서 하나님의 영광까지 가린다.
참된 친구는 주는 친구다. 친구를 사귈 때는 무엇을 얻을까를 생각하지 말고 무엇을 줄까를 생각하라. 친구가 많은 것과 발이 넓은 것을 자랑하지 말라. 짧은 인생을 살면서 깊게도 사귀지 못할 사람을 넓게 사귀면 유익도 없고 오래 지속도 안 된다. 아무나 친구 삼지 말고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는 사람을 잘 분별해서 걸러내라. 어떻게 잘 분별하는가? 쉽지 않지만 대개 욕심을 버리면 분별력도 커진다. 욕심을 버리고 화려한 유혹을 거절하면서 잘 섬기면 언젠가 좋은 친구를 얻는다. 그런 좋은 친구와 함께 하나님의 사명도 감당하고 하나님의 은총도 받으라.
입술의 열매
잠 18:20-21 / 이영택 목사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께 성령과 말씀의 은혜로 충만케 하시는 역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01 말씀을 통하여 마음속에 성령의 불임하시어 병도 고쳐지고 변화도 일어나고 거듭나는 역사도 일어나고 체험하는 역사도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사람은 항상 말을 잘해야 합니다.
그래서 말 잘하는 것도 배워야 하고 연습을 해야 합니다.
02 (사 3:10) 너희는 의인에게 복이 있으리라 말하라 그들은 그들의 행위의 열매를 먹을 것임이요
(사 3:11) 악인에게는 화가 있으리니 이는 그의 손으로 행한 대로 그가 보응을 받을 것임이니라
의를 행하는 사람은 이 세상과 장차 오는 나라에서 의에 대한 보응이 있고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이 세상과 장차 들어갈 나라에서도 악의 대한 보응이 있습니다.
불의와 악은 불신이 크고 의와 선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일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말이 있습니다.
의인에게 복이 있으리라 말하라 는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으리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 기쁨이 있으리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 죄 사함이 있으리라 말하는 것입니다.
03 (렘 31:7)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는 여러 민족의 앞에 서서 야곱을 위하여 기뻐 외치라 너희는 전파하며 찬양하며 말하라 여호와여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구원하소서 하라
기뻐외치라고 하셨습니다.
전파하며 찬양하며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말하라고 하였습니까.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구원하소서 라고 말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 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자유함을 누린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평안함을 얻는 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04 사람이 하는 말이라는 이 언어는 자신 뿐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도 할 수 있지만 상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남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어떤 무기보다보 말이 남의 마음에 상처를 내는 일이 많습니다.
몸에 난 상처는 아물면 잊어지지만 마음의 상처는 좀처럼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말을 이쁘게 해야 합니다.
말을 잘해야 합니다. 말 잘한다고 하니까 청산유수[靑山流水]처럼 하라는 예기가 아닙니다.
복받을 말을 잘 하는 것이 정말 말 잘하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말을 잘하는 것이 말을 잘하는 것이 아니고 긍정의 말을 하는 것이 말 잘하는 것입니다
부정의 말은 나를 죽이는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남도 죽이는 말입니다.
부정의 말은 자신을 기죽이는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남도 기죽이는 말입니다.
부정의 말은 자신의 의욕을 무너지게 하는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남의 의욕도 죽이는 말입니다.
05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말을 들으시고 진노하시고 노여워도 하십니다.
(신 1:34)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소리를 들으시고 노하사 맹세하여 이르시되 (신 1:35) 이 악한 세대 사람들 중에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주기로 맹세한 좋은 땅을 볼 자가 하나도 없으리라 는 것입니다.
그럼 무슨 말 소리를 들으셨기에 이렇게 모든 백성들에게 가나안땅을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을까요.
원망하는 소리입니다.
불평하는 소리입니다.
후회하는 소리입니다.
이러한 말을 하나님이 싫어하십니다.
(민 11:1) 여호와께서 들으시기에 백성이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을 그들 중에 붙여서 진영 끝을 사르게 하시매 (민 11:2) 백성이 모세에게 부르짖으므로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니 불이 꺼졌더라 (민 11:3) 그 곳 이름을 다베라라 불렀으니 이는 여호와의 불이 그들 중에 붙은 까닭이었더라 고 하였습니다.
06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소리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응답 하십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에서 백성들을 위하여 이렇게 기도합니다.
(왕상 8:36~40) 주는 하늘에서 들으사 주의 종들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시고 그들이 마땅히 행할 선한 길을 가르쳐 주시오며 주의 백성에게 기업으로 주신 주의 땅에 비를 내리시옵소서(38) 한 사람이나 혹 주의 온 백성 이스라엘이 다 각각 자기의 마음에 재앙을 깨닫고 이 성전을 향하여 손을 펴고 무슨 기도나 무슨 간구를 하거든(39)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사하시며 각 사람의 마음을 아시오니 그들의 모든 행위대로 행하사 갚으시옵소서 주만 홀로 사람의 마음을 다 아심이니이다(40) 그리하시면 그들이 주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주신 땅에서 사는 동안에 항상 주를 경외하리이다
07 (시145:18)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시145:19) 그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
본문에서 말씀하십니다.
(20~21)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 (21)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앞에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비신앙적인 언사를 사용한 것도 회개해야 합니다.
사람의 언어는 사람에게만 전달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들으십니다.
결론
사람이 사는 것은 입술의 열매로 배부르게 됩니다.
입의 말대로 대로 살아온 것입니다.
다만 사람은 자기가 말을 그렇게 되게 말을 해놓고도 그것의 의식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한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수준이 그 사람의 말대로 이루진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믿음의 말을 잘해야 합니다.
(롬 10:8)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롬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롬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하였습니다.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은 믿음의 고백입니다. 입에서 나오는 말이 축복이 되게 하고, 응답이 되게 하고, 기쁨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지혜로운 생활
잠 18:20-21 / 이동휘 목사
1. “저는 태어날 때부터 장님입니다.” 이런 팻말을 목에 걸고 프랑스 파리의 미라보 다리 위에서 구걸을 하고 있는 한 장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곁을 지나가던 어떤 사람이 그 걸인에게 당신이 이렇게 해서 구걸하는 액수가 하루에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걸인은 침통한 목소리로 겨우 10프랑(14,000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행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걸인의 목에 걸려있는 팻말을 뒤집어 놓으며 다른 어떤 말을 적어놓았습니다. 그로부터 약 한달 후, 그 행인이 그 곳에 다시 나타나서 걸인의 손을 붙잡자 걸인은 감격해 하며 물었습니다. “참으로 고맙습니다. 선생님께서 다녀가신 뒤 요사이는 전보다 5배나 되는 50프랑(70,000원)까지 수입이 오르니 대체 어떻게 된 연유인지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무슨 글을 써 놓았기에 이런 놀라운 일이 생기는 겁니까?” 그러자 행인은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별다른 게 아닙니다. 원래 당신의 팻말에 써 있는, ‘저는 때어날 때부터 장님입니다.’ 라는 말 대신에 ‘봄이 오건만 저는 그것을 볼 수 없답니다.’ 라고 써 놓았을 뿐이죠.” 이 이야기는 우리가 쓰는 말 한마디에 따라 얼마든지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준 프랑스의 시인인 로제 카이유의 말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장님’ 이란 무미건조한 말만 가지고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감동도 주지 않았지만, 거기에 좀 더 아름다운 상상의 날개를 달아줌으로써 사람들의 동정심을 자극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같은 말, 같은 생활이라도 이렇게 아름다운 말, 선한 말, 지혜로운 말은 그 열매, 결과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지혜서인 잠언의 기록 목적을 잠언 1:2-6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잠1:2-6) 이는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지혜롭게, 의롭게, 공평하게, 정직하게 행할 일에 대하여 훈계를 받게 하며 어리석은 자로 슬기롭게 하며 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신함을 주기 위한 것이니 지혜 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모략을 얻을 것이라. 잠언과 비유와 지혜 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한 말을 깨달으리라
지혜로운 삶은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삶입니다. 이 지혜서 구구절절에 빠지지 않고 언급되고 있는 단어가 “말”, “혀”, “입술” 등으로 언어생활이 지혜로운 삶에 그만큼 중요함을 깨우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하여 만족하게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말에 따라 선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고 악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는 뜻입니다. 말에 따라 행복하게 되기도 하고 불행에 빠지기도 하며, 말에 따라 축복을 받기도 하고 망하기도 하며, 존경을 받기도 하고 멸시를 받기도 합니다. 또한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말은 그 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사람의 삶과 죽음을 결정지을 만큼 중대한 것임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신의 죄를 대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죄 사함을 얻었다고 마음으로 믿고 입술로 시인하면 구원받게 됩니다.
(롬10:9-10)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그러나 “입으로 예수를 주, 구세주로 시인하지 아니하고 마음으로 믿지 못하는 사람은 심판날에 그 말로 정죄함을 받게 됩니다.”
(마12:36-3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구세주이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마16:16)는 고백으로 구원받은 성도의 생활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사야 57:19에 하나님은 “입술의 열매를 짓는 분이라.”고 하셨습니다.
(사57:19) 입술의 열매를 짓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먼데 있는 자에게든지 가까운데 있는 자에게든지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내가 그를 고치리라 하셨느니라.
“짓다.”는 말은 ‘창조하다.’(히브리어, ‘바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듯이 “입술의 열매”, 곧 사람의 말대로 이루어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능력이나 재능에 상관없이 그 말대로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사람의 지식 유무에 상관없이, 그 사람의 소유의 많고 적음에 무관하게, “입술의 열매를 지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입술의 열매”라는 표현은 사람의 말은 ‘씨’와 같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말이 씨가 된다는 것입니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은 뿌린 대로 거둔다는 뜻입니다. 씨앗은 아주 작지만 그 속에는 생명을 잉태시키는 생명의 근원이 숨어 있습니다. 씨앗은 적당한 온도와 수분 등 알맞은 조건만 충족되면 새싹을 피우고 큰 나무가 돼 많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6:7)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생활 터전에 좋은 씨앗을 심으시기 바랍니다. 포도나무를 심으면 포도 열매를 거둡니다. 가시나무 씨를 뿌리면 고통을 안겨주는 가시가 나오기 마련입니다. 축복을 심으면 복을 거두고, 저주를 심으면 저주를 거두게 됩니다. 악을 심으면 재앙을 거두고 선을 심으면 선한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비판을 심으면 비판을 거두고 용서와 사랑을 심으면 기쁨과 생명을 거두게 됩니다. 이처럼 좋은 씨를 뿌리면 좋은 열매를, 나쁜 씨를 뿌리면 나쁜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씨가 좋아야 그 열매가 좋듯이, 좋은 말, 선한 말, 아름다운 말, 지혜로운 말을 뿌리게 될 때 행복한 열매를 풍성히 거두게 됩니다. 참으로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게 됩니다.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하여 만족하게 됩니다.” 다윗 왕이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피난할 때, 사울 집안의 시므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저주를 퍼붓습니다.
(삼하16:7) 살인자여! 악한이여! 여기서 꺼져라! 여호와께서 사울과 그 가족을 죽인 죄를 너에게 갚으셨도다. 네가 사울의 왕위를 빼앗았으나 이제 여호와께서 그것을 너의 아들 압살롬에게 주었구나! 너는 사람을 죽인 죄로 이제 벌을 받아 망하게 되었도다!
이때 신하 중 하나가 “어째서 왕은 이 죽은 개 같은 녀석이 왕을 저주하도록 내버려 두십니까? 제가 가서 당장 저놈의 목을 베겠습니다.”고 하자 다윗 왕은 “이건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저주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가 나를 저주하고 있다면 누가 그에게 네가 어째서 이렇게 하느냐? 고 말할 수 있겠느냐? 내 몸께서 난 아들도 나를 죽이려고 하는데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야 말할 게 있겠느냐? 여호와께서 저에게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니 내버려 두어라. 어쩌면 여호와께서 내가 당하는 어려움을 보시고 오늘의 이 저주로 인해서 나를 축복해 주실지도 모른다.”(삼하16:8-12) 며 만류합니다. 그래서 다윗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아무 말 없이 길을 갔으나 시므이는 비탈길로 계속 따라오면서 여전히 돌을 던지고 흙먼지를 뿌려대며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훗날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왕이 되었을 때, 왕명을 거역한 시므이를 불러서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무릇 네 마음의 아는 모든 악 곧 내 부친에게 행한 바를 네가 스스로 아나니 여호와께서 네 악을 네 머리로 돌려 보내시리라.”(왕상2:44) 여기 “네 마음의 아는 모든 악 곧 내 부친에게 행한 바”는 바로 피난길의 다윗 왕에게 돌을 던지며 저주를 퍼부었던 행위를 말합니다. 솔로몬 왕은 시므이가 왕명을 거역했지만 과거 다윗을 저주한 그 저주가 시므이의 머리로 돌아가게 되었음을 알리는 것입니다. 결국 시므이는 저주의 씨를 뿌려 저주의 열매를 거두어 백발이 되기 전에 참수형을 당했습니다.(왕상2:46) 이를 두고 일찍이 다윗이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시109:17-18) 저가 저주하기를 좋아하더니 그것이 자기에게 임하고 축복하기를 기뻐 아니하더니 복이 저를 멀리 떠났으며 또 저주하기를 옷 입듯 하더니 저주가 물 같이 그 내부에 들어가며 기름 같이 그 뼈에 들어 갔나이다.
여름휴가를 얻은 한 가족이 바닷가에서 피서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바다 깊은 곳까지 들어가는 아빠를 보고 아들도 따라 가니까 엄마가 깜짝 놀라서 아들을 소리쳐 불러냈습니다. “너 어쩌려고 바다 깊은 곳까지 들어가니? 그러다가 잘못되면 어떡해?” 그러자 아들이 이렇게 불평합니다. “아빠는 들어가도 그냥 두고 왜 나만 혼내는 거야?” 이에 엄마가 “네 아빠는 생명보험에 들었단 말이야.”고 거침없이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웃자고 하는 말일지라도 말이 씨가 된다는 것을 명심하고 살아야 합니다. “입술의 열매를 짓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로운 언어생활로 행복과 축복의 풍성한 열매를 거두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지혜로운 생활을 위해서는 믿음의 말을 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은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때가 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기 위해 모세를 지도자로 세웠습니다. 가나안 땅 접경인 가데스 바란 광야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정탐꾼을 선발하여 가나안 땅을 정탐하도록 합니다.(민13:1-3) 각 지파별로 한 명씩 12명이 정탐꾼으로 선택되어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 모세와 백성 앞에 보고합니다. 12명 중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10명의 정탐꾼이 먼저 보고합니다.
(민13:27-29) 우리가 그 곳에 가 보니 정말 기름지고 비옥한 땅이었습니다. 이것이 거기서 가져온 과일입니다. 그러나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강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도시들은 아주 크고 성곽으로 둘러싸인 요새였습니다. 게다가 거기에는 거인 아낙 자손까지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땅의 남쪽 지방인 네겝에는 아말렉족, 산간 지방에는 헷족과 여부스족과 아모리족이, 지중해 연안과 요단 강변에는 가나안족 등 결코 정복하기 불가능한 대단한 족속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같은 보고에 백성들이 요동하기 시작하자 갈렙이 나서 백성들을 안심시키며 외칩니다.“자, 올라가서 그 땅을 점령합시다. 우리는 충분히 그들을 이길 수 있습니다.”(민13:30) 또 다시 10명의 정탐꾼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당해 낼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강합니다.” 며 그 땅을 절대로 정복할 수 없다며 반박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이 탐지한 땅에 대하여 백성들에게 나쁜 소문을 퍼뜨리며 이렇게 말합니다.
(민13:31-33) 그 땅에는 힘 센 장사들이 수두룩하고 사람들의 키가 모두 컸으며 게다가 우리는 네피림의 후손인 거인 아낙 자손들도 거기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도 우리 자신들이 메뚜기처럼 느껴졌는데 그들의 눈에도 우리가 그 정도밖에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10명의 정탐꾼이 탐지한 땅을 악평하며 스스로를 메뚜기처럼 여기며 절망적이고 비관적인 보고를 거듭 주장하자 온 백성들이 밤새도록 소리 높여 통곡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모세를 원망하며, “우리가 애굽에서나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텐데! 무엇 때문에 여호와가 우리를 이 땅으로 인도하여 칼날에 죽게 하려는가? 우리 아내와 자식들이 다 잡혀갈 바에야 차라리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자, 지도자를 뽑아 세우고 이집트로 돌아가자!” 라며 백성들을 선동합니다.(민14:1-4) 바로 그때 땅을 탐지하러 갔던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옷을 찢으며 모든 백성에게 외칩니다. “우리가 탐지한 땅은 아주 좋은 땅입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좋게 여기신다면 우리를 그 곳으로 인도하여 기름지고 비옥한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여호와를 거역하지 마십시오. 그 땅 사람들은 우리 밥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들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들의 보호자는 떠났고 여호와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러니 조금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민14:7-9) 그러나 군중들은 오히려 그들을 돌로 쳐 죽이려고 위협합니다. 그러자 갑자기 여호와의 영광의 광채가 성막 위에 나타나며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민14:28-30)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이십세 이상으로 계수함을 받은 자 곧 나를 원망한 자의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로 거하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여기 분명히 하나님께서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믿음을 가지지 못한 10명의 정탐꾼의 보고를 듣고 “우리가 애굽에서나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텐데! 무엇 때문에 여호와가 우리를 이 땅으로 인도하여 칼날에 죽게 하려는가?”라고 말한 사람들은 모두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그것도 가나안 땅을 탐지한 날 수 40일의 하루를 1년으로 환산하여 40년간을 광야에서 원망 불평하는 죄악을 걸머지고 죽었습니다.(민14:34) 광야의 땅이 갈라져 죽기도 하고, 여호와의 불에 타서 죽기도 하고, 불뱀에 물려 죽기도 하고, 염병으로 죽기도 하고, 전쟁에서 죽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하신 땅을 악평하며 백성들로 하여금 모세를 원망케 한 10명의 정탐꾼들은 재앙으로 죽었습니다.
(민14:36-37) 모세의 보냄을 받고 땅을 탐지하고 돌아와서 그 땅을 악평하여 온 회중으로 모세를 원망케 한 사람, 곧 그 땅에 대하여 악평한 자들은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고..
그 때를 기준으로 해서 20세 이상 된 사람 중에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한 명도 예외 없이 40년을 광야에서 유리방황하며 그들의 말대로 광야에서 죽어갔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여호수아와 갈렙만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생존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40년 후 가나안 땅을 정복한 여호수아와 갈렙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수14:6-15)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 행한 이 사십 오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케 하셨나이다....” 여호수와 갈렙의 말에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믿음의 말, 하나님 약속의 말씀에 대한 믿음을 가진 말을 들으시고 그것을 이루시는 하나님, “입술의 열매를 지으시는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고 기뻐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 여러분의 기도만이 아니라, 믿음 안에서 서로 주고 받는 말을 모두 들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신다고 했습니다.
(말3: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그리고 마음속으로 하는 말, 생각까지도 들으십니다.
(시139:2-4)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나의 입술의 모든 말과 나의 마음의 묵상이 하나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십니까?(시19:14) 하나님 말씀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믿음의 언어생활이 되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언어가 아닌 패역한 말(혀)는 베임을 당할 것입니다.(잠10:31) 다시 말해 사람의 모든 말이 다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패역한 말,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말 등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발람이라는 사람이 발락이 주는 엄청난 뇌물을 받고 그의 주문대로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고자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발람의 입술에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축복의 말을 담아서 축복하도록 만드셨습니다. 예수 믿는 성도 여러분이 아무리 악독한 말을 들어도 결코 그대로 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악독한 말, 저주의 말을 축복으로 바꾸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다고 해서 욕을 먹고 조롱을 받는 것이 복이 되는 것입니다.
(마5:11-12)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는 성도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창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선한 말로 이웃을 축복하는 생활을 해야만 합니다. 이웃을 축복하는 생활이 선한 믿음의 언어생활입니다.
선한 말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원하시지만 악한 말은 사탄이 좋아하는 말입니다.
선한 말은 정직하지만 악한 말은 거짓을 말합니다.
선한 말은 이웃을 칭찬하지만 악한 말은 이웃을 비판하고 정죄합니다.
선한 말은 이웃의 허물을 덮어주지만 악한 말은 이웃의 허물을 선전합니다.
선한 말은 미담을 나누지만 악한 말은 험담을 퍼트립니다.
선한 말은 온량하지만 악한 말은 과격합니다.
선한 말은 긍정적이지만 악한 말은 부정적입니다.
선한 말은 창조적이지만 악한 말은 파괴적입니다.
선한 말은 화목하게 하지만 악한 말은 이간시킵니다.
선한 말은 무엇이든 살리지만 악한 말은 죽입니다.
선한 말은 모든 종류의 상처를 치유하지만 악한 말은 병들게 합니다.
선한 말은 흥하게 하지만 악한 말은 피차에 망하게 합니다.
선한 말은 행복하게 하지만 악한 말은 불행하게 만듭니다.
선한 말은 꿀 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지만(잠16:24)
악한 말은 독사의 독과 같고 칼로 찌름과 같이 함부로 하는 말입니다.(잠12:18)
선한 말은 감사하는 말이지만 악한 말은 원망 불평합니다.
선한 말은 남을 높이지만 악한 말은 교만하고 자기를 자랑합니다.
선한 말은 고상하며 품위가 있지만 악한 말은 누추하고 더럽고 상스럽습니다.
선한 말은 덕을 세우지만 악한 말은 인간의 존엄성을 상하게 합니다.
선한 말은 사람을 지혜롭게 하지만 악한 말은 어리석게 만듭니다.
선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선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무슨 말을 하고자 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처럼 말합니다.(벧전4:11)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이웃을 축복하는 선한 말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롬12:14)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어느 누구라도 저주할 권한이 없습니다. 왕이 아무리 악할지라도 심중에 왕을 저주하지 말고, 아무리 불의한 부자일지라도 침상에서 그 부자를 저주하지 말아야 합니다. “(전10:20) 심중에라도 왕을 저주하지 말며 침방에서라도 부자를 저주하지 말라. 공중의 새가 그 소리를 전하고 날짐승이 그 일을 전파할 것임이니라.”
어떤 젊은이가 버스에 탔는데 시간이 지나도 출발하지 않자 운전기사에게 말했습니다. “기사 아저씨, 이 똥차 왜 빨리 출발 안하는 거예요?” 운전기사가 젊은 사람을 바라보고 빙긋이 웃으며 말합니다. “손님, 똥이 차야 똥차가 출발하죠.” 우스개로 지어낸? 이야기겠지만 이렇게 세치 혀를 잘못 놀리면 사람이 똥으로 전락할 수도 있는 것이 말입니다. 속담에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가는 방망이 오는 홍두깨, 가는 떡이 커야 오는 떡이 크다, 가는 정이 있어야 오는 정이 있다고 합니다. 어느 기업체 커뮤니케이션 특강에서 강사가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고 했더니 교육생 한명이 손을 들고 “교수님, 그게 다 옛말입니다! 요즘은 가는 말이 험해야 오는 말이 곱습니다.” 라고 말하더랍니다. 오늘의 세태를 반영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성도는 가는 말도 고울 뿐 아니라, 오는 말이 아무리 곱지 않다 해도 가는 말을 곱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구박을 당하고 욕을 먹어도 말로 복수하지 마시고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믿는 자의 언어생활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이 되시는 성도”(벧전2:9) 여러분은 가정과 자녀들, 그리고 이웃들에게 이렇게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민6:22-26)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이렇게 이웃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민6:27)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믿음을 가지고 이웃들을 축복하는 입술의 열매가 생활 속에 풍성한 지혜로운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말을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
잠언 18:20-21 / 한봉희 목사
세상 사람들은 뭐니 뭐니 해도 돈이 힘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가장 놀라운 힘은 바로 혀 곧 말에 있습니다.
성경은 말의 중요성에 대해서 놀랍게 입증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증거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존재를 말씀으로 선포함으로 이루셨습니다. “빛이 있으라” 말씀하심으로 빛이 있었고, “물과 물로 나뉘라” 말씀하심으로 하늘과 땅을 구분하셨습니다. 말씀으로 온갖 존재들과 우리 인생을 지으셨습니다.
예수께서 온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말씀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을 이 세상 어떤 짐승들과 비교할 수 없는 수만 가지의 단어를 사용하는 존재로 구별하셨습니다. 그것은 말에 담을 수 있는 능력과 축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잠 18:20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
일란성 쌍둥이 아이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똑같은지 구별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 아이의 습성은 항상 부정적이었고, 다른 아이의 습성은 반대로 긍정적인 행동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관심을 보인 학자들이 몇 가지 실험연구를 했습니다.
두개의 방에 장난감을 가득히 넣어주고는 각각의 방에서 놀게 하였습니다. 부정적 행동을 보인 아이는 막 울며 구석에 앉아있었습니다. 그 많은 장난감 중에서도 자기 마음에 드는 장난감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긍정적인 아이는 대부분의 장난감을 다 가지고 즐겁게 놀았습니다.
이 긍정적인 아이에게 또 다른 실험을 했습니다. 방에 말똥을 가득히 쌓아두고는 이 아이로 하여금 그곳에 있게 했습니다. 관찰자들이 나가고 얼마나 되었을까? 그 아이가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놀라서 들어가 보니, 이 아이가 똥더미 위에 앉아서는 손으로 한 움큼씩 집어서는 사방으로 던지는 것입니다.
“꼬마야 뭐가 그렇게 신나니?”
“이렇게 똥이 많으니까, 이 속에는 분명히 조랑말이 있을 거예요?”
이 두 아이의 미래가 어떻게 달라질지 여러분의 상상에 맡깁니다.
문제는 이 일란성 쌍둥이 두 아이가 처음부터 그렇게 다르지는 않았을 겁니다. 지극히 작은 어떤 요소에 의해서 갈라지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 요소 중에 중요한 것은 바로 말이었을 것입니다. 한 참 성장하는 아이들에게는 말 한 마디에 크게 달라지는 것입니다.
말은 자기에게 하는 독백이든 남에게 던지는 말이든 다 중요합니다.
부정의 말에는 불신의 말, 불평하는 말, 속단하는 말, 자기중심적인 말, 격한 말, 파괴적인 말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나는 해도 되는 게 없어.” “어유 지긋지긋해. 내가 살아서 무엇해” “내가 너 때문에 죽을 지경이다." "당신이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있어?” “차라리 네가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는 떡잎이 노래, 그래서 장래 뭐가 되겠니?” “에고 지아비 닮아 가지고 피는 못 속여.” “왜 성적이 이 모양 이 꼴이냐?” “평생 쪽박이나 차고 살 인생이야.” “나중에 땅을 치며 후회하게 될 거야. 알겠어?”
반대로 긍정의 말에는 믿음의 말, 감사의 말, 용서와 이해의 말, 타자중심적인 말, 칭찬과 격려와 위로의 말, 지혜의 말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주님이 주신 날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보내주신 위대하고 소중한 존재야.” “나는 꼭 살아야 돼, 하나님이 계획하신 꿈이 있어.” “당신이라면 할 수 있어요.” “엄마 아빠는 너를 사랑해. 너는 정말 특별하단다.”
말은 예언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말에는 앞으로 되어질 일에 대한 엄청난 힘이 숨어있습니다.
슬프게도 많은 사람들이 부정적인 말을 함으로써 실패의 삶을 삽니다. 자신에 대해서 부정적인 사람은 당연히 남에게 대해서도 부정적입니다.
씨앗을 심으면 그 씨앗의 종류대로 열매를 맺습니다. 감자를 심으면 감자를 얻게 되고 고구마를 심으면 고구마를 얻게 됩니다. 부정의 말을 듣고 자란 아이는 부정한 열매를 맺습니다. 남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입니다.
상황이 잘 풀려나가지 않을 때일수록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시련 가운데서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그 시련에서 곧 빠져나올 수도 있고, 평생 지속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힘들 때 일수록 얼굴을 찌푸리고, 불평하면서 부정적인 말들을 쏟아냅니다. 점점 더 미궁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입니다. 불이 붙었는데, 물을 뿌려야지, 부채질을 하면 되겠습니까?
여러분들은 어떤 모임에 모이면, 대게 무슨 말을 합니까?
안 되고 있는 것, 나하고 맞지 않는 것, 잘 못한 것, 때려주고 싶은 것,...그런 것들이 많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거기서 어떤 부활의 영광이 있겠습니까? 창조의 역사가 일어나겠습니까? 거기에 어떤 발전이 있겠습니까?
인터넷에서 악풀을 다는 사람들을 봅니다. 격려는 못할망정 얼마나 상처가 됩니까?
잠 18:21 /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혀의 힘 곧 말의 힘을 하나님은 부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말로 우리의 부정적인 환경을 바꾸기를 원하십니다. 문제점을 자꾸 이야기하지 말고 해결책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산이 너무 크다고 하나님께 불평하지 말고 산을 향해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지를 선포해 보십시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의 아모리 사람들을 정복할 때에 어떤 힘이 있었습니까?
수 10:12-14 / 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넘겨 주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아뢰어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이르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서 그리할지어다 하매 13) 태양이 머물고 달이 멈추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기까지 하였느니라 야살의 책에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 거의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다고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14) 여호와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신 이같은 날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을 바꾸면 인생이 바뀌고 세상이 바뀌는 것입니다.
단순히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그것은 수비만 하고 공격은 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긍정적인 말, 믿음의 말, 사랑의 말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공격하여 점수를 얻게 하는 것입니다.
베스트셀러 ‘긍정의 힘’의 저자 조엘 오스틴, 그의 어머니가 암에 걸렸습니다.
계속 살이 빠지고 피부가 노랗게 변하고 몸이 극도로 약해져서 검진을 받아보니 앞으로 몇 달도 아닌 몇 주 밖에 살 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오직 믿음의 말만 했습니다. “나는 죽지 않고 살 거야. 나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선포할 거야.” 어머니는 성경에 기록된 치유의 말씀을 30,40개 정도 찾아내서 종이에 적어 매일 읽고 큰 소리로 선포하였습니다. 차 안에서도, 길에서도, 무덤가를 지날 때에도, 어느 곳에서나 큰 소리로 선포했습니다. 옆에 있던 아들의 간이 떨어질 정도로!
매일 매일 조금씩 낳아지더니 몇 달이 지나자 회복세는 더욱 빨라졌습니다. 그의 아들 오스틴은 ‘긍정의 힘’을 쓰고 있는 지금 20년이 지나서 이제는 암에서 완전히 자유를 누렸다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과감하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거듭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사탄이 발 디딜 틈조차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바뀝니다.
거인 골리앗 대장을 넘어뜨리고 승리한 다윗이 선포한 말을 기억하십시오.
삼상 17: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삼상 17: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기적은 말에서 나옵니다. 그러므로 말이 기도가 되고, 찬송이 되고, 선포가 되고, 사랑이 되고 용서가 되고, 치유가 되고, 감사가 되고, 칭찬이 되고,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아멘)
주 앞에 나오신 여러분! 주께서 은혜와 평강으로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복은 말로 표현되기 전까지는 복이 아닙니다.
입으로 시인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롬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그냥 아침에 일어나서 직장으로, 학교로 그냥 나가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부터 아침에 일어나서 입으로 시인하며 기도해보세요.
“아버지, 오늘도 저를 은혜로 강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하나님이 주신 소명을 충분히 감당하겠습니다.”
약속의 말씀을 입에 담고 일어나세요.
막 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더욱이 축복하십시오. 주의 이름의 권세로 축복하십시오.
축복의 말로 행복을 저축하세요. 필요할 때 사용합니다.
주의 사랑으로 사랑하십시오. 사랑은 행복의 문을 열어줍니다.
주의 은혜로 인정해 주십시오. 숨겨있는 능력이 드러납니다.
세상 살아가는 일 다 힘들다고 하는데, 거기다가 꿀밤까지 주시렵니까?
세워주십시오. 격려해주십시오. 인도해주십시오.
이 진리를 체험한 사도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곧 하나님과 긍정의 대화를, 믿음의 대화를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인생을 바꾸게 되는 긍정의 표현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긍정의 말로, 믿음의 말로 선포하십시오, 칭찬하십시오. 위로하십시오. 축복하십시오.
말은 힘이요, 예언이요, 씨앗이요 곧 이어오는 열매입니다. ♬
말의 힘
잠언 18:20-21 / 박영일 목사
한 선생님이 수업시간이 끝나갈 무렵 앞자리에 앉은 한 아이를 힘으로 일으켜 세워 보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아이가 온몸에 힘을 꽉 주어 웅크리고 있으니 일으켜 세워지지는 않고 웅크린 채 들려 올라왔습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어째서 들려 올라왔을까요?" 아이들은 힘이 있어서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럼 선생님의 말에는 힘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없습니다!" "정말 없을까요?" "예!" 소리가 더욱 커졌습니다. "틀렸습니다.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나는 지금 여러분들에게 그 힘을 보여줄 수도 있습니다. 보여 줄까요?" "보여 주세요." "좋아요, 그럼 모두 일어나 보세요." 아이들은 빠짐없이 모두 일어섰습니다. "자 보세요. 아까 내 팔의 힘으로는 한 명을 일으켜 세우기도 어려웠지만 선생님의 말의 힘으로 이렇게 여러분 모두를 한꺼번에 일으켜 세웠습니다." 억지 같지만 이렇듯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말이 중요한 것입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
“말은 한 사람의 입으로 나오지만 천 사람의 귀로 들어간다.”
“고기는 낚시 바늘로 잡고, 사람은 말로써 잡는다.”
말의 중요성과 말에 힘이 있음을 잘 교훈해 주는 속담들입니다. 오늘은 말의 힘(능력)에 대해 말씀드리면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말에는 성취력이 있습니다.
말은 우리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는 소리입니다. 그 말소리를 듣고서 우리는 그 사람의 사상을 알고 감정을 압니다. 말을 입에서 뱉어 놓으면 그 말에는 성취력이 있어서 그 말을 한 후부터는 말대로 성취 된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①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서 모든 것을 둘러보시고 날이 저물매 베다니에 가서 하루 밤을 지내셨습니다. 그 이튿날 아침에 베다니를 떠나올 때 시장기를 느끼셨습니다. 그 때에 마침 길거리에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한 그루가 있어 열매가 있을까 하고 찾아보았지만 열매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막11:14
말씀하시자 곧 뿌리로부터 나무가 말라 버렸습니다.(마21장, 막11장)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그대로 돼 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만약에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에게 무서운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면 무화과나무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말라 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입을 열어 말씀하셨고 나무는 말씀대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
② 하나님의 창조사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세전에 다 계획하셨지만 창조되지 않았습니다. 계획하신대로 말씀하시자 말씀하신대로 창조가 되어진 것입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하시매 그대로 됩니다. 이와 같이 말에는 힘이 있고 성취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입을 열어 말을 하여야 이루어 집니다. 문제는 어떤 말을 하느냐? 입니다.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말을 해야 합니다. 진취적이며 성공적인 말을 해야 합니다. ‘6월은 5월보다 더 맑고 밝고 더 푸르다. 올해는 작년보다 더 낫다. 오늘은 좋은 날이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고 하나님의 은복을 받는 날이다.’ 여러분, 오늘 이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아십니까?
이 하루 神前 박영일 목사
이 하루를 주심을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는 이 하루
하나님을 부르며 기도할 수 있는 이 하루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할 수 있는 이 하루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이 하루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이 하루
아주 소중한 이 하루를 감사합니다.
이 하루를 주심을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은복을 받을 수 있는 이 하루
하나님이 주신 응답을 받을 수 있는 이 하루
하나님의 일하심을 볼 수 있는 이 하루
하나님의 좋은 날을 볼 수 있는 이 하루
하늘 상급을 쌓을 수 있는 이 하루
아주 진중한 이 하루로 감사합니다.
이 하루를 주심을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시던 그 하루
요셉이 꿈을 꾸고 마침내 국무총리가 된 그 하루
굶주린 사마리아성에 보리와 밀이 넘치던 그 하루
38년 된 병자가 주님 만나 고침 받은 그 하루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그 하루
이 하루가 그런 하루일 수 있어 감사합니다.
소중한 하루 동안 입으로 선포하고 말의 성취를 기대하는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③ 가수들이 앨범을 내기 위해서는 노래 한 곡, 한 곡을 수천 번의 연습을 합니다. 그리고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수 년 동안 그 노래를 부릅니다. 그런데 문제는 노래 가사입니다. 말의 성취력 때문에 부르는 노래가사대로 가수 인생이 따라 간다는 것입니다. '쨍! 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단다.'를 부른 송대관 씨는 해 뜰 날이 와서 지지 않고 잘 나가고 있습니다. '돌아가는 삼각지'를 부른 배호 씨는 '돌아가는 삼각지'처럼 몹쓸 병으로 쓸쓸하게 돌아갔습니다. 다음은 '산장의 여인'이라는 곡의 가사입니다.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 단풍잎만 채곡채곡 떨어져 쌓여있네 세상에 버림받고 사랑마저 물리친 몸 병들어 쓰라린 가슴을 부여안고 나 홀로 재생의 길 찾으며 외로이 살아가네.(1절)
권혜경 씨가 불렀는데요 그는 노랫말처럼 외딴 산장에서 결혼도 하지 않은 홀몸으로 병든 몸을 가지고 살다가 2009.1.25일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친다.’ 세상은 요지경이라는 노래를 부른 신신애 씨는 노랫말대로 자신의 매니저에게 사기를 당했습니다. 가수 김광석 씨는 ‘서른 즈음에’를 부르고 나서 바로 그 즈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떠나가 버렸네.’를 불렀던 가수 김현식 씨도 노래 제목 그대로 정말 우리 곁을 영영 떠나가 버렸습니다.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을 불렀던 가수 차중락 씨는 29세의 젊은 나이에 낙엽처럼 떨어져 저 세상에 가버렸으며, ‘간다 간다 나는 간다 너를 두고 나는 간다.’를 열창하던 선망의 젊은 가수 김정호는 20대 중반에 암으로 요절하였습니다. ‘이별’을 불렀던 대형 가수 패티김은 작가 길옥윤 씨과 이별했으며, ‘수덕사의 여승’을 부른 가수 송춘희 씨는 결혼을 하지 않은 채 불교 포교사가 되어 일합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가수 윤심덕 씨는 ‘死의 찬미’를 불렀다가 그만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남인수 씨는 ‘눈감아 드리오니’를 마지막으로 41세의 젊은 나이로 눈을 감았습니다. ‘잘 가요 안녕 내 사랑’ 노랫말처럼 결별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라며 만남이라는 노래를 부르던 노사연 씨는 올드미스를 그만 두고 결혼을 했습니다. ‘독도는 우리 땅’을 부른 가수 정광태 씨는 그 후 실제로 독도 명예군수로 임명되었습니다. 모두 말의 성취력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자주 쓰는 언어들을 생각해 보시고 회개하고 도움 되지 않는 말들은 버리시고 유익되는 말만 골라 하시는 지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④ 권투 선수 무하마드 알리(Cassius Marcellus Clay)는 조 프레이저(Joseph William Frazier)와의 15회전 권투 경기에서 1000만 달러, 조 버그너(Joe Bugner)와의 경기에서 250만 달러 등 엄청난 돈을 벌어들인 유명한 권투 선수로 그는 경기에 앞서 꼭 명언을 남기곤 했습니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겠다.',
'소련 전차처럼 쳐들어갔다가 프랑스 미꾸라지처럼 빠져 나오겠다.',
'일본군의 진주만 기습같이 하겠다.' 등
수많은 승리의 월계관을 쓴 그가 나중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의 승리의 반은 주먹이었고, 나머지 반은 바로 나의 말에 있었다." 그는 정말 말의 힘을 아는 훌륭한 선수였습니다.
여러분도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말의 힘을 사용하시기를 바랍니다.
⑤ 창세기 9장 18절 이하에 노아는 술에 취해 옷을 벗고 장막에 드러누워 자고 있었습니다. 이를 본 둘째아들 함은 아비의 수치를 보고서 밖으로 나가 형과 동생에게 이를 알렸습니다. 그러나 셈과 야벳, 첫째와 셋째는 아비의 수치를 보지 않고 뒷걸음쳐 아비의 하체를 가려주었습니다. 이후에 노아가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셈과 야벳에게는 그 자손에 대해 큰 축복을 하고, 함의 자손에게는 저주를 내렸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성경 역사 전체에서 이 저주는 그대로 성취되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사건은 둘째아들 함의 잘못도 있겠지만, 노아가 먼저 술에 취하여 원인을 제공한 면도 있어 노아의 잘못도 있다는 점과 그렇게까지 저주를 내릴 만한 사건이었는가에 대해서도 의문점이 들기는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노아가 저주한 말이, 그 말 그대로 지금도 여전히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참으로 두렵고 떨리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왜 말에 힘이 있고 성취력이 있을까요? 말의 열매를 맺게 하시는 하나님 “입술의 열매를 짓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사57:9), 말을 들으시고 그대로 행하시는 하나님(민14:28)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성경속의 사람들의 말만 힘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말에도 같은 힘이 있음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2. 말에는 견인력이 있습니다.
말은 기적을 끌어당기는, 견인하는 힘이 있습니다. 자석에는 철을 끌어 오는 힘이 있듯 말은 기적을 끌고 오는 힘이 있습니다.
① 아브라함 이야기가 이를 잘 설명 해 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100살에 난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순종하기 위해 아브라함은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갔습니다. 삼일 길을 두 사환과 함께 갔습니다. 모리아 산 밑에서 아브라함은 사환들에게 말합니다.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창22:5
이삭을 죽여 번제로 드리기 위해 가면서 이삭과 함께 오겠다고 말합니다. 또한 아브라함이 이삭만 데리고 동행하는 데 이삭이 묻습니다.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7)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창22:8) 아브라함은 모리아 산으로 올라가면서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두 번이나 하였지만, 하나님은 그의 말대로 그대로 이루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수양을 준비하셨고 수양을 잡아 번제를 드리고
이삭과 함께 사환들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말이 끌어 온 기적입니다.
② 풀무 불의 기적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니엘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 갔을 때였습니다. 왕은 신상을 만들어 놓고 나팔소리가 나면 그 신상을 향해 절을 하라고 명하였습니다. 만일 절하지 않으면 풀무 불속에 넣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 다니엘과 세 친구는 끝까지 절하지 않았습니다. 왕은 다니엘의 세 친구를 아끼는 마음으로
지금이라도 절하면 살려 주겠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단호하게 왕에게 말합니다.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단3:16-18
왕은 화가 나서 풀무 불을 일곱 배 더 뜨겁게 하라 명하고 그들을 던지라 명합니다. 결국 풀무 불 속으로 던져지지만 그들의 말처럼 불속에서 주님이 함께하셔서 머리털 하나까지 타지 않도록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풀무 불과 왕의 손으로부터 하나님께서 건져내시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믿음의 말은 분명 기적을 불러 옵니다. 이것이 말의 견인력입니다. 여러분도 기적을 불러오는 말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세계적인 보험회사를 설립한 클레멘톤 스톤은 집이 가난해서 12살 때부터 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매일 매일 다음과 같이 외쳤습니다.
"나는 건강하다. 나는 행복하다. 나는 부유하다" 그는 그의 말대로 건강하고 행복하고 부유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는 매일 아침 미국 시카고에 위치한 에이온 직원들과 함께 “기분이 좋다. 몸이 상쾌하다. 날아갈 것 같다”라고 외치면서 실제로 직원들과 함께 그렇게 느끼고 있는 자신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상상합니다. 그러자 기업이 초고속 성장을 이루어 직원들이 수십만 명으로 불어나게 되었습니다. 데일 카네기는 “성공한 사람들은 세 가지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없다’, ‘잃었다’, ‘한계가 있다.’
우리가 잘 되고 형통하며 복 받는 비결은 언어생활에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잠언은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을 누린다”(잠13:2)고 했습니다. 오늘 분문을 통해서도 말씀합니다.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어떤 말을 하느냐 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성공하는 말을 하고, 실패하는 사람들은 실패하는 말을 합니다. 행복한 사람은 행복한 말을 하고, 불행한 사람은 불행한 말을 합니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말을 하고 부자는 부자의 말을 합니다. 좋은 말을 하면 좋은 열매를 거두지만, 나쁜 말을 하면 나쁜 열매를 거둘 수밖에 없습니다. 말의 힘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말에는 분명 힘이 있습니다. 성취력, 견인력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말을 재료 삼아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성공하고 잘 되기를 원한다면 먼저, 성공의 이유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공의 말을 하십시오. 원하는바 소원 따로 말 따로는 안 됩니다. 날마다 입으로 선포하면 말대로 성공이 여러분을 뒤따를 것입니다. 성경이 가르쳐 준 말의 힘을 잘 사용하는 성숙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말의 힘
잠 18:20-21 / 문기태 목사
따라합시다. "다 잘되고 있습니다." "점점 나아지고 있습니다." "축복이 넘치고 행복합니다."
말은 씨앗과 같습니다. 입밖으로 나온 말은 생명력이 있어 무의식속에 심겨져 뿌리를 내리고 점점 자라나 열매를 맺습니다. 긍정적인 말을 하면 우리 삶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펼쳐지고 긍정적인 열매를 맺습니다. 반면 부정적인 말도 부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가고 부정적인 열매를 맺습니다. 패배와 실패를 입으로 말하면서 승리와 성공의 삶을 살려고 애써보아야 소용이 없습니다. 심은대로 거두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입에서 나오는 열매는 말을 가리킵니다. 말로 말미암아 배부르고 만족을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말에 생명력이 있기에 열매도 맺히는 것입니다.
말의 힘을 잘 아는 의사가 있었습니다. 한번은 환자에게 다른 처방은 내리지 않고 적어도 하루 한 번씩 "나의 몸 구석 구석이 매일 좋아지고 있어"라고 선포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환자는 다른 의사들의 환자보다 훨씬 빠른 회복세를 보였다고 합니다.
습관적으로 실패의 말 부정적인 말을 내뱉는 사람은 불행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나는 운이 없어서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져. 나는 또 실패할거야." 입버릇처럼 말하는 사람은 차츰 실패를 향해 나아가게 됩니다. 사단은 부정적인 말을 우리 입에 심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되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거울을 보고 이렇게 말하십시오. "나는 사랑받는 소중한 존재야. 하나님이 나를 통해 크고 중요한 일을 하기를 원하셔. 은혜와 축복이 나를 따라다녀. 미래는 성공과 번영이 기다리고 있어." 이런 긍정적인 말을 하면 오래지 않아 상황이 바뀌기 시작할 것입니다. 말대로 되고 성공과 승리의 우리의 것이 될 것입니다.
본문 말씀 21절에는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고 말씀합니다. 말에는 강력한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죽고 사는 것이 달릴 정도로 강한 힘이 혀에 있습니다. 따라서 혀를 잘 사용하는 자는 그 열매를 따 먹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특히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혀를 조심해야 합니다. 어려운 일이 여기 저기서 터질 때 일수록 특히 말조심을 해야 합니다. 자신도 모르게 부정적인 말이 튀어 나오고 그로 인해 부정적인 생각으로 굳어질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두려움과 불안함을 이기지 못하고 불평과 신세 한탄을 늘어 놓는 것이 사람의 본성입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사람을 붙잡고 부정적인 말을 늘어 놓는 동안 사단은 우리를 도구로 삼아 우리 자신과 우리의 말을 듣는 사람을 모두 패배시킨다는 사실입니다.
어려움을 빨리 극복하고 더 나은 미래를 보고 싶다면 혀를 잘 사용하여 긍정적인 말로 바꾸려고 최대한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며 시련의 도가니속에서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고통은 곧 끝이 나기도 하고 평생 지속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억울한 일을 만나고 억장이 무너져 내리고 화가 나는 일이 전개될 때 일수록 혀를 잘 관리해야 합니다. 이런 시기에 부정적인 말이 우리를 헤어나오지 못하도록 사로잡을 위험이 가장 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른 사람이나 환경이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한 말이 우리를 파괴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말로 환경을 좋게도 나쁘게도 만듭니다. 인생이 꼬였다고 투덜거리고 불평하면 계속 불행하고 짜증나는 세상에서 살게 됩니다. 오히려 환경을 향해 승리를 선포해야 환경이 바뀝니다. "질병아 물러가라. 가난아, 물러가라. 나는 너보다 훨씬 크신 하나님의 자녀다." 말을 바꾸면 환경이 바뀝니다. 말을 바꾸면 생각이 바뀝니다. 말을 바꾸면 인생이 바뀝니다. 말을 바꾸면 세상이 바뀝니다. 먹구름이 밀려와도 불평의 말로 투덜대지 않고 믿음이 담긴 올바른 말, 긍정적인 생각으로 은혜로운 말을 하면 곧 환한 태양이 떠오르고 먹구름은 밀려갈 것입니다. 어려운 상황은 사라지고 좋은 일만 일어날 것입니다. 말이 씨가 됩니다. 말이 기적을 가져옵니다. 말이 은혜와 축복을 몰고 옵니다.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교회 레이크우드교회를 담임하는 조엘 오스틴 목사는 긍정의 힘이라는 책에서 자기 집에서 일어난 간증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간암에 걸려 몇 주 밖에 살지 못한다는 진단이 내려졌습니다. 계속 살이 빠지고 피부가 노랗게 변하고 몸이 극도로 쇠약해졌습니다. 병원에서 포기하고 퇴원권고를 하여 집으로 왔습니다. 생명을 구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며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불평과 패배의 말대신 하나님의 말씀을 입에 두기로 결심했습니다. "나는 죽지 않고 살거야. 나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선포할거야" 아들이 물었습니다. "어머니, 도대체 어떻게 죽지 않으시겠다는 거예요?" "얘야, 나는 주님과 그분의 권능안에서 누구보다도 강하단다." 그렇게 대답하고는 성경을 열심히 뒤져서 가장 좋아하는 치유의 말씀을 3-40개 찾아서 종이에 적어 매일 큰 소리로 선포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점차 식욕이 돌아오고 몸무게가 불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병세가 조금씩 호전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역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몇 달이 지나자 회복의 속도는 더욱 빨라졌고 사형선고를 받은지 20년이 지났지만 그 어머니는 아직도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그처럼 부정적인 말을 뿌리치고 말씀을 가지고 믿음으로 선포하면 사탄은 설 땅을 잃어버리고 쫓겨갈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들도 말로 환경을 바꿀 수 있습니다. 말로 인생을 바꿀 수 있습니다. 말로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희망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 맞닥뜨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라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가 처한 상황을 낱낱이 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시고 건지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믿음의 말을 하는 순간부터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들이 바쁘게 일할 것입니다. 절망적인 상황이 희망적으로 바뀔 것입니다. 불리한 환경이 유리하게 전개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기적들이 눈앞에 활짝 전개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 보려고 힘쓰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을 자신에게 선포하십시오. 우리 인생을 향해 믿음의 말을 선포하십시오. 말에는 크고 강한 힘이 들어 있습니다. 말에는 엄청난 창조의 힘이 있습니다. 뭔가를 입을 열어 말하는 순간부터 그것의 생명이 시작됩니다. 이것은 성경적인 원리입니다. "안 될거야, 실패하고 말거야, 왜 이렇게안 풀리는거야," 하는 말이 우리의 성공과 행복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어려운 때일수록 혀의 힘을 믿고 혀를 믿음으로 잘 사용하는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고통과 고난을 입으로 떠벌리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친구와 이웃과 교인들이 모여서 부정적인 생각을 입으로 쏟아 놓으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항상 기회있는대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증거해야 합니다. 우리는 부정적인 말을 삼가는데서 그치지 말고 긍정적인 말을 적극적으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일을 증거할 뿐 아니라 하나님이 행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들을 과감하게 선포해야 합니다. 그럴때 하나님의 약속이 현실로 나타납니다. 건강이, 성공이, 행복이, 승리가 우리의 현실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혀를 사용하여 믿음으로 선포하지 않는 것은 게으름을 피우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다가 우리 상황에 맞는 말씀을 발견하면 기록하여 외우고 선포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우리의 축복도 이루셨습니다. 우리의 승리도 이루셨습니다. 다 이루셨습니다. 이제 나머지는 우리 몫입니다. 축복과 승리와 건강과 번영을 얻고 싶다면 말씀을 묵상하고 믿음으로 받아들이며 혀를 사용하여 담대하게 믿음의 말을 선포해야 합니다.
저는 우리 교인들이 이 사회의 지도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지도자란 사람들에게 영향을 많이 끼치는 사람 즉 영향력이 큰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영향력이 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되지 말고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끼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이웃간에, 직장에서, 교회에서 우리는 몸담고 있는 모든 곳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칩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영향을 많이 끼칩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미래에 행복과 불행의 영향을 준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부부간에 자녀들에게 행복한 영향을 많이 끼쳤습니까? 아니면 불행한 영향을 많이 끼쳤습니까? 여러분이 불안과 불평, 불신과 불만을 자주 말하는 사람이면 여러분 자신은 말할 것도 없고 여러분의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인생을 불행하게 만드는 주역이 된 것입니다. 반대로 여러분이 평안과 감사, 믿음과 소망을 자주 말하며 하나님의 약속을 힘써 말하는 사람이면 여러분 자신과 가족 그리고 주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주역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자녀들이 모두 꿈을 이루고 성공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런데 왜 대부분 본능적으로 부정적인 말을 내뱉어서 듣는 이들을 망가트립니까? "넌 그렇게 공부해서 대학에 가겠어? 나중에는 땅을 치고 후회할거야.. 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녀석이야." 물론 선한 의도로 걱정되고 안타까와 그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이런 부정적인 말은 상상하는 것보다 빨리 상대방을 망가뜨립니다. 따라서 자녀의 성공을 원한다면 파멸과 절망을 경고하기 보다는 생명의 말을 , 축복의 말을 선포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의 말이 축복이 될 수도 저주가 될 수도 있음을 일깨워줍니다. 야곱과 에서는 아버지의 축복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습니다. 아버지의 유산이 아니었습니다. 땅을 물려 받거나 사업을 물려 받는 것으로 싸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축복기도를 받고자 생명을 건 싸움을 벌였습니다. 축복을 받을 수 잇다면 20년동안 부모의 곁을 떠나 고생을 하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말로 하는 축복의 힘을 굶該?때문입니다. 축복을 받으면 부와 성공은 덤으로 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아버지의 축복이 자녀들의 미래에 성공과 번영, 건강을 가져다주는 권세와 능력이 있다는 것을 조금도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위험을 감수하면서 아버지의 축복을 받는 모험을 감행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자신의 인생이 걸려 있는 중요한 기회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말에도 이삭의 축복과 같은 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녀를 사랑한다면 사랑과 인정, 격려와 승리를 말하십시오. 말로써 자녀들의 인생에 축복을 불어 넣으십시오. 말로써 자녀들의 미래에 좋은 영향을 많이 끼치시기 바랍니다. 자녀들에게 긍정적인 자아상을 심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아무리 큰 복을 빌어주어도 말로써 표현되기 전까지는 복이 아닙니다. 지금부터라도 축복의 말을 많이 하십시오. "사랑한다. 너는 특별하다. 네가 자랑스럽다. 하나님이 너를 아주 귀하게 쓰실것이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니라 (잠 25:11)"
어느 시골에서 한 소년이 늘 주위 사람들에게 차가운 시선을 받았습니다. 소년의 어머니가 처녀 때 낳은 사생아였기 때문입니다. 동네 사람들은 그 소년의 아버지가 누구일까 하며 수군거렸습니다. 가까이 지내는 친구가 한 명도 없었던 소년은 학교에서도 따돌림을 당해 너무 외롭고 괴로워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 소년이 열두 살이 되었을 때 마을에 있는 교회에 목사님이 새로 부임하셨습니다. 그 목사님의 설교가 은혜스럽다는 소문이 나자 그 소년은 설교를 듣고 싶어졌습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대할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으나 여러 번 망설인 끝에 용기를 내어 주일 아침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예배시간이 시작된 후에 들어가서 조용히 됫자리에 앉았습니다. 처음에는 말씀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지만 한 번 두 번 나가면서 하나님의 사랑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그 소년은 주일만 되면 발길이 교회로 닿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 소년은 점차 하나님 아버지께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늦게 가서 됫자리에 앉았다가 예배가 끝나기가 무섭게 쏜살같이 집에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전과는 달리 예배를 마치고 조금 늦게 어른들 사이에 숨어 예배당을 빠져 나오는데 누군가가 소년의 어깨를 잡으며 이렇게 말하는것이었습니다. "넌 누구냐? 누구의 아들이지?"
돌아보니 거기에 목사님이 자기를 내려다보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목사님은 곧 이어서 사랑이 가득한 음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아! 네 얼굴을 보니 누굴 닮았는지 알겠구나. 네 아버지는 하나님이시지!"
이 소년은 목사님의 이 따뜻한 말 한 마디를 통해 변화되었고 인생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소년의 이름은 벤 후퍼입니다. 그는 미국 테네시 주에서 주지사로 두 번이나 당선되었고 사회와 교회에 아름다운 삶의 본을 남겼습니다.
후에 그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주일 예배 후 목사님께서 제게 하신 그 한 마디가 저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놓았습니다.“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말
잠 18:20-20 / 김홍도 목사
한국에 이혼하는 가정이 42%나 된다는 신문기사를 읽었습니다. 아마 우리 교회는 1%도 안 된다고 봅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서로 말을 잘못해서 가정이 파괴되고 이혼도 하게 된다고 봅니다. 그래서 말과 그 가정의 행복과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봐서 여기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잠언 18장 20절에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하여 만족하게 되느니라”했습니다. 우리 입술의 말로 행․불행이 결정된다는 말씀이라고 봅니다. 잠언 6장 2절에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의 위력이 그렇게 큰 것입니다. 가정이 행복해지고 불행해지는 것, 복된 부부가 되는 것과 이혼하게 되는 것에는 말의 영향이 크다고 봅니다. 야고보서 3장 4절에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 사공의 뜻대로 운전하나니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불을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 세계라 혀는 우리의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에서 나느니라”고 했습니다. 작은 성냥개비의 불이 온 산을 불태우듯이 혀를 잘못 놀려서 부부가 이혼하게 되고 가정이 파괴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어떤 말을 해야 가정이 행복해 지고 가정의 파괴를 막을 수가 있겠습니까?
1. 칭찬의 말을 해야 합니다
상대방의 결점, 단점을 들추어내는 말보다 칭찬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아이들을 키울 때도 장점을 말해주고 칭찬해 주어야 말도 잘 듣고 용기와 힘을 얻고 더 좋은 사람되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너는 분명히 훌륭한 사람이 될거야”, “너는 참 착한 사람이야” 칭찬거리를 찾아 칭찬해야 됩니다. 야단치거나 매를 드는 것보다 칭찬을 더 많이 해야 됩니다.
아내한테도 “오늘 당신, 유난히 예쁜데” 한다든지, “당신, 볼수록 복스럽고 매력 있단 말이야” 잠언서에도 있듯이 “여러 여자 중에 당신이 최고야” 시부모님이나 시동생들 때문에 수고하는 아내에게는, 손이라도 꼭 잡아주면서 “당신 참 수고가 많소. 정말 고마워요”하면 피곤이 다 풀어집니다. 더 잘하려고 애씁니다.
남편한테도 장점을 들어서 “우리 남편 최고야”, 혹은 “당신 볼수록 멋있어”, “나는 셋방살이해도 참 감사하고 행복해” 신문을 보다가도 “부정하게 돈 벌다가 쇠고랑 차는 것 보세요. 우리는 참 감사해요” 칭찬하려면 얼마든지 많이 있습니다. 자식들 듣는데 아버지 훌륭한 점을 말해주고 어머니의 훌륭한 점을 말해 줘야지, 어떤 여자는 자식들한테 아빠 단점 결점만 얘기해 주는 여자도 있습니다. 자식들의 마음 혼자 도둑질해 가져서는 뭘 하겠다는 겁니까? 전에 저희 아버님께서 저희가 어렸을 때 학교 성적표가 잘 나오든가 칭찬들을 일을 하면 “봉황이 봉황을 낳고, 호랑이가 호랑이를 낳지” 모두 당신 때문이라고 하고, 우리가 뭐 좀 잘못하면 “꼭 제 어미를 닮아서 그렇다”고 하고, “사람 구실도 못할 것들, 제 밥도 못 찾아 먹을 것들...” 물론 반 농담 삼아 하는 말씀이지만, 제 모친은 눈을 한번 힐끗하고는 들은 척도 안 하시는 모습을 봅니다. 특히 부부간에 자존심 상하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회 생활하는데도 상대방을 칭찬하는 말을 하는 사람은 잘 되고 성공합니다. 남을 깎아 내리고 비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진급도 잘 안 되고 가깝게 사귀려 들지 않고 경계하게 됩니다.
아브라함 링컨(Abraham Lincoln) 대통령이 1865년 4월 15일 부스라는 사람의 흉탄에 맞아 쓰러져 싸구려 여관방에 시신을 눕혔을 때 스탠턴(Stantun) 장군이 내려다보면서 “여기 누워있는 이 사람만큼 사람의 마음을 완전히 지배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고 칭찬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아브라함 링컨이 대통령이 된 후에도 고릴라라고 흉보고 침팬지라고 비웃고 조롱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알면서도 아브라함은 스탠턴을 국방상의 요직에 앉힐 만큼 다른 사람을 좋게 말하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남의 잘못을 말하기 전에 자기의 잘못을 먼저 살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볼 때 장점이 무엇인가 칭찬할 점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깎아 내리는 말, 혹평하는 말은 조심해야 됩니다. 존슨(Johnson)박사는 “하나님도 한 인간을 심판하시되 그 사람을 죽을 때까지 기다리신다”고 했습니다. 누구나 사람은 편견과 감정을 갖고 있으며 허영심과 시기심을 갖고 있습니다. 남을 칭찬해 주는 것은 좋지만, 자기 자랑을 하거나 자화자찬은 안 하도록 조심해야 됩니다. 시기심과 허영심만 자극하게 되고, 결코 유익이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칭찬듣고 싶어하고 남에게 인정받고 싶어합니다.
호올 케인이라는 사람은 대장장이의 아들로 작가가 되어 크게 성공한 사람으로, 그의 저택은 관광객들의 성지가 되고 그의 재산은 반세기 전 250만 불이나 될 만큼 성공했는데, 그가 성공한 것도 남의 장점을 칭찬해 주다가 크게 출세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유명한 영국의 시인 로세티를 좋아한 나머지 그의 예술적 공적을 찬양하는 논문을 쓴 다음, 그것을 복사해서 로세티에게 보낸 것이 발단이 되어 비서로 등용되었다가 크게 출세하게 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구두쇠로 유명한 자기 숙모한테 가서 1890년도에 지은 낡아빠진 집을 구경하다가 그 집의 장점을 이야기했습니다. 고전미가 있고, 꿈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집이라고 칭찬해 주었더니 남편이 죽은 후 한번도 타 보지 않은 비싼 자동차 피카드 승용차를 선물로 받아왔습니다. 그렇다고 아부하고 이기심으로 진지함이 없이 말하면 안 되겠지만, 중심으로 남을 칭찬할 줄 아는 사람은 자기도 복을 받습니다.
칭찬할 줄 모르고 결점을 들춰내기 좋아하고 남의 인격을 깎아 내리기 좋아하는 사람은 결코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2. 긍정적인 말을 해야 합니다
부정적인 말을 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예쁜 장미꽃을 보아도 “꽃은 예쁜데 가시가 있어서 틀렸어” 이렇게 말을 하고, 흐드러지게 잘 핀 국화를 보면 “꽃은 탐스러운데 쑥 냄새가 틀렸어”하면서 부정적인 말을 합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긍정적인 말, 좋은 말을 해 주고 아내는 아무리 생활이 어려워도 좋은 말, 긍정적인 말을 해 줘야 행복한 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끝마다, “아이고, 죽겠다. 죽지 못해 삽니다. 큰일났다”고 이런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의 가정은 행복하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은 심리상태가 바르지 못한 사람입니다. 욥은 그의 많은 재산이 하루아침에 다 없어지고 귀여운 열 자녀가 다 깔려 죽었는데도 하나님 원망하는 말을 하지 않고 “....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하고 불평의 말이나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았더니 하나님이 끝까지 지켜보시다가 그 전 보다 꼭 갑절로 축복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나올 때 하나님의 기적으로 맛있는 만나를 날마다 내려 주시고, 물이 없어 목이 마를 때 반석에서 샘물이 나게 해 주시는데도 가데스바네아를 지나 호르산에 이르렀을 때, 음식이 맘에 안 든다고 원망하고 불평하며 하나님을 욕하기 시작했습니다. “차라리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겠다”고 할 때 하나님은 괘씸히 여기시고, 20일이면 넉넉히 들어갈 수 있는 가나안 땅을 40년 동안 배회하게 하시면서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하던 기성세대가 다 죽은 다음에 새 세대만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여리고 성을 탐지하고 돌아와서 10명은 “우리가 다 죽게 되었다”고 보고할 때,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은 “문제없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밥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니 어서 들어갑시다”하고 긍정적인 보고를 한, 그 두 사람만 살아서 들어갔습니다. 긍정적인 말을 하는 가정은 분명히 행복하게 됩니다.
미국 툴사(Tulsa)에 큰 교회, 큰 병원, 큰 신학교를 하고 있는 세계적인 부흥사 T. L. 오스본(Osbon) 목사님이 시키는 인사가 있습니다. “당신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Something good is going to happen to you.) 얼마나 멋있는 인사인지 모릅니다.
자식들한테도 “망할 놈, 뒈질 놈, 썩을 놈” 그러지 말고, “부자될 놈, 흥할 놈, 크게 될 놈”이라고 욕을 합시다. 말하는 대로 됩니다.
3. 감사의 말을 해야 합니다
“집안이 참 깨끗하다. 청소하느라고 얼마나 수고했소?”, “음식 참 맛있네. 당신 음식 솜씨 이렇게 좋은 줄 몰랐소” 부부간에도 감사의 말을 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불평하는 곳에는 마귀가 역사하고 감사하는 곳에 성령께서 역사 하십니다.
치약 하나 때문에 이혼한 가정이 있습니다. 부인은 대범해서 치약을 아무데나 짜서 쓰고 집어던지곤 하는데, 남편은 꼼꼼해서 치약을 끝에서부터 똘똘 말아가면서 쓰는데, 남편은 “여편네가 개차머리 없이 치약을 이렇게 쓴다”고 욕을 하고, 부인은 “무슨 남자가 쫀쫀하게 치약 하나 쓰는 것 가지고 그러느냐”고 하면서 불평하다가 대판 싸움을 하고 결국은 이혼을 했다는 것입니다. 부부간에도 감사의 표시를 하고, 경제력이 있으면 감사의 카드를 보내거나 선물을 주고받으면 사랑이 더욱 돈독해 질 것입니다. 부모님한테도 자식이 훌륭한 점을 칭찬해 드리고, 감사하면 부모님은 행복해 합니다.
4. 믿음의 말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하는 말만 들으시는 것이 아니라 평상시 우리의 말도 들으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불신앙의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말라기 12장 17절에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였나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모든 행악자는 여호와의 눈에 선히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하며 또 말하기를 공의의 하나님이 어디계시냐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반항하는 말, 하나님을 원망하는 말, 하나님을 믿어봤자 소용없다는 식의 불신앙의 말을 들으시고 하나님이 괴로워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말은 하나의 신앙 고백입니다. 기도의 말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이기도 하지만 우리 신앙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구원도 우리의 말로 표현해야 이루어진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로마서 10장 10절)고 했습니다. 병 고침도 입으로 시인할 때 하나님께서 고쳐주십니다.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마가복음 11장 20절)고 했습니다. 믿고 입으로 고백해야 신유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베드로전서 2장 24절). 그 공로 의지하여, 기도하고 낫다고 선포해야 하나님이 역사 해 주십니다. 기껏 기도하고 나서 “기도한다고 낫나. 뭐” 그래 버리면 기도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입으로 시인할 때 마귀는 쫓겨갑니다. 누가복음 10장 19절에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하셨으므로, “마귀를 이겼다. 패배한 마귀야! 물러가라”하고 외쳐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12장 11절에 “또 여러 형제가 어린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 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라고 했습니다. 증거 하는 말과 예수님의 피 권세로 마귀를 이기는 것입니다.
5. 진실한 말을 해야 합니다
거짓말을 많이 하는 가정에는 마귀가 들끓고 진실한 말을 하는 가정에는 성령이 함께 하십니다. 지난주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마귀는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된다고 했고, 하나님의 속성은 진실 무망하신 분입니다. 잠언 12장 22절에 “거짓 입술은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진실히 행하는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 시편 15편 1절부터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그 혀로 참소치 아니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 51편 6절에 “중심에 진실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라고 했습니다.
복된 가정이 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가정이 되려면 부부가 서로 속이지 않고 진실을 말하고 자식들 앞에서도 진실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진실한 말을 해야 합니다. 자식들한테 약속 안 지키는 것을 식은 죽 먹듯 하면 자식들이 부모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돈 버는 재주가 없어서 호의호식은 못 시켜줘도 진실한 분이라는 인식은 심어 줘야 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토지를 팔아 헌금하면서도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도리어 저주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에 진실함을 원하십니다. 뱀같이 지혜롭게 처신하면서도 비둘기같이 순수성과 진실성은 잃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의 말은 우리 가정에 큰 영향을 줍니다.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가정이 행복해 질 수도 있고, 불행해 질 수도 있으며, 마귀가 들끓는 가정이 될 수도 있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가정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가정에 가급적 칭찬의 말을 하도록 하며, 부정적인 말은 그만 두고 힘과 용기를 주는 긍정적인 말을 해야 하며, 믿음의 말을 하고 진실한 말을 하도록 노력합시다.
예수께서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얻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태복음 12장 36-37절)하셨고, 베드로전서 3장 10절에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고 하신 말씀을 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혀의 권세
잠 18:20-21 / 피종진 목사
우리가 이 세상에 살 동안에 하나님께서 우리 몸에 여러 지체를 주셨습니다. 눈은 보게 하고, 코는 향기를 맡게 하며, 입은 말하며 먹게 하고, 귀는 듣게 하고, 손과 발 등 각 지체마다 제각기 기능을 발휘해서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도록 지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혀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이 혀에 어떠한 권세가 있고, 또 이 혀를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가장 크게 영광 돌리고 복된 것인가를 오늘 함께 은혜 받는 귀한 말씀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 죽고 사는 권세가 있습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21절) 혀는 죽이고 살리는 권세를 나타내게 합니다. 이 혀를 통해서 선한 말도 할 수 있고, 악한 말도 할 수 있습니다. 위로의 말도 할 수 있고, 또 고통을 주는 말도 할 수 있습니다. 축복의 말도 할 수 있고, 저주의 말도 할 수가 있습니다. 말 한마디가 마음에 깊은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한마디 말하는데 10초도 안되지만 일평생 가슴에 못을 받고 고통을 주기도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 입의 말을 통해서 사탄의 권세를 멸할 수도 있고, 상한 심령을 싸매어 치료해줄 수도 있습니다. 절망과 좌절 속에 있는 자에게 소망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혀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격도 좌우됩니다. 우리 사람의 얼굴은 간판이고, 눈은 마음의 창이고, 입술의 말은 인격의 소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좋은 인격을 가진 사람은 좋은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격이 나쁘고 고약하고 흉악하고 타락하고 방탕하고 악질같은 인격을 가졌으면 말도 험악하고 거칠고 소름이 끼치고 악독과 저주가 나오고 그 말소리에 창칼보다도 더 사나운 고통을 주는 말이 나오게 됩니다. 여러분의 혀는 최고의 축복받는 성별된 혀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혀를 통해서 권세를 나타나게 하실 때마다 주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조나 게일'이라는 사람은 '가장 무서운 파괴의 도구는 폭탄이 아니라 사람의 혀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혀는 폭탄보다 더 무서운 파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안되는 것을 그리고 실패한 것을 성공시킬 수 있는 위력도 있고, 다 쌓아놓은 것을 말 한마디로 무너뜨릴 수도 있습니다.
이사야 6:5에 보면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이사야 선지자와 같은 이러한 회개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에 말씀을 들은 자들이 마음에 찔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행 2:37)하는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갈 때 그 앉은뱅이를 향하여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행 3:6)고 했을 때 그 말에 권세가 나타나서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역사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우리가 명할 때 악한 귀신도 쫓겨나가는 권세가 나타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한 번은 대구지역에서 부흥회를 인도하는데 아주 예쁘고 착한 잘생긴 며느리가 갑자기 말을 하지 않더랍니다. 그래서 남편과 시어머니, 시누이, 시아버지가 합세하여 말하라고 얼마나 볼을 때렸는지 볼이 시뻘겋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통을 주면 말을 할 줄 알고 아무리 꼬집고 해도 말을 하지 않고 입을 다물고 있는데, 얼마나 자부가 두들겨 맞았는지 성회 장소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과 같이 찬송을 했습니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 되시니, 예수의 이름 힘입어서, 예수 이름으로 예수 이름으로' 하고 막 찬송을 부르고 통성으로 기도하면서 안수기도를 했습니다. 기도하는 순간에 '으악' 하면서 막 통곡을 하며 우는데 울고 나서 정신이 들어서 말을 시켰습니다. '주여' '아멘' '시아버지'라고 해보라고 했더니 다 따라하는 것이었습니다. 귀신이 물러가니까 말을 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 앉은뱅이, 문둥병자, 중풍병자, 고창병자, 혈루증 여인 등 각색 병자들이 왔을 때 다 고치셨는데, 때로는 벙어리되고 귀먹은 귀신이 들린 자를 고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뺨을 때리고 주먹으로 쥐어박아서 말을 하게 했습니까? 예수님이 '벙어리되고 귀먹은 귀신아, 물러가라'고 말했을 때 귀신이 물러가니까 벙어리가 말을 하게 되고 귀머거리가 알아듣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병의 원인은 부주의해서 오는 병이 있고, 마귀가 주는 병이 있고, 하나님이 징계로 주는 병이 있고, 연단으로 주는 병 등 대개 네 가지 병으로 나눕니다. 부주의해서 오는 병은 기도하면서 약을 쓰면 낫습니다. 그러나 사탄이 들어가서 벙어리되고 귀머거리 된 병은 약으로 고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아 물러가라고 명하여 벙어리되고 귀먹은 귀신이 나갈 때 말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징계로 생긴 병은 아무리 약을 써도 낫지 않습니다. 이 병은 회개해야 낫습니다. 또 연단으로 오는 병도 있습니다. 이 병은 하나님께서 더 크게 쓰시려고 주는 연단입니다. 연단에서 잘 승리하면 오히려 더 견고한 그릇이 됩니다. 하나님이 교만하지 말라고, 넘어지지 말라고, 좌절하지 말라고, 낙심하지 말라고, 끝까지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려고 때로는 우리에게 연단을 주실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저런 모든 것을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입술에 주신 권세를 가지고 '환난아 물러가라, 풍파야 물러가라, 근심아 물러가라, 고난아 물러가라' 하고 입술로 자꾸 물리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또 '주여, 주여, 주여' 하고 무슨 일이 있든지 '주여'를 부르는 습관도 좋습니다. 그리고 '넘어져도 나는 안 넘어진다, 어려워도 이것은 쉽다, 그리고 불가능해도 나는 할 수 있다' 이렇게 주님을 의지하면서 말하면 주의 능력이 여러분 말 속에 역사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절대 입술로 부정된 말 즉 '안된다, 못한다, 틀렸다'는 말을 하지 말고 '된다'는 말을 자꾸 하시고 주님의 능력의 그 권세 있는 혀를 가지고 아름다운 역사가 있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 21절 하반절에 보면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고 말씀했습니다. 혀를 좋은데 사용하면 좋은 열매가 맺히고, 나쁜데 사용하면 나쁜 열매가 맺힙니다. 그래서 이 혀를 사용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로 교훈해주고 있습니다.
둘째, 곤핍한 자를 도와주고 깨우치는 권세가 있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사 50:4) 말이 얼마나 치료의 보약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말로 남을 위로해주고 용기를 북돋아주어야 합니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병문안을 갔다가 '아이고, 언제부터 이렇게 병들었어요? 아이고, 열흘 살기가 어렵겠네요? 장례식 준비는 해놓았어요? 수의는 어디에 놓았어요? 그리고 어디에 묻어줄까요?' 이런 방정맞은 말을 하면 열흘 살 사람이 일주일도 못삽니다. 그럴 때는 '집사님,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하나님이 집사님과 함께 하십니다. 인명은 재천이라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는데 당신이 하나님에게 더 필요하면 죽게된 히스기야 왕도 15년간이나 생명을 더 연장시켜 주셨는데, 그 하나님이 집사님과 함께 하십니다. 집사님, 용기를 내세요. 집사님, 힘을 내세요.'하고 이런 말을 해야 됩니다. 복음성가에 보면 '힘을 내세요'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만날 때마다 '힘내세요, 용기를 가지세요, 승리하세요,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당신을 도와주십니다, 당신의 모든 일을 맡아주십니다, 당신 문제의 해결사이십니다' 이렇게 말을 하면 그대로 믿어지고, 믿어질 때 기적이 나타나고 열매가 맺혀질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이라는 것이 얼마나 불확실한지 모릅니다. 여러분, 잘 아시지만 어느 목사님이 야외에 가서 너무 너무 잔디가 좋으니까 제일 똑똑하고, 정직하고, 진실하고, 기도 많이 하고, 순종 잘하고, 모범이 되고, 출석 잘하고, 전도도 잘하고, 안내 봉사도 잘하는 이런 집사님들만 열 두명을 뽑아서 앞에서부터 앉혀서 뒤에 있는 사람에게 말을 전하게 했답니다. 제일 앞에 사람 귀에 대고 '베드로가 잡은 고기'라고 말하고서 뒤로 계속 전달하게 했습니다. 이렇게 열 두번째 사람에게까지 말을 전하게 했더니, 마지막 사람이 하는 말이 '베토벤의 작곡'이라고 말하더랍니다. 그 때 이 목사님이 아니 여러분 한 번 생각해보세요. 10분도 안된 시간에 거기는 거짓말쟁이도 없고, 욕쟁이도 없고, 불신앙도 없고, 미신 우상 섬기는 사람도 없고, 망난이도 없고 제일 모범된 사람 열 두 사람을 뽑았는데 어떻게 말을 전달해서 '베드로가 잡은 고기'를 전했는데, 끝에 가서는 '베토벤의 작곡'으로 바뀌었느냐는 말입니다. 그 때 이 목사님이 생각하기를 항상 중앙방송만 들어야 되겠다고 생각했답니다. 성경말씀만 들어야되겠다는 것입니다. 말이라는 것이 얼마나 불확실합니까? 요즘에 국회도 보면 흑백을 놓고 가리지도 못하고 이거다 저거다 밤낮 싸우고 있는데 말이라는 것은 이 말 들으면 이 말 같고, 저 말 들으면 저 말 같습니다. 오늘 우리는 항상 성경말씀을 듣고 이 말씀 위에 신앙과 생애의 모든 기초를 든든히 쌓을 때에 하나님께서 말씀 위에 역사하시고 하나님이 축복해주실 줄로 믿습니다.
셋째, 말씀의 권세가 있습니다.
"여호와의 신이 나를 빙자하여 말씀하심이여, 그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삼하 23:2) 이 말씀이 여러분 혀에 임하여 있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이 말씀이 혀에 있으니까 그가 말을 하면 말씀의 권세가 나타났습니다.
시편 119:172에 보면 "주의 모든 계명이 의로우므로 내 혀가 주의 말씀을 노래할지니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의 혀는 '주의 말씀 받은 그 날 참 기쁘고 복되도다. 이 기쁜 맘 못이겨서 온 세상에 전하노라'(찬송 209장) 가사처럼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그러한 혀가 되어야 합니다. 눈만 뜨면 예수의 복음 전하고, 앉으나 서나 예수의 복음을 전하고, 만나나 헤어지나 예수의 복음을 전하고, 여러분의 입에서 말씀이 줄줄 나올 수 있는 그런 혀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백 마디 귀를 즐겁게 하는 말보다도 한 마디라도 성경말씀이 심어지면 거기에서 생명의 역사, 구원의 역사, 회개의 역사, 변화의 역사, 축복의 역사가 일어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음이 답답할 때 말씀이 심어지면 그 말씀을 통해 핵미사일보다 더 강한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서 좋은 생각, 그리고 생명의 길로 여러분을 이끌어줄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요 14:6)고 말씀했습니다. 요한계시록 1:3에 보면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말씀이 있는 자는 입을 벌리면 말씀이 나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4:4에 보면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고 말씀했습니다.
말에는 듣기 좋게 사람의 비위를 맞추는 말도 있고, 아부하는 아첨의 말도 있고, 또 폭군같이 퍼붓는 폭언 등 많은 말이 있는데, 진실로 여러분 입술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나오면 성령이 역사합니다. 어느 순간에도 하나님의 말씀이 나올 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함께 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땅에는 양식이 없어서 굶주림이 아니요, 마실 물이 없어서 갈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없음으로 모든 영혼들이 갈급해하고 있습니다(암 8:11).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아야 됩니다. 실력있는 사람이 약속을 하면 그 말을 믿고 절망 중에도 기대를 가지는데, 신구약 성경 66권에 보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으로 꽉 차있습니다. 이 말씀을 붙잡고 승리하십시오. 이 약속을 붙잡고 전진하십시오. 이 약속을 붙잡고 용기를 가지세요. 괴롭고 답답할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세요. 불같은 시험이 오거든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을 허락지 않으리라(고전 10:13)는 말씀을 되풀이하세요. 동서남북, 전후좌우를 보아도 피할 길이 없다고 생각되는 분은 시험 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주리라(고전 10:13)는 이 말씀을 음미하세요. 여러분, 복음을 전하다가 핍박을 받거든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느니라(마 5:10)는 이 말씀을 외치세요. 그 말씀이 여러분의 환경을 바꾸어줍니다. 하나님은 말씀 한 마디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말씀 한 마디로 심판하시는 능력과 권세가 나타납니다. 그 말씀을 우리 혀에 주셨습니다.
말씀이 있는 혀는 축복된 혀입니다. 전도할 때도 이런 저런 많은 얘기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 말씀을 그대로 심어주면 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이 말씀을 요약해서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을 깨닫도록 기도하면서 전하면 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 이 말씀을 가지고 '예수를 믿으세요, 구원 받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구세주이십니다. 당신의 모든 문제의 해결사이십니다.' 이렇게 전해보세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이 말씀을 전하면서 '예수님이 당신의 피난처이십니다. 당신의 그 아픈 마음, 당신의 그 어려운 일들, 당신의 그 힘든 일, 당신의 그 고난 풍파, 당신의 뼈와 살이 몸살이 날 정도로 수고하는 인생 길에 주님이 바로 당신의 피난처이십니다. 오세요, 주님께 오세요' 이렇게 말해보세요. 말씀 전하고 몇 마디 하면 성령이 감동하는 것입니다. 자꾸 어렵게 설명하려고 하니까 안되는 것입니다.
넷째, 성령의 불의 역사가 있습니다.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에게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 2:3,4) 성령의 불로 역사하는 혀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는 그런 역사를 우리에게 약속했습니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외칠 때에 3000명, 5000명이 회개하고 주님 앞에 돌아온 것도 인간의 지혜로 한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불의 혀 즉 성령의 불의 역사인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이 성령의 놀라운 역사가 불의 혀로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주신 혀를 사단에게 이용당하여 악한데 사용하지 말고 사람을 살리며, 곤핍한 자를 도와주고 깨우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성령의 불로 역사하는 혀로 사용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을 바꾸라
잠 18:20-21 / 조상호 목사
탈무드에 이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임금님이 광대인 시몬과 바보인 요한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명을 내렸습니다. “여봐라! 시몬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가져오도록 하라. 그리고 요한은 세상에서 가장 나쁜 것을 구해 오도록 하라.” 오랜 시간이 흘러 광대 시몬과 바보 요한이 돌아왔습니다. 먼저 세계에서 가장 좋은 것을 구해 온 광대 시몬의 상자를 열어 보자, 사람의 혀가 나왔습니다. 다음에 세계에서 가장 나쁜 것을 구해 온 바보 요한의 상자를 열었더니, 역시 사람의 혀가 나왔다고 합니다. 이 <탈무드>이야기가 우리에게 무슨 교훈을 주고 있습니까? 사람의 혀는 세상에서 가장 유익한 것이 될 수도 있고, 가장 해로운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함부로 내뱉는 말은 싸움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잔인한 말 한마디가 다른 사람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줄 수도 있습니다. 쓴 말 한마디가 돌이킬 수 없는 비수가 되어 다른 사람의 가슴에 꽂힐 수도 있습니다. 무책임한 구설수가 한 사람을 매장시킬 수도 있습니다. 반면에 부드러운 말은 앞길을 환하게 만듭니다. 격려하는 짧은 말 한마디가 한 사람의 인생을 행복하게 할 수 있습니다. 기쁨에 넘친 한 마디가 즐거운 이웃을 만듭니다. 좋은 말 한마디는 약보다 낫습니다. 이처럼 말에는 무서운 힘이 있습니다. 말에는 미래를 좌우하는 힘이 있습니다. 말에는 엄청난 능력이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실 때, 어떻게 하신 줄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손으로 주물럭거려 천지를 창조하셨습니까? 아니면 발로 차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까? 어떻게 창조하셨습니까?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1장 3절을 보면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아노니”라고 하며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은 우리에게도 언어를 통해 미래를 열어가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후에 첫 사람 아담으로 하여금 모든 만물의 이름을 짓도록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창2:19~20)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창조한 모든 만물들의 이름은 첫 사람 아담이 말한 대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담이 말한 대로 이름이 붙은 것입니다. 결국 아담에 의해 모든 생물의 미래가 달라졌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부터 아담에게 말의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말의 권세를 아담에게만 주신 것은 아닙니다. 우리 모두에게도 마찬가지로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6장19절에서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인생의 매고 푸는 것이 우리의 혀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혀를 사용하여 여러 가지 것들을 맬 수도 있고, 풀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말에는 엄청난 능력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이 달라지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우리의 말에는 어떤 능력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말에는 크게 네 가지의 능력이 있습니다.
1) 성취력(Achieving Power)
첫째로 말에는 말대로 이루어지는 성취력이 있습니다. 옛말에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말이 씨가 되어 싹이 나고 자라나서 결국에는 열매로 나타난다는 말입니다. 말은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아침 일찍 베다니에서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는 길에 시장하셨기 때문에 드실 열매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한 무화과나무에 다가가셨습니다. 하지만 아직 열매 맺을 시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 열매도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 나무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막11:14) 그리고 나서 예수님과 제자들은 날이 저물어 아침에 갔던 그 길로 다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놀라운 장면을 목격하였습니다. 아침에 본 그 무화과나무가 저주를 받아 뿌리부터 말라있었던 것입니다. 아침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성취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대로 성취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마가복음 11장 23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말라버린 무화과나무를 보고 깜짝 놀라는 베드로에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진실로’라는 말은 무엇을 강조할 때, 쓰는 어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산을 보고 “바다로 들어가라”고 말하고, 자기가 한 말이 그대로 될 줄 믿으면 그대로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또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단어가 있는데, ‘누구든지’라는 단어입니다. 여기 ‘누구든지’란 누구를 가리킵니까? 신앙생활 오래 한 사람을 가리킵니까? 아니면 기도 많이 하는 사람을 가리킵니까? 아니면 능력 받은 사람을 가리킵니까? 목사나 장로나 집사나 직분을 받은 사람을 가리킵니까? 아닙니다. ‘누구든지’란 말은 말 그대로 누구든지 입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한지 1주일이 되었든지, 6개월이 되었든지, 제자훈련을 받았든지, 받지 않았던지 상관없이 누구든지 믿음으로 말하면 그 말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그 말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어느 수학선생님이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들을 두 팀으로 나누어 각각 다른 교실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리고 한 그룹의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들의 머리로 이 문제를 풀 수 있다. 이 문제는 그리 어렵지 않다. 자 한 번 풀어봐라!” 그러나 다른 그룹의 학생들에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문제는 너무나 어렵다. 아인슈타인도 풀지 못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번 시도해 보아라.” 나중에 어떤 결과가 나온 줄 아십니까? 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학생들은 100% 그 문제를 풀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도 풀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들은 학생들은 단 한 명도 이 문제를 풀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말은 말대로 이루어지는 성취력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믿음의 고백은 역사하는 힘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말대로 이루어집니다.
2) 각인력(Engraving Power)
둘째로 말에는 우리의 생각에 박히는 각인력이 있습니다. 박힌다는 말은 도장을 팔 때, 혹은 상패나 감사패를 만들 때, 판에 깊이 새겨 넣는 Engraving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시편 119편 11절에서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여기 ‘마음에 두었다’는 말은 ‘마음에 각인해 놓았다’는 의미입니다. 말씀을 마음속에 깊이 각인해 놓으면 그 말씀으로 인해 행동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범죄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씀을 마음 판에 새겼을 때, 얻는 유익입니다. 미국의 의사협회의 발표에 의하면 우리의 뇌세포의 98%는 자신의 말에 의해 지배를 받든지, 다른 사람의 말에 지배를 받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입이 말하면 그것을 뇌 속에 새겨 두었다가 그 말대로 행동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꾸 ‘피곤하다, 피곤하다’라고 말하다보면 피곤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진짜 피곤해진다는 것입니다. 자꾸 ‘기분이 좋다. 기분이 좋다’고 말하다보면 기분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진짜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입니다.
한때 세계 복싱계를 주름잡았던 무하마드 알리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는 조 프레이저와의 경기에서 미화로 1천만 달러를 벌었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하던 주먹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주먹으로도 유명했지만, 말로도 유명했습니다. 알리는 링 위에 올라가자마자 상대방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링 위를 마구 돌아다니며 혼자 말로 이렇게 이야기한다고 합니다. “이번 경기에서는 나비처럼 날라서 벌처럼 쏘겠다. 이번 경기에서는 소련 전투기처럼 공격하고 독일 전차처럼 빠져 나오겠다. 이번 경기에서는 일본군이 하와이를 기습 공격한 것처럼 기습작전을 쓰겠다....” 그는 은퇴하면서 승리의 비결을 털어놓았습니다. “나의 승리의 반은 주먹으로, 나머지 반은 말이었습니다.” 그는 말로 자기 생각에 승리를 계속 각인시켰고, 상대방의 생각에 각인시켰습니다. 그러다보니 알리의 생각 속에는 기필코 승리한다는 생각이 가득 찬 반면, 상대방은 알리의 허풍 때문에 패배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이미 경기를 하기도 전에 승부는 결정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말에는 우리의 생각 속에 깊이 박히는 각인력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말에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움직이게 하는 능력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3) 견인력(Towing Power)
셋째로 말에는 견인력이 있습니다. 견인한다는 말은 끌고 간다는 의미입니다. 말에는 우리를 끌고 가는 능력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내 말이 내 삶을 끌고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자로 ‘언행일치’라고 하는데, 반해 ‘행언일치’라고 하지 않습니다. 말이 행동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3장을 보면 베드로가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를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베드로가 어떻게 했습니까?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행3:6) 그렇게 입술로 선포하면서 그의 오른 손을 잡아 일으키니 그가 걷기도 하고 뛰면서 성전 안을 이곳저곳으로 마구 돌아다니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의 믿음의 고백은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능력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와 같이 내 입에서 나온 말이 다른 사람을 끌고 갈 뿐 아니라, 나를 끌고 가기도 합니다.
오래 전에 한국의 강원도 태백에서 탄광이 매몰되어 6명이 갱도에 갇힌 적이 있습니다. 92시간 만에 구조대원들이 무너진 갱도를 다시 뚫고 들어가서 보니 5명은 이미 죽었고, 서종엽이라는 광부만 살아 있었습니다. 구조된 그에게 기자들이 “다른 5명은 다 죽었는데, 어떻게 당신만 살아남을 수가 있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예, 나도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칠흑같이 어두움 속에서 목까지 차올라온 물속에서 공포와 추위 뿐 아니라, 이미 흙이 무너질 때 흙에 깔려 죽은 동료들의 시체를 보면서 절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나는 살아야 한다고 결심하였습니다. 아내와 두 아들의 얼굴을 차례로 떠올리며 ‘나는 살아야 한다. 나는 살아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하며 이를 악물고 견뎠습니다. 그리고 내가 배설한 똥과 오줌을 먹었습니다. 의식이 가물 가물거려 곧 죽을 것만 같을 때에도 ‘나는 기어코 살아야 해, 그래서 아내와 두 아들을 만나야 해’ 다짐을 했습니다.” 결국 의식을 잃으면서도 계속해서 고백한 그 고백대로 그는 구조되어 사랑하는 아내와 두 자녀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말에는 우리의 삶을 끌고 가는 견인력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말에는 우리의 끌어당기고, 환경을 끌어당기는 능력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무엇이든지 끌어주는 능력이 믿음의 말 속에 있는 줄로 믿습니다.
4) 추진력(Driving Power)
넷째로 말에는 추진력이 있습니다. 말이 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말이 일을 추진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49장을 보면 야곱이 세상을 떠날 때, 열 두명의 아들을 모아놓고 축복 기도를 하던 중, 유다에게는 이렇게 축복하였습니다. “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그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 이는 우유로 인하여 희리로다.”(창49:11~12) 그 후 나라가 어려움을 겪으면서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진 레위인들이 성전을 버리고 도망쳤을 때,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열심히 드릴 지파는 유다 지파 하나뿐이었습니다(느13:12).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야곱이 축복 기도를 한 것처럼 유다 지파는 다른 지파와 달리 포도주 장사가 나타날 정도로 풍부한 포도주를 가지게 되었습니다(느13:15). 그러니까 야곱이 유다 지파를 축복한대로 1,400년이 훨씬 지나서 그대로 추진된 것입니다. 말대로 진행된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경부고속도로를 누가 만들었습니까?“라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하는 줄 아십니까? 박정희 전대통령이 만들었다고 대답합니다. 사실 박정희 대통령은 기공식 할 때 첫 삽을 뜬 것밖에 없습니다. 경부고속도로는 현대건설이라는 회사 직원들이 불철주야 땀을 흘리면서 일을 함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부고속도로는 박정희 전대통령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그가 직접 현장에서 일은 하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일하게 해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말을 들은 현대건설의 정주영씨가 직원들을 동원하고 수많은 장비를 움직여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말에는 일을 추진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야고보 사도와 우리의 혀가 큰 배의 방향을 결정하는 키와 갔다고 한 것처럼, 우리의 말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우리의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줄로 믿습니다.
정리해보면 말에는 네 가지 능력이 있습니다. 무슨 능력이 있습니까? 말대로 이루어지는 성취력, 우리의 생각에 박히는 각인력, 우리를 끌고 가는 견인력, 그리고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추진력이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한다면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우리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혀의 능력, 즉 말의 능력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같이 읽겠습니다.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하여 만족하게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영어로 보면 이해하기가 더 쉽습니다. NIV 영어 성경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The tongue has the power of life and death" 혀에는 두 가지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혀에는 살리는 능력이 있을 뿐 아니라, 죽이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 지혜의 왕 솔로몬은 잠언서 6장 2절에는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고 말씀하며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로 우리가 올가미에 걸릴 수도 있고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말대로 우리가 얽히고 잡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말이 우리의 환경과 운명을 변화시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요? 어떻게 우리의 말을 바꿀 수 있을까요? 많은 부분이 있겠지만, 저는 크게 세 가지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1) 긍정적인 말을 하라
첫째로 우리는 부정적인 말보다 긍정적인 말을 해야 합니다. 물론 살다보면 어렵고 힘들고 낙심이 되는 환경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과 귀에 들리는 것과 손에 만지는 것이 절망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말하는 것이 우리가 살수 있는 비결입니다.
한 농부가 늦가을에 타작을 하며 ‘올해 벼농사는 망했어.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라고 하며 몹시 상심해 하는 것을 들은 이웃 친구가 물었습니다. “자네 감자 농사도 망했는가?” “아니.” “채소 농사도 망했는가?” “아니, 잘 되었다네.” “그럼 옥수수는?” “그것도 잘 되었지.” “그럼 됐구먼. 딴 사람보다는 낫군 그래. 벼농사 하나만 안 된 거잖아. 왜 자네는 성공한 일, 감사히 여겨야 할 일, 기쁜 일부터 먼저 생각하지 않는가? 생각이 잘못되었어.” 현명한 이웃의 충고를 들은 그 농부는 그 이후부터 부정적인 말을 긍정적인 말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재능이나 돈이나 기회가 부족해서 실패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라보는 관점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실패하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말을 하기 때문에 스스로 부정적인 말의 올가미에 걸려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민수기에 나오는 가데스 바네아 사건을 잘 알고 있습니다. 40일 동안 12명의 정탐꾼들이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왔습니다. 똑같은 장소를 똑같은 기간 동안 보고 왔습니다. 그런데 보고는 달랐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긍정적인 보고를 한 반면, 다른 10명의 정탐꾼들은 악평을 하며 부정적인 보고를 하였습니다. 열 명의 부정적인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원망하며 소리를 지르고 밤새도록 울고불고 난리를 쳤습니다. 이 모습을 하나님께서 보셨습니다. 그래서 민수기 14장 27절과 2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결국 긍정적인 보고를 했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부정적인 보고를 하며 악평하고 원망을 한 10명의 정탐꾼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조금 힘들고 어렵다고 해서 부정적인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며칠 전 새벽기도회에서 소개한 적이 있는 이해인 시인의 <나를 키우는 말>이라는 시를 소개합니다. “행복하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정말 행복해서 마음에 맑은 샘이 흐르고... 고맙다고 말하는 동안 고마운 마음 새로이 솟아올라 내 마음도 더욱 순해지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동안 나도 잠시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마음 한 자락이 환해지고... 좋은 말이 나를 키우는 걸 나는 말하면서 다시 알지...” 이 시에서 고백한 것처럼 비록 행복한 환경은 아니라 할지라도, 우리가 행복하다고 말하면 우리의 마음에 행복한 마음이 생깁니다. 그리고 행복할 수 있는 환경까지 주어집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부정적으로 보면 부정적인 결과를 거둡니다. 부정적인 말을 하면 삶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정적인 말은 제하고 긍정적인 말을 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긍정적으로 생각을 하고 긍정적인 말을 할 때, 그 고백대로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사람들이 ‘힘들다’, ‘죽겠다’, ‘안 된다’라고 말하더라도, 실패하거나 우울한 소식들만 보지 말고, 시선을 긍정적이고 잘 된 일들을 바라보기를 바랍니다. “힘들어, 난 할 수 없어”라고 말하는 대신,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라고 고백한 사도 바울의 고백이 저와 여러분들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2) 살리는 말을 하라
둘째로 우리는 죽이는 말보다 살리는 말을 해야 합니다. 혀는 작지만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말을 잘 해야 합니다. 영국의 어느 지방에서 12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각각의 나무에 예수님의 12제자들의 이름을 붙여주었다고 합니다. 첫 번째 나무는 베드로, 두 번째 나무는 요한, 세 번째 나무는 야고보... 이런 식으로 이름을 적은 팻말을 나무 앞에 세워놓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1년 후에 가서 보니 가룟 유다 나무가 죽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나중에 그 이유를 조사 해보니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가룟 유다 나무에 계속 저주하다보니 그 말대로 말라 죽었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는 이야기입니까? 말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기자는 야고보서 3장 4절부터 5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 사공의 뜻대로 운전하나니,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수많은 사람의 생명이 희생되는 전쟁은 사람의 말로부터 시작됩니다. 최고 사령관의 공격 명령에 따라 전쟁은 시작됩니다. 절친한 친구관계도, 행복한 부부관계도 가시 돋친 말에 의해 깨어집니다. 이처럼 혀는 10센티미터도 되지 않는 작은 것에 불과하지만,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아이들이 수다쟁이를 “빅 마우스“(Mr. Big mouth)라고 부르는 것이 나름대로 의미가 있습니다. 이 “빅 마우스“라는 말은 입이 크기 때문이 아닙니다. 작은 입이지만, 많은 문제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그것을 빗대어 표현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말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무서운 힘이 있습니다. 헬라 속담에 “혀는 뼈 하나 없고 아주 약하고 작지만 많은 사람을 찌르고 죽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또 터키 속담에는 “혀는 짐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인다.”고 했습니다. 병원에 가면 진찰할 때 의사들이 혀를 봅니다. 왜 그런 줄 아세요? 혀를 진찰해보면 그 사람의 건강을 어느 정도까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상태는 우리의 혀를 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혀는 어떻습니까? 병나지 않았습니까? 혹시 함부로 말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혹시 다른 사람에 대해 말을 너무 쉽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누구누구가 소파를 바꿨다느니, 어떤 집사가 식탁을 새것으로 교체했다니, 어떤 형제가 자동차 시트커버를 비싼 돈 들여 했다느니, 어떤 자매 네는 집값이 오르는 바람에 재미를 보았다느니, 하며 이 기쁜 소식을 온 세상 전하세“하며 여기 저기 떠들고 다니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벌이 침으로 사람을 쏘면 사람에게도 고통을 주지만은 벌은 그 자리에서 죽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남의 험담이나 비방하는 것은, 마치 벌이 침을 쏘는 것과 같아 상대방에게도 아픔과 고통을 주지만, 내 영혼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행위는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는 죄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무슨 계명입니까? 아홉 번째 계명인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계명을 어기는 것이 됩니다. 또 남에 대해서 중상하거나 악담하거나 시비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냥 놓아두세요. 남이야 식탁을 바꾸든지, 남이야 벤츠를 타든지, 남이야 집값이 올랐든지 왜 그런 걸 동네방네 전하려고, 아까운 시간과 정력을 낭비합니까? 저는 남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사명이다‘,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은사다‘라는 것을 성경 어디에서도 찾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밤낮 모여서 다른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합니까? 말을 많이 하는 사람치고 실수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말을 많이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과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말을 자꾸 하다보면 없는 사실에 살을 더 붙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언제든지 말로 실수하고, 말로 범죄 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혀를 잘못 사용하는 사람은 자신을 멸망으로 이끌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혀는 사람을 살리는 ‘이기’(利器)가 될 뿐 아니라, 사람을 죽이는 ‘흉기’(凶器)가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의 불행은 혀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낚시를 다니다보면 등에 낚시 바늘이 끼어 올라오는 멍청한 고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물고기는 항상 입으로 낚입니다. 우리가 마귀의 낚시 바늘에 걸리는 것은 바로 입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범죄하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대로 말을 적게 하시기 바랍니다. 마귀에 낚이지 않기 위하여 헛소문이라든지 자신도 확실히 모르는 풍설은, 아예 입에 담지도 말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는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다른 사람뿐 아니라, 내가 살기 위해서라도 죽이는 말 대신에 살리는 말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3) 믿음의 말을 하라
셋째로 우리는 불신의 말보다 믿음의 말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의 특징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13절을 보면 “기록한 바 내가 믿는 고로 말하였다 한 것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는 고로 또한 말하노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과 말은 따로국밥이 아닙니다. 믿으면 믿음대로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보면 그 사람이 믿음의 사람인가, 아니면 믿음이 없는 사람인가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입술에서 나오는 말을 보면 그 사람의 믿음 상태를 어느 정도까지는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8장에 보면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셨을 때,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합니다. “가로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 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마8:7) 백부장의 간청을 들은 예수께서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고 말씀하시자, 백부장은 “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시로 하인이 나으니라.”(8:13) 무엇을 교훈하고 있습니까? 믿음의 고백이 기적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고백이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수년 전, 한 책이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건국대의 류태영교수님이 쓴 ‘언제까지나 나는 꿈꾸는 청년이고 싶다'라는 책입니다. 그분은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가정환경이나 배경 등에 도전하여 결국에는 자신의 꿈을 이뤘습니다.그 분은 구두닦이를 하고, 신문배달을 하고, 각종 행상, 등을 하면서 야간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예수님을 믿으며 항상 외웠던 한 말씀이 있습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 말씀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 분은 이 말씀을 외우며 돈도 없고 빽도 없었지만, 유학에 대한 꿈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이 말씀을 믿음으로 고백하며 13년 동안 하나님께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유학을 가기 위해 고민하다가 도서관에서 자료를 확인하여, 무작정 <프레데릭 9세 국왕. 코펜하겐. 덴마크>라고 겉봉투에 주소를 쓰고 편지를 보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편지를 보낸 지 40일 만에 답장이 왔고, 또 얼마 후에는 왕복 비행기 표까지 보내와서 결국에는 덴마크로 유학을 떠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덴마크를 거쳐 이스라엘로 유학을 가서 공부한 후에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받은 후, 한국으로 돌아와 박정희 전대통령 시절 청와대 비서실 새마을 담당관으로 발탁되어, 우리나라 농촌발전을 위해 헌신했다는 것입니다. 13년 동안의 믿음의 고백이 찢어지게 가난한 구두닦이 청년으로 하여금 대학교수가 되게 한 원동력이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말이 우리의 미래를 새롭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우리와 우리 가정과 우리 공동체를 살릴 수도 있고, 우리를 죽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러므로 부정적인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기를 바랍니다. 죽이는 말 대신에 살리는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불신앙의 말을 삼가고 믿음의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 말씀을 다같이 읽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하여 만족하게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말의 영향력
잠 18:20-21 / 김홍도 목사
이번에 3주간이나 되는 긴 선교여행 기간 동안 순간순간 여러분의 뜨거운 기도의 능력을 피부로 느끼며 성회를 인도하고 돌아왔습니다. 시카고, 휴스턴, 달라스, 모든 집회에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 모든 성도들이 큰 은혜를 받고 변화되는 모습을 보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을 돌렸습니다. 특별히 지난 월요일 North Texas 연회에 가서 설교를 했는데 성령의 뜨거운 역사로 모두 은혜를 받고 2,000명 미국 사람들이 기립박수를 보내는데 끊일 줄 모르고 오랜 박수를 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또 설교하고 내려왔더니 감독님이 얼싸안고 좋아하며 제 설교를 그 연회 기관지에 싣겠다고 해서 원고까지 주었습니다. 아마도 제 일생에 잊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간절히 기도해 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6.25사변 때 피난 나가면서 어떤 이들은 “죽어도 피난가다 죽어야지” 하는 사람이 있었고 어떤 사람은 “어찌하든지 피난 가서 살아야지” 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죽어도 가다가 죽자” 하던 사람은 정말 많이 죽더랍니다. 말에는 참 위대한 힘이 있습니다. 누에가 입에서 나온 실을 가지고 집을 짓고 들어가 살듯이 사람은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을 가지고 환경을 만들고 운명을 결정합니다. 본문 잠언 18장 20~21절에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하여 만족하게 되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말은 그 사람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 말은 씨앗이다
예부터 “말은 씨앗이다”란 말이 있습니다. 말은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지만 씨앗과 같아서 우리가 한 말에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심은 대로 거두리라” 한 말씀은 농사에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라 우리의 하는 말에도 해당되는 것입니다. 좋은 말, 복된 말, 긍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은 복의 열매를 거두고 부정적인 말, 헐뜯는 말, 불신앙의 말을 하는 사람은 불행의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전에 말씀드린 대로 저의 부친은 젊어서부터 “나는 환갑 전에 죽는다”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더니 그 체격 좋고 건강하신 분이 꼭 환갑 전 해에 돌아가셨고, 저의 모친은 작고 연약한 몸을 가졌지만 “나는 지겹게 오래 살거야” 하시더니 93세에 소천하셨습니다. 참으로 말은 꼭 씨앗과 같아서 그대로 열매를 거두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10~12절에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시느니라”, 즉 하나님은 선한 말, 복된 말을 하는 자들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그런 사람을 유심히 지켜보신다는 말씀입니다. 말하는 것은 씨를 뿌리는 것과 같아서 반드시 그 열매를 거두는 때가 옵니다.
2. 성령과 말
사람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그 입과 혀를 성령이 지배하는 사람이 있고 그 입과 혀를 마귀가 지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 성령과 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임했을 때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행2:3)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불길이 혀와 같은 모양으로 임했다는 의미도 있지만 성령이 임하시면 그 사람의 혀에 권능이 임하여 복음의 말씀을 능력 있게 증거하며 많은 영혼을 구원하게 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충만을 받고 나서 베드로가 나가서 한번 외칠 때에 3,000명이나 회개하고 돌아온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와 말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으려면 첫째로
① 믿음의 말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물으시자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할 때,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16:17) 하시면서 크게 기뻐하시고 칭찬하시며 천국 열쇠를 주신다고까지 하셨습니다. 누구든 이렇게 믿음의 말을 하면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의 고백을 할 때 그 영혼이 구원받고 영생을 얻습니다. 로마서 10장 9~10절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했습니다. 혀를 어떻게 놀리느냐에 따라 영생을 얻고 천국에 갈 수도 있고 멸망 받아 영원한 지옥에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또 이 혀의 말이 산을 옮기는 능력을 행사할 수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11장 22~23절에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즉 믿음의 말을 할 때 태산도 옮길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② 긍정적인 말을 해야 합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대개 긍정적인 말을 하고 부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은 그 심령에 어두움의 세력이 꽉 차 있고 마귀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고난을 당하고 암담한 환경에 처해도 성령의 지배를 받는 혀는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습니다. 욥은 하루아침에 그 많던 재산이 불타고 도둑맞고 집이 무너져 10남매가 다 죽었는데도 욥의 한 말을 들어보십시오. 욥기 1장 21~22절에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그 결과 욥은 갑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또 남을 비난하고 헐뜯는 말을 하지 않고 칭찬해주고 높여주는 말을 하는 사람이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사람입니다. 누구와 대화할 때 10분, 20분만 대화해 보면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③ 기도의 말을 해야 성령의 지배를 받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마귀와 대화하다 시험에 들고 타락하여 전 인류에 불행을 가져왔습니다. 신명기 4장 7절에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대로 많은 시간을 하나님과 대화하며 보내야 그의 혀가 권세가 있고 능력이 있고 복된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고 마귀는 거짓의 영이고 거짓의 아비라고 했습니다. 거짓말을 심상하게 하는 사람은 마귀의 지배를 받아도 성령의 지배를 받을 수 없습니다. 혀를 마귀에게 빼앗기지 않으려면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기 때문에 진실한 말만 해야 성령의 지배를 받습니다.
3. 마귀와 말
마귀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그 혀로 악한 말을 하고 남을 비방, 훼방하는 말을 하고 거짓말을 잘 합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 마귀의 성격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와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고 마귀의 성격을 잘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귀는 잔인한 살인자요, 욕심쟁이요, 특히 거짓말쟁이라고 했습니다. 거짓말 할 때마다 진짜처럼 합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거짓말을 잘하고, 또 마귀는 참소자(accuser)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2장 9~10절에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라고 했습니다. 마귀는 “참소자”라고 했는데 “비난하는 자, 고발자, 훼방자”란 뜻입니다. 마귀는 “중상자”라고 했습습니다. 마귀는 사람의 혀를 점령해서 거짓말, 비방, 훼방, 중상모략해서 혼란을 일으켜 사람을 죽이고 가정을 파괴하고 교회를 파괴하고 나라를 파괴하는 일을 합니다. 마귀는 혀라는 도구를 사용해서 이런 파괴, 살인을 자행합니다. 요한계시록 21장 8절에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라고 했고, 22장 15절에는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 밖에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앞으로 우리나라가 망한다면 말 때문에 망한다고 봅니다. 공산주의(communism)는 마귀의 사상(satanism)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신론 사상이며 교회를 다 파괴하고 크리스천들을 죽이고 핍박하는 일을 하며 성경과는 정반대로 “물질주의”이며 “유물론 사상”(materialism)입니다. 특별히 “거짓말을 만들어내는 일”을 합니다. 공산주의는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 한다”라고 하면서 공산화해서 유토피아를 만들기 위해 살인도, 방화도, 거짓말도 불사한다는 사상입니다. 북한이 남한을 적화통일하려는 전략전술 중의 하나가 “용어혼란전술”입니다. 우리나라의 친공, 친북, 좌경분자들도 밤낮 거짓말만 만들어내는 자들이 있습니다. 미군 훈련 도중 전차에 치어죽은 여중생 두 명을 미끼로 일 년이 넘도록 춧불시위 하며 지어낸 거짓말 중의 하나가 “사람을 죽여 놓고 보상금 60만원이 뭐냐”이고 또 “사과 한 마디 하지 않는다”라고 선동하니까 군중이 흥분했습니다. 그러나 미군은 한 사람당 1억 9천여만 원씩 보상했고 사령관이 찾아와 무릎 꿇고 빌었습니다. 부시 대통령도 사과의 말을 했습니다.
또 공산당에게 무참히 온가족과 함께 살해당한 이승복군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한 말을 “나는 콩사탕이 싫어요”라고 말했다고 거짓말을 만들어내 유포하고 공산당에게 죽은 것이 아니라고 해서 조선일보에 상세히 사진과 함께 다시 보도된 적도 있습니다. 비참하게 죽는 어린이가 “콩사탕 안 먹겠다”라고 했겠습니까? 친북, 좌익세력들이 “민족주의”를 내세우고 “민족공조”를 외치는 것은 외세를 몰아내고 우리끼리 통일해서 잘 살자는 것인데 그것은 “미군을 철수시키고” 공산화 통일을 하자는 것입니다. 진정한 민족주의는 민족애를 바탕으로 한 민족주의라야 하는데 좌파들이 말하는 “민족주의”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무죄한 인민을 인민재판이란 무법재판으로 공개처형을 일삼고 수백만 국민을 굶겨 죽이면서 핵무기를 만들고 미사일을 만들고 다량살상 무기를 만드는 것이 진정한 “민족주의”입니까? “민족끼리 통일하자”라는 말도 미군을 몰아내고 연방제를 만들어 공산화 통일을 하자는 것입니다.
친북 좌파들은 “통일전선전술”의 하나인 “민족주의”란 말로 사람을 세뇌시키는데 “동학은 부패한 봉건왕조를 타도하고 우리나라를 근대화 하자는 것인데 일본제국주의가 들어와서 자생적 민족발전을 억누르고 식민지화 하였으며 이것이 미국통치로 이어졌다” 라고하며 그 미국의 앞잡이가 바로 이승만 대통령이라는 것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미군을 들어오게 하고 친일파를 데리고 떨어져 나와 남한 단독정권을 세웠다고 하면서 국부 이승만 대통령을 민족의 큰 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승만 때문에 공산화 통일을 못했기 때문입니다. 전교조가 이런 용어의 혼란전술로 온갖 거짓말로 어린 학생들을 세뇌시켜서 “이승만 개새끼”, “부시는 흡혈귀, 죽일놈”이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과거에 몇 차례나 공산 폭도들이 반란을 일으켜 많은 양민을 학살했는데 사형시켜야 마땅한 사람들을 민주화의 공로자라고 영웅을 만들고 보상금까지 주니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옵니다. 이것이 다 “언어의 혼란전술”의 일환으로 만들어낸 거짓말과 비방참소의 결과입니다. 영적으로 보면 이 모든 것이 사탄의 역사요, 마귀의 역사입니다.
그 외에도 좌파들이 만들어낸 “경계인”이니 “균형자”니 묘한 말로 공산주의와 주체사상을 변호해 주고 있습니다. 온갖 거짓말과 참소하는 말로 무산계급의 시기심을 자극시켜 보수 재벌과 보수 정당, 보수 언론, 보수 교회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나라가 망한다면 마귀의 거짓말과 참소하는 말 때문에 망할 것입니다. 또한 많은 교회들이 마귀의 거짓말과 비방하는 말 때문에 파괴되고 있음을 명심하고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에 달렸다
잠 18:20-21 / 조상호 목사
월링턴 듀크라고 하는 부잣집에 유명한 요리사가 고용이 되어 당시 요리사들 봉급 중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 요리사는 그 집에서 나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집주인인 듀크씨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 요리사가 그만두는 이유를 몰랐습니다. 높은 액수의 대우와 좋은 자리를 놓아두고 나간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요리사는 듀크씨에게 "식사가 맛있게 요리되었지만, 맛있게 음식을 잘했다고 한번도 칭찬을 받아 본적이 없었습니다. 나는 더 이상 이곳에서 일할 수 없습니다. 돈이 문제가 아닙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그 집의 요리사를 그만두었다고 합니다. 예화 한가지 더 소개하겠습니다. 어린 시절 성당에서 미사를 돕던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소년이 성찬식 도중 포도주 잔을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엄숙하던 미사 분위기는 금세 엉망이 되었고 사람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소년은 얼굴이 새빨갛게 변하며 어쩔 줄 몰라했습니다. 그런데 신부는 뜻밖의 말을 했습니다. "너는 앞으로 훌륭한 신부가 되겠구나." 그 신부는 소년의 행동을 나무라기보다는 격려를 해주었던 것입니다. 결국 이 격려는 한 소년은 신실한 사제로 만들었습니다. 이 사람이 그 유명한 풀턴 쉰 대주교입니다.
오늘 두 이야기가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하고 있습니까? 칭찬과 격려의 중요성을 가르쳐 줍니다. 격려는 용기를 북돋아 줍니다. 칭찬은 사람을 살 맛나게 합니다. 칭찬과 격려는 사람을 행복하게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 칭찬을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식사를 준비한 아내에게, 비오는 요즘 힘들게 세탁하느라 수고하시는 어머니에게, 시험기간을 맞이하여 공부하느라 파김치가 되어 있는 친구들에게 격려하시기 바랍니다. 칭찬과 격려는 받는 사람이 기쁠 뿐 아니라, 칭찬과 격려를 하는 사람도 기뻐집니다. 한번 앞뒤에 계신 분들과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만나서 정말 반갑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 말에는 능력이 있다
우리 옛말에 말이 씨가 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말 한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작년 신년 수양회에서 말씀 드린 적이 있지만, 서울의 모 교회에서 어느 형제와 자매가 함께 훈련을 받고, 함께 봉사하다가 서로 눈이 맞아 사랑하게 되었고 결국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1년 후, 갑자기 이혼을 하였습니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그 이유를 몰랐습니다. 그 교회의 목사님이 심방을 가서 그 이유를 찾았는데, 노래가 이혼의 원인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부인은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하루 종일 집에서 노래를 들었는데, 듣는 노래가 하필이면 이별에 대한 노래였습니다. 그것도 자그마치 13가지나 되는 이별의 노래를 온종일 들었습니다. "이별하리라. 이별하리라" 그 부인은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며 "이별하리라. 이별하리라"를 외쳐대다가 결국 말대로 이혼한 것입니다.
말은 이만큼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이 노래가 운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논문을 썼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 나라의 가수 중에 최소한 20명 이상의 가수들이 자신들이 평소에 노래한대로 그 노랫말을 따라갔다는 사실을 발표했습니다. '이별의 종착역', '사의 찬미', '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을려고 왔던가', '한 많은 이 세상' 등 이러한 부정적인 노래를 부른 가수들은 자신들이 노래부른 대로 되었다고 합니다. 말대로 이루어집니다. 말에는 미래를 좌우하는 힘이 있습니다. 말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제일 먼저 천지를 창조하실 때, 어떻게 하신 줄 아십니까? 손으로 주물럭거려 창조하셨습니까? 아니면 발로 차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까? 아닙니다.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말씀이 나올 때, 그 말씀을 따라 모든 우주는 창조되었습니다. (히11:3)을 보면,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라고 하며 말씀으로 세상이 창조되었음을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요.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우리에게도 말을 통해 미래를 열어가도록 하셨습니다. (창2:19~20)에 보면, 하나님께서 여러 들짐승들과 각종 새들을 만드시고 아담으로 하여금 각각의 이름을 짓게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첫 사람인 아담이 말한 대로 각각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아담이 '사자'라고 붙이자 그 때부터 그 짐승은 무서운 '사자'가 되었고, '독수리'라고 붙이자 그 때부터 그 새는 하늘의 제왕인 '독수리'가 되었고, '강아지'라고 이름을 붙이자, 그 때부터 귀여운 '강아지'가 되었습니다. 아담이 이름을 붙인 대로, 아담이 말한 대로 된 것입니다. 말은 무서운 힘이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메고 푸는 것도 우리의 혀에 달려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16:19)에서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이 땅에서 말로서 매기도 하고 풀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데스 바네아라는 곳에서 12명의 이스라엘 정탐꾼들을 가나안을 정탐하고 오도록 했습니다. 그들이 40일 만에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12명 중 10명은 보고 돌아온 그 땅을 악평을 하며 부정적인 보고를 했고 이 말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급기야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들의 원망과 불평을 들으셨습니다. 그래서 (민14:27~28)에서 말씀하십니다.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10명의 정탐꾼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악평한 결과, 40년 동안 광야에서 모진 고난을 하다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도중에 다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고백을 한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할 수 있다고 말한 그대로 축복의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믿음으로 고백한 결과 두 사람은 가나안의 축복을 누렸습니다. 말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신약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롬10:9,10)에 보면, "네가 만일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에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어떻게 얻을 수 잇습니까? 그냥 마음으로만 믿어서 안됩니다. 분명하게 입술로 시인하는 고백이 있어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 (마8:8)을 보면 "백부장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국 백부장의 고백은 예수님의 마음을 감동시켰고, 하인은 정상적으로 회복되었습니다. 믿음의 고백은 병도 고칩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을 통해, 고백을 통해 역사 하십니다. 여러분, 그래서 말이 능력인 줄로 믿습니다. 말은 문제를 해결하는 Power인줄로 믿습니다. 말은 흑암의 세력을 결박하는 권세인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말에는 역사를 일으키는 힘이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믿음의 말에는 하늘 문을 여는 능력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잠언 기자인 지혜의 왕, 솔로몬은 21절에서 혀의 능력, 즉 말의 능력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함께 21절을 읽겠습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다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영어로 보면 이해하기가 더 쉽습니다. "The tongue has the power of life and death" 혀에는 두가지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혀에는 죽이는 능력과 살리는 능력, 두가지가 있습니다.
지혜로운 노예 이솝에게 주인은 어느 날, 손님을 초대하려고 하니 세상에서 제일 좋은 요리만을 만들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자 이솝은 시장에 가서 짐승의 혓바닥만을 사서 온통 혓바닥 요리를 만들었습니다. 첫 번째 요리도 혀, 두 번째 요리도 혀, 마지막 요리도 혀였습니다. 개판이 아니라, 혀판이었습니다. 손님들은 처음엔 칭찬을 했으나 마지막에는 모두 기분이 상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주인이 꾸짖자, 이솝은 대답했습니다. "세상에 혀보다 좋은 것이 있습니까? 혀가 있기 때문에 인간은 말을 할 수 있고, 또 지식을 전달하고 교양을 높일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말문이 막혀 더욱 화가 난 주인은 다음날 다시 손님을 초대하기로 했습니다. 이번에는 제일 나쁜 요리를 만들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전날과 똑같은 요리만이 나왔습니다. 화가 난 주인에게 이솝은 다시 이렇게 말했습니다. "혀는 모든 분쟁의 씨앗입니다. 다툼의 어머니죠. 그뿐 아니라 거짓말과 중상모략의 그릇이란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말이란 그것을 잘 쓸 때는 미덕이 되지만, 그 것을 잘못 쓸 때는 그 무엇보다도 악한 무기가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말에는 두가지 능력이 있습니다.
2) 죽이는 능력(Power of death)
첫째로 사람을 죽이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혀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지난 3월4일자 중앙일보에는 "못생겼다"는 말에 함께 동거하던 애인을 살해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21세의 애견미용사인 백모 여인은 애인으로부터 자동차운전학원에서 '얼굴도 못생겼는데 머리까지 나쁘냐'고 욕을 먹게 되자 이날 집에 돌아와 서로 헤어지기로 하고 술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술을 마시던 중 애인이 다시 '얼굴이 못생겼다'며 핀잔을 주자, 방안에 있던 흉기로 애인의 가슴을 찔러 숨지게 했다는 것입니다. 또 작년 6월27일자 조선일보에는 영문학을 전공한 노숙자가 미군이 자신에게 영어로 지껄인 욕을 알아 듣고 흉기로 살해했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K대 영문과 출신으로 2년 전부터 노숙자 생활을 해온 38세의 이모씨는 쓸 만한 물건이 있나 하고 쓰레기통을 뒤지는데 지나가던 미군이 '불한당', '더러운 놈', '사생아'라는 의미가 있는 bastard라고 비웃자, 홧김에 쓰레기통 안에 있던 부엌칼을 꺼내 미국의 가슴을 찔렀다는 것입니다. 또 99년 9월12일자 국민일보에는 "100원 때문에 모욕당한 여중생 자살"이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14세의 송모 학생은 학교를 끝내고 하교길에 가게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사고 1백원을 냈습니다. 그런데 가게주인이 '돈을 내지 않았다’며 많은 사람들 앞에서 폭언을 한 뒤 친구의 멱살을 잡고 1백50m 가량 떨어진 학교 교장실까지 끌고 가 모욕을 줬다는 것입니다. 송모 학생은 그 일이 있은 후 곧바로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밑으로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가지의 신문기사가 무엇을 가르쳐주고 있습니까? 말은 사람을 죽인다는 것입니다. '얼굴도 못생겼는데 머리까지 나쁘냐'는 말에 살인을 했습니다. '불한당 같은 놈'이라는 말에 살인을 했습니다. 100원 내지 않았다는 말에 자살을 했습니다. 이와 같이 말은 큰 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이 얼마나 무섭습니까? 어제 저녁 저의 서고에 있던 <독이 되는 말>이라는 제목의 책을 다시 한번 보았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누구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냥 '꿈이 많은 사람 지음'이라고만 적어 놓고 있는데, 이 책의 저자는 <독이 되는 말>의 책 서두에서 이렇게 적어 놓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일까요? 칼이라고요? 칼은 한 사람을 북입니다. 총은 수십 명을 죽입니다. 핵 폭탄은 수만 명을 죽입니다. 그러나 이것들보다 더 무섭고 위력이 강한 것이 있습니다. 말입니다. 그것은 가장 큰 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두 사람이 아니라 이 싸움도 말에서 시작합니다. 가정의 싸움, 단체의 싸움, 국가와 국가와의 싸움도 근원을 따져보면 개구쟁이들의 싸움의 시작과 별다를 것이 없습니다. 사소한 말 한마디로 수십만의 생명이 희생되는 전쟁이 일어납니다...."
말은 이렇게 무섭습니다. 말은 사람을 죽입니다. 그래서 혀에는 죽이는 권세가 있습니다. 사람을 힘들어하게 하고 피곤하게 하고 좌절하게 하고 불안하게 하는 능력이 바로 죽이는 능력입니다. 제가 수도 없이 말씀드렸지만,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저의 부끄러운 과거이지만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이 국어책 00페이지를 몇 번 써오라고 숙제를 내주면서 꼭 내일 아침 공부가 시작 전까지 제출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어찌된 영문인지 그 숙제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숙제도 하지 않은 채 다음 날 아침 학교에 갔습니다. 학교에 갔더니 친구들이 묻습니다. "상호야, 너 숙제했니?" "무슨 숙제?" "어제 00페이지 써오라고 했잖니" 그제 서야 생각이 났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공부시작 전까지 운동장에 나가서 놀고 있었지만, 놀지도 않고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리 움직여 숙제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출했는데, 첫째 시간인가 둘째 시간이 끝난 후에 선생님은 학생들이 제출한 숙제를 나누어주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들 이름을 부르면서 하나하나 나누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저의 이름을 부르지 않다가 드디어 제일 마지막에 저의 이름을 호명하였습니다. 저도 다른 친구들과 같이 앞으로 나갔는데, 갑자기 분위기가 살벌해집니다. 갑자기 제가 숙제한 후 제출한 저의 공책을 쫙쫙 찢으면서 "발로 써도 이것보다는 잘 쓰겠다. 이것도 글씨냐?"라고 하면서 5~60명의 반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야단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저의 발 앞에 툭 던지고는 "빨리 주어서 네 자리로 가지고 가!"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어린 마음에 충격이 엄청나게 컸습니다.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 때부터 제가 글씨를 예쁘게 그리고 정성껏 쓰는 것을 포기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면 예쁜 글씨, 보기에 좋은 글씨를 쓸 수도 있겠지만, 선생님에 대한 반감으로 오히려 글씨 연습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때의 충격으로 33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그 선생님 이름을 기억합니다. 백정님이라는 여자 선생님이었습니다.
여러분, 제가 저의 과거의 아픔을 자주 소개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저는 결코 저의 졸필을 합리화시키려는 마음은 없습니다. 말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말에는 죽이는 능력이 있습니다. 말로서 상처를 줄 수 있고, 말로서 사람을 주눅들게 할 수 있고, 말로서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죽이는 능력입니다. 여러분, 학생들을 잘 교육하기 원하십니까? 교사 선생님들은 어떤 경우에도 학생들에게 죽이는 말을 삼가 하시기 바랍니다. 자녀를 훌륭하게 키우고 싶으십니까? 절대로 자녀에게 죽이는 말을 쓰지 마시기 바랍니다. 행복한 가정을 원하십니까? 가족들을 죽이는 말은 아예 입밖에도 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름다운 교회를 원하십니까? 성도간에 죽이는 말을 추방하시기 바랍니다. 혀에는, 말에는 죽이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3) 살리는 능력(Power of life)
다시 한번 21절을 읽겠습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다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둘째로 혀에는 살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사람을 살 맛나게 하고 행복하게 하고 기뻐하게 하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능력이 바로 살리는 능력, 즉 Power of life 입니다.
영화 슈퍼맨을 잘 아실 것입니다. 주인공은 크리스토퍼 러브입니다. 그는 한때 전세계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이었습니다. 그런데 1995년 어느 날 승마를 즐기다가 말에서 떨어졌습니다. 마치 그의 몸은 슈퍼맨 영화에서 본인이 연기한 것처럼 공중에 붕 떴다가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떨어지면서 목뼈가 골절되었고, 그로 인하여 전신마비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날마다 침대에 누워 자살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그의 아내 다나는 그의 뺨에 입술을 대며 속삭였습니다. "You are still my darling. I love you. I never change." "당신은 여전히 나의 사랑하는 남편입니다. 나는 아직도 당신을 사랑해요. 나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어요" 슈퍼맨 리브는 아내의 위로에 힘을 얻고 자살하려는 생각을 포기하고 오히려 열심히 재활훈련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팔 다리를 조금씩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습니다. 지금 그는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아내의 격려가 자살을 결심한 남편에게 살자는 용기를 심어 주었던 것입니다. 격려의 말은 인생을 바꿉니다. 칭찬의 말은 사람을 새롭게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격려를 받고 칭찬을 받고 싶어합니다. 대단한 일에만 칭찬받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일에서도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교육 심리학자와 아동 심리학자들은 칭찬을 자주 해주면 아이들의 잠재능력이 무궁무진하게 개발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또 칭찬할수록 성취욕구가 많아진다고 합니다.
모 보험회사의 어느 한 영업소가 유독 다른 영업소에 비해 탁월한 보험 수신고를 올려 사내 방송국에서 취재하러 나갔습니다. 취재 결과 그 영업소와 다른 영업소의 차이점이 드러났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영업소 소장의 태도 때문이었습니다. 그 소장은 직원들이 보험 한 건을 성사시킬 때마다 사람들 앞에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시간 날 때마다 식사를 같이 하면서 직원들에게 격려와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자기 책상은 물론 직원들 책상 위에도 "하루 세 번 칭찬합시다"라는 문구를 적어놓고 늘 실천하는 분위기를 조성했다고 합니다. 영업소의 이러한 방침은 사원들을 활기차게 만들었고, 결국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영업소 소장은 직원들을 칭찬함으로써 영업소의 성적을 올렸으며 결과적으로 능력도 인정받아 빠른 승진을 했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말 하나만 잘해도 성공은 따 놓은 당상입니다. 말 한마디가 사람을 움직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살리는 말을 잘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주변에 보면 참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용기가 생기고 소망이 생기게 하는 말은 고사하고 꼭 좌절시키는 말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본다면 사람들이 종종 "스물 아홉 넘으면 시집 못 간다는데"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면 서른 넘은 사람은 무슨 희망으로 살아갑니까? 살리는 말을 하는 사람 같으면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어느 분은 45세에도 시집가서 보사부장관까지 올랐고, 잘만 살더라." 이렇게 말해 줍니다. 또 "뉴질랜드에서 대학 졸업해보아야 별 볼일 없더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재벌 그룹회장 중에서 좋은 대학 나온 사람은 한 명도 없더라"고 격려해주어야 합니다. 연세 드신 분에게 "집사님, 환갑 넘으면 인생 종 친거죠? 안 그래요? 아이구 할아버지, 천국이 가깝군요?"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살리는 말을 하는 사람 같으면 "갈렙은 85세에 헤브론을 취했습니다. 아직도 펄펄 하십니다. 70세는 사춘기이고, 80세는 청년기입니다. 집사님께서 우리 교회에서 하실 일이 많이 있습니다."라고 용기를 드려야 합니다.
여러분, 살리는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격려의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만약 살리는 말. 격려하는 말, 칭찬하는 말을 하실 자신이 없으면 아예 아무 말도 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사람들은 신비감을 느낍니다. "저 사람 대단한 것이 있나 보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말 속담에 입다물면 중간은 간다고 하는 말이 있는 것처럼 말을 하지 않으면 손해는 보지 않습니다. 실제로 함부로 말을 많이 해서 손해본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논이라는 철학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귀는 두 개 입은 한 개 주신 이유를 아는가?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을 갑절이나 하라는 뜻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여러분, 말을 하되 주의하여 살리는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살리는 말은 남을 살리는 것뿐만 아니라, 더불어 나도 살립니다. 가정에서 아내를 종으로 취급해 보십시오. 그러면 남편 자신도 노예가 됩니다만, 아내를 왕비로 생각하고 아내를 격려하면 남편인 자신은 왕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출석하고 있는 교회를 비방하고 욕하고 다니면 자신은 별로 좋지 못한 교회 교인이 됩니다만, 자신이 출석하고 있는 교회를 칭찬하고 좋게 말하면 그 사람은 좋은 교회 교인인 줄 믿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다른 교우들을 욕하고 다니면 나쁜 교우를 둔 사람이 되는 반면, 같은 교회의 교우를 칭찬하고 살리는 말을 하면 좋은 교우를 둔 사람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살리는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자신에게도 살리는 말을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난 정말 재수 없어. 나는 항상 왜 이 모양이지.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라고 입술로 시인하면 시인한 그대로 되는 줄로 믿습니다. 이와 반대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라고 입술로 시인하면 시인한 그대로 되는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내가 하는 말로 인하여 남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내가 하는 말로 인하여 내가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합니다. 오늘 이 아침에 이사야 선지자가 (사50:4)에서 고백한 고백이 저와 여러분들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당신의 말대로 됩니다
잠 18:20-21 / 남 호목사
말을 잘하면 배를 채울 수 있게 되고 말을 잘못하면 굶주리게 됩니다. 또한 사람이 죽고 사는 것도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습니다. 어떻게 말을 했든지 말의 결과를 먹게 된다고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말이란 너무나 중요하고 귀한 것이므로 말을 할 때에는 신중해야 합니다.
사람은 말로 교제하고 말로 자신의 인격을 표현하며 살아갑니다. 말을 잘하면 좋은 교제가 되고 좋은 인격을 가지게 되나 말을 잘못하면 인간관계가 나빠지고 나쁜 인격의 소유자가 됩니다.
사람의 일생을 자기가 말한 대로 산다고 합니다. 찬양과 저주도 말로, 감사와 불평도 말로, 친절과 온유도 말로 표현이 됩니다.
말은 곧 그 사람의 인격이요, 삶이요, 사상이요, 운명입니다. 말을 철학적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말이 마음에 있으면 사상이 되고, 말이 입을 통해서 전달되면 언어요, 말이 고정이 되면 뜻이 되고 말이 행동으로 표출되면 행위이다」
그래서 자신이 말한 만큼 행복할 수 있고, 자신이 말한 만큼 성공할 수 있고, 자신이 말한 만큼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경은 말의 영향력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잠15:1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잠26:22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
이 뜻은 말이 깊은 상처를 준다는 말입니다.
겔3:18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엔에게 일러서 그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케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 죄악중에서 죽으려니와" 말이 악인을 구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마12:36-37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를 받으리라"
말이란 사람의 분노를 잠잠하게 만들기도 하고 깊은 상처를 일으키기도 하고 위로하기도 하고 넘어진 자를 붙들어 주고 상처를 싸매 주기도 합니다.
어떻게 말하면서 살아야 할까요?
Ⅰ. 말한대로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말해야 합니다.
지금 말한대로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말해야 합니다.
본문 20절 "사람은 입에서 나온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만족케 되느니라"
본문에 열매란 말이 2번이나 나오는데 곧 입으로 했던 말이 씨가 되어서 싹이 트고 열매가 맺게 되어 결국 그 열매를 먹게 된다는 말입니다. 즉, 선한 말을 많이 하면 선한 열매를 많이 맺을 것이고, 악한 말을 많이 하면 악한 열매가 많이 맺혀서 그 열매로 배를 채우게 된
다는 말입니다.
이 말씀을 공동번역에는
「입을 잘 놀리면 단 것을 실컷 먹고
입술을 잘 못 놀리면 쓴 것을 먹게 된다.
죽고 사는 것이 혀끝에 달렸나니 혀를 잘 놀려야 잘 먹을 수 있다」
성경은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은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6:7-8)
심는다는 말속에는 몇 가지 교훈이 들어있습니다.
1. 심으면 반드시 거둔다는 말입니다.
2. 심는 종류대로 거둔다는 말입니다.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딸 수 없고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종류의 나무를 심느냐에 따라 열매를 거둔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믿음의 말을 하면 믿음의 열매를 얻을 것이고, 인간적이고 감정적인 말을 많이 하면 썩어진 열매를 많이 거둘 것입니다.
3. 심는 양대로 거둡니다.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돈 안들이고, 별 큰 힘도 안들이고, 큰 재주도 없이 "잘될 수 있는" 비결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입으로 좋은 씨를 많이 심는 것입니다.
말하는 자유가 있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 됩니다. 좋은 열매를 거두기 위해서 조심성 있게 깊은 생각하고 말해야 됩니다.
한 아이가 산에 올라가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건너편에서도 자기와 똑같이 노래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는 누군가가 자기 흉내를 내고 있는가하여 누구냐고 물었더니 그 쪽에서도 누구냐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화가 난 아이는 욕을 했습니다. 그런데 상대방도 똑같이 욕을 했습니다. 아이는 누가 자기를 깔보고 하는 짓이라고 생각하고 화가 단단히 나서 흉보는 사람을 찾아 이리저리 뛰어다녔습니다. 그러나 찾지 못했습니다. 어머니에게 말씀드렸더니 산 속에 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소리가 산에 마주치면 그 소리가 울려 똑같은 소리가 나는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메아리처럼 내가 욕하면 욕하는 소리가 들릴 것이고 칭찬하고 소망적인 말을 하면 그대로 들리는 것입니다. 남에게 좋은 말을 하면 남도 내게 좋은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말하는 대로된다고 생각하고 말합시다.
Ⅱ. 말로 심판받을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하는 말에 하나님이 들으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마12:36-37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판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를 받으리라"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하는 말도 하나님이 들으시고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약3:2 말에 실수가 없는 자는 온전한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말에 실수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대단한 사람입니다. 실수하지 않으려면 많이 말을 하지 말아야 하고 말하기 전에 깊이 생각하고 필요한 말만 해야 합니다.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많이 했던 말이 감사의 말일 것 같은데 실제로는 불평과 원망이었습니다. 광야 40년 동안 불평하고 불만을 터뜨리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사람들의 말을 듣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민14:27-28)
"차라리 우리가 애굽에서 죽었다면 좋았을 것을" 하고 말해서 20세 이상의 장정들은 다 광야에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불평과 원망하던 사람들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고 만 것입니다. 얼마나 무서운 것이 말입니까? 말이 씨가 됩니다. 여러분들이 늘상하고 있는 말을 하나님이 들으시고 그 말에 따라 심판하고, 그 말의 열매를 여러분들이 먹어야 되며, 그 말의 열매는 말한 사람이 받아야 됨을 기억합시다. 따라서 우리는 교회에서 말조심하고, 가정에서 말조심하고, 부부간에 말조심하고, 이웃 사람들에게 말 조심해야 합니다.
한 자매가 유능하고 인물이 좋은 남자와 교제하다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워낙 인물이 좋았기 때문에 주위에 여자들이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부인이 너무 속이 상하니까 불평하기를 "차라리 혼자 사는 것이 좋겠다. 교통사고라도 나서 죽었으면..."
그런데 어느 날 밤에 남편이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다 교통사고가 나서 식물인간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부인이 울면서 하는 말이 "일년 내내 바람 피워도 좋으니 살아만 주세요" 하더라는 것입니다. 자기 말한 대로 된 것입니다. 아무리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못된 짓을 한다고 하더라도 망하는 말은 해서는 안됩니다. 모세 같은 사람도 말 한마디 잘못해서 그의 사역이 끝이 났습니다.
자기 백성들이 원망할 때 모세가 "패역한 세대여 들어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하고(민12:10) 지팡이를 들어서 반석을 쳤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반석을 명하여 물을 내라고 하셨는데 모세는 자기의 성격을 참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기 뜻대로 반석을 쳐서 물을 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너희가 나를 믿지 않고 이스라엘 목전에서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고로 너희는 이 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민20:12)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자기의 성질대로 한다든지 하나님의 일을 자기의 기준에 맞춘다든지 자기의 조건에 맞추면 안됩니다. 인간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이 굉장히 미웠겠지만 그래도 자기의 감정을 덮어두고 하나님의 뜻을 따랐어야 했습니다. 말대로 심판 받기 때문입니다.
Ⅲ. 언제나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이유는 말한대로 되기 때문이고, 하나님이 들으시고 말한 대로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좋고 희망이 넘치는 말"에는 좋은 일과 희망이 넘치는 결과가 올 것이고, "친절한"말을 하면 그대로 거두게 될 것이고, "사랑과 선한 말"을 하면 사랑과 선한 열매를 거두어 들이게 될 뿐 아니라 심판도 말한 대로 받게 될 것입니다.
어떤 시어머니가 볼일이 있어서 외출했다가 집에 두고 온 것이 있어서 되돌아왔습니다. 며느리가 방안에서 전화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내용이 "아직 새파란데 언제 받아" 이 말은 시어머니가 빨리 세상을 떠나야 재산을 상속받는다는 말입니다.
밖에서 이 말을 들은 시어머니는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말조심해야 합니다. 시어머니는 집이라도 사서 내보내려고 했는데 조그마한 월세방 얻어서 내보냈습니다.
말 한마디 잘못한 것 때문에 집 한채 날려보낸 것입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합니다. 말의 비밀이 잘 안 지켜진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말을 듣고 계시니 말을 함부로 하지 말고 조심해야 합니다.
"레이"가 쓴 세 황금문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사람이 어떤 말을 하든지 세문을 통과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첫째 문은 참말이냐 하는 것입니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말을 함부로 하면 그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문은 필요한 말인가 하는 것입니다. 참 말이나 할지라도 이 말이 꼭 필요한 말인가 따져 보아야 합니다. 참 말이라도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세 번째 문은 친절한 말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이 온유한 말인가! 말할 때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는가! 필요한 말이라도 친절하게 말했을 때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이런 세 황금문을 지난 말은 좋은 씨가 되어 좋은 열매를 맛보게 될 줄 믿습니다.
때에 맞는 말 한마디가 긴장을 풀어주고 사랑의 말 한마디가 축복을 줍니다. 함부로 말하지 말고 축복의 말을 심어 축복을 거둡시다.
오랫동안 교도소 생활한 청년이 예수님을 믿게 되어 믿음이 좋은 아가씨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전과자라는 것 때문에 사회생활에 지장이 많았습니다. 어느날 부부가 대화를 하다가 언성이 높아지면서 부인이 남편에게 "당신을 전과자라서 그래!" 라는 한마디를 했습니다. 이 말 한마디에 이성을 잃은 남편은 자기 아내를 찔러 죽였다고 합니다. 전과자에게 죽은 것입니다.
엡4:29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헤를 끼치게 하라"
은혜 끼치는 말은 사랑의 말, 선한 말, 위로의 말, 소망의 말, 격려의 말 등입니다.
어떤 부부가 결혼해서 3년간 잘 살다가 이혼했답니다. 남편이 기타를 좋아하는데 집에 돌아오면 이별의 부산항으로부터 목포의 눈물까지 13곡을 불러야 끝이 난다고 합니다. 그들은 이별의 부산항을 부르다가 결국 이혼한 것입니다. 말은 씨가 되어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 말 한마디 시 ■
부주의한 말 한마디가 싸움의 불씨가 되고
잔인한 말 한마디가 삶을 파괴하고
쓰디쓴 말 한마디가 증오의 씨를 뿌리고
무례한 말 한마디가 사랑의 불을 끕니다」
은혜스러운 말 한마디가 하루를 빛나게 합니다.
말에 의한 기적
잠 18:20-21 / 김홍 도목사
엊그제 미국에서 우연히 TV를 켰더니 흑인 목사님이 설교를 하시는데 그 제목이 “말은 기적을 일으킨다”(Miracle out mouth)라는 것이었습니다. 참 멋있는 제목이었습니다.
말은 위대한 힘이 있을 뿐 아니라 기적을 일으킵니다. 전에 말씀드린 대로 저의 아버님은 건장하시고 튼튼한 체격을 가지셨는데 항상 “나는 환갑 전에 죽는다”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정말 환갑 전 해인 60세에 돌아가셨습니다. 저의 모친은 작고 가냘픈 몸매를 가지셨는데 항상 “나는 지겹게 오래 살거야”라고 하시더니 93세에 돌아가셨습니다. 말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가 생각해보십시오. 말은 기적을 나타냅니다. 어떤 사람이 한 열 살 난 소녀에게 장난삼아 “너는 시집도 못 가보고 30살에 죽게 된다”라고 말했는데 희한하게 그 여자가 서른 살에 죽고 말더랍니다. 이렇듯 사람들은 말이 눈에 안 보인다고 함부로 하고 밑천 안 든다고 아무렇게나 말을 합니다.
전에 우리 교회 여전도사 두 분이 차를 타고 가면서, 한 분이 “나는 남편 없인 살아도 자식 없이는 못 살아!”라고 하니까 다른 한 분이 “아예 그런 소리 하지 마라. 나도 전에 그런 말을 했는데 남편이 일찍 돌아가셨어. 남편 없이도 못 살고 자식 없이도 못 산다고 해!”라고 말해주는 것이었습니다.
본문, 잠언 18장 20~21절에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하여 만족하게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고 했습니다. 즉 입에서 나오는 말 때문에 배부르게도 살고 가난하게도 살며 함부로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거두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잠언 6장 2절에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평상시에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그 사람의 운명을 좌우합니다. 말이 기적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이 길 가시다가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저주하시고, 다음날 그 나무가 뿌리까지 말라 죽은 것을 보고 제자들이 기이히 여겨 질문할 때 마가복음 11장 22~23절에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하시지 않았습니까? 마음에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말하고 명령하면 태산을 옮기는 것 같은 큰일도 할 수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어떤 말을 해야 할까요?
1. 믿음의 말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언제나 믿음의 말을 해야 합니다. 크리스천이라고 하고, 마음으로는 믿는다고 하면서 의심하는 말, 의심을 일으키는 말을 하면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십자가의 구속도 안 믿고 부활도 안 믿고 천국, 지옥도 못 믿겠다는 식으로 말하는 이가 있는데 그런 사람은 교회는 다녀도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마음 한구석에 의심이 있더라도 믿음의 말을 하면 믿음이 생깁니다.
특히 믿음은 입으로 고백할 때 온전해집니다.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했습니다. 마음에 믿는 바를 입으로 시인하고 고백해야 구원이 완성됩니다. “나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마귀를 이겼습니다”라고 고백할 때 믿음이 확실해지고 구원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수십 년 교회에 다녀도 입으로 고백하지 않으면 믿음이 확실해지지 않고 구원이 확실해지지 않습니다.
2. 긍정적인 말을 해야 합니다
애굽에서 출애굽한 사람은 60만 명이었지만 가나안 땅에 들어간 사람은 단 두 명밖에 안 됩니다. 그 이유는 걸핏하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를 원망하고 불평했기 때문입니다. 여리고 성을 정탐하고 돌아온 12명 중의 10명은 부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그 성읍은 철옹성벽 같고 그 곳에 사는 아낙 자손들은 기골이 장대해서 그들 앞에서 우리 모습은 메뚜기 같고 그 성읍은 견고해서 도저히 점령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처자식들은 다 사로잡히게 되었고 죽게 되었습니다”라고 간담이 녹아내리는 말을 할 때 이스라엘 백성은 밤새도록 통곡하며 얼굴이 퉁퉁 붓도록 울었습니다. “차라리 애굽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겠다”라고 했습니다.
그 때에 여호수아와 갈렙만은 절대 긍정적인 말을 했습니다. 민수기 14장 9절에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고 긍정적인 말, 용기를 주는 말, 믿음을 일으키는 말을 했습니다. 이 긍정적인 믿음의 말을 한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만 가나안 땅에 들어갔고 부정적인 말을 하고 낙담시키는 말을 하고 “차라리 이 광야에서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말대로 다 죽은 다음에야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긍정적인 말, 용기를 주는 말, 믿음의 말을 한 여호수아와 갈렙만 가나안 땅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말의 위력이 이렇게 큰 줄을 누가 알겠습니까? 그 사람의 말은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말이 복을 받게도 하고 불행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3. 칭찬의 말을 해야 합니다
칭찬할 줄 모르고 남을 비판하고 헐뜯기 좋아하는 사람은 사회생활에서도 성공하지 못합니다. 능력이 부족해서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대인관계가 나빠서 사회생활에 실패하는 것입니다. 남의 장점을 알아주고 칭찬해주는 사람을 누가 싫어하겠습니까?
조용기 목사님이나 김장환 목사님을 만나면 언제 그렇게 저에 대해서 아는지 척 만나면 칭찬해주곤 합니다. 이분들은 칭찬의 천재라고 봅니다. 남을 칭찬해주는 것이 그들의 성공적인 생활의 비결이며 성공적인 목회의 비결이라고 봅니다. 여러분, 부디 부탁하는데 남의 약점과 단점을 들추어내서 헐뜯고 깎아내리고 비판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그 사람의 장점을 찾아서 칭찬해 줄 줄 아는 사람이 되시기 부탁합니다.
마태복음 7장 1~2절에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즉 남을 비판하는 사람은 자기도 혹독한 비판을 받게 되고 남을 칭찬하는 사람은 자기도 칭찬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될 수 있는 대로 남을 헐뜯거나 비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들 목사나 사위 목사들에게 부탁하는 말은, 남의 단점을 후벼 파지 말고 잘못이 있어도 덮어주고 부드럽게 대하라는 것입니다.
4. 진실한 말을 해야 합니다
진실한 말을 해야 그 말에 권세가 있고 능력이 있는 법이지 진실성이 없고 거짓말을 떡 먹듯이 하는 사람은 아무리 웅변적으로 청산유수같이 말을 잘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시편 15편 1절에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라고 해놓고, 2~3절에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그 혀로 참소치 아니하고…”라고 했습니다. 정직하고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라야 하나님과 함께 할 자격이 있다고 했습니다. 마귀는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진실하신 분입니다. 마귀를 멀리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원한다면 거짓을 버리고 진실한 말을 해야 합니다. 진실되지 못하고 거짓말을 서슴지 않고 하는 사람은 마귀에게 속아서 낭패를 보게 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11~12절에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진실해야 마귀에게 속지 않습니다. 디모데전서 4장 1~2절에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고 말씀하셨듯이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은 귀신의 가르침을 좇게 되고 미혹케 하는 영에게 속아서 영원한 운명이 비참해질 수 있습니다.
이단 신학이나 공산주의 사상에 물든 사람들은 거짓말을 잘 합니다. 다 사탄의 영에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 거짓말 잘하는 사람은 하나님도 믿어주지 않고 사람도 믿어주지 않습니다. 거짓말을 잘하고 거짓이 몸에 밴 사람은 믿음도 거짓될 수가 있고 결국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8절에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습관적으로 거짓말하는 사람은 믿음도 참될 수가 없어 지옥불에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5절에도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 밖에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이들을 키울 때 한두 번씩 몹시 때릴 때가 있었는데 그것은 큰 잘못을 저질렀을 때가 아니라 속이거나 거짓말했을 때입니다. 속이거나 거짓말을 잘하면 그 사람의 인격도, 신앙도, 소용이 없습니다. 일류 대학을 나오고 아무리 IQ가 높으면 뭘 합니까? 다 쓸모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거짓말을 부득이 용납한 일이 있습니다. 애굽의 산파들이, 사내아이를 낳으면 목 졸라 죽이라고 했을 때 자기들이 가기 전에 낳았다고 했던 것과 여리고 정탐꾼이 왔을 때 기생 라합이 지붕에 있는 삼대에 숨기고 금방 왔다갔다고 체포하러 온 사람들에게 거짓말해서 돌려보낸 후 정탐꾼들을 살려 보냈던 일입니다. 이 두 경우는 다 사람을 죽지 않게 하려고 거짓말을 했던 것입니다. 진실되게 말하면 그들을 죽이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자기 유익을 위해 거짓말한 것이 아닙니다. 시편 51편 6절에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라고 다윗은 기도했습니다.
유명한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의 아버지가 늙어서 폴란드의 산림지대를 거쳐 고향인 실레시아(Silesia)로 가는 도중에 한 떼의 강도를 만나 있는 것을 다 빼앗겼습니다. 한 나이 많은 강도가 “이것이 가진 것 전부냐?”라고 물을 때 “그것이 전부요”라고 대답하고 돌아서서 오는데 옷 속에 꿰매어 숨겨둔 금덩어리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가 강도들을 다시 불러 금덩어리를 내밀어 주었더니 아무도 감히 손을 내밀지 못했다고 합니다. 도리어 그 중에서 나이가 제일 많은 강도가 그에게서 빼앗았던 말과 지갑을 되돌려 주더랍니다. 이런 진실한 사람에게서 훌륭한 철학자가 태어났다고 생각합니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란 철학서적도 사람들이 그렇게 고귀하게 여기는 이성(理性)도 순수하지 못했기 때문에 “순수이성비판”이란 어려운 책을 쓰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5. 감사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불평하기 좋아하고 원망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하나님도 미워하시고 사람들도 싫어합니다. 반면에 감사의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고 대인관계가 좋아지며 성공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제가 아는 한 여자는 감사하는 말은 하지 않고 평생 원망하고 불평하기 좋아하며 혹독하게 비판하고 헐뜯기를 좋아했는데 이후 암병 수술을 몇 번이나 받고 몇 해째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10~11절에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람의 말이 그의 행복과, 불행을 좌우합니다. 마태복음 12장 36~37절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고 주님이 엄히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의 말, 긍정적인 말, 칭찬의 말, 진실한 말, 감사하는 말을 하도록 자신을 길들이십시오. 분명히 하나님도 축복하시고 대인관계도 좋아지고 따라서 사회생활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
말의 힘
잠 18:20-21 / 김홍도 목사
몸 전체에서 제일 강한 힘을 가진 부분이 어디라고 봅니까?
바로‘입’입니다. 잠언 18장 20~21절에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하여 만족하게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라고 했습니다.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배부르게 살 수도 있고, 가난하게 살 수도 있습니다. 우리 입의 말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릴 수도 있습니다. 사람의 말이 얼마나 힘이 있는가 보십시오. 우리 몸에서 제일 강한 힘을 가지고 제일 큰 영향력을 가진 곳이 바로 입이요, 혀입니다.
누에는 입에서 나오는 실로 집을 짓고 그 속에 들어가 살듯이, 사람도 그 입으로 하는 말대로 환경이 조성되어, 좋게도 혹 나쁘게도 살 수 있습니다. 축복을 심으면 복을 거두고, 저주를 심으면 화를 거두고, 악을 심으면 재앙을 거두고, 칭찬을 심으면 기쁨을 거두고, 비판을 심으면 판단을 거둡니다.
예부터 “말은 씨앗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입으로 좋은 말을 하면 좋은 열매를 거두고 나쁜 말, 악한 말을 하면 악한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평상시에 어떤 말을 하며 사느냐에 따라 그의 생애가 복될 수도 있고 불행할 수도 있습니다.
마태복음 12장 36~37절에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라고 말씀하셨는데, 지나친 말씀도 아니고 과장된 말씀도 아닙니다. 말이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말 하는데 밑천이 들지도 않는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해서는 안 됩니다. 그 말의 결과를 책임져야 합니다.
우리가 천국 가느냐 지옥 가느냐 하는 것도, 우리의 말로 결정한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로마서 10장 9절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그다음 10절에 보면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마음으로 믿고, 그 믿는 바를 입으로 시인하고 고백하면 구원을 얻고, 지금 죽어도 천국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옥 갈 사람은 그 입을 마귀가 붙잡고 있기 때문에 입으로 고백을 못합니다.
로마서 10장 12~13절에 “…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우리 입의 말이 영생이냐 멸망이냐를 결정하게 되니 우리의 말이 얼마나 중요한가 보십시오. 잠언 6장 2절에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 말이 이렇게 중요하기 때문에 대선지자 이사야를 부르실 때에도, 제일 먼저 제단 숯불로 그 입술을 지져 정결케 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나라를 위하여 근심하며 성전에서 기도하다가 굉장한 환상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높이 들던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성전에 옷자락이 가득했고, 여섯 날개를 가진 스랍들이 날며 창화하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하며 창화하는데, 여호와의 영광이 온 땅에 가득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에 이사야가 제일 먼저 입술의 죄를 깨닫고 “…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할 때에 스랍중에 하나가 제단 숯불을 손에 들고 와서 이사야의 입에 대면서 “…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이사야는 구약의 복음서라고 하는 이사야서를 기록했고, 선지자 중에 대선지자가 된 것입니다. 오늘날 주의 종들도 성령의 불을 받아 정화되어야 많은 영혼을 구원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설교한다고 하면서, 주의 종들을 악평하며 참소하며 믿음을 무너뜨리고, 교회를 무너뜨리는 말만 하며 영혼을 죽이는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목회자에게 가장 무서운 것도 칼이나 총보다 사람의 혀입니다. 참소하는 말, 훼방하는 말, 거짓말, 중상모략하는 말 등입니다. 한 치도 안 되는 그 혀가 교회를 파괴할 수도 있고, 목사를 매장시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사탄 마귀가 교회를 파괴하고 전도의 길을 막고 목사를 매장시키는 데 사용하는 무기가 혀의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좋은 말 복된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베드로전서 3장 10~11절에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고 말씀하십니다.
1. 성령의 지배를 받는 말을 하라
분명히 마귀의 지배를 받는 말이 있고, 성령의 지배를 받는 말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마가복음 13장 11절에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치 말고 무엇이든지 그 시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고 하신 것을 보면 성령의 인도와 지배를 받는 말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16장 17~18절에 보면, 성령을 받으면 말부터 달라지고, 말에 권세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말로서)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고 했습니다.
혀가 성령의 지배를 받으면 방언도 하고, 그 말로 마귀를 제압하고 추방하게 됩니다. 사도행전 2장에 성령 충만 받을 때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모양”이 보였는데 이것은 복음을 전할 때, 능력이 나타나게 됨을 의미합니다. 그 후 베드로가 설교할 때에 하루에 3,000명이나 회개했습니다. 이사야 선지가 소명을 받을 때에, 제단 숯불로 그 입을 지져주었다는 말씀도, 성령의 능력으로 말이 변화되고 권능이 함께 할 것을 의미합니다. 좌파나 이단이 교회를 파괴할 때, 불평의 말, 부정적인 말, 비판적인 말을 하는 사람에게 접근합니다.
반면에 마귀의 지배를 받는 말이 있습니다. 마귀가 교회를 파괴하고, 주의 종들을 매장시키는 일을 할 때에 혀를 사용합니다. 말로 상처를 줍니다. 요한계시록 12장 9절에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
땅으로 내어 쫓긴 마귀가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하나님을 대적하고, 복음을 전하는 주의 종들을 참소하고 훼방하며, 교회를 파괴하는 말들을 합니다. 요한계시록 12장 10절에 “…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accuser. slander)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 났고”라고 했습니다.
친북좌파들과 심지어 주의 종들의 혀와 입을 통해서 교회를 무너뜨리는 말을 하고, 주의 종들을 참소 비방하고, 수군수군하고 죽이는 일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린양의 피와 말씀으로 이기게 합니다. 요한계시록 12장 11절에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이 간악한 마귀를 그리스도의 피와 복음의 말씀과 죽음을 각오한 담대한 신앙으로 이긴다고 했습니다.
마귀가 사용하는 입중에 큰 혀와 큰 입(Big mouth)이 있습니다. 그것이 T.V나 라디오(radio), 기타 언론입니다. MBC가 금란교회를 온갖 거짓말로 참소, 비방, 중상모략하고 난 후, 교회는 끄떡도 하지 않고 계속 부흥되고 있으나, MBC 사장은 몇 달 후에 갑자기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미디어(media)법이 통과돼서 사단의 큰 입과 혀를 잘라 버려야, 선교의 마지막 주자로서 한국교회가 사명을 다하게 될 것입니다. 이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도록 온 교회가 목숨 걸고 기도해야 합니다.
미디어법이 통과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가장 마귀에게 이용당하지 않고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큰 입(방송)이, 제 생각에는 CTS(기독교 TV)와 극동방송이라고 봅니다.
2. 절대 믿음의 말만 해야 합니다
믿음을 무너뜨리고 교회를 파괴하는 말이 있고, 믿음을 세우고 확신을 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어찌하든지 믿음의 말만 해야합니다.
마가복음 11장 23~24절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믿음의 말)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또 다음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태산같이 크고 어려운 문제가 우리 앞을 가로막더라도,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믿음의 말로 담대히 꾸짖고 또 기도 할 때, 이루어진 줄 믿고 기도하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기도할 때 마귀의 세력을 향하여 꾸짖고 명령하는 기도를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꿈에라도 마귀가 좋아하는 의심의 말이나 불신앙의 말을 하면 안 됩니다.
3. 기도의 말을 많이 해야 합니다
길을 걸으면서도 차를 타고 가면서도 안테나를 세우고 무전으로 교신하듯이, 주님과 대화하고 기도하는 말을 많이 해야 합니다. 규칙적으로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는 것 외에, 생각으로도 기도하는 말을 많이 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6장 18절에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라고 했습니다. 신명기 4장 7절에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의 가까이 함을 얻은 나라가 어디 있느냐”라고 하신대로 우리가 생각으로도 늘 하나님과 대화할 때, 늘 하나님과 함께하는 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대화를 계속하지 않고 마귀와 대화하다가 범죄하고 타락했습니다.
물론 규칙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생명처럼 귀히 여길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다니엘은 기도하는 것이 발각되면 사자 굴에 떨어져 사잣밥이 되어 죽을 것을 알면서도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다니엘서 6장 10절에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 전에 행하던대로 하루 세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고 했습니다. 기도를 생명보다 귀히 여겼더니 사자 굴에서 살아났습니다.
4. 긍정적인 말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기독교인들은, 절망이란 없고 암담한 환경에서도 축복의 환경으로 바뀔 것을 믿기 때문에, 낙담하는 말이나 부정적인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함락하기 전에, 12명의 정탐꾼을 보내어 탐지하고 오게 했습니다. 12명의 정탐꾼 중에 10명은 절망적이고 낙담하는 말, 불평하는 말을 했습니다.
민수기 13장 27절에 “…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젖과 꿀이 그 땅에 흐르고 이것은 그 땅의 실과니이다”라고 해 놓고는, 28~33절에 “그러나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라고 절망적인 보고를 하자,
민수기 14장 1~3절에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백성이 곡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하고 불평과 원망과 절망적인 말을 했으나,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은 안타까워 옷을 찢으며 “우리는 그 땅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밥입니다.” 라고 긍정적인 말을 했습니다.
민수기 14장 9절에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민수기 14장 28절에 “…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라고 하셨고, 불평 원망하던 사람들은 다 죽을 때까지 40년 동안 맴돌다가, 구세대 중에는 여호수아와 갈렙만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5. 진실된 말을 해야 합니다
사탄의 특징은 거짓말을 잘합니다. 시편 15편에 주의 장막에 거할 자의 자격을 말씀하는데, 제일 먼저 정직하게 행하며, 진실을 말하며, 참소치 않고 훼방치 않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기 때문에 성령이 내주한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마귀의 특징은 거짓말쟁이입니다.
마귀는 “밤낮 참소하는 자”(계 12:9~10)라고 했습니다. 온갖 거짓말을 만들어 참소하고, 비방하고, 훼방하여 남을 죽이고 매장시킵니다. 공산주의는 사탄의 사상이기 때문에 거짓말쟁이이고, 약속을 안 지킵니다(딤전 4:1~2, 계 22:8, 계 22:15, 살후 2:11~12).
시간이 없어 더 말씀을 못 드리지만, 감사의 말, 칭찬하는 말을 많이 합시다.
우찌무라간조는 “만일 하나님이 인간을 저주하신다면 질병이나 실패나 배신이나 죽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어지지 않는 불신앙, 성경을 읽어도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 막힌 귀, 감사한 마음이 생기지 않는 메마른 마음으로 하실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말을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
잠 18:21 / 김홍도 목사
저의 부친은 체격도 좋고 건장하신 분이셨는데 젊었을 때부터 입버릇처럼 “나는 환갑 전에 죽는다.”라고 늘 말씀하셨는데, 말씀하던 대로 60세 환갑 전 해에 돌아가셨고, 저의 모친은 입버릇처럼 “나는 오래 살 거야. 지겹게 오래 살 거야.” 하시더니 93세에 소천하셨습니다. 말의 힘이 얼마나 큰가를 알 수 있습니다. 본문 잠언 18장 21절에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좋은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좋은 열매를 거두고 악한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악한 열매를 거두며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말을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실 때에도 말씀으로 창조하신 것 같이 사람의 말도 그의 인생을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작은 키가 큰 배의 방향을 결정하듯이 사람의 작은 혀가 그의 인생을 나쁘게도 좋게도 결정하는 것입니다. 혀는 가장 작은 지체이지만, 인생의 가장 큰 문제를 일으킵니다(trouble maker). 미국의 한 여자는 못된 혀를 가지고 있어서 전화통을 들면 몇 시간
씩 떠들어 대고는 하였는데, 어느 날 목사님을 찾아와 혀로 지은 죄를 회개하면서 혀를 강단에 좀 올려놓았으면 좋겠다고 하니까 목사님이 “그렇게 큰 혀를 놓을 만한 강단은 없습니다.”라고 했답니다. 이 혀가 인생을 잘되게도 하고 망하게도 합니다. 교회가 성도들의 혀 때문에 부흥되기도 하고 파괴되기도 합니다. 지옥의 참담한 광경을 보고 온 사람의 간증 가운데 혀로 죄를 많이 지은 사람들은 장대에 혀를 못 박아 늘어뜨린 곳을 보았는데, 끔찍한 고통에서도 내려올 수가 없더랍니다.
1855년 4월 22일 에드워드 킴볼(Edward Kimball)이란 사람이 시카고(Chicago)를 방문했다가 구두수선공인 무디(D. L. Moody)라는 사람을 만나서 그리스도께로 인도했는데, 그가 기독교 역사상 가장 능력 있는 부흥사가 되어서 수백만 명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람의 말이 남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말의 힘은 하나님이 주신 가장 큰 힘이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야고보서 1장 26절에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1. 비판의 말(Criticism)
제일 먼저 조심해야할 말은 비판의 말입니다. 목회자들이나 성도가 짓는 죄 중에 가장 많은 죄가 남을 비판하는 말일 것입니다. 예수님이 산상수훈을 말씀하시다가 마지막 7장에 가서 비판에 대해서 말씀하
셨습니다. 마태복음 7장 1~2절에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자기 눈에는 들보 같은 큰 죄가 있는데, 남의 눈에 있는 먼지 같은 것을 흉보면서 그것을 빼라고 하느냐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① 남을 비판하는 만큼 자기도 비판을 받게 되고 ② 남을 좋게 평가하는 사람은 자기도 좋은 평가를 받고, 남을 악평하면 자기도 악평을 받게 된다(헤아림). ③ 모든 비판에 대해서 하나님께 심판을 받게 된다고 했습니다. 잘못된 비판이 참 많습니다. 예수님이 기사와 이적을 행하심을 보고 “귀신의 힘으로 행한다.”고 비방할 때, “다른 죄는 다 용서받되 말로 성령을 모독하는 죄는 용서 받지 못한다.”(마태복음 12장 31절) 하시고, 그러고 나서 마태복음 12장 36절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라고 하셨습니다. 쓸데없는 말 한마디라도 꼭 심판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말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 사람은 눈앞에만 보지만 하나님은 영원한 미래까지 보시며 ? 사람은 겉모습만 보지만 하나님은 속 중심을 보십니다. 먼저 자신을 비판한 후에, 나도 죄인인데, 중심을 보시는 분은 하나님이신데 하는 마음을 가지고 조심스럽게 비판해야 될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3절에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2. 사탄이 가장 좋아하는 두 가지 말
① 거짓말입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마귀의 특성은 속이는 자요, 거짓말쟁이며 거짓의 아비입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22장 15절에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지옥) 있으리라”, 요한계시록 21장 8절에 지옥에 가는 자들을 열거하는 가운데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이단 종교나 거짓말하는 자들은 사탄에게 사로잡힌 자들이고, 박태선과 같이 성령의 역사를 하던 사람도 거짓말을 하다보면 악령에 사로잡히게 됨을 명심해야 됩니다. 항상 무슨 말을 할 때, 내 말 속에 속임수나 거짓이 있지 아니한가 살펴보아야 합니다. 저는 자식들 손주들을 위해 기도할 때 진실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먼저 기도합니다. 거짓된 사람은 그 믿음도 거짓된 믿음이 되기 쉽습니다.
② 참소(accuser ο?κατηγορω?ν-호 카테고론)
사탄의 하는 일은 남의 잘못을 고발하고 비난하고 들춰내고 중상모략 비방하여 불행과 고통을 갖다 주어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하고 결국 멸망케 하는 것입니다. 욥기 1장 6절부터 보면 사탄이 하나님께 나타나서 참소하려 할 때 하나님께서는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8절)”라고 하실 때, 사탄은 “하나님이 그렇게 많은 재산과 복을 넘치도록 주시기 때문이 아닙니까, 주의 손을 펴서 소유물을 쳐 보십시오. 틀림없이 주를 욕할 것입니다.”라고 하며,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 사탄이 욥을 치기 시작하여 그 많던 재산이
하루아침에 불타고 도적맞고 죽임을 당했음에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으니까, 다음에는 태풍이 불어와 집이 무너져 열 자녀가 다 죽고 그래도 원망 불평하지 않으니까, 욥의 온몸에 악창이 나서 피고름이 줄줄 흘러내렸지마는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사탄이 패배하여 도망하고 욥은 갑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사탄은 지금도 사람의 혀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들을 비방하고 중상 모략하여 하나님을 배반하게 만들고 매장시키며 교회를 파괴하는 일을 합니다. 요한계시록 12장에 보면 붉은 용이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마귀가 하늘에서 성도들을 밤낮 참소하다가 땅으로 내어쫓겼다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12장 9절에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고 했습니다. 하늘에서 누구를 참소하다가 내어 쫓겼을까요? 죄 사함을 받고 용서받은 성도들의 죄를 들춰내고 비방하고 고발하다가 쫓겨났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은 첩을 얻고 거짓말을 했다고, 모세는 구스여자를 첩으로 얻었다고,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를 범하고 그의 남편까지 죽였다고, 사도 바울(Paul)은 그리스도인을 핍박하고 죽인 것, 수제자 베드로(Peter)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것 등을 들춰내고 고발하고 비방하다가 결국 땅으로 내어 쫓겨났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죄 없는 피를 다 쏟아, 인류의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죗값을 다 치르시고, “다 이루었다”(죗값을 다 치렀다는 뜻)고 하셨는데, 사탄은 지금도 끊임없이 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탄, 마귀를 이기려면 예수의 구속의 피, 대속의 피를 끊임없이 믿고 의지하고 주장해야 이길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2장 10절에 보면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11절에는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이 말씀에서 사탄을 이기고 승리하는 방법이 “예수의 피”와 “말씀”과 “죽음을 각오하는 신앙”임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참소하는 마귀”는 예수의 피로만 이길 수 있습니다.
마귀의 사상인 공산주의와 주체사상에 물든 사람들은 남한의 교회들 때문에 적화통일을 못 하니까 교회를 비방, 참소하는 것인데, 이것도 모르고 기독교계 인사들까지도 사탄의 편을 들어서 교회를 같이 비방, 참소하는 것을 볼 때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천주교를 비방 참소하는 것 보았습니까? 없습니다.
3. 불평의 말
사탄이 하나님께 참소하여 그 많던 재산을 하루아침에 다 빼앗아가고, 10남매가 집이 무너져 다 죽고, 그래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으니까 온몸이 악창이 나서 피고름이 흘러내리며, 구더기가 바글바글하는데도 욥은 자기 생일을 저주할지언정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이 계신다면 내가 왜 이런 고통을 받겠느냐” 하는 말을 할 법도 한데, 욥은 결코 불평의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욥의 인내가 그렇게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미국 목사님의 글 가운데, 어떤 기독교 가정은 주일마다 식사시간에 목사를 불에다 구워먹는다는 글을 읽은 일이 있습니다. 부모의 말이 자식들에게 큰 영향을 끼칩니다. 부모의 비판의 말, 불평의 말 때문에 자녀들이 교회를 떠나게 하고, 결국에는 지옥가게 만들기도 합니다. 저는 장로를 세울 때,
장로님은 좋으나 그 가족들 중에 불평의 말, 비판의 말을 하기 때문에 장로를 세우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장로가 되었다가도 제명하기도 합니다. 마태복음 12장 34절에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라고 하셨고, 마태복음 12장 36절에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잠언 26장 20절에 “나무가 다하면 불이 꺼지고 말쟁이가 없어지면 다툼이 쉬느니라”고 했습니다. 시편 39편 1절에 “내가 말하기를 나의 행위를 조심하여 내 혀로 범죄하지 아니하리니 악인이 내 앞에 있을 때에 내가 내 입에 재갈을 먹이리라”고 다윗이 말했습니다. 시편 37편 1절에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라고 했고, 다윗은 “내 입에 파수꾼을 세워주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4. 더러운 말, 희롱의 말
에베소서 4장 29절에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에베소서 4장 30절에는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더러운 말, 희롱의 말, 음담패설의 말을 할 때, 성령님은 근심하시고 탄식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제가 아는 훌륭한 장로님 한 분은 사업도 잘하고 행복한 가정생활을 했는데, 어느 날 다방에서 차를 마시면서 다방 마담에게 농담 한마디 했다가 죄의 깊은 수렁에 빠져서 사업도 망하고 가정에 우환질고를 당해 큰 환난을 당했다는 고백을 들었습니다
농담이나 희롱의 말이 마귀와 연결시키는 다리 역할 하는 것을 알고 명심해야 합니다. 유머가 있는 것은 좋지만, 음담패설, 상스러운 말, 세속적인 더러운 말은 안 해야 됩니다.
마귀가 좋아하는 비판의 말, 거짓말, 참소하는 말이나 불평의 말, 더러운 농담이나 희롱의 말 등을 조심해야 됩니다. 잠언 17장 27절에 “말을 아끼는 자는 지식이 있고 성품이 냉철한 자는 명철하니라”라고 했습니다. 과도하게 흥분하지 말고 냉철함이 필요합니다. “진실하고 성실하게 말하는 자는 그 사람이나, 그 후손을 하나님이 귀히 쓰신다”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57장 19절에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는 자 여호와가 말하노라 먼 데 있는 자에게든지 가까운 데 있는 자에게든지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내가 그를 고치리라 하셨느니라”, 이 말씀에서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는 자”라는 말씀의 “창조”는 “바라”(bara)라는 말씀인데,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뜻으로 창세기 1장 1절에 나오는 말씀과 같은 뜻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말에는 창조의 능력이 있습니다. 말을 바꾸면 인생이 바뀝니다. 예레미야 15장 19절에 “…네가 만일 헛된 것을 버리고(그전 번역에는 천한 것을 버리고, 라고 했음) 귀한 것을 말한다면 너는 나의 입이 될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10절에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라고 하셨습니다. 말이 바뀌면 인생이 바뀝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