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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어질고 너그러운 행실과 덕스러운 품성, 나아가 완성된 인격과 덕망을 쌓아 나가는 것을 갈구해 왔다. 더 나아가 육체가 아닌 차원 높은 원래적인 나의실제 모습인 원래 몸의 본마음으로 수행 중 파고들어가 원래부터 지금까지의 나 자신이 본 마음속에 스스로 심어 놓은 선과 악을 바로 보고 바로 아는 데 큰 뜻을 담고 있다. 이로 인해 자연히 참된 삶의 이리를 알고 되고 바르게 살아가는 법을 깨우치게 된다. 궁극적으로는 나 자신의 끝이 없고 연속적인 불행과 고통의 모든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로움 속에서 영원하고 영구한 참 행복을 누리고자 끝없이 갈등을 이겨낸다.
몸은 악의 근원도 선의 근원도 아니다. 악은 인간의 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근원이 된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악이란 무엇이며, 선이란 무엇일까? 선은 객관적으로 선한 것과 주관적으로 선한 것이 있다. 나에게 좋은 것이 다른 이에게도 좋은 것이어야 객관성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선은 주관적으로나 객관적으로 바람직하고 좋은 것이어야 한다. 선은 그것을 올바르고 좋은 것으로 체험하는 자의 인격 안에 받아들여진다. 선은 인식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그것을 구체적으로 체험할 때 선의 진가가 나타난다. 그러므로 선은 인격적인 체험을 통해 행복으로 나타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를 위시한 서구 철악의 전통에서는 선이란 한 존재의 존재 목성 달성에 이로운 것을 말한다. 그 이로운 것은 물질적인 것일 수도 있고 윤리적인 질서가 될 수도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선을 세 가지로 분류하여 형이상학적 선, 윤리적 선, 심미적인 선으로 구분하였다. 형이상학적 선은 진리를 말하며, 윤리적 선은 도덕적으로 착한 선이며, 심미적 선은 아름다움을 말한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선은 존재 안에 포함되어 관찰된다. '선은 바람직하고 좋은 어떤 것이다.' 그것이 있어야 좋은 것이지, 그것이 없으면 좋음 자체도 없는 것이다. 참된 것, 아름다운 것, 착한 것은 인간이 추구하는 선이다. 그러나 그것이 존재하지 않으면 선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선의 기초를 존재에 두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나 토마스 아퀴나스의 입장이다. 그래서 악이란 있어야 할 선의 결핍이라고 보았다.
한편 선은 객관적으로 선한 것과 주관적으로 선한 것이 있다. 나에게 좋은 것이 다른 이에게도 좋은 것이어야 객관성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선은 주관적으로나 객관적으로 바람직하고 좋은 것이어야 한다. 선은 그것을 올바르고 좋은 것으로 체험하는 자의 인격 안에 받아들여진다. 선은 인식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그것을 구체적으로 체험할 때 선의 진가가 나타난다. 그러므로 선은 인격적인 체험을 통해 행복으로 나타나게 된다.
일반적으로 악(malum, evil)이란 '선'에 반하는 것으로 나쁜 것, 나쁜 일,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일 등을 말한다. 철학적으로 악은 윤리악과 자연악, 형이상학적 악으로 나눈다. 윤리악이란 도덕적 기준에 맞지 않는 의지나 나쁜 행위를 말하며, 자연악이란 인간에게 해로운 병, 천재 지변, 나쁜 제도나 나쁜 풍속, 나쁜 사회 현상을 말한다. 형이상학적 악이란 인간이 자기 존재의 유지와 완성을 방해하는 불행, 슬픔, 고통, 죽음, 병, 추함 등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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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왜 우리는 몸에 대한 이중적 잣대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한 것인가? 오늘날의 구체적인 몸담론들과 관련하여(연예인 누드, 웰빙 기타) 말해보자. 신체, 그중에서도 벗은 몸은 아름다움과 호기심의 대상일 뿐 아니라 전통적으로 예술의 소재였다. 근래 들어선 예술일 뿐 아니라 인문학의 주요 연구대상으로서 몸 연구 몸담론이 활기를 띠고 있다. 성적인 욕망만을 떠올리며 벌거벗은 몸을 부끄러워하고 감추려들던 구태에서 벗어나 인간의 근원적인 모습과 감정을 드러내는 대상으로서 몸을 공개적으로 말하고 소통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의 몸을 등급으로 매기고 돈으로 환산하는 일의 선두에는 연예오락, 방송, 광고가 서 있다. 드라마나 영화가 한 편 뜨면 주연배우들의 몸값은 하루아침에 억대를 호가하게 된다. 출연료라는 이름의 몸값은 천문학적인 CF개런티로 부풀려져서 세간의 따끈따끈한 가십거리가 되곤 한다. 누가 얼마를 받았더라, 누가 얼마짜리 CF를 땄더라는 둥 마치 광고의 핵심이슈가 여기에 있기라도 하듯이 흥분하고 있는 것이다. 먹어도 먹어도 식욕을 포기하지 않는 동물은 지구상에 인간밖에 없다고 먹은 것을 후회하고 게워내고 쓸어내느라고 호들갑을 떠는 동물도 인간밖에 없다. 그런 탐욕이 사라지지 않는 한 몸 만들기는 가장 돈되는 산업으로 번창할 것이다. 몸에 대한 관심이 갑자기 높아진 데에는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생산과 절제를 미덕으로 여기던 전통사회에서 소비와 레저 중심의 사회로 판이 바뀐 것이다. 몸은 억제하고 옥죄는 것만이 농사가 아니라는 사고가 지배하게 되었다. 페미니즘의 확산도 몸에 대한 관심을 부추겼다. 남성 중심의 사회가 어떻게 여성을 학대하고 통제해 왔는지, 상업광고나 포르노그래피에서 어떻게 여성의 몸이 이용되고 있는지 보여줌으로써 결과적으로 몸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인공장기의 개발과 사이버네틱스의 대두도 인체에 대한 신비감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미국의 역사학자 브럼버그(brumberg)는 <몸 프로젝트>라는 연구에서 대중매체가 여성의 몸에 가하는 압력을 비판하면서 외모가 여성의 운명이 되어가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동양학자 김용옥의 주장을 빌자면 몸담론의 핵심은 공부(工夫)에 있다. 이소룡이 잘 하는 쿵푸와 같은 것 말이다. 체력을 단련하듯, 학문을 닦듯, 기술을 익히듯 숙달된 상태에 이르는 과정이 공부인 것이다. 그런과정에서 단련된 몸이 아름답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시각에서는 오로지 두뇌를 발달시키는 데 치중하는 우리 교육이 정상이 아니다. 몸의 단련을 통해 육체와 정신을 조화시키는 교육이 참교육이라는 주장을 한다. 결국 몸에 대한 관심은 자칫 쾌락만을 좆는 향략주의로 볼 것만은 아니라는 면죄부를 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유난히 몸을 아끼고 다듬는 풍조가 결코 천박하거나 우려할 일이 아닌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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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2] 전체주제는 "몸"인데, 명제 하나하나에 더 중점을 두신것 같네요ㅡ 수고하셨습니다ㅡ
[3]많은 자료를 인용하시고 조사하신거 같네요.. 사진이 안보이는게 아쉽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2] 많은 얘기를 하고자 했던 글이었습니다... 사진까지 붙였는데...안보이는게 아쉽네요..수고하셨습니다,,^^
[3] 많은 자료를 조사하셨네요...나름대로 자신의 생각도 펼치셨구요...수고하셨습니다~~
[3] 많은 자료를 조사하셨네요...나름대로 자신의 생각도 펼치셨구요...수고하셨습니다~~
[4] 벗은 몸에 집착하는 것은 벗지 않고 산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때문이며, 몸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 그만큼 몸 아닌 무언가에 집착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