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굽다 / 남정인
어느 산속 숯가마, 숯도 굽지만 사람도 굽는 곳이었다. 뜰을 지나 토굴 같은 가마 앞에 섰다. 사람들이 마대로 온몸을 휘감고 있었다. 외부세계에 노출되지 않으려고 보호색으로 위장하는 것처럼. 누가 입었는지도 모르는 낡은 옷과 북풍한설 몰아치는 전쟁 영화에서나 봄직한 마대를 몸에 감고 뒤집어썼다. 너무 험한 것 아닌가. 불결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거적을 들치고 숯가마로 들어가는 중년쯤 되는 여자를 바싹 따라붙었다. 들어서는 순간 수만 개의 바늘이 찌르는 것처럼 따가웠다. 채 여며지지 못한 마대 사이로 불송곳이 찌르고 들어와 살이 금방 익을 것만 같았다. 첫 입문부터 너무 고단위를 택했나 싶었다. 마대를 두를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나도 모르게 외마디가 나왔다.
"으으으…"
그대로 앉아 움직이지 않으면 견딜 만할 거라고 누군가 말했다. 꽃탕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말도 들렸다. 타버릴 것만 같은데 꽃이라는 예쁜 말을 붙이다니. 그다음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오로지 얼마만큼 견딜 수 있느냐 그것뿐이었다. 처음엔 구워지는가 싶었는데 땀이 나면서 쪄지는 현상이 되었다.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대오각성이라도 할 것처럼 머릿속도 하얘졌다. 그 시간이 길어지면 득도의 경지에 이를지도 모를 일이었다.
처음이라서 견디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은 오기가 발동했다. 한사람이라도 먼저 나간 뒤에 나가리라고 이를 악물었다. 드디어 누군가가 들어오고 한 사람이 나갔다. 거적이 들춰진 틈을 타서 나도 빨리 뒤따라 나갔다.
뛰쳐나와 머리에 쓰고 몸에 둘렀던 마대를 팽개치듯 벗어 던져버렸다. 나도 평상에 던졌다. 언젠가 응급실에서 맞았던 모르핀처럼 싸한 기운이 온몸에 퍼졌다. 열기 속에서 치열했던 생의 의욕도 나른해지면서 몽롱했다. 꼭 끼는 코르셋의 울혈이 서서히 풀어지듯 눌렸던 가슴이 압박에서 벗어나는 해방감이었다.
나무가 숯이 된 자리. 새로 태어나는 산실 같은 곳일까. 온몸이 화려한 절정을 향해 타오르던 순간에 숨을 멈춘 극한의 인내로 나무는 숯이 된다. 재가 되지 않고 구워지는 것이다. 숯, 어떤 색도 틈입을 허하지 않는 완벽한 검은 색과 형체가 있음에도 무게를 다 덜어낸 가벼움, 나도 그렇게 굽고 싶었다. 내가 달라지고 가벼워져야 살아낼 것만 같았는데 일시적이라도 방편은 될 것 같았다.
그 즈음 나는 연주창 터지듯 하다는 말을 실감하던 고약한 시절이었다. 가끔 놀러 갔던 옷가게가 있었다. 그날, 나를 뒤따라 들어온 젊은 여자가 살 빠지는 약을 달라고 했고, 주인 여자가 약을 내놓자 건장한 남자 세 명이 들이닥쳐 마약 단속반이라며 가게 안에 있던 여자들을 다 차에 태웠다. 나도 떠밀려 탔다. 차가 떠나려 할 때 은행에 볼일 보러 나왔다 들렀을 뿐인데 내가 가야 하는 이유가 뭐냐고 강력하게 항의했더니 나만 내려놓고 떠났다. 주인 여자는 그 약에 마약 성분이 있다는 것을 몰랐어도 실형을 받았다. 그 과정에 어처구니없게도 모두 내가 고자질했다는 눈치였다. 그날 나만 차에서 내렸다는 것, 모두 약을 먹었는데 나만 먹지 않았다는 것, 내 뒤에 들어 온 여자가 약을 사려하자 마약 단속반이 들이닥친 것. 게다가 내가 관공서 쪽에 지인이 많은 것도 문제였다. 더 기가 막히는 것은 무당이 고발한 사람은 단발머리를 한 여자라고 말했다는 것이었다. 내가 바로 단발머리인데, 의심을 받는 터라 발길을 끊을 수도 없었다. 묻지도 않는데 내가 아니라고 하면 더 우스운 꼴이 될 것만 같았다.
그들의 프레임에 갇히고 만 나는 옴짝달싹 못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살 빠지는 약을 먹지 않아도 살이 내내렸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비굴해지고 처참한 것인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분풀이할 대상이 없어 한동안 자해하듯 불가마에 갔다. 주로 꽃탕에 들어갔다. 수련이라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고 결국 주인 여자가 사과는 했지만 증오는 가시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대하는 태도에 찝찝한 기분이 가셔지지 않았다.
어느 날인가, 키가 크고 바짝 마른 남자가 내 곁으로 옮겨왔다. 맨 끝 가마에서 부삽에다 고기를 굽는 냄새를 피해 온 것 같았다. 물에 빠졌다 나온 것처럼 땀에 젖어있는 남자는 오십 대 초반쯤 돼 보였지만 사실은 더 젊은지도 몰랐다. 각목에 빨래를 걸쳐 놓은 듯한 마른 몸, 괜히 서늘했다. 남자 바로 뒤따라 그의 어머니로 보이는 할머니가 큰 가방을 들고 와서, 이것저것 내놓았다. 보온병과 도시락과 약으로 보이는 서너 개의 파우치와 과일과 아들의 물건을 정성스럽게 늘어놓았다.
남자는 암 환자였다. 병원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치료는 끝났다 했다. 아직 젊은데…. 텃새처럼 숯가마 주변에서 둥지를 틀고 있던 아들과 어머니. 이글이글 타오르는 숯의 잉걸을 바라보는 모자의 눈빛이 간절했다. 할머니는 아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수시로 뭔가를 먹이려 했고 남자는 금방 폭발이라도 할 것처럼 예민했다.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그 모습이 안타깝다 못해 처절했다. 할머니는 아들이 안 보이면 눈물을 흘렸다. 어제 병원에 갔다 왔다면서 자기가 대신 죽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남자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오빠가 떠올랐다. 마지막 순간까지 살고 싶어했던 오빠의 눈빛에 나는 미안했다. 그리고 다음 숨을 쉬지 못한, 그 간단한 행위가 삶과 죽음의 경계라는 것에 두려웠다. 아직은 살아있다는 위세처럼 그 남자의 눈빛은 아직은 분노에 차 있었다. 그것마저 사그라지면 곧 죽음을 맞이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오빠를 지켜본 경험으로 나는 알고 있었다. 죽음 직전, 삶에 대한 절실함을 어디에 비할 수 있을까. 그 모자 앞에선 내가 겪었던 상황이 하찮기 이를 데 없었다. 숯은 불이 구워주지만 나를 굽는 것은 삶에 대한 열정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