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언 리
[Vivien Leigh]
미국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릿 오하라역의 성공으로
세계적인 스타가 된 영국 출신의 여자 배우.
1913년 11월 5일 차밭으로 유명한 인도 웨스트 벵갈 다르질링(Darjeeling)에서 출생하였고
본명은 비비안 메리 하틀리(Vivian Mary Hartley)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인도에서 활동하는 사업가였다.
5세 때 영국으로 귀국한 후, 파리 꼬메디 프랑세즈에서 연극을 배우고
런던 왕립연극학교에서 연기공부를 하였다.
1934년 여학생 역으로 영화에 출연한 것을 시작으로
여러 무대와 영국과 미국 영화에 출연하였다.
대표적 연극무대는 엘시노어에서 공연한 《오필리아》(1937)가 대표적이다.
그녀의 영화는《시저와 클레오파트라 Caesar and Cleoptra》(1945), 《안나카레리나 Anna Karenina》(1948)에서 연기하였다.
그녀의 대표작인《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에서
여주인공 스칼릿 오하라역(役)의 성공으로 세계적인 배우가 되었으며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비비안 리의 할리우드 주연 데뷔는 너무나 신화적인 성격을 띠었기 때문에
그 이후에 찾아온 어느 정도의 하강은 거의 불가피한 일이었다.
그녀가 스칼렛 오하라 역에 캐스팅된 이야기는 거의 동화 같다.
제작자 데이비드 O. 셀즈닉이 2년 반 동안 5만 달러를 쏟아 부어 완벽한 여배우를 찾아 왔는데 거의 마지막 순간에 그녀가 나타난 것이다.
리는 연인이자 장차 남편이 될 로렌스 올리비에를 만나기 위해 뉴욕을 방문 중이었는데,
이 커플을 만난 셀즈닉이 그녀에게 스크린 테스트를 제안했다.
1930년대에 그녀가 출연한 영국 영화 몇 편이 좋은 반응을 얻었으니
그녀가 할리우드에서 전혀 알려지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결코 스타라고는
할 수 없었으므로 셀즈닉이 그녀를 캐스팅한 것은 위험부담이 따르는 모험이었다.
그녀의 신체적 특징이 스칼렛이라는 인물에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는 점이 도움이 되었고,
억양과 스타일의 문제는 조심스럽게 다듬어졌으며 결국 그녀의 연기는 지금까지도 보는 이를 강렬하게 사로잡고 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 직후에 할리우드는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그녀의 성공을 확고히 다져보려는 노력으로 「애수(1940)」를 만들었고
거기서도 그녀는 똑같이 눈부신 연기를 보여주었지만 이후 9편의 영화에만 출연했다.
대부분 해밀턴 부인이나 클레오파트라, 안나 카레니나 같은 사극이나 고전극의 역할이었고
연극 무대에서도 폭넓은 활동을 벌였다.
리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1951)」에서 또 한 번 남부 미녀를 연기해 두 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지만 그녀의 연기 인생의 후반부는 정신적, 육체적 질병으로 흐려졌다.
그녀는 결핵에 걸렸고 극단적 조울증으로 고통을 받았으며 함께 일하기 힘든 사람이라는
평판을 얻었다.
그녀의 정신 건강과 그에 따르는 감정의 기복과 엉뚱한 행동은
올리비에와의 결혼생활에도 먹구름을 드리워 결국 1960년에 이혼했다.
1967년 7월 8일 결핵으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