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산업과 이순신
최근 삼성전자의 신작 '갤럭시 Z 폴드8'이
북미와 일본, 유럽 등 해외 주요 시장에서
줄줄이 품절 사태를 빚으며
역대급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SK하이닉스 역시 AI 반도체의 심장인
HBM 시장을 완벽하게 장악하며
연일 승전보를 타전하고 있다.
애플, TSMC, 마이크론 그리고 중국이라는
거대한 외세가 포위망을 좁혀오는
글로벌 반도체·스마트폰 대전(大戰)에서,
이 두 기업은 마치 임진왜란 당시 23전 23승의
신화를 썼던 이순신 함대처럼 처절하고도
경이로운 무패 행진을 이어가는 중이다.
그런데 이 화려한 승전보의 이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문득 역사적 기시감이 스친다.
이순신 제독을 진정으로 괴롭혔던 적은
과연 바다 건너 왜군이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무패를 안겨줬던 그들이 아니다.
그를 죽음의 문턱까지 몰고 간 진짜 적은,
무능한 주제에 전공을 시기하고 끝없이
무리한 출병을 강요하다 기어이 무패의 제독을
백의종군이라는 고문장으로 끌고 갔던 군주다.
훗날 일부 사학자들이 마지막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이 갑옷을 벗고 적의 총탄에
스스로 몸을 내던진 것 아니냐는
슬픈 상상을 제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쟁이 끝난 뒤 열등감에 사로잡힌
선조의 끝없는 정치적 숙청과 고문을 견디느니,
차라리 바다에서 명예로운 죽음을 택했다는
이 처절한 자살설은 그 자체로 당시 군주인 선조의
패악질이 얼마나 지독했는 지를 증명하는 징표다.
무패의 장수를 가장 절망하게 만든 것은
적의 강대함이 아니라,
내부 권력자의 찌질한 횡포였던 것이다.
400년이 흐른 2026년 8월,
바다 건너 외세와 피 튀기는 혈투를 벌이는
현대판 이순신들의 등 뒤로 또다시 익숙한
징발장과 고문 도구들이 날아들고 있다.
그렇다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이 기업들의
숨통을 조이는 선조의 재림은 도대체 누구인가?
굳이 긴말할 필요가 있을까.
국가 균형 발전이라는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워,
당장 글로벌 첨단 팹(Fab) 경쟁에 쏟아부어도
모자랄 피 같은 자본을 초과이익이라는 이름으로
청구서를 들이밀고, 호남 지역에 천조 규모의
반도체 클러스터로 강제 할당하라고
윽박지르는 여의도의 거대 권력.
오직 자신들의 표밭 다지기를 위해
기업의 팔을 비틀어 지방에 억지로 콘크리트를
부으라고 강요하는 선조의 완벽한 환생이다.
올해 예상 영업이익을 통째로 뒤흔드는
45조 원대 성과급을 내놓으라며
파업의 몽둥이를 휘두르는 귀족 노조,
그리고 그 배후를 든든하게 비호해 주는
좌파 기득권 카르텔 역시 제독의 군량미를
뜯어먹던 부패한 조정 관료들의 모습 그대로다.
밖에서는 세계 1위 애플과 중국의 반도체 굴기라는
거대한 전란이 벌어지고 있는데, 성안의 지도자는
전쟁 영웅의 목에 칼을 들이밀고
전리품을 내놓으라며 윽박지른다.
삼성과 SK가
글로벌 시장에서 연일 매진 사례를 기록하며
무패의 전적을 쌓아 올려도, 정작 이 기업들은
현대판 선조의 끊임없는 정치적 청구서와
핍박에 시달리며 속으로 피눈물을 삼키고 있다.
만약 머지않은 미래에
이 나라의 반도체와 첨단산업이 무너진다면,
그것은 결코 실리콘밸리나 대만의 경쟁자들에게
패배해서가 아닐 것이다.
권력자들의 끝없는 착취와 포퓰리즘에 지쳐,
차라리 갑옷을 벗어 던지고 스스로 벼랑 끝으로
몸을 내던지는 비극적 엔딩일 확률이 높다.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암군이 먼저 숨통을 끊어 버리는 나라,
4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영웅을 자살로
몰아넣는 이 기괴한 자해극의 엔딩 크레딧은
한없이 씁쓸하기 만 하다.
(박주현) 님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