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서 소개하는 2장의 활쏘기 사진은 '조지 클레이턴 포크'가 찍은 것 입니다.
☞ 위키백과, 『조지 클레이턴 포크』,
http://ko.wikipedia.org/wiki/%EC%A1%B0%EC%A7%80_%ED%81%B4%EB%A0%88%EC%9D%B4%ED%84%B4_%ED%8F%AC%ED%81%AC
그는 1883~1887년 조선에 있으면서, 미국 공사관에서 공사 대리를 역임했습니다.
2장의 사진을 찍은 사람과 시기를 알 수 있는 것이구요.
<사진 1. 북한산에서의 활쏘기 훈련
Archery drill in the Puk-Han (mountain fortress)
visited with the com-in-chief May 31 1985>
☞ 사진 출처「Asia and Middle East」: http://collections.lib.uwm.edu/cdm/singleitem/collection/agsphoto/id/192/rec/8
<사진 1>은 북한산에서의 활쏘기 훈련 모습입니다.
DRILL은 반복 훈련(Exercise)이란 뜻으로 해석됩니다.
사진 뒷면의 글자는 앞면 좌측 상단 부분이 첫행 첫글자가 되는것 같습니다.
글자가 사진 앞면으로 배어 나와 보이기에, 글자는 반전되어 보이구요.
뒷면의 글자들은 사진 아래 부분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사진들을 화일에 정리하면서, 앞면으로 옮겨 적은 것 같구요.
정면을 보고 쏘고 있는 궁사의 특징은
좁은 보폭과 갓을 쓰고 있다는 것 입니다.
갓을 쓰고 있어서 그런지, 활대가 많이 뉘여 있네요.
장소는 북한산의 연융대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Mountain Fortress 라는 것에서 군대가 주둔한 산악 요새 정도로 번역되기 때문입니다.
연융대는 영조 때 탕춘대에서 연융대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주소는 서울 종로구 홍지동 산 4번지가 되겠네요.
☞ 위키백과, 『홍지문 및 탕춘대성』, http://ko.wikipedia.org/wiki/%ED%83%95%EC%B6%98%EB%8C%80%EC%84%B1#.ED.83.95.EC.B6.98.EB.8C.80.EC.84.B1
당시 연융대에는 1884년까지 총융청이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위치는 지금의 세검정 초등학교이었다고 하네요.
☞ 총융청에 대하여, 출처 : 『임오군란의 흔적과 영향 - 기타』, http://dev.seoulstory.org/theme/list/8/1364
동행한 사람도 명시되어 있는데, Com-IN-CHIEF(총사령관, Commander in Chief) 이라고 표시되어 있는 것 같네요.
촬영 시기는 1885년 5월 31일로 추정됩니다. (May 31 1982라고 쓰인 것 같으나, 그는 1883년에 조선에 왔죠.)
<사진 2. 조지 클레이턴 포크>
☞ 『George Foulk』의 사진, http://www.samuelhawley.com/hermitkingdom1.html
다음은 조지 포크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는 미국에 파견되었던 보빙사의 통역관으로 근무하다가,
유럽을 걸쳐 조선에 공사관 무관으로 부임하게 됩니다.
☞ 위키백과, 『보빙사』, http://ko.wikipedia.org/wiki/%EB%B3%B4%EB%B9%99%EC%82%AC
그는 갑신정변의 혼란을 겪었으며,
전임 공사관 푸트는 아내가 죽자 귀국해 버립니다.
☞ 위키백과, 『루시어스 푸트』,http://ko.wikipedia.org/wiki/%EB%A3%A8%EC%8B%9C%EC%96%B4%EC%8A%A4_%ED%91%B8%ED%8A%B8
전임 공사관이 공금까지 갖고 날라버린 상황에서,
훌륭하게 공사 대리 임무를 수행합니다.
그가 모은 그의 노트는 미해군에서도 우수하게 평가할 만큼,
조선에 대한 정보들을 잘 수집하고 있구요.
한마디로 스파이질 좀 잘한 것이지요.
조지 포크의 노트는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마이크로 필름 형태로 열람할 수 있습니다.
그의 일기와 노트들은 Samuel Hawley에 의하여 책으로 출간되기도 하였습니다.
☞ 조지 포크의 마이크로 필름 국립중앙도서관 정보 : George Clayton Foulk papers, 1876-1889
☞ 조지 포크의 편지들 : Samuel Hawley, 『America's man in Korea : the private letters of George C. Foulk, 1884-1887』,Lexington Books, 200년
☞ 조지 포크의 일기장 : Samuel Hawley, 『Inside the hermit kingdom : the 1884 Korea travel diary of George Clayton Foulk』,Lexington Books, 200년
20년전 발생했던 미국 상선 셔먼호의 방화 사건에 대한 그의 조치로 판단해 보면,
그는 그래도 조선을 사랑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한국어를 익힌 미국인으로서, 조선말을 할 줄 아는 유일한 장교였습니다.
당시 조선은 이런 그를 무척 반겨 주었겠지요, 일단 말이 통하니까요.
고종의 모습을 가까에서 담을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사실을 반증하기도 합니다.
<사진 3. 포크가 찍은 30세의 고종
The king of Korea on his throne, age 30 years>
☞ 사진 출처「Asia and Middle East」: http://collections.lib.uwm.edu/cdm/singleitem/collection/agsphoto/id/211/rec/29
그가 이런 민속 사진을 찍는 여행을 다닐 때,
민영익이 대동했다고 합니다.
☞ 위키백과, 『민영익』, http://ko.wikipedia.org/wiki/%EB%AF%BC%EC%98%81%EC%9D%B5
고관대작이랑 같이 다니기에,
당시 양반들이나 민초들도 대놓고 사진을 찍는
그를 무시할 수 없었겠지요.
<사진 4>는 초대 공사인 푸트가 구입한 미국 공사관 관저입니다.
<사진 4. 미국 공사관 관저
Chang-Phyong-Ha guest and friend; summer sitting room - U.S Legation >
☞ 사진 출처「Asia and Middle East」: http://collections.lib.uwm.edu/cdm/singleitem/collection/agsphoto/id/222/rec/39
<사진 5>는 정동에서의 활쏘기 인데, 당시 미국 공사관은 정동에 있었습니다.
<사진 5. 정동에서의 활쏘기
Archery at Chong-Dong.
Tiglath Pilser (a boy), Chung-Yong Meuk (interpreter), Suil (head man of the house), Charlie ( bedroom-boy) and the captain of the Legation Guard >
☞ 사진 출처「Asia and Middle East」: http://collections.lib.uwm.edu/cdm/singleitem/collection/agsphoto/id/220/rec/37
사진 속 인물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좌측부터 소년은 Tiglath Pilser라고 하는데,
앗시리아 정복왕 Tiglath Pileser 의 이름을 붙여준 것에서,
포크의 유머와 소년의 성격이 짐작됩니다.
소년의 성격상 그의 위치는 스스로 미국 공사보다 높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됩니다.
☞ 위키백과, 『티글라트-필레세르』, http://ko.wikipedia.org/wiki/%ED%8B%B0%EA%B8%80%EB%9D%BC%ED%8A%B8-%ED%95%84%EB%A0%88%EC%84%B8%EB%A5%B4_3%EC%84%B8
궁사는 '정영목(Chung-Yong Mok)'이란 분으로 공사관 통역관 같습니다.
사진에서 이름이 밝혀진 궁사로서는 최초의 조선 사람 같네요.
궁사의 이름은 '정영목'으로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름의 끝자는 사진 설명에서 'Meuk'라고 적고 있는데,
사진의 필기체는 'Mok'라고 쓰여 있습니다.
<사진 6>에서도 '민영익'을 'Min Yong Ik'으로 표시하는 것 처럼,
포크는 성씨를 맨 앞에 쓰고 있습니다.
'유길준'을 'Yu-Gil Chun' 으로 표시하고 있는데,
여기서도 '유길준'의 성이 '준'씨가 아니고 '유'씨 이니까요.
<사진 6. 보빙사 일행
Special mission from Korea to U.S.A. 1883. Prince Min Yong Ik, minister plenipotentiary. From left to right bottom row: Hong Yong Sik (vice minister), Prince Min Yong Ik (minister plenipotentiary), Soh Kong Pom (secretary to Prince and Percival Lowell (escort to U.S.). Top row from left to right: Kyon Kueng, ThokChen, Yu-kil Chan, Kyong Chal and Pyong Sue. >
☞ 사진 출처「Asia and Middle East」: http://collections.lib.uwm.edu/cdm/singleitem/collection/agsphoto/id/202/rec/22
집사라고 소개된 분의 이름은 수일(Suil)이구요,
시동(bedroom boy)의 이름은 챨리(Charlie)라고 지은 것 같네요.
<사진 5>의 마지막 인물은 미국공사관에 근무한 조선의 장교 같구요.
궁사는 좌궁입니다.
가장 오른 쪽에 검은 은 옷을 입고 전통으로 추정되는 것을 들고 있는 사람의 옷이 우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진이 좌우가 반전되지 않은 것으로 추정하는 근거가 됩니다.
<사진 5>의 궁사는 깍지를 먼저 당긴 후, 쭉 펴진 오른팔을 내리는 동작의 특이한 사법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이 2장의 활쏘기 사진의 의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개화기 이전의 사진이라는 것 입니다.
갑오경장을 개화의 분기점으로 삼을 때,
이 사진처럼 촬영 시기가 분명한 활쏘기 사진은 아주 드문 편입니다.
둘째, 조선 후기 활쏘기의 원형을 간직한 사진일 수도 있다는 것 입니다.
무과 폐지 이후, 경성을 비롯한 전국의 활터가 위축되거나 없어졌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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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이 논쟁거리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올려 봅니다.
첫댓글 글 잘 봤습니다.
기존에 알려졌던 부분이미지가 아닌 메모가 곁들여진 전체 이미지를 강접장님이 올린 걸 보고서 이사진들이 연구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목] 보다는 [묵]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자음보다 모음은 더 중요하고, 실수가 적습니다. U는 우리네 모음 [우]와 일치합니다.
논쟁을 회피할 것 까진 없습니다.
저 처럼 시간이 여의치 않거나, 논쟁의 가치가 없다면 무시하시면 됩니다.^^
서로 공유할 좋은 정보가 있음에도 논쟁에 휘말릴것 같아 게시를 포기할것 까진 없을것 같습니다.
일방적이고 공격적인 [프로파간다]가 문제일 뿐이지요^^
좋은자료 감사합니다^^
일전에 제가 맨위사진을 올려서 갑오경장이전의 오래된 사진으로 주목을 받았는데 더상세히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당시 자세들을 연구하는데 도움이되겠습니다.조지포크같은 분들이 있었기에 구한말의 모습들을 이렇게 볼수있음에 감사해야겠습니다~^^
조지 포크는 셔먼호 사건에 대한 보상 문제로 한국을 떠납니다.
일본에서 일본인 아내를 두고,
사업을 하고 교수로도 활동했습니다.
그는 갑오경장 이전인
그의 나이 37세에 세상을 떠납니다.
그의 묘소도 일본에 있구요.
군대에서 한국어와 일본어를 배운 ? 그래서
국제 스파이의 향기가 느껴지는 인물인 것 같습니다.
@오늘즐거운(홍성우) 흥미롭네요.조지포크가 2중스파이? 여튼 어떤 목적이었든,지금 저런사진들이 남아있어서 당시의 모습들을 볼수있어 좋네요.앞으로도 흥미로운 자료많이 소개해주십시요~^^
@온고지신(강성룡) 쩜 100원 짜리 고스톱을 치면서도 몇 만원을 딴다고 해도,
사진이나 동영상은 안 남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활쏘기도 화투놀이와 비슷해서 당연한 일상이었기에,
사진으로 남길 이유가 없었던 것이지요.
외국인들에게만 촬영의 대상이었을뿐이구요.
그런 이유로 근대 명궁들의 사진은 물론,
현대의 명궁들의 궁체 사진도 또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올리는
요즘은 좀 나아졌겠지만요.
다섯번째사진은발시하기직전의모습으로보여집니다
구한말동영상을본바로는깍지손중구미가저렇게아래로깍지를빼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