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용감한 용은 지쳤고, 그는 웅장한 인생의 마지막 장에 들어섰다."
1960년대를 풍미한 포크 트리오 '피터 폴 앤 메리'의 보컬 겸 작곡가 피터 야로우가 7일(현지시간) 하늘의 별이 됐다는 소식을 딸 베서니가 부친의 대표곡 '퍼프 더 매직 드래곤'(Puff the Magic Dragon, 1964)에 빗대 이렇게 전했다. 향년 86.
미국 ABC의 굿모닝 아메리카(GMA)는 홍보 담당자 켄 선샤인의 성명을 인용해 야로우가 이날 오전 뉴욕 맨해튼 자택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고 보도했다. 고인을 하늘로 데려간 것은 지난 4년 동안 싸워온 방광암이었다. 고인 홈페이지에는 가족들과 함께 한 방광암과의 투병 다큐멘터리가 올라와 있다.
말년의 부친과 함께 종종 노래를 들려주곤 했던 딸 베서니는 "세상은 피터 야로우를 상징적인 민중 운동가로 알고 있지만, 전설 뒤에 숨겨진, 한 인간으로서 야로우는 그가 쓴 가사처럼 관대하고 창의적이며 열정적이고 유쾌하고 현명했다"고 추모했다.
일간 뉴욕 타임스(NYT)에 따르면 야로우는 1938년 5월 31일 뉴욕 맨해튼에서 우크라이나 출신 유대인 이민자 버나드와 베라 야로우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변호사 출신으로, 뉴욕 지방검사를 보좌했다. 다섯 살 때 부모는 이혼했으며, 유대인 특유의 엄숙한 집안 분위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야로우는 예술고에서 회화를 전공했으며, 코넬 대학에 진학해 민속문학 과정을 수료한 후 노래를 시작했다. 졸업 후 그는 "커뮤니티를 만드는 음악에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뉴욕으로 돌아와 본격적인 가수 활동을 했다. 나이트클럽과 커피 가게 무대에 서며 폴 스투키, 메리 트래버스와 인연을 맺어 1961년 트리오를 결성했는데 워너 브라더스 레코드와 계약한 것이 계기였다. 이듬해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을 발표하자 곧바로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했다. '레몬 트리'와 피트 시거의 히트곡인 '이프 아 해드 어 해머'(일명 해머 송) 등이 인기를 끌었다.
이들은 1963년 8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워싱턴 대행진에 참여했다. 저유명한 링컨 계단에서 밥 딜런의 '블로잉 인 더 윈드'를 불러 민권운동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이 밖에 히트곡으로 '데이 이즈 던'(Day Is Done)과 '더 그레이트 만다라'(The Great Mandala) 등이 있다. 두 노래 모두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데, '더 그레이트 만다라'를 통해서는 베트남 전쟁 당시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아들에게 바친 '데이 이즈 던'을 통해서는 다가올 세대가 더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응원의 마음을 담았다. 이 곡은 '퍼프 더 매직 드래곤'과 함께 동요로 쓰였으며 동화책으로도 출간됐다. '퍼프 더 매직 드래곤'은 당시 열아홉 살 시인 겸 영화감독으로 코넬 대학 동기인 레니 립튼의 시에 야로우가 선율을 붙인 곡으로 트리오의 두 번째 앨범에 수록됐으며 빌보드 핫 100의 2위까지 올랐다. TV 애니메이션으로 세 차례나 제작됐으며 2009년에는 한국 아이돌 슈퍼주니어가 리메이크 곡을 냈다.
고인은 생전에 '퍼프 더 매직 드래곤'이 마리화나를 피워도 괜찮다는 내용의 노래가 아니라고 극구 부인하곤 했다.
피터 폴 앤 메리는 전성기 시절 빌보드 톱 40에 12차례나 진입했으며, 그 중 6곡은 톱 10에 들었다. 트리오의 최고 히트곡은 당시만 해도 무명이었던 존 덴버의 '리빙 온 어 제트 플레인' 리메이크 곡(1969)로 빌보드 톱 100의 1위를 차지했다. 다섯 앨범이 빌보드 톱 10에 들었고 두 차례 1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리빙 온 어 제트 플레인"이 커리어 정점이었다. 몇 달 뒤인 1970년 해체를 선언하고 솔로 활동을 이어갔다. 일 년 전 사인을 받겠다며 여동생과 함께 대기실로 찾아온 열네 살 소녀에게 성적으로 접근했다는 혐의로 1970년 1~3년의 징역형을 선고받는 추한 일도 겪었다. 다만 그는 순순히 혐의를 인정했으며, 3개월만 수감됐다. 1981년 퇴임을 앞둔 지미 카더 전 대통령의 사면 조치를 받았다.
트리오는 1972년과 1978년, 자선 콘서트에서 잠깐 재결합하기도 했다. 야로우는 1976년 메리 맥그리거의 넘버원 히트곡 '톤 비트윈 투 러버스'를 공동 작곡하기도 했다. 트리오는 1981년 공식 재결성, 함께 활동하다 메리가 2009년 백혈병 합병증으로 세상을 등져 그 뒤로는 함께 하지 못했다.
야로우는 노래를 통해 평등권·평화·환경·성평등·노숙자·호스피스 돌봄·공영방송·교육 등 사회 변화와 다양한 대의를 위해 싸웠다. 2000년에는 따돌림에 맞서는 비영리 단체 '오퍼레이션 리스펙트' 출범에 기여했다.
아울러 같은 해 민주당 대선 후보 유진 매카시의 조카 메리베스 매카시와 결혼했다. 두 사람은 한 차례 이혼했다가 2022년 재혼했다. 가족으로는 아들 크리스토퍼와 딸 베서니, 손녀가 있다.
한편 두 멤버를 먼저 떠나 보내 홀로 남은 폴은 야로우를 "음악적 동생"으로 부르며 "창의적이고 자발적이며 억누를 수 없는" 아티스트였다고 돌아봤다. 그는 앞서 세상을 떠난 두 멤버를 "깊이 그리워할 것"이라고 말했다.
https://youtu.be/ZmY4bfweM3U?si=voPt73mk2J-rXr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