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청혼, 장례, 고백, 승진, 결혼, 졸업, 문병…. 기억해야 할 그 날이 오면 한 송이든 한 다발이든, 우리는 꽃을 떠올린다. 비오는 수요일에 빨간 장미를 떠올리고, 꽃보다 사람이 아름답다고 노래도 한다. 장미꽃과 안개가 적당히 섞인 꽃다발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줄로 알았던 시절도 있었다. 이제는 헬레나 플라워, 소호 앤 노호, 루이까또즈 플라워, 크리스챤 또뛰, 제인 패커를 지정하며 어디 꽃집이 어떤 스타일의 데커레이션을 잘한다고 품평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꽃? 그거 낭비야. 시들면 다 쓰레기야” “난 꽃 선물보다 먹을 거 선물받는 게 더 좋아. 그게 더 현실적이잖아” “꽃선물이 시시해지면 그 때부터 나이가 드는 거래. 테이블 위에 꽃 한 송이만 있어도 얼마나 기분이 좋은 줄 알아?” 밤을 새워도 다 하지 못할 얘기가 꽃이다.수많은 예술가들을 매료시켰던 가장 위대한 피사체 꽃. 아름다움의 절대 권좌에 앉아 있는 꽃은 이제 기꺼이 우리 여자들을 위해 헌신하기로 마음먹은 듯 보인다.
피부와 꽃이 사랑하는 아름다운 꽃, 꽃, 꽃
민들레 l 강한 이뇨 작용으로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자주 활용되며 염증 부위를 아물게 하기 때문에 상처가 났을 때나 여드름이 돋았을 때 요긴하다. 비타민 A·B·C 뿐 아니라 칼륨이나 칼슘 등의 무기질도 풍부해 피부에 활력을 준다.
네롤리 l 세포 재생 효과가 뛰어나 노화된 피부나 귤 껍질처럼 표면이 거친 피부, 건성 피부에 효과적이다. 또 피부 신축성을 높여주는 토닝 효과가 있어 토너나 스킨 로션에 많이 활용되는 꽃이기도 하다.
라벤더 l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진정 효과가 뛰어나 아로마 테라피에 가장 자주 활용되는 꽃. 방부 효과가 뛰어나며 항염 효과가 탁월해 여드름을 비롯한 각종 피부염에 효과적이다. 피부 재생력이 뛰어나 햇빛에 그을린 피부나 노화 피부에도 그만.
야로우 l 예로부터 영국에서는 상처 부위를 지혈할 때나 화상을 진정시킬 때 야로우로 만든 연고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피부를 자극 없이 깨끗이 씻어주기 때문에 여드름 피부나 거친 피부를 위한 클렌징에 많이 사용한다.
콘플라워 l 수레국화라 불리는 콘플라워는 아스트린젠트 효과가 뛰어나 지성 피부를 위한 화장수로 사용하면 좋다. 콘플라워 잎은 눈이 피로할 때나 염증이 생겼을 때 즙을 희석해 사용하면 안약 대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고.
로즈메리 l 강력한 수렴 작용을 하는 로즈메리는 복합성 피부나 지성 피부에 특히 좋은 꽃으로 피부를 청결하게 유지해주며 순환을 촉진시켜 얼굴이나 몸의 부기를 가라앉힐 때 많이 사용한다. 단, 임산부에게는 자극을 줄 수 있으므로 사용을 피할 것.
일랑일랑 l 달콤한 향의 일랑일랑은 아들레날린의 분비를 조절해 불안감을 없애고 혈압을 정상으로 되돌려준다. 피지샘을 조절해 균형이 깨진 피부를 바로 잡아주며 두피에 발라주면 모근을 자극해 머리카락이 나는 것을 돕는다.
재스민 l 강한 최음 효과를 가진 재스민은 기분을 상승시켜 우울증 해소에 자주 사용되는 꽃. 또 위염이나 기관지염 등에 탁월한 치유력을 보이기도 하며 처진 피부를 탄력 있게 가꿔주어 스트레스로 지친 피부에 효과적.
캐머마일 l 향이 가볍고 산뜻할 뿐 아니라 치료 효과가 탁월해 미용법에 자주 등장하는 꽃. 항염 작용을 하는 아줄렌 성분이 들어 있어 여드름이나 상처난 피부에 효과적이며 진정 작용이 뛰어나 민감성 피부나 악건성 피부에 좋다.
창포 l 고려시대부터 미용 요법에 사용된 창포는 은은한 향과 풍부한 비타민 C가 특징. 창포를 끓는 물에 우려낸 후 욕조물에 희석하여 목욕물로 이용하거나 머리를 감으면 린스 작용을 하기 때문에 피부와 머리카락이 보들보들해진다.
해바라기 l 꽃과 잎뿐 아니라 꽃에 박힌 씨앗의 활용도가 뛰어난 꽃. 해바라기씨는 비타민 A·E가 풍부하며 해바라기 잎은 해열 작용과 진정 작용이 뛰어나 자극받은 피부를 정돈할 때 사용하면 좋다.
살구꽃 l 한약재로 널리 알려진 살구꽃은 해바라기처럼 씨앗으로 더 유명한 꽃. 살구꽃은 암을 예방하거나 신경 계통의 질환에 효과적일 뿐 아니라 여드름이나 기미 같은 피부 트러블을 잡아주기 때문에 천연 화장품 재료로도 열렬한 지지를 얻고 있다.
진달래 l 해독 작용이 뛰어나 피부가 헐거나 상처가 났을 때 많이 사용하는 꽃, 진달래. 뿐만 아니라 기침이나 천식, 급성 및 만성 기관지 질환에 좋으며 혈압을 낮추는 성분이 있어 고혈압 치료제로도 쓰인다.
금잔화 l 우리나라에서는 금잔화라고 불리는 칼렌듈라는 지치고 탄력 없는 피부, 잔주름 등에 바르면 피부 상태를 빠르게 회복시킨다. 또 감기, 두통뿐 아니라 피로 회복에도 좋아 욕조 목욕에 자주 사용되는 꽃이기도 하다.
연꽃 l 습진이나 타박상, 부스럼 등에 특효인 연꽃은 생화나 말린 꽃봉오리를 욕조에 띄워 입욕제로 사용하는 꽃이다. 특히 보습 효과가 탁월해 다양한 화장품 브랜드에서 에센셜 워터 형태로 활용하고 있기도 하다.
예로부터 여성과 꽃은 씨실과 날실처럼 얽혀져 지내왔다. 다른 생명체에 비해 화려하면서도 섬세한 겉모습이 꽃과 여자를 하나로 묶지 않았던가. 그래서 꽃은 여자를 아름답게 하는 비법을 간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꽃은 단순히 보기에 아름다울 뿐 아니라 다채로운 색깔과 향기로 인간에게 마법의 주문을 건다. 동양의학에 따르면 꽃은 고유의 색에 따라 인간의 정서를 지배하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장미꽃처럼 꽃잎이 화려한 색감의 꽃은 활력을 주고 안개꽃이나 제비꽃처럼 차가운 색의 꽃은 정서적 안정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몇 년 전부터 꾸준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아로마테라피 역시 꽃의 향이 인간에게 미치는 심리적, 신체적 변화를 응용한 케이스다. 직접 향을 맡거나 꽃에서 추출한 에센셜 오일을 흡입해 인간의 몸 구석구석 즐거운 변화를 선물하는 것이 아로마테라피의 매력. 단순히 심리적 변화뿐 아니라 감기나 소화불량처럼 가벼운 질병과 스트레스, 때로는 피부 트러블까지 잡아준다니 어찌 매력적이지 않겠는가.
이처럼 꽃의 활용도가 다양해지면서 최근 꽃에 대한 성분 분석도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꽃가루 속에는 35% 정도의 단백질과 22여 가지에 이르는 각종 필수 아미노산, 12가지에 이르는 비타민과 16가지의 풍부한 미네랄이 함유되어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꽃가루를 감싸고 있는 꽃잎 자체에도 각종 비타민과 미네랄이 주요 구성 성분을 이루고 있다. 이렇듯 뛰어난 영양 성분을 골고루 담고 있으니 꽃이 몸에 좋은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특히 외부에 직접 노출되어 자극받기 쉬운 피부에는 활성 성분이 농축되어 있는 꽃이 그야말로 구세주 같은 존재다. 꽃의 풍부한 영양이 피부에 닿으면 비타민이나 미네랄처럼 피부 건강에 필수적인 성분들이 침투하면서 유해 환경과 스트레스로 깨진 피부는 점차 균형을 맞춰간다. 뿐만 아니라 몸이나 얼굴에 바르면서 즐길 수 있는 천연의 은은한 향으로 아로마테라피 효과도 톡톡히 볼 수 있으니 꽃이 다른 미용 성분들보다 지속적인 사랑을 받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피부 연인의 대표 주자 장미 물론 다른 꽃들도 많은 여성들의 사랑을 받았다지만 장미만큼 여성의 생활과 아름다움에 깊게 관여한 꽃도 드물 듯하다. 고대 이집트 시대에도 클레오파트라가 장미를 이용한 약탕 목욕을 즐겼다는 기록이 있으며 유럽에서도 들장미의 꽃봉오리를 화장수의 원료로 쓰거나 상처나 화상 부위의 치료에 사용했다고 한다. 또 향수를 제조할 때에도 장미를 첨가하지 않은 향수는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 특히 장미 꽃봉오리를 사용한 약탕욕은 피부염증을 억제해줄 뿐만 아니라 세포의 활력을 증진시켜 윤기 있는 피부를 만들어주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여성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굵은 소금과 싱싱한 장미를 3:1 비율로 섞은 다음 1주일 정도 숙성시킨 장미 솔트 마사지도 꾸준히 전래되어온 장미 미용 요법. 이러한 장미 뷰티 요법의 인기는 현대의 여인들에게도 꾸준히 대물림되고 있다.
자연주의와 웰빙 라이프의 열풍을 타고 천연 성분을 원료로 한 다양한 화장품들이 등장했지만 그중 꾸준한 인기를 끄는 것은 단연 장미 성분을 함유한 화장품들. 장미 잎이 동동 떠다니는 키엘의 프렌치 로즈 워터나 불가리아산 장미수를 주성분으로 한 프레쉬의 로즈 페이스 마스크 등은 이미 스테디 셀러로 자리 잡은 지 오래고 초저가 화장품 붐의 주역인 미샤의 로즈 워터 라인은 스킨케어부터 보디케어에 이르는 다양한 아이템으로 한창 인기몰이 중이다. 이처럼 장미가 뷰티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재료로 자리 잡은 이유는 먼저 장미의 풍부한 영양분 때문. 장미 꽃봉오리에는 비타민C, 타닌, 구연산 등이 함유되어 있어서 피부 수렴·청정 작용이 뛰어나며 건성 피부나 민감성 피부를 위한 깊은 보습과 안티에이징에도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다. 특히 4~5월경에 채집한 장미를 가장 최상급으로 치며 꽃이 활짝 핀 것보다는 봉오리 상태일 때 수확한 장미가 더 효과가 뛰어나다. 이밖에도 채취한 지역이나 재배법에 따라 장미의 퀄리티도 달라지는데 대부분 불가리아산을 최상급으로 치며 그 다음으로는 프랑스에서 수집한 장미가 고가로 분류된다. 최근에는 재배 지역뿐 아니라 유기농 재배 여부에 따라서 품질이 결정되기도.
아름다움을 추출하라! 위에서 언급한 장미의 예만 보더라도 과거와 현대에 걸쳐 꽃이 미용에 미치는 영향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듯하다. 그러나 달라진 점이라면 이전에는 꽃잎에 압력을 가해 즙을 짜내거나 꽃잎 자체를 그대로 화장품이나 미용 요법에 응용했다면 최근에는 다각도의 고농도 추출법을 이용한 에센셜 오일이나 에센셜 워터 등의 형태가 많다는 것이다. 에센셜 오일이나 워터를 사용하면 아주 소량으로도 꽃이 지닌 활성 성분을 피부에 공급할 수 있으며 다른 식물 성분들과도 쉽게 믹스해 사용할 수 있어 편리하다. 꽃을 비롯해 다양한 식물 추출법들 중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는 것은 바로 증류법. 증류법은 뜨거운 수증기를 이용해 꽃 속의 성분을 뽑아내는 것으로 스킨케어에 사용하는 대부분의 식물 성분은 모두 이 추출 방식을 이용한다.
증류법은 이미 5000년 전부터 이용되었던 고전적인 방법. 그러나 20세기 후반부터 자연 성분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더 자동화된 방식의 수증기 증류법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먼저 위에 가느다란 관이 달린 통에 물을 넣고 그 위에 체를 건 다음 증류할 식물을 놓고 물을 끓여서 위로 증기가 올라가게 한다. 이 때 수증기와 더불어 아로마 오일도 함께 상승하는데 아로마 오일이 섞인 수증기가 관을 타고 차가운 물이 든 통으로 이동하면 온도 하강에 의해 액체 상태로 바뀐다. 이렇게 액화된 증류수를 다른 용기에 옮기면 밀도차에 의해 오일과 오일이 약간 섞인 증류수로 나누어지는 것. 여기서 오일 성분을 모아 숙성시킨 것이 바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에센셜 오일이며 증류수는 화장품에 자주 사용되는 에센셜 워터가 된다.
이처럼 활발하게 이용되는 수증기 증류법의 원칙은 매우 간단해 보이지만 온도와 압력 그리고 시간에 따라 같은 성분이라도 퀄리티는 큰 차이가 나며 같은 꽃이라도 어떤 부위를 추출하느냐에 따라 효능에 큰 차이를 보인다. 수증기 증류법 다음으로 많이 사용하는 방법은 화학 용매 추출법으로 핵산이나 에탄올 등의 용매와 성분을 추출할 꽃이나 식물을 혼합하여 서서히 열을 가하면 아로마 오일이 용매에 섞이는 방식. 하지만 이 경우 아로마 오일뿐 아니라 알코올 찌꺼기도 함께 남기 때문에 향수에 주로 응용되고 있다.
이렇듯 화장품에 꾸준히 활용되면서 우리 생활 곳곳에서 이로움을 주는 활력 넘치는 꽃의 세계. 그러나 우리는 아직까지 꽃이 선사하는 건강한 아름다움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이제 길 가다 지나치는 꽃 한 송이도 예사롭게 보지 말도록. 당신이 엉겹결에 스쳐간 국화 한 송이, 무심코 밟아버린 민들레 이파리가 울긋불긋 여드름을 한 방에 날려주는 비밀의 묘약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