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대에 올라
일월 첫 주 일요일은 연중 최저기온을 보인다는 소한이었다. 연말부터 닥쳐온 영하권 추위가 수그러지지 않아 그렇게 추운 줄 몰랐다. 요새는 삼한사온이 실종된 겨울이다. 추위보다 미세먼지가 더 신경 쓰이게 한다. 미세먼지는 추운 날보다 날씨가 조금 풀렸다 싶으면 더 기승을 부렸다. 이른 아침 집에서부터 창원중앙역을 향해 걸었다. 창원대학 앞을 지나 도청 뒤를 돌아갔다.
창원중앙역에서 물금까지 가는 무궁화호 열차를 기다렸다. 순천을 출발해 포항으로 하루 한 차례 오가는 열차다. 정한 시각 도착한 열차는 다시 비음산터널을 지나 진례 들녘을 지나 진영과 한림정을 거쳐 낙동강을 건넜다. 삼랑진에서 원동으로 내려가 내가 목표한 물금역에 닿았다. 물금은 예전엔 들판이었으나 신도시가 형성되는 양산남부로 부산과 인접하고 강 건너편은 김해다.
예전 역사는 운치 있던 간이역이었는데 허물고 새로 지어 개성을 잃어버렸다. 강변으로 나가는 길을 찾았다. 나는 양산과 연고가 없어도 더러 찾은 편이다. 양산시외버스터미널은 경주 산내 친구 산방을 찾을 때 들리는 경유지였다. 물금역은 열차를 이용 낙동강 강둑을 걸을 때 몇 차례 찾았다. 나는 4대강사업 이전에도 물금 오봉산을 올라보고 물금 들판과 강변을 걸었던 적 있다.
4대강 자전거 길로 나가니 휴일을 맞아 라이딩을 나선 자전거 마니아들이 더러 보였다. 그 가운데 드물게 나처럼 걷기로 작정한 사람이 눈에 띄었다. 그들을 보니 동지 의식이 느껴졌다. 부산 시민들의 식수원인 물금취수장이 나타났다. 취수장을 지나는 강변에는 황산강 베랑길이 물 박물관으로 이어졌다. 그즈음 자전거 길을 따라 가지 않고 내 나름의 행선지를 찾아 샛길로 들었다.
그곳은 다름 아닌 용화사로 가는 굴다리였다. 자전거길과 경부선 철로를 지하로 건너 강변 위치한 절이었다. 그 절 법당에는 보물 제 491호인 석조여래좌상이 모셔진 곳이다. 본래 강 건너 김해 상동에 있던 불상이 어떤 연유로 용화사에 안치되었다. 낙동강 파수꾼 김정한 소설 수라도에 나오는 가야부인이 찾던 미륵당이다. 근처 화제리가 수라도 작품 배경으로 김정한의 처가댁이다.
용화사를 찾아 뜰에서 잠시 서성이다가 등산 데크를 따라 임경대를 향해 올랐다. 천 년 전 최치원이 오봉산에 올라 ‘황산강’이라는 시를 남겼던 현장이다. 삼랑진을 거친 낙동강 물줄기가 강 양쪽 산자락 사이 S자로 휘어져 물금으로 흘러오는 모습을 조망하기 좋은 곳이다. 고운선생 이후 숱한 시인 묵객들이 이 현장을 찾아 남긴 한시들이 전하는데 산언저리 공원 빗돌에 새겨놓았다.
강벼랑을 데크를 따라 올라 흘러오는 낙동강을 굽어보았다. 근래 덩그렇게 세운 임경대에 마루에서 서서 낙동강을 한동안 굽어보았다. 언덕 바로 아래 강심에는 김해 상동에서 양산 화제로 건너는 국도 60호선 교량을 놓는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임경대에서 올라와 지방도 1022호를 따라 화제리로 향해 걸었다. 산모롱이 레미콘공장을 지나 갓길을 오래도록 걸어 명언마을까지 갔다.
저만치 산기슭에 초등학교와 마을이 보였다. 들길로 난 자전거길을 따라 다시 강가로 나왔다. 예전 영남대로 주막과 나루가 있던 토교마을이었다. 화제천 샛강에 긴 나무를 걸쳐 위에다 흙을 덮어 놓은 다리가 있던 곳이었다. 이후 석교가 놓였는지 내가 배낭의 도시락을 꺼내 먹은 자리는 삼백 년 전 석교비가 세워져 있었다. 지금은 석교조차 흔적이 없고 콘크리트 다리가 가로놓였다.
여러 차례 물금 일대 자전거 길을 걸었는데 자전거를 타는 이들이 전보다 늘어났다. 너울너울 흘러오는 강물을 마주하면서 원동으로 걸어갔다. 일부 자전거 족속은 가야진사를 거쳐 삼랑진으로 올라가기도 했다. 원동역 인근 순매원은 매실 농장으로 광양 청매실 농원만큼 알려져 있다. 강가 언덕 매실나무 가지에 붙은 꽃눈들은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원동역에서 창원으로 복귀했다. 19.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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