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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정보
고성 중학교 17회 동문회
 
 
 
카페 게시글
잘 지내냐 친구야 스크랩 강릉 오죽헌
이 재 열 추천 0 조회 123 12.01.11 14:34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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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은 언제 가봐도

들려보고픈 곳이 많습니다.

어린날에 수학 여행을 왔던 곳이기도 한... 이곳 오죽헌..

옛기억을 되살려 들려보기로 했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달려간곳 오죽헌...

한겨울인데도 관광객이 많았습니다.

 

오죽헌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분 신사임당이 아닐까,,,,

우리 역사에서 신사임당만큼 존경받은 여성도 드물지 않을것입니다.

그녀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여성 최초로 고액권인 5만원 화폐 도안 인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선덕여왕, 유관순 열사 등 몇몇 후보 인물들이 있었지만,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존경해 마지않는 신사임당이 최종 인물로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그녀의 삶은 50년이 채 안 되지만 그녀에 대한 한국인들의 사랑은

 5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회자되고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오죽헌을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들어가는 입구~ 눈이 여기저기 아직 쌓여 있었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오죽헌으로 향합니다..

 

 

 

오죽헌 ... 들어가는 입구부터 오죽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율곡이이 동상이 위엄있게 계셨고,,,,

 

 

 

 

 

신사임당 초충도 화단 모습...

겨울이라서 꽃은 볼수 없었지만.... 담아보았습니다.

 

 

 

빈 벤치 사이로 듬성듬성 보이는 눈,,,

햇빛이 비추는데도...

겨울임을 실감하며...

 

 

 

 

안내문을 읽고 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베롱나무:

이 나무는 율곡선생 당시에도 있던 것으로

수령 600년이 넘었답니다.

지금은 강릉 시화로 지정되어 있다고 합니다.

 

사임당 배롱나무:

강릉시의 시화로 꽃피는 기간이 100일나 된다고 하여 백일홍 이라고도 한답니다

이 배롱나무는 고사한 원줄기에서 돋아난 새싹이 자란 것이므로 나이를 합치면

600여년이 넘는답니다.

사임당과 율곡 모자가 어루 만졌을 이 배롱 나무는 율곡송. 율곡매와 함께

오늘날 오죽헌을 지켜주는 수호목으로서 역할을 해오고 있다고 합니다.

 

 

 

 

율곡송 :

소나무는 선비의 지조를 상징하는 군자식물이랍니다

굳은 덕과 굳센 절개에 대하여

옛사람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소나무의 기이한 형상을 보니 천공의 오묘한 조화를 빼앗았다

한참을 바라보노라면 청아한 운치를 느낄 것이다

소나무가 사람을 즐겁게 하는데

어찌 사람이 즐겨할 줄 몰라서야  되겠는가

- 율곡 이이의 소나무 예찬에서 -

 

 

 

오죽헌:

조선초기에 지어진 별당건물로, 당시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는 대표적인 주택이다.

이 건물은 주심포양식에서 익공양식으로 변해가는 건축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건물로 평가받아

1963년 보물 제 165호로 지정 되었다 . 왼쪽 마루방은 율곡이 여섯 살 때까지 공부하던 곳이며,

오른쪽 방은 1536년 신사임당이 용이 문머리에 서려 있는 꿈을 꾸고 율곡을 낳은 곳이다.

몽룡실이라 부르고 있는 이 방에는 신사임당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 안내문 발췌-

 

 

 

 

 

율곡매(천연기념물 제 484호)수령 약 600년:

이 나무는 1400년경에 조선시대 이조참판을 지낸

최치운이 오죽헌을 건립하고 별당 후원에 심었다고 하며,

신사임당과 율곡선생이 직접 가꾸었다고 전한다.

사임당은 고대도. 묵매도등 여러 매화그림을 그렸고.

맏딸의 이름을 매창이라 지을만큼 매화를 사랑하였다.

사임당 당시에는 이미 상당히 굵었을 것으로 보이며

 

본 줄기는 고사하고 곁가지가 자란 아들나무로 짐작된다.

매화의 여러 품종 중 꽃색깔이 연분홍인 홍매 종류이며

3월초순을 전후하여 꽃이 필 때에는 은은한 매향으로

오죽헌을 더욱 경건하게 한다.

열매는 다른 나무에 비하여 훨씬 알이 굵은 것이 ?직이다

나무 높이는 7.0m  땅위 줄기 둘레는 1.9m 가지 뻗음은 동서로 8.0m

남북 방향으로 7.4m에 이른다

-안내문 발췌-

 

 

 

 

문성사:

율곡 이이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이 자리에는 원래 어제각이 있었는데 1975년 오죽헌 정화 사업 때 서쪽으로 옮기고 문성사를 지었다.

문성은 1624 인조 임금이 율곡에게 내린 시호로

도덕과 학문을 널리 들어 막힘이 없이 통했으며 백성의 안정된 삶을 위하여 정사의 근본을세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문성사의 현판은 박정희 대통령이 썼다

-안내문 발췌-

 

 

 

오죽이 잘 자라고 있는 모습....

 

 

 

신사임당 영정을 모셔둔방

 

 

 

 

안채. 바깥채:

조선초기에 지어진 오죽헌 내의 건물들은 1505년 병조참판을 지낸 최응현에 의해 전승되어 오다가

오죽헌 정화사업으로 오죽헌(별당)과 바깥채를 제외하고 모두 철거 되었다. 현재의 모습은 1996년 정부의 문화재

복원계획에 따라 옛 모습대로 복원한 것이다

안채는 안주인이 생활하던 곳이고 바깥채는 바깥주인이 거처하던 곳이다.

바깥채의 툇마루 기둥에 걸려있는 주련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새겨놓은 것이다.

 

-안내문 발췌-

 

 

툇마루 기둥에 걸려있는 주련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새겨놓은 것이라고 함.

 

 

 

 

 

어제각:

율곡 이이의 저서(격몽요결)과 어린시절 사용하였던 벼루를 보관하기 위하여 지은 것이다.

1788년 정조임금은 율곡이 어렸을 때 쓰던 벼루와 친필로 쓴(격몽요결)이 오죽헌에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듣고.

그것을 궁궐로 가지고 오게하여 친히 본 다음, 벼루 뒷면에는 율곡의 위대함을 찬양한 글을 새기고,

책에는 머릿글을 지어 잘 보관하라며 돌려 보냈다.

당시 임금의 명을받은 강원도 관찰사 김재찬이 이를 보관할 수 있는 집을 지었는데.

그것이 어제각이다

-안내문 발췌-

 

 

 

어제각 안에 보관된 벼루

 

벼루와 격몽요결

 

 

 

 

5천원권 뒷면 배경이 된 곳이랍니다...

 

 

오죽헌을 돌아보고 박물관쪽으로  가늘길

담장에 걸리는 겨울빛이 예뻤습니다...

 

 

시와 그림에 능한 예술가이자 율곡 이이를 낳은 훌륭한 어머니.

48세를 일기로 작고할 때까지 그리 길지 않은 삶을 살았지만,

훌륭한 작품을 남긴 천재 화가로서,

그리고 위대한 학자이자 정치가였던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서 신사임당(1504~1551).

사임당은 현모양처(賢母良妻)를 상징하는 인물로

5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추앙받고 있는 분이라는 사실....

오죽헌을 돌아보면서

정말 마음 깊이 그분이 살았던 그 오래전으로 돌아가보는

시간 여행이었습니다...

마음깊이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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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2.01.11 18:29

    첫댓글 훌륭하신 선조님들....

  • 12.01.12 20:37

    좋다.

  • 12.01.13 16:29

    가만히 앉아서 구경 잘 했습니다.
    .

  • 12.01.17 16:14

    가보긴 했는데 언제 누구와 갔는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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