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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9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루카 1,26-38
원죄 없음: 사흘만 있으면 가죽옷이 준비될 것이란 믿음
길가에 살면서 핫도그를 파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귀가 거의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가게에 라디오가 있을 리 없었습니다. 눈도 좋지 않아 신문도 읽지 않았습니다.
다만 좋은 핫도그를 팔면 많은 사람이 사 먹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핫도그에 들어가는 고기와 빵도 남들보다 크게 했습니다.
고속도로변에 광고판도 세웠고 길가에 나와
“핫도그 사세요.”라고 외치기도 하였습니다. 사업은 나날이 번창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대학에 다니는 아들이 집에 와서 아버지를 돕게 되었습니다.
경제를 공부하는 아들이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라디오 듣지 못하셨어요? 신문도 읽지 못하셨죠? 지금 경기가 곤두박질치고 있어요.
유럽의 상황은 처참해요.
외국은 유럽보다 훨씬 나쁘고요.”
이 말에 아버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 우리 아들은 대학생이고 신문도 읽고 라디오도 들으니까 아는 게 많은 게 당연하지.’
그리고는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고기도 줄이고 핫도그 크기도 줄였습니다.
더 이상 길가에 서서 핫도그를 팔지도 않았습니다.
아들의 말대로 장사가 점점 안되었습니다.
급기야 고속도로변의 간판도 내려야 했습니다. 그렇게 완전히 망하고 말았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들아. 네 말이 옳았다.
경기가 곤두박질치는 게 분명하구나.”
사람은 왜 부정적으로 될까요? 긍정을 잃고 부정에 귀 기울이기 때문입니다.
죄가 무엇일까요?
믿음이 없음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께서 함께 계심을 믿지 않았기에 죄에 물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죄가 빼앗는 믿음은 무엇일까요? 하느님께는 불가능이 없고 우리를 사랑하시니 모든 것을 해 주실 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부르기 위해 베드로의 배에 올라타시고,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하십니다.
베드로는 밤새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고 하며 정말로 그물을 내리니 그물이 찢어질 듯 많은 고기가 잡혔습니다.
그때 베드로의 반응은 이렇습니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에게서 떠나주십시오.”
이것이 겸손일까요? 겸손의 탈을 쓴 교만입니다. 베드로의 이 부족한 면은 예수님께서 그의 발을 씻어주려 하실 때 잘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발을 씻으려고 하시자, “주님, 제 발은 절대로 씻지 못하십니다.”라고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사랑이심을 믿지 못하는 게 죄입니다. 믿지 못하면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하느님께서 사랑이시고 능력자이심을 믿을 때 나는 어떤 감정이 듭니까?
바로 ‘긍정’입니다.
다시 사랑하는 부모와 함께 있는 어린아이가 되는 것입니다.
겉모습만 보면 성모님은 시골의 한 처녀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은총이 가득하신 분’은 온 세상에 성모님밖에 없으셨습니다.
천사가, “은총이 가득하신 분, 기뻐하십시오.
주님께서 함께 계십니다”라고 인사하였습니다.
죄인에게는 주님께서 함께하지 않으십니다. 스스로 그분을 물리쳤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이 없고 우리를 사랑하심을 알라고 가브리엘 천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짓고 하느님이 자신들을 용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믿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힘으로 나뭇잎으로 몸을 가리고 나무 뒤에 숨었습니다.
하느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면 자기 능력을 믿게 됩니다.
이것이 원죄이고 이 아담과 하와의 원죄가 모든
인류에게 미친 것입니다.
그러나 성모 마리아만은 자기 능력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브리엘 천사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한 꽃집 할머니는 항상 행복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맞았습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매일 행복할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맨날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노부인도 그렇게 대답합니다.
비밀을 이렇게 말해주곤 하였다고 합니다.
“물론 안 좋은 일도 일어나지. 그러나 예수님께서 사흘만이 부활했잖아요?
나도 ‘사흘만 있으면 괜찮아지겠지!’라고 생각해요.
정말 사흘만 지나면 다 좋아져요.
그래서 오늘 안 좋은 일이 있어도 걱정할 필요가 없는 거지요.”
이분이라면 거의 원죄를 벗어났다고 해도 될 것입니다.
부활하신 전능하신 분이 당신과 함께 머무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원죄에서 벗어난 이들은 모든 것을 받아들입니다.
전능하신 분께서 함께 계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12월9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루카 1,26-38
우리 모두 또 다른 나자렛의 마리아가 되어야 합니다!
지난가을, 청소년들 여름 신앙학교를 끝내고, 형제들과 섬으로 휴식 겸 친교를 위한 소풍을 갔을 때의 일이 떠오릅니다.
젊은 형제들은 멋진 풍광 속을 걸어 다니고 사진도 찍고, 뷰가 좋은 카페에 앉아 담소도 나누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저희 영감팀은 오로지 눈만 뜨면 낚시를 갔습니다.
첫날 처음 보는 물고기가 몇 마리 잡혀서 신기했습니다. 비늘도 없는데다, 자태가 멋졌습니다.
온몸이 짙은 고동색에, 싸이즈가 그리 크지 않은데도 엄청 힘이 세더군요.
회를 떴는데, 살이 얼마나 찰지고 탄탄한지 다들 감탄을 했습니다.
형제들이 너무 맛있다 맛있다 하니 그 다음 날 또 그 자리를 갔습니다.
그 자리가 제대로 된 포인트였던지, 어제 잡힌 정체불명의 물고기들이 또 다시 몇 마리 잡혔습니다.
플라스틱 통에 바닷물을 담아 잡힌 고기들을 던져놓았는데, 지나가던 마을 주민들이 그 고기들을 보고 깜짝 놀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에! 이 귀한 고기를 어떻게 잡았데요?”
알고 봤더니 제가 잡은 그 고기들은 횟감으로 가장 비싸다는 다금바리였습니다.
검색해봤더니 킬로당 30만원이랍니다.
우럭은 킬로당 3만원인데, 열 배나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 뒤로 즉시 고동색 물고기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습니다.
킬로당 30만원이라는데 하는 생각에 세상에 둘도 없는 보물 다루듯이 소중히 다루었습니다.
비싼 고기니만큼 제일 깨끗한 쿨러를 씻고 또 씻어 옮겨 담았습니다.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얼음을 가득 채웠습니다.
숙소로 가져와서 회를 뜨는데, 어제와는 달리 손실율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극정성으로 조심조심 회를 떴습니다.
먹을 때도 산삼 먹듯이 음미하면서 그렇게 회를 먹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을 경축하고 있습니다.
횟감 중의 횟감으로 귀한 취급을 받는 다금바리를 제가 극진히 모셨습니다.
가지고 있던 고기 보관통 중에서 가장 깨끗한 통에 모셨습니다. 고기가 상하지 않도록 얼음도 담고 그야말로 지극정성을 다해 애지중지한 것입니다.
우리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성모님을 원죄없이 잉태되신 분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 성모님은 다금바리와는 비교도 안 될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분, 만왕의 왕인 예수님을
열 달 동안 자신의 몸에 모신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무시는 거처로 가장 깨끗하고 무죄하신 나자렛의 소녀 마리아의 몸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성모님은 자신의 몸으로 들어오신 하느님을 온몸과 마음을 다해 환영했습니다.
하느님의 거처가 된 자신의 몸을 매일 깨끗하게 청소하고 단 한점의 흠이나 티도 없이 유지했습니다.
이번 대림 시기를 지내는 우리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노력입니다.
이번 성탄 아기 예수님께서는 우리 각자의 내면 안에, 영혼 안에 탄생하실 것입니다.
그분께서 머무시기에 합당한 거처가 되도록, 몸과 마음을 잘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우선 판공성사를 잘 봐야겠습니다.
내면을 잘 정리정돈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또 다른 나자렛의 마리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각자도 성모님처럼 아기 예수님을 탄생시켜야 합니다!
이번 성탄, 예수님께서는 성모님에게서 탄생하셨듯이 우리 각자 안에서도 탄생하시기 위해 우리 각자의 문을 두드릴 것입니다.
우리가 고백성사를 통해 영혼을 말끔히 정화시키고, 매일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삶도 계속 정화시킨다면, 우리 역시 성모님처럼 거룩하고 흠 없는 지성소, 구세주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적당한 장소가 될 것입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강론>
(2024. 12. 9. 월)(루카 1,26-38)
<성모님처럼 우리도>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 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루카 1,28-38).”
1) “성모님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분”이라고 믿는
우리의 믿음은, 하느님께서 ‘한처음’부터 성모님을 선택하셨다고 믿는 믿음입니다.
<‘한처음’은 창조 이전의 시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느님께서 ‘한처음’부터 성모님을 선택하셨다고 믿는 것은,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일은 ‘한처음’부터 하느님의 계획이었다고 믿는 것입니다.
인류 구원 사업은 하느님께서 어느 날 갑자기 우발적으로 하신 일이 아니라 ‘한처음’부터 계획하신 일이고, 그 계획대로 실행하신 일이라고,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이 믿음은, ‘하느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라는 믿음에 근거한 것입니다.
만일에 인간 세상이 어떻게 될지 몰라서 지켜보기만 하다가 더 이상 내버려 두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셔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일이 ‘메시아 강생’이라면, 하느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 아닌 것이 되어버립니다.
성모님의 ‘원죄 없이 잉태되심’은 하느님의 아드님을 세상에 보내기 위해서 미리 준비하신 일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일은, 즉 ‘메시아 강생’은 우리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한 일입니다.
따라서 성모님의 ‘원죄 없이 잉태되심’은 우리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한 ‘구원 사업’을 미리 준비하신 일입니다.
<단순하게 말하면, ‘우리를 위한 일’입니다.>
우리가 성모님의 ‘원죄 없이 잉태되심’을 경축하는 대축일을 지내는 것은, 하느님께서 ‘한처음’부터 우리를 구원하려고 작정하신 것에 대해서 감사드리기 위한 것입니다.
2) 하느님께서 ‘한처음’부터 인간 구원을 계획하시고 실행하신 일에 대해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찬양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찬미 받으시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만물을 당신의 결정과 뜻대로 이루시는 분의
의향에 따라 미리 정해진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몫을 얻게 되었습니다(에페 1,3-5.11).”
바오로 사도는 ‘우리도’ 성모님처럼 ‘한처음부터’
선택된 존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성모님만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도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선택을 각 개인이 체험하거나 실감하기는 어렵지만, ‘나’ 라는 존재가 어느 날 갑자기 ‘우연히’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한처음’부터 가지고 계셨던 당신의
뜻과 계획대로 ‘나를’ 이 세상에 보내셨다고 우리는 믿고 있고, 그래서 모든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전부 다 하느님의 소중하고 귀한 존재라고 믿고 있습니다.
<만일에 ‘나’ 라는 존재가 우연히 생겨난 것이라면, ‘나’는 참으로 아무 의미도 없고 가치도 없는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이 우주의 모든 생명체 가운데에서 의미도 없고 가치도 없는 생명체란 하나도 없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3) ‘성모님의 원죄 없이 잉태되심’은, 성모님의 의지나 응답이나 순종과는 상관없이 전적으로 하느님께서 당신의 권능으로 하신 일입니다.
그 일에 대해서 우리는 그냥 그렇다고 믿으면 됩니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그렇게 태어나신 성모님께서 한평생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고 응답하는 삶’을 사셨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것은 바로 그 ‘순종’과 ‘응답’입니다.
하느님께서 ‘한처음’부터 ‘나’를 선택하셨다고 믿는다면, 그래서 ‘내가’ 정말로 하느님의 귀하고 소중한 존재라고 믿는다면, 우리도 성모님처럼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고 응답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협력 없이 세상을 창조하셨지만, ‘창조 사업의 완성’을 인간의 협력 없이 하기를 바라시지 않는다.” 라는 교회 격언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내가’ 구원받기를 바라시면서,
동시에 ‘내가’, ‘나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 당신의 구원사업의 협력자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전주교구 송영진 모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