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언약에 대하여
성경에는 ‘언약’이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한글성경을 검색하면 289개나 된다. 성경에 나오는 언약은 하나님과 아담 사이에 최초로 맺어진다. 그리고 노아에게, 아브라함에게, 이스라엘에게, 다윗에게 하나님은 언약을 맺으셨다. 언약을 맺었다는 말은 특별한 관계가 되었다는 의미다. 그래서 남녀는 언약을 맺음으로 부부관계가 되고, 나라 사이에 맺어지는 언약은 조약이 된다. 그것은 특별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의미다.
언약은 관계 사이에 맺어지는 것이므로 서로에게 충실할 때 언약에 충실하다고 말하고, 서로에게 불성실할 때 언약을 깨뜨린다고 말한다. 그것은 자주 배우자에게 부정한 일을 하는 것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음란하다’는 말이 그것이다. 언약을 맺은 상대방을 배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질문1. 하나님은 왜 언약을 맺으시는 걸까?
아담의 언약을 보면 그 언약을 통해서 이 세상을 생명으로 충만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가 드러난다. 그것은 노아의 언약에서도 반복되며, 아브라함의 언약에서는 천하만민이 복을 받으리라는 말로 다시 표현된다. 이스라엘과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으실 때는 제사장 나라가 된다는 말로 표현되었다. 아브라함과 그 자손을 통하여 천하만민에게 복을 주시리라던 하나님의 언약은 이스라엘이 제사장 나라로서 소임을 잘 감당할 때 성취될 것이다.
이렇게 보면, 하나님이 그 백성과 언약을 맺으시려는 이유는 그들에게 먼저 복을 주시고 그들을 통해서 열방이 복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손으로 만드신 세상을 생명 충만한 곳으로 만드시려는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셨고 자신의 동역자로 삼으셨다. 세상이 하나님의 포도원이라면, 그리고 하나님이 그 포도원의 농부시라면, 인간은 하나님의 포도원을 함께 가꾸는 사람이다.
예수께서 가르치신 기도에서, 하나님 나라가 땅에 임하기를 구하라는 말은 그 백성의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실현되어 생명으로 충만한 세상이 되기를 빌라는 뜻이 아닐까? 그렇다면 하나님이 그 백성과 언약을 맺으시는 이유는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세우시려는 것이며, 그 나라의 풍성함과 영광스러움에 그 백성을 동참하게 하시고, 또한 그 나라를 물려받게 하시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언약에 참여한 백성의 마음과 하나님의 마음이 서로 맞으면 그 포도원은 생명으로 가득하게 될 것이고, 그 둘의 마음이 어긋나면 포도원에는 가시와 엉겅퀴가 날 것이고, 공허하고 혼돈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역사가 보여주는 교훈이며, 오늘날 세상이 보여주는 현실이다.
질문2. 예레미야의 새 언약은 무엇일까?
예레미야가 본 것은 언약을 깨뜨린 백성이 살아가는 땅의 비참한 현실이었다. 바벨론의 침공으로 유다가 망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전에 유다는 하나님을 배신했고 그들의 공동체에서는 벌써부터 연약한 생명이 질식하고 있었다. 그 연약한 생명을 대표하는 이들이 고아와 과부들이었다.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향하여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저버렸다고 책망할 때, 그들의 악행을 지적했다(렘 7:6). 그들은 종교적인 활동을 하면서 동시에 그런 나쁜 일을 하고 있었다.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언약의 목적을 잊어버리고 겉치레로 흉내만 내고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을 바로잡으시려고 그들을 심판하셨다. 기나긴 포로생활을 하느라 곤비한 그 백성에게 ‘새 언약’이 약속되었다(렘 31장). 새 언약은 돌에 새긴 법이 아니라 심비에 새긴 법으로 작동한다. 새 언약은 사람들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어야 비로소 생명 살리는 일을 하는 수동적이고 낡은 삶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고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을 바친다. 사랑이 그들의 마음을 감동하기 때문이다. 어미가 새끼를 양육하고 돌보는 것은 배워서 하는 일이 아니다.
새 언약에서 하나님은 먼저 그 백성의 죄를 사하신다. 그 백성이 포로로 끌려가고 비참하게 생활하는 이유는 그들의 죄 때문이었다. 그들의 삶은 마치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자손과 같은 처지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건지시고 자유를 주셨듯이 그 백성에게 자유와 해방을 주시려고 죄 사함을 약속하셨다. 새 언약은 하나님의 죄 용서로부터 시작한다.
질문3. 예수님의 새 언약은 무슨 의미일까?
예수께서 잡히시기 전날 밤에 유월절의 식사를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새 언약을 맺으셨다(눅 22:20). 그것은 포도주 잔을 따라 주시면서 하신 말씀이다.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시고 그들과 맺으신 새 언약은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인 ‘새 이스라엘’을 세우시는 의식이었다. 새 이스라엘도 ‘열두’ 사람의 사도들 위에 세워질 것이다.
교회는 성만찬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계속 기억하고 기념했다(고전 11:25~26).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예수님의 죽으심은 죄를 사하는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된 사건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다시 죄와 사망의 법에 매이지 않으며 거기에서 해방되어 생명의 성령의 법 가운에서 살 수 있게 된다. 그 결과 그들은 억지로나 의무감으로 일하지 않으며 자원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섬긴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그처럼 우리에게는 죄 용서와 승리를 가져다준다. 여기서 승리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다. 그것은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는 것이며, 모든 환난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께 신실하게 사는 것이다.
질문4. 그러면, 언약에 충실한 사람이 받는 유익이 무엇일까?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지향하는 최종 목적에 동참하는 것이다. 즉, 생명으로 충만한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물려받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언약을 통해서 약속의 땅을 유업으로 물려받았다. 그들은 또한 성막과 율법을 받았으며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로 살도록 부름을 받았다. 그런 이유로 하나님은 자기 아들로 여기시는 백성에게 이방 나라를 유업으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시 2:8). 이 말은 이방 나라들을 약속의 땅처럼 물려받아 복된 터전으로 가꾸는 일에 동참하게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나님이 약속의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부르시고 그렇게 만드실 목적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유업으로 주셨듯이, 이방 나라를 그 백성에게 유업으로 주시는 목적도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예수께서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제자들에게 명하실 때도 그 복음전파를 통해서 이방 나라들이 복을 받게 하시려는 목적이 아니었을까?
질문5. 이스라엘과 교회는 어떤 관계인가?
그런 점에서 교회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아담이나 노아, 아브라함이나 이스라엘과 같은 위치에 있다. 하나님의 목적과 경륜에 동참하기 위하여 부름 받아 세상을 유업으로 받았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리고 교회가 하나님의 경륜에 동참하는 방법은, 하나님이 장차 그 백성들을 통하여 이루실 새로운 세상을 함께 소망하며 그 언약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다. 그것은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것이며, 성령을 좇아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사는 것이다. 그런 삶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섬기며 이웃(세상)을 위해 따뜻한 마음으로 봉사하는 것이다. 그것은 예배와 선교로 요약된다.
신약성서의 기록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교회를 아담에 빗대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부르며, 이스라엘에 빗대어 새 이스라엘이라고 소개하며, 제사장들이라고 규정한다(고후 5:17, 골 3:10, 벧전 2:5, 9). 그리고 교회가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 받은 것을 시내산의 언약에 빗대어 새 언약에 동참했다고 설명한다. 그것은 옛 언약보다 더 좋은 언약이다(히 7:22, 8:6). 히브리서 기자는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맺은 언약이 예레미야의 예언에 나오는 바로 그 ‘새 언약’이라고 확신한다(히 8:10, 10:16).
질문6. 새 언약에 동참한 교회를 위해서 약속된 것은 무엇일까?
히브리서 기자는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히브리서 9:15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교회가 받게 될 것은 영원한 기업이다. 옛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이 약속으로 주어졌고, 시편에 따르면 그 백성에게 이방 나라를 유업으로 주시리라고 하나님이 약속하셨듯이, 교회에게는 영원한 기업이 약속되었다. 그 기업(클레로노미아, heritage)은 유업(개역개정)이나 유산(표준새번역), 또는 분깃(공동번역)이라는 말로도 표현되며 교회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되어 있다(벧전 1:4).
사도 바울은 교회를 위하여 예비된 그 기업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성도들이 깨달을 수 있기를 기도한다고 고백했다(엡 1:18). 어쩌면 바울 자신이 그 기업(유업)의 영광이 어떤 것임을 잘 알았기에 그토록 열정적으로 복음전파를 위해서 헌신하지 않았을까?
교회를 위하여 예비된 하나님의 유업은 장차 완성될 하나님 나라라고 볼 수 있다. 예수께서는 교회에게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눅 12:32)고 말씀하시며 격려하셨다. 하나님의 나라가 교회에게 주어질 영원한 기업이다. 그것은 하늘에서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성이 땅으로 내려와 온 세상을 새롭게 하는 날 완성될 것이다. 그것은 예언자들의 환상이 이루어지는 세상이 될 것이다. 즉, 상함도 없고 해함도 없는 평화의 세상이며, 모든 사람이 예언자처럼 하나님의 뜻에 정통한 세상이며, 또한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인정하는 것이 온 땅에 충만하게 될 세상이다.
이런 세상을 누가 그토록 사모하고 기뻐할까? 그들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충실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이 빛나기를 바라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고대한다. 왜냐하면 그때 비로소 세상은 보기에 심히 좋은 곳이 되기 때문이다. 그가 이렇게 사모하고 간절히 고대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얼마나 선하시고 자비로우시며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운 분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약에 충실할 때 비로소 그 언약의 상대자를 더 깊이 알아가고 그와 더불어 만들어갈 세상과 미래를 소망하고 기대하며 기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다(히 7:22).
[출처] 새 언약에 대하여|작성자 새 시대의 그루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