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이 워낙 곤고하여 연세 높은 노모님이 계시지만
쉽게 다녀 올 수 없었던 고향땅 우도에를, 백모님께서
유명을 달리하는 바람에 잠시나마 몸을 의탁할 수 있었네.
인정머리 없이 너무 오래 고향을 찾지 않았다는 경고인지,
강한 바람, 시커먼 구름에 눈보라까지 몰아쳐서 뱃길도 끊긴
고립무원의 고향의 정서를 접하게 되니 많은 생각이 생겼다가
지워지고 또 떠오르고 사라지기를 거듭하게 되더이다.
바람이 불면 흰물결로 뒤덮혀 수왕수왕한 널언지 바다는
그 옛날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고,
대나무 막대기에 낚싯줄 하나 묶어 어랭이 코생이 낚던
개끗알 머을들과 빌레들도 자리를 보존하고 있었고,
허허벌판이었던 검멀래 동산에도 현대식 건물이 들어서서
세월따라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을 복습시켜 주었으며,
어깨 정도에 있던 섬머리 소나무들이 내 키 두세 배정도로
크게 자랐고 그 두께도 두꺼워져서 그 위용을 조금씩 발휘하고 있었고,
농산물은 유채는 사라졌고 마늘과 보리가 주종을 이루고 있었으며,
보리가 제법 많이 자라서 바람이 다가와 건들면 뉘엇뉘엇 드러누웠다 일어서며
온전한 삶을 이룰려고 애를 쓰고 있었고, 보리밭 귀퉁이 못 쓰는 땅에는
자생한 유채꽃이 노랗게 꽃을 피워 가까스로 안간힘을 다하며
대를 이어가는 애처로운 모습도 보았다네.
길이 사통팔달, 시원스럽게 뚫려 자동차들이 줄을 잇고
중앙에는 신식 건물이 빼곡이 들어앉아 도회지를 연상케 하더이다.
그 시절 그 때에는 우리 고향을 반농반어라고 소개했었는데
지금은 삼농삼어삼도가 된 것같은 느낌을 받았다네.
처조부님 제사이기도 하고 궂은 날씨에 움직이기도 싫고 해서
처갓집에 눌러앉아 어르신네들의 말씀에 귀기울이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터에
우도면장으로 있는 찬현이가 자가용을 갖고 와서 나를 태우고 총연장 12키로나
되는 우도 해안도로를 천천히 달리며 구경시켜 주더이다.
그렇지 않아도 꼭 한 번은 내 걸음으로 거닐어 보고 싶었는데
운수대통이었던 셈이고, 도보로 걸으면 약 2시간 반 정도 소요된다고 하더구려.
우리 장인댁에서 출발하여 순선이네 동네로 해서 문유네 동네, 모실래끼,
성란이네 동네, 전흘동, 상고수동,하고수동 백사장을 거쳐 문석이네 동네
해안가를 돌아서 거멀래 임댕이를 돌아보았지.
거기서 양훈이네 집에서 닭 잡아 먹는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양훈이네
집에 갔더니 한창 닭을 삶아 먹고 있더라.
가보니 양훈 내외, 신영필 내외, 흥범, 하고수동 경란이여동생 내외,
고 남선이 벗 처, 종수는 보말 잡으래 개끄띠 가볐덴 허고,
찬현이 내외와 나, 모여서 오손도손 즐거운 시간을 보냈네.
닭죽을 큰 대접으로 수뿍 주어 먹어보니 그 맛이 달라서
요즘 닭이 아닌 것 같다고 하니까, 병아리 사오기는 흥범이가 사오고
기르기는 양훈이가 전담했다가 두 마리를 잡았다고 하더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으며 우도사회가 돌아가는 현실도 귀동냥 할 수 있었고
저녁 무렵에야 뒷바당 내 살던 동네로 돌아왔다네.
그런데, 영일동과 동동네에서만 보아오던 우도봉이 나의 위치에 따라
다르게 보였고, 비양동 해안가에서 본 우도봉이 가장 아름답게 느껴지는 가운데,
섬뜻 이런 생갇이 들더이다.
똑같은 세상을 살아가지만 어떤 생각과 행동을 갖느냐에 따라 삶의 현상도
다 다르게 표현된다는 것을...
성란이네 친정집 올래도 통과하게 되어 그 집을 유심히 바라보며
우리 성란이가 어린 시절 사상과 이념을 다듬었던 곳이라는 생각에
정겨움이 더 했었고,
순선이네 친정댁은 서동네와 동동네를 잇는, 옛날 기계빵 길가 전망 좋은 곳에
현대식 건물로 좋게 지어져서 우리 순선이가 소섬 다니는 맛이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문석이와 문유네집은 길이 달라 보지를 못했네.
두필이는 병원에 가버려서 만나지는 못했으나 건강이 아주 좋아졌다고 하더라.
하루는 종일 어머님과 이야기을 하다가 8일 아침 비행기가 있다하여
몸도 지치고 마음도 편치 않아 갈 때의 계획과는 다르게 서둘러 올라왔네.
제주시 땅을 거치면서 순선이와 성란이를 또 보고 싶었지만
또 다시 바쁜 시간 빼앗을 염치도 없거니와 만남은 약간 부족한 듯 해야
그리움이 더 생기는 법이라 아쉽지만 발길을 돌렸네.
성란아, 순선아, 중간에도 올 때에도 연락주지 못해 미안하다,
자네 둘은 아직도 뺑끄랑허게 보였고 여성으로서의 은은한 매력과
아름다움을 고이 지니고 있더라.
육신이 낡아가는 것을 너무 애닲다 하지 말게.
육신이 묵어가는 대신 정신은 더 높아가는 것이니 이쪽 저쪽 따지면
본래의 정성란과 강순선으로 온전하니 말일세.
다시 만날 그날까지 행복하시게나.
수구초심(首邱初心)
여우가 죽을 때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굴로 향한다는 말처럼
언제나 고향을 그리며 살고 있고, 그 세월이 언제까지일지는 몰라도
아이들 독립시켜 놓고 때가 되면 내 고향 우도에 가서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내 이승의 삶을 졸하고 싶다.
내 인생을 갈무리할 곳, 내 고향 우도여, 우도여, 건강하소서.[金山]
첫댓글민수야, 사흘 낮 사흘 밤을 고라도 소섬 갔다 온 얘기는 다 못 고르크녜 이? 게난, 형편 닿는데로 자주 들러보래 오라. 흥범, 훈이 합동 작품인 닭... 그 닭죽 진짜 맛 있었겠다! 우리도 병아리 사다 맡기면 키워줄건가??? 누구한테 부탁 해보민 되코? 우린 "깽란이"라 경란이라 하니까, 낯 설어~~~
첫댓글 민수야, 사흘 낮 사흘 밤을 고라도 소섬 갔다 온 얘기는 다 못 고르크녜 이? 게난, 형편 닿는데로 자주 들러보래 오라. 흥범, 훈이 합동 작품인 닭... 그 닭죽 진짜 맛 있었겠다! 우리도 병아리 사다 맡기면 키워줄건가??? 누구한테 부탁 해보민 되코? 우린 "깽란이"라 경란이라 하니까, 낯 설어~~~
향수를 자극하는 글... 눈물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