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교차로신문 2021년 6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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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중국 서안에서부터 유럽까지 무역상들의 길을 실크로드라고 한다. 이 길을 통해 동서문명이 서로 서로 영향을 미치었다. 중국에 불교도 실크로드를 통해 유입되었다. 중국에 불교가 유입된 이래 크게 두 가지 양상으로 발전했다. 한 가지는 서역이나 인도 승려들이 중국에 들어와 경전을 번역하고, 포교하였다. 다음은 중국의 승려가 직접 인도를 다녀온 경우이다. 신라의 혜초(慧超, 704∼787) 스님도 인도로 유학을 떠나 10년 만에 돌아와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国伝>을 저술하였다.
중국에서 인도로 구법을 떠나 귀국한 최초의 승려가 법현(法顯, 337∼422)이다. 어느 날, 법현스님은 세수를 하다가 물에 비친 자신의 늙은 얼굴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였다. ‘다시 인도행을 주저하면, 내 소원이 물거품이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인도로 떠날 것을 맹세했다. 스님이 인도행을 결심한 것은 당시 중국에 율장이 제대로 없어 승가의 기강이 해이해 율장을 구하기 위함이었다. 법현 스님 이전에도 수많은 스님들이 실크로드를 통해 인도로 구법을 떠났으나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길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399년, 법현스님이 인도로 떠날 때가 63세였다. 함께 출발한 스님이 4명[慧景ㆍ道整ㆍ慧應ㆍ慧嵬]이었다. 인도를 향하는 길에 반드시 타클라마칸 사막을 횡단해야 했다. 이 사막은 ‘한번 들어가면 살아나올 수 없다’는 뜻일 정도로 매우 험난한 곳이다. 법현스님이 이 사막을 건너면서 이렇게 말했다.
“사막에는 악귀와 열풍이 있는데, 이들을 만나면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다. 풀과 나무는커녕 하늘에는 새 한 마리 없고, 땅에는 짐승 한 마리 없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사막뿐이었다. 뜨거운 모래바람이 휘몰아치는 막막한 여로에서 오롯이 지표가 되어주는 것은 언제 죽었는지 모를 죽은 자의 해골이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법현전>
법현 일행은 한 조각의 빵과 한 모금의 물로 하루를 견디면서 죽은 자가 알려준 그 길을 따라 드디어 사막의 끝 호탄[和田]에 도착했다. 다시 파미르 고원길을 지나며, 이런 말을 남겼다.
“길은 험하고, 바위투성이며, 깎아지른 절벽을 따라 나 있다. 이 바위 절벽이 천길 높이로 서 있어서 눈이 가물거리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발 디딜 곳이 없다.” - <법현전>
사막은 어린왕자가 사는 그런 낭만적인 곳이 아니다. 필자도 10여년 전에 중국 북부 지역을 다녀왔다. 버스를 통해 이동하는 3∼4일간 사막이었는데, 황량한 기분이 지금도 남아있다. 법현 일행 중에 파미르 고원에서 한 스님이 죽었고, 장안을 떠난 지 3년 만에 인도에 도착했다. 법현은 인도 언어인 산스크리트어를 공부하고, 14년간 인도 및 스리랑카에서 공부를 마친 뒤 중국에 귀국했다. 법현 일행 중, 중국에 돌아온 이는 오직 법현스님 뿐이었다.
필자는 법현스님을 소개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법현스님은 당시 60세가 넘는 나이에 그 험난한 길을 걸었고, 60대 후반∼70대 중반에 외국어[불경]를 공부했으며, 중국에 들어와서도 80대 중반까지 경전을 번역하였다. 주위에서 보면, 60대만 되어도 ‘이 나이에 뭘 하겠어…’라고 하며 지레 포기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1600년 전, 60세라고 하면 현 시대로 봤을 때, 고령의 나이이다. 그런데 법현스님께서 자신이 성취코자 하는 목표를 향해 불굴의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을 한번쯤 음미해보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지 않는가?! 늦었다고 생각할 때, 하고 싶었던 일이 있다면 시도해보자. 한번뿐인 인생, 이왕이면 진취적인 삶을 구도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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