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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먹음의 행복/노년의 행복
1. 사람은 몇 살까지가 정명인가?
5,60년 전에는 60살 환갑연이 흔했다. 80살을 살면 장수한다고들 말했다. 허나 오늘은 어떤가?
‘호모 헌드레드 시대(Homo Hundred Age)’라는 말이 등장했다. ’백세인간시대‘라는 말이다.
100세가 되어야 비로소 제 나이를 먹었다고 쳐주는 세상이다.
일부 과학자들의 주장은 인간의 정명을 120 내지 125세로 본다. 125세로 보는 근거는 젖먹이동물이 대체로 성장기간의 5배를 산다는 것에서 유추했다. 곧 개를 예를 들면 3살이 성장기인데 그 5배, 곧 3X5=15가 개의 정명이다. 그래서 인간은 그 성장기인 25세의 5배인 125세를 정명으로 본다는 것이다. (120세 정명설은 성장기를 20세로 본 것) 이에 대해 사족을 달자면, 미국의 장수학 권위자인 조지아대학의 레오나드 푼 교수가 5년 전 한국에 와서 한 강연 중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인간의 수명에 대해서는 ‘생물학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설’과 ‘과거에 비해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 무한하다’는 두 주장이 있다. 그런데 현재의 상황을 토대로 볼 때 120세까지는 연장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2. 한국인은 나이를 ‘먹고’ 산다.
한국인은 여느 민족보다 먹는 것, 곧 식문화가 다양하고 뛰어나다. 그래서인지 는 몰라도 나이까지도 ‘먹는다’. 그런데 이 나이를 먹는 법은 만인 평등이다. 굳이 요새 유행으로 공짜 점심이다 복지정책이다 떠들지 않아도 이 나이만큼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먹거리이다.
그래서 나이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말라는 뜻도 내포해서 ‘나이는 숫자일 뿐’이다. 그것에 구애받지 말고 살라고 충고하는 세상이다.
가만히 손 놓고 있어도 꼬박꼬박 먹는 나이를 가지고 어르신 행세하는 꼴 좀 보이지 말라는 것이 아닐까? 시대가 바뀌고 시속 수백 만 킬로로 치닫고 있는 세상에 살면서, 지금도 지하철 노약자 우대석이 제 구실을 할 것으로 착각(?) 하다가 젊은 여성들에게서 봉변당하는 ‘어르신’ 이 있지 않은가?
3. 오래 살기보다도 ‘잘 사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우리는 나이 먹음을 자랑할 것 없다. 또한 두려워하거나 기피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그래 봐야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않는가? 우리는 나이를 먹고 늙는다는 것을 지극히 정상적인 생리현상으로 그대로 수용하여야 만 한다.
그러나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그것은 어떤 경우에 우리가 나이 먹었다, 또는 늙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되는가 이다.
(가) 늙음에 대한 자각: 다음과 같은 현상이 대체로 우리가 늙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1) 길에서나 버스, 또는 지하철 안에서 친근하게 다가와서 인사를 하는 사람이 누구였던 지 얼른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
(2) 가게나 사무실에서 무슨 말을 했는데도 상대방이 잘 알아듣지 못해 다시 말해달라고 하는 경우가 잦다.
(3)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는 것보다는 집안에서 TV를 보던지 사우나에나 가서 욕탕에 들 어 안자 있는 편이 좋다.
(4) 급한 일을 당하면 초조해 한다. 손을 움직이는 일이나 문장을 쓰는 따위 일의 속도가 점점 늘여지고, 새로운 것을 배워 익히려는 것이 어렵다.
(5) 평소에 접하는 사람들이 자기보다 더 젊은 층이 많아졌다.
(6) 밤중에 잠이 깨면 더 이상 잠이 들지 않고 이런저런 과거사를 생각게 된다.
(7) 가족이나 친척, 친구에 대해 이러저러해서 나를 좀 도와 달라고 하려고 생각하기보다는 그런 걸 기대해봤자 소용없겠지 하고 체념하는 편이 많아졌다.
(8) 친구와 대화하는 도중에 왠지 모르게 자신이 잔소리가 많거나 불평 불만스런 말이 많 아 지는 것을 느낀다.
(9) 신문이나 책에서 잔글씨를 읽기가 어려워졌다.
(10) 길을 걷다보면 자신을 앞질러 가는 사람이 많아졌다.
(11) 노래방이나 카페 따위에 가는 것이 귀찮게 생각된다.
(12) 무엇을 깜박깜박 잘 잊어먹는다.
(13) 앉았다 일어서면서 나도 몰래 ‘아이코’소리가 나온다.
(14) 사람들로부터 “건강 하십니다”라는 인사말을 곧잘 받게 된다.
(15) 대학생 아이들이 어린애처럼 보인다.
(16) 걷다가 비틀거리거나 아주 작은 장애물에 부딪쳐서 넘어지려 한다.
(17)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면 늙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18) 사람이 말한 것을 곧잘 되묻게 된다.
(19) 영화관이나 음악회 따위 젊은이들이 모인 파티 같은 데에 가면 즐겁기보다는 내가 왜 이런 데에 왔는가라는 위화감을 느낀다.
(20) 계단을 오르면서 한 단 두 단 세면서 오른다.
(21) 새 가구나 일용품이 시중에 나와도 오래 써서 손때 묻은 것을 그냥 쓰고 싶어 한다.
(22) 이웃집 어린이의 이름을 들었어도 금방 잊어먹는다.
(23) 앞날의 삶에 대한 확실한 계획이 서지 않는다.
(24) 옛날의 친구나 친척의 사망 소식이 별 것 아닌, 예사로운 것으로 여겨진다.
(25) 같은 사람에게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고 나서 나중에 알고 나서 창피하게 생각한다.
(26) 시니어 마을이나 노인요양원 따위에 대한 기사나 정보에 유독 마음이 끌린다.
(27)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할아버지’ ‘할머니’라는 호칭을 듣는다.
(28) 자신의 신체 상태에 유의하면서 건강관리에 신경을 쓰게 된다.
(29) 자신이 옛날에 고생했던 이야기를 자랑하고 싶어 한다.
(30) 관혼장례에 나가고 싶어 한다.
(31) 전차나 버스에서 앉을 좌석을 찾는다.
(32) 요리에 대한 호 불호가 달라진다.(식성이 변한다)
(33) 떠들썩하고 활발하게 노는 것이 귀찮고 싫다.
(34) 고집이 세 진다.
(35) 불필요한 것을 보존하거나, 쓰고 헐어빠진 것도 버리기 아까워한다.
(36) 자기보다 나이 어린 사람들의 발언을 무시하거나 싫어한다.
(37) 전차나 버스 칸에서 곧잘 젊은이로부터 자리 양보 대접을 받게 된다.
(38)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과, 오래 살아서 젊은이들에게 폐가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서로 부딪쳐서 갈등을 일으킨다.
(39) 성욕이 감퇴한다.
(40) 사회에서나 가정에서 책임이 있는 일로부터 점점 멀어진다.
이상 40개 조항에 걸친 노령화에 대한 자각이란 것을 말했다. 이것을 다른 각도에서 살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샐러리맨으로 일터에서 일하다가 정년을 맞아 일터에서 쫓겨나면 거기서 적어도 다음과 같은 7가지와 이별을 고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곧,
(1) 자기가 종사하던 조직 (기관, 관공서). 회사 등 기업체로부터의 이별.
(2) 가족으로부터의 떠남.
(3) 일정한 수입으로부터의 이별.
(4) 젊음으로부터의 작별.
(5) 정보로부터의 이별.
(6) 지위로부터의 일탈.
(7) 미래. 꿈으로부터의 이별.
이것은 한 마디로 말하면 ‘일로부터의 떠남’이 가장 큰 노년기의 무기력, 허탈감의 바탕이 된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여기서 결론은 노년기에도 일을 할 수 있는 사회가 바람직스런 사회라는 것이다. 노인들에게 무상으로 점심을 먹이는 따위 고식적인 복지보다는 일자리를 마련해 주어서 노인도 떳떳이 제 몫을 하고 살아간다는 자부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 고령에 대한 패러다임시프트(나이에 대한 생각의 변화)
우리는 나이를 먹으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이 나이는 숫자일 뿐이다. 그리고 숫자만 불려서 오래 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어떻게 사느냐, 곧 ‘잘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것이 앞에 말한 바와 같이 노년기에도 사는 보람을 느끼도록 국가나 사회가 노년기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할 것이다.
인류 조상을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라 부르는 것에서 오늘의 100세 장수 시대 인류를 UN이 (앞에서도 말했듯이) 2009년 보고서에서 ’호모 헌드레드(Homo Hundred)시대라 부르게 되었다. 평균수명이 80세를 넘는 국가가 2000년에는 6나라뿐이었으나 2020년엔 31나라로 급증할 것이라 예측했다. 우리나라 사람의 평균 연령은 이미 80을 넘었다. 여성이 83세, 남성이 79세라는 것이 최근의 통계이다. 머지않아 평균연령 90세 때가 올 것 같다. 우리의 연령 노령화가 유독 빠르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은 아직은 80세 시대이다. 20대 초반까지 배운 지식으로 50대까지 일하고 60대 이후엔 은퇴해 80세까지 산다. 임금. 복지. 보건. 국가재정은 물론 교육. 취업. 정년제도, 개인의 재테크와 인생플랜까지 모두 이런 전제를 바탕으로 한다. 그러나 2020년 이후 ‘100세 시대’가 도래하면 ‘80세 시대’에 머물러 있는 한국사회의 모든 제도. 시스템과 국민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
100세 시대에는 배우고 일하고 쉬는 것이 생애의 주기별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항상 같이 가야한다.60대 이후에도 청년기나 장년기와 마찬가지로 똑같이 배우고 일하고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4. 일하는 삶 : 사람은 일하는 동물이다.
부처님이 “향을 피우지 않으려거든 방귀라도 뀌어라”는 말씀을 했다는 말도 있는데, 설마 그렇게야 말했으랴만, 좌우간 인간은 가만히 놀고 누어서 밥이나 썩히는 것은 아니란 가르침인 것이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 말라는 교훈이다. 앞에서 말한 것도 알고 보면 ‘일’에서 떠난 것이 정년 후의 노년이 겪는 문제의 대부분이라 할 것이다. 결론은 노년도 청장년과 마찬가지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일’이란 무엇인가?
영어로 본 일의 종류: work, labor, job, business, duty, task, employment , service, plan, project 등등.
이런 말들 가운데서 work는 공부라는 뜻이 있듯이 자기 스스로가 한다는 의미가 함축된 말이다. 그래서 평생토록 하는 일을 ‘Life work'라 한다.
사람은 살면서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이 있다.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삶이 변화되고 미래가 결정된다.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그 답은 “어떤 것이든 간에,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이다.
삶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 그래야 행복하고 삶이 보람이 있다. 해야 할(직장에서 하는 일 따위) 일에 신경 쓰다보면 정작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뒷전이 되고 만다.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성공한다. 의무적으로 해야 할 일만 해선 안 된다. 하고 싶은 일이 먼저이고 해야 할 일은 나중이다.
그런데, 어디 젊어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그렇게 할 수가 있는가? 정년이 돼서 직장을 떠나면, 그때부터가 내 인생을 참으로 찾을 수 있는 좋은 시기라고 생각하라. 직장에서 했던 일이 1모작이었다면, 이제부터가 제2모작 시기이다.
여기서 노년기에 할 일이 참으로 내가 할 일이라는 생각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령기는 ‘행복한 시기’이다.
5.결론: 축복 받는 고령사회 :
행복한 노년기는 스스로 만드는 것이고, 그 고령사회는 축복이다. 행복은 내가 찾아가는 것이지, 행복이 거저 오는 법은 없다.
노인을 일하게 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하고, 순혈주의를 타파하면 이 사회가 유토피아다.
이런 우스개 이야기가 있다. 60대 후반의 노부부가 자녀들을 모두 분가 시키고 단 둘이서 아파트 생활을 하고 있는데 왕년에 한 가락 하던 남편은 은퇴하여 늙은 백수건달이 된 뒤로는 별로 할 일이 없어서 허구 헌 날 집에 쳐 박혀 있거나 근처 공원으로 산책이나 하는 것이 고작이지만....... 이제까지 위세 당당했던 남편 그늘에서 죽어지내던 마누라는 매일같이 교회모임이다, 동창모임이다, 계모임이다 하며 밖으로 나다니고 한 번 나갔다하면, 제 세상 만난 듯이 쏘다녀서 남편은 완전히 집지킴이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런데 이 마누라가 외출할 때마다 집을 나사면서 남편에게 항상 호기 있게 신신 당부하는 말이 “까불지 말라”다. 그러지 않아도 주눅이 들어 있는 남편에게 “까불지 말라”라니 이런 사가지 없는 마누라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러나 그 “까불지 말라”는 말은 그 내용을 알고 보면 실상 싸가지 없는 말이 아니란다. 즉, 다음과 같은 당부의 말인 것이다.
* 까= 까먹기 잘하는 가스 조심하고 (가스 스위치 열어 놓고 깜빡 하기 잘하니)
* 불= 불조심하고( 혼자 집 지키다가 불내면 큰일이니까)
* 지= 지퍼 단단히 잠그고(바지 지퍼 열고 다니는 백수들이 많으니)
* 말= 말조심하고(친구들과 말 한 마디 때문에 다투는 일이 잦으니)
* 라= 라면 끓어서 점심 드시라(혼자 놔두면 곧잘 점심을 거르니)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마음이 건강한 노령기를 맞이하기 위해 가져야 할 마음의 준비가 어떤 것일까를 생각해 보자.
(1) 정년 연장의 꿈이 대세다. 새로운 것을 습득하도록 노력하자.
노인이 오래 일하면 청년의 일자리를 빼앗는다? 절대 아니다. 인류역사가 증명한다. 유럽의 교훈을 배우자.
1980년대 유럽은 청년실업 극복을 위해 장년층의 조기 퇴직을 방관했다. 노인이 떠나면 청년이 그 자리를 채울 중 알았다. 헌데 결과는 반대였다. 노인의 노하우는 청년의 혈기로 청년의 혈기로 대체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냥 일자리만 줄어 경기침체를 낳았다. 결국 노인의 일자리가 줄어드니 청년의 일자리도 줄었다. 유럽은 뒤늦게 수습에 나섰다. 그래서 유럽에선 “입사 시 나이를 묻지 마”, “정년퇴직 퇴장하자”는 캠페인이 일어났던 것이다.
유럽연합(EU)은 2000년 고령자와 여성의 고용을 확대하는 리스본 전략을 발표했다. 한국도 이것을 따라 배워야 한다. 배울 수밖에 없다.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2050년에는 15세~64세 일꾼(생산가능인구) 1.4명이 65세 이상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젊은이의 허리가 휜다.
오늘 한국의 실상은 어떤가? 한국은 한 마디로 너무 너무 빨리 늙어가는 나라 중 으뜸이다. 그래서 15세~ 64세의 ‘생산가능인구’가 2017년부터 줄어든다. 특히 2020년에 들어서면 매년 30만 명씩 급감할 전망이다. 노인 인구는 2017년부터 어린이를 앞질러 가기 시작해 2060년에는 어린이의 4배가 되고 10명이 일해 3.7명을 부양하게 되고 2060년에는 10명이 10명 이상을 먹여 살려야 하는 구조로 변할 것이라 한다.
이렇게 엄청난 비생산인구들은 어떻게 지나게 될 것인가? 다른 측면에서 보면 직장을 떠난 노인들에게 여가시간이 많아진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이가 많아질수록 그에 따라 자기가 자유로이 쓸 수 있는 시간이 불어나는 것이 예사다. 이 엄청난 시간을 그냥 날려 보내고 말 것인가? 노령인구에게는 전혀 생산가능한 노등력이 없다는 것인가? 늙은이들은 남아 돌아가는 시간을 괜히 젊은이들에게 쓸데없는 간섭을 하거나, 집안에서는 며느리를 잔소리로 괴롭히는 따위에 쓰지 말고, 무언가 지금까지 해 보지 못했던 것을 배우도록 하면 어떨까? 이런 발상은 물론 아무나 할 수 있고, 이미 세상이 다 바라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것을 어떻게 꿰어서 좋은 과실을 보느냐는 문제이다. 다음의 통계에서 보게 되겠지만 사람들의 대다수가 은퇴 이후에도 무언가 활동을 하기를 원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문화활동이 으뜸이다. 즉, 배움을 연장시키자는 욕구가 크다는 것이다.
여기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는 본인이 결정한다. 다행히 오늘은 학교가 아닌 곳에 배움을 즐길 곳이 너무나 많은 사회다. 도처에 컬쳐센터라는 배움의 마당이 있다. 거기에는 문화사, 심리학, 문학, 종교, 각종 외국어, 수예, 장기바둑, 마장, 사진술, 그림그리기, 노래 등등 참으로 배울 것들이 즐비하다.
학교 문턱을 가지 못한 80세 할머니가 한글을 깨우쳐 손자들에게 편지를 쓴 분도 있다. 배움에 나이가 없다. 인생은 배움의 과정이다. 그래서 우리네 조상님 네는 죽은 후 제사를 모실 때 쓰는 지방에 벼슬 못한 분에게 ‘顯考 學生 府君 神位’라 해 ‘학생’이라 부르는 것이다.
최근에 한 신문사가 20~50대 서울지역 직장인 700명을 대상으로 ‘은퇴 이후 어떤 여가활동을 하기를 원하는가?’라는 것을 조사한 결과 다음과 같은 답을 얻었다.
* 은퇴 이후 희망하는 여가활동이 무엇인가?
문화활동...........39.5%
취미활동..... 31,2%
친구와의 만남...10.7%
자원 봉사...........10.5%
교육 활동.............4.7%
종교활동.............2.7%
기타....................0.7%
* 문화. 레저생활을 위해 필요한 경비는 얼마로 보나?
19.3%..........월 10만 원 이하
49.5%..........월 10만 원~30만 원 미만
24.2%..........월 30만 원~50만 원 미만
7.0%.......... 월 50만 원 이상
(2) 이동능력을 유지할 것:
70세 이상 고령자에게 “당신은 지금 행복합니까?”라는 소박한 질문을 해서 행복하다는 사람, 그렇지 않다는 사람으로 나눠서 그들 사이에 어떤 점이 다른가를 검토한 조사가 있었다. 그 중 한 가지가 이동능력, 곧 몸을 자유로이 움직이는 능력이 있느냐라는 것이 행복갑과 밀접히 관계가 있다는 것이 나타났다.
이동능력이란 말은 원래 유아기의 발달에서 쓰인 말로서, 아동기, 청소년기, 장년기엔 특별한 경우 외는 쓰이질 않는 말이다. 그런데 그것이 어떤 사람에겐 60세가 되면서부터 슬슬 오기 시작해 걷기가 힘들고 싫어하게 된다. 계단 오르기가 무서워 꼭 승강기를 이용하게 된다.
조금만 먼 거리에도 차를 이용한다. 이동능력은 나이와 더불어 쇠퇴한다. 그럴수록 걷기를 힘써야 할 것인데, 그렇지 않는 것이 병이다.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한 걷는 것이 좋다.
(3) 사람에 대한 관심을 가질 것.
유럽의 선진국 도시 풍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인데, 길가 끽다점의 테이블에 한가로이 앉아서 커피를 마시면서 길 가는 사람을 바라보는 그림을 보게 된다. 노부부나 연인끼리가 걸어가는 것이라면 그들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아가면서 두 사람이 무언가 속삭이고 있다. 모르긴 해도 아마 그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에 대한 감상을 속사기는 것이 아닐는지.
이렇게 사람을 바라본다는 것은 재미있다. 일부러 유심히 남의 얼굴을 보거나 손가락질을 하거나 하는 건 실례이나, 이 사람은 왜 이런 동작을 할까? 라는 생각으로 사람의 표정이나 복장에서 공상을 해 보는 것은 어쩌면 소설을 쓸 건더기가 생길 수도 있는 소중한 수확일 것이다.
(4) 신변을 항상 청결히 하도록 힘쓸 것.
나이 많은 사람에 대해 젊은이들이 갖는 솔직한 인상은 ‘추하다’는 것이다. 얼굴에는 주름과 기미가 불어나고 두발도 엉성하다. 쓸데없는 지방질이 붙은 살결이 너덜너덜해 보인다. 어떤 사람은 체취나 입내를 내서 불쾌하다. 몸 모양도 허리가 휘거나 엉덩이가 커서 보기가 흉하다. 젊었을 때의 그 아름다움이 언제 어디로 도망갔는지 모른다.
남의 집 어린이나 유아에게는 누구나 관심을 가지고 예쁘다고 말을 걸어주거나 만져 주고 싶은 심정인데도 노인에겐 그렇지 않다. 기껏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거나 몸에 부딪치지 않도록 조심하는 정도지, 그 이상의 친절은 베풀기 싫어한다.
이건 한 마디로 노인에게는 아름다움, 곧 미가 없어졌다는 것이 그 이유 중 하나이다. 그래서 노인은 특별히 자기 몸이나 주변을 청결히 유지 하도록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5) 좋은 친구를 가질 것.
돈으로 얻을 수 있는 행복이 있는가 하면 돈으로는 얻을 수 없는 행복이 있다. 그것은 밝고 넓으며 살기 좋은 주택, 풍요로운 식탁, 호화한 여행 등은 모두가 돈이 있어야 가능하다.
미국에서는 소위 ‘3사’라 해서 ‘사’ㅅ자가 붙는 가정 의사(Home Doctor), 변호사, 세무사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해서 그들과 일정한 계약을 해 두고서 필요할 때에 즉시 와서 도와줄 것을 약속해 둔다. 여기 또 한 붙는 것이 임상심리학자다. 이런 것은 하나의 사회적 지위 표시라 할 것이고 역시 자력이 있어야 한다. 그 밖에도 브랜드가 있는 의복이네, 값 비싼 장신구나 가재도구 등도 돈 자랑하는 사람들의 필수품이다.
그러나 금전과 자력이 아무리 풍요해도 좋은 친구가 없고 건강한 육체가 아니면 대체적으로 인생이 공허하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인 까닭이다. 한 평생을 두고 가까이 지내는 친구는 대개 젊어서 만난 사람이다. 나이가 들어서도 친구가 생길 수 있으나 그것이 깊은 우정으로까지 발전하기는 썩 쉽지 않다.
친구 따윈 귀찮기만 하니 필요 없다면 모르되, 그래도 나이가 들어서 마음을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친구가 있으면 그것은 행복한 것이다.
(6) 아들 딸의 결혼생활에 왈가왈부하지 말 것.
알다시피 오늘 우리 사회는 과거와 달리 가족제도가 아주 작은 단위로 축소되었다. 핵가족이라는 게 그것이다. 부모를 모시고 사는 가정은 매우 드물고 대개가 부부 한 쌍 가정이거나, 거기에 미성년 아이 한 두 명인 소가족제도이다. 그리고 가정에서의 여성 파워가 세어서 예날 같이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잔소리 하다간 밥도 못 얻어먹을 지경이다. 젊은 세대에 대한 간섭은 되도록 안 하는 것이 덕이다. 특히 그들의 결혼생활에 대해 그렇다.
아이들의 결혼문제도 저희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 과거처럼 부모가 정해주어서 결혼을 하게 한 풍습은 이제 멀리 물 건너 가지 않았나.
(7) 자기 건강상태를 일상적인 화제로 삼지 말 것.
혈압이 높다, 당뇨기가 있다, 간장이 나쁜 것 같다, 시력이 많이 떨어졌다, 허리가 아프다는 따위 자기 몸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을 노인들은 자랑처럼 늘여놓는다. 그런 것은 6,70이 된 노인이면 누구나 겪는 것이다.
자기 몸의 건강에 유의하여 스스로 관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자기 몸이 안 좋은 것을 일일이 젊은이들에게 말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 신체 상태는 의사에게는 정확히, 구체적으로 설명하여 지시를 받을 것이나, 의사 이외의 사람들에게 자기 몸 상태를 까발리는 것은 금물이다. 기침이 그치질 않는다, 대변에 피가 섞여 나온다, 오줌을 눌 때 통증을 느낀다는 따위는 듣는 사람에게 불쾌감을 일으키기 마련이고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것을 화제에 올린다는 것은 그것밖엔 아는 것이 없다는 것, 즉 세상일에 대한 관심도가 낮아서 상식도 부족하다는 것을 스스로 고백함과 같다. 늙었다고 방안에서 침대에 들어 누워서 텔러비젼만 보고 있지 말고 신문도 보고 책도 읽고 친구도 만나 담화도 나누는 밝은 삶으로 전환함이 중요하다.
(8) 여행을 하라.
여행이 건강에 좋음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한 가지 덧붙일 것은 사전에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행지 의 사정, 교통편, 안전 대책, 위생을 위한 준비물 챙기기, 함께 갈 사람, 안내자 등에 대한 꼼꼼한 사전 검토가 필요하다.
(9) 치매에 걸리지 않도록 힘쓰자.
3, 40대 장년층이 자신의 30년 후나 40년 후를 상상해 보고서 나는 저런 꼴이 돼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치매에 걸린 늙은이 모습이다. 허긴 최근엔 장년도 치매에 걸리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하더라만...
치매에 걸린 사람의 증상에 대해서는 다 아는 것이라 뛰어넘고, 어떻게 하면 치매를 예방할 수 있는가에 대해 알아본다.
이것은 결과적으로는 치매를 방지하는 역할을 하지 않을지라도 노인들의 생활에는 필요하고 뇌의 활성화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한 가지는 될 수 있는 대로 모든 일에 남을 의존하지 말고 자기 스스로 하거나 자신이 결정을 하도록 힘써야 한다. 이를테면 전철 역에서여기에 정차하는 전차가 신촌을 통과하느냐를 옆에 있는 모르는 사람에게 묻는 것보다는 안내판을 자기 눈으로 봐서 확인하는 따위이다.
노인의 심성 중 좋지 않은 것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귀찮다, 어렵다는 핑계로 소극적이 돼서 자기가 할 수 있는데도 남에게 의존하려는 경향이 노인에게 있다.
또 한 가지 건장할 것은 여러 가지 오락이나 게임 중에서 특히 승부가 확실히 나타나는 것에 열중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 승기욕 때문에 머리 회전이 잘 되기 마련이다. 머리를 적당히 써야만 치매를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어떤 이들은 퍼즐을 권하기도 하고, 간단한 초등학교 1학년 정도의 셈, 덧셈이나 뺄셈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10) 소소한 돈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
젊어서도 그렇지만, 나이가 들면 더욱 작은 돈에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자기가 지불해야 할 돈은 주저하지 말고 즉시즉시 지불하는 습관을 드릴 것이다. 그런다고 사기에 걸릴 만큼 멍청해선 안 되나, 돈에 관한 한 남을 속이는 것보다는 속는 편이 더 낫다.
돈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돈을 써야 할 때는 아끼지 말고 쓰도록 한다.
(11) 다민족 사회에 적응할 것.
우리 사회가 점점 다문화화 되어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엔 꼭 같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다양 다종한 것이 세상 만상이다. 인간의 종류도 다양하다. 그리고 인간의 생각도 가지가지다.
UN통계를 보면 2050년 미국은 중간 나이가 41.1세인 데 비해 우리나라는 같은 해에 53.9세라 한다. 가장 늙은 나라가 된다. 왜 그런 차이가 생기는가? 비결은 간단하다. 이민이 미국을 젊게 해 주기 때문이다. 우리도 발상을 바꿔야 할 것이다. 단일민족 운운은 이젠 공염불이다. 소위 다문화 가정이 배만을 넘었다. 우리 광양과 같은 소도시에도 다문화 가정이 5백에 육박하고 있다.
한국 못지않은 순혈주의 일본도 필리핀 출신 이민자를 받아들이고 있다. 어쩔 수 없으니까. 노인들은 아픈데 간호할 사람이 없고, 이른바 3D 직종엔 일할 사람이 없으니 어쩌나.
그리고 농촌 총각은 한국인 처녀를 아내로 맞을 수가 없으니, 한 평생 홀아비로 지낼 수도 없으니 동남아에서 신부를 데려와야 할 것이고.....
또 하나는 국가 정책상으로도 고급인력을 국내에서만 구하기 어려워서 외국에서 데려와야 할 것이니, 이런 판국에 순혈주의 타령 할 겨를이 어디 있는가.
우리도 이제부터는 다민족, 다인종 사회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12) 봉사하는 삶을 살자= 나도 내 주위도 모두가 행복하게 되는 삶.
끝으로 나도 행복하고 내 주위의 뭇 사람도 행복한 삶을 살자고 말하고 싶다. 그 비결은 이기심을 떠나 ‘이타심’나라 주민이 되는 것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욕심을 쥐고 태어난다고 할까, 욕심에 똘똘 뭉친 존재인 것 같다. 욕심엔 나쁜 면이 크지만 좋은 면도 있다. 그것은 착한 일을 하고 싶은 욕심이란 것도 있기 때문이다.
그 착한 욕심을 남을 돕는 일에 향하게 한 것이 봉사정신이다. 엊그제 보도를 보니 전 국무총리 정운찬이 위원장으로 있는 동반성장위원회가 내어놓은 제언을 재계와 그들의 대표단체인 전경련이 거부하자, 정 위원장이 양극화가 극심한 이 현실에서 기업체와 재산가들이 소기업체와 노동자들과 함께 기업의 초과 이익을 공유하는 것은 소탐대실이라며 유감을 나타냈다고 한다. 국민의 1%인 부자들이 나라 전체의 부의 태반을 차지하고서 저들만 호의호식하는 것에 분개한 99%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는데도 부자들은 끄떡도 하지 않는다. 이것이 욕심, 이기심의 정체다. 그들에게서 봉사정신을 찾아보려니 연목구어 격이다.
노년은 앞에 언급한 대로 어쩌면 시간이 많은 것으로 봐서 부유한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내 지론인데, 영어 속담에 ‘시간이 돈이다(Time is money)'라 했는데, 그렇다면 ’난 시간이 많다( I have lots of Time)'은 난 돈이 많다는 말도 성립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따라서 시간이 넉넉한 우리 노년이 그 시간을 남을 돕는 일에 쓰면 그것이 가장 행복한 삶이라 하지 않겠는가!
노년인 당신이 가진 보화는 시간이 많다는 것 뿐 아니다. 당신의 백발만큼이나 쌓인 인생의 경험이다. 이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이 세상에서 오직 당신만이 걸어온 길, 엮어서 꿰어 놓은 구슬이다.
이 소중한 경륜과 지식을 그냥 썩히다 세상 떠날 때 버리고 가질 말고 후진을 위해 소중하게 활용하는 것, 이것보다 더한 봉사가 어디 있으며, 이것보다 더 행복하고 보람 있는 삶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노년은 행복하다. 행복한 삶은 노년이다. 노년 만만세! 이것이 이 강화의 결론이다. (끝)
<참고 글>
노인의 나이
입력 : 2017.03.06 경향신문
조선시대에는 일흔이 되면 벼슬에서 물러나는 것이 관례였다. 이를 벼슬(仕)에서 그만둔다(致)는 뜻에서 ‘치사’라고 했다. 요즘으로 치면 ‘정년(停年)’인 셈이다.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한 원로가 나이 일흔이 넘어 치사하면 임금은 지팡이와 의자를 선물하고 큰 잔치를 베풀어줬다. 조선 후기 김홍도와 쌍벽을 이룬 화가 이인문은 일흔을 넘긴 나이에 걸작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를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영국의 록 밴드 롤링 스톤스의 보컬 믹 재거는 73세이던 지난해 29세인 다섯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늦둥이 아들을 얻었다. 65세 때 세상을 뜬 화가 고갱은 “나이가 들수록 세상이 속속들이 보인다”고 했다. 늙는다는 것은 신체연령이 많아졌다는 것일 뿐 세상을 보는 시야는 깊고 넓어진다는 의미다.
미국 미네소타의학협회가 정의한 ‘노인의 기준’도 흡사하다. ‘스스로 늙었다고 느낀다. 이 나이에 그런 일을 왜 하느냐고 말하곤 한다. 배울 만큼 배웠다고 생각한다. 좋았던 시절을 그
리워한다.’ 노인을 구분짓는 잣대는 단지 숫자에 불과한 나이가 아니라, 마음가짐이라는 뜻이다. 초고령사회 진입을 눈앞에 둔 한국사회에서도 60대는 노인 축에도 끼지 못한다. 70세가 넘어도 젊은 사람 취급받기 싫다며 경로당에 가길 꺼리거나 지하철 경로석도 눈치를 살피며 앉는다는 노인들이 적지 않다.
정부가 어제 제5기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출범을 계기로 현재 65세인 노인 기준연령을 70세 등으로 올리는 방안을 검토키로 했다. 노인 기준 연령을 70세로 올리면 연간 3조원가량의 재정 절감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하지만 가뜩이나 열악한 노인들의 ‘삶의 질’을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노인기준 연령을 70세로 높이면 65~69세는 기초연금을 받을 수 없고, 장기요양보험, 지하철·전철 무료 승차 혜택에서도 제외된다. 국민연금 수급연령도 늦춰진다. 정년이 60세로 연장됐다고 해도 ‘은퇴는 했지만 노후 복지를 못 받는’ 기간이 10년으로 늘어나는 것이다. 그동안 정부와 정치권이 노인 기준연령 상향조정을 공론화하지 못했던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노인이 되긴 쉬워도, 노인으로 살아가기엔 버거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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