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대 명산 구미 금오산 현월봉(金烏山 顯月峰 , 976m) 산행 #3
15:23 약 13분간 해운사를 둘러보고 나서 석벽위에 세워진 범종각 아래 등로를 따라 도선굴로 이동한다.
해운사 범종각 건너편의 화장실
15:29 도선굴 갈림길(도선굴 0.2km)
도선굴 안내도
도선굴은 암벽 중간에 있는 천연동굴로 신라말 도선선사가 이곳에서 득도했다 하여 도선굴이라고 한다.
대혜폭포에서 오른쪽으로 산길을 조금 오르면 산의 옆구리를 아슬아슬하게 붙잡고 오르는 벼랑길이 시작된다.
쇳덩어리처럼 카랑한 암벽의 길, 한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고 험한 길
시야가 거침없이 트이고 발밑이 천 길 낭떠러지인 길이다.
도선굴로 가는 벼랑길은 판석의 명문에 따르면 1937년 봄에 암벽의 돌을 깎고 쇠줄을 연결해 만든 길이다.
난간을 놓고 쇠사슬을 매달았으나 도선굴로 오르는 길은 아찔하다.
난간 없이 밧줄 하나만으로 오르내렸던 시절에는 여길 오르는 건 목숨을 반쯤 내놓는 일이나 다름없었으리라.
15:37 아찔한 벼랑 끝의 동굴인 도선굴
도선굴은 급경사 벼랑 사면의 옹색한 계단에 난간과 쇠사슬을 달아맨 길 끝에 있다.
신라 말 풍수의 대가인 도선이 참선하여 득도한 곳이라 하여 도선굴인데 고려시대에는 큰 구멍이라는 뜻의 대혈로 불렸다고 전해진다.
도선굴은 그리 깊지 않다. 임진왜란 때 수 백 명이 이곳으로 피난을 왔다고 한다.
칡이나 등 넝쿨을 부여잡고 기어올랐다고 한다.
수직에 가까운 직벽 위에 있어 밧줄이 아니면 오를 수 없었던 기도처였는데
1937년 당시 구미면장이었던 김승동이 암벽의 돌을 깎고 쇠줄을 연결해 통로를 만들었다.
그때의 사연이 도선굴 입구 통로 암벽과 도선굴 내부 벽의 판석에 새겨져 있다.
오늘 걷는 벼랑길은 일제가 중일전쟁을 일으키고 민족말살정책을 심화시켜 나가던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도선굴 입구 통로에 새겨놓은 기문의 글자는 모두 11자
‘천석통로(穿石通路·돌을 깎아 길을 만들다) 구미면장 김승동(金升東)’. 이게 제목 격이고
도선굴 내부 벽 판석에는 이를 부연하는 본문 격인 ‘금오산 굴 통로기’가 새겨 있다.
통로기로 남겨진 글을 읽어보면
굴이 있는데 절벽에 있어 볼 수는 있으나 오를 수가 없어 항상 유람하는 사람들의 한이 되었다.
"정축년 봄에 내가 길을 열겠다는 뜻으로 의견을 내니 많은 사람이 모두 동의하였다.
이에 측벽의 돌을 깨고 쇠줄을 연결해서 굴과 통하게 했다.
내가 외람되이 면장에 있으면서 이 일을 주관하였으니
이를 돌에 새겨 후에 오는 사람에게 보여서 경치의 한 역사를 기록하게 하노라”
도선굴 핫 포토존
대혜폭포 주변 암벽
15:43 대혜폭포(명금폭포)
‘큰(大) 혜택(惠)을 주는 폭포’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물은 금오산 정상부의 분지에서 시작되어 계곡을 따라 흐르다 해발 400미터 지점에서 28m 수직으로 떨어져 폭포를 이룬다.
다시 아래로 흘러 남통천이 되고 금오산 저수지에 모였다가 다시 금오천으로 흘러 낙동강과 합류한다.
이 긴 물줄기가 구미의 유일한 수자원이라 한다.
그래서 금오동천의 다른 이름은 큰 은혜의 골짜기, 대혜골이고 폭포는 대혜폭포다.
외성문의 이름이 대혜문인 것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치솟은 벼랑 끝에서 물은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진다.
수량이 많을 땐 그 위력이 대단하다는 폭포는 그 물소리가 금오산을 울린다 하여 명(鳴) 자를 써서 명금폭포라 불리기도 한다.
명금폭포란 이름은 일제강점기이던 1935년쯤 경북지사였던 일본인 오카자키데츠로(岡岐哲郞)가 지은 것이다.
폭포의 모습에 감명받아 석공을 불러 폭포 바위벽에 명금폭포란 글씨를 새기게 했다고 전해진다.
오늘은 가뭄으로 거대한 폭포가 세운 물기둥 대신 가느다란 물줄기만 볼 수 있다.
폭포 아래에 형성된 넓은 소(沼)는 하늘의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즐기는 곳이라 하여 선녀탕이라고 한다.
대혜폭포가 구미의 대표 명소라는 건 구미가 고향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재임 중 두 번이나 찾았다는 것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박 전 대통령은 1977년 9월 1일 세 자녀를 모두 데리고 구미를 찾아 금오산 관광호텔에서 묵었다.
자그마치 30년 만의 고향 방문이었고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이 대혜폭포였다.
박 전 대통령은 세 자녀와 함께 폭포를 배경으로 찍은 그날의 기념사진이 구미 상모동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옆 민족중흥관 전시실에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듬해 추석 직후에도 작은 영애(근영)와 함께 구미 선영에 성묘한 뒤에 대혜폭포를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