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下野는 예술이다>
무성한 잎들은 깊은 가을 하야를 통해서 겨울을 버티는 자신의 나무를 지킨다.
1979년, YH여공 신민당농성을 박정희는 잔인하게 진압했다. 이 일로 YS와 박정희는 극 대립하고 결국 박정희는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을 넘는다. 결국 YS를 제거하라고 명령한다.
그때도 야당 안에 수박이 있었다. 79년8월 신민당 지역 위원장인 윤완중, 유기준, 조일환이 총재 직무 집행 정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냈다. 물론 이 모든 것 뒤에는 차지철이 있었다. 정말 신속하게 9월 8일 서울민사지법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고 정운갑을 신민당 총재 직무 대행자로 선임한다.
9월10일 YS는 ‘박 정권은 불법정권이다. 박정희씨 하야를 강력히 요구한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그리고 언론과 국민 여론이 YS에게로 몰리고 정부에 대한 반감이 커지자 박정희는 사법부 비난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박정희는 YS를 국회의원 제명을 명하고 꼬투리를 찾는데 YS가 미 언론 인터뷰를 인용해 YS는 용공적 이적 행위와 사대주의 발언으로 국회의원으로서 품위를 손상했으니 제명하겠다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제명 전날인 10월3일 박준규 태완선 김재규 김계원 네 사람이 모여 '재고를 건의하자'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차지철이 나타나 ‘각하 뜻은 어떤 일이 있어도 제명하라는 것이다’ 라며 재고건의를 하지 못하도록 못 박았다.
다른 참석자들은 포기했지만 김재규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날 밤 김재규는 YS에게 미팅을 간청해 중정 공관에서 둘이 만났다. 김은 '박 대통령의 감정이 극에 달해 있다. 제명, 구속은 물론 당신을 죽이려 들 것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나라도, 총재도 불행해진다’
김재규는 대안을 제시했다. 우연히 기자들하고 얘기하는 척하면서 '뉴욕타임스 기자 회견 내용이 와전됐다', 이 한마디만 하면 된다고 하자 YS는 하지 않겠다고 한다.
10월 4일, 여권은 경호권을 발동해 YS 의원직 제명 안을 10분 만에 통과시켰다. 그리고 부마사태가 났고 10월26일 궁정동사건이 일어났다. 그 때 YS의 하야요구를 박정희가 긍정적으로 들었다면 자신의 불행을 막으며 큰 인물로 역사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다시 생각해도 하야는 불쾌한 코드가 아니다.
<평화를 지향하며>
다면적 분석을 해보니 현 정권에 대한 지금 국민들 의견은 절대지지 20%, 다소지지 15%. 무관심 20%, 다소 반대15%, 절대반대 30%로 보인다.
정권 초 허니문 기간(6개월)은 웬만하면 70%까지 국정지지율이 올라가다 내려가는데 이번은 예외다. 대부분 정치 분석가들도 정권 초 긍정 지지가 50%는 상회할 것으로 예측했다. 지금 66%가 부정적이란 이야기는 무관심층 다소반대 절대반대가 다 하나가 되었고 일부 다소지지 들이 반대했다는 것이고 25% 긍정이라는 것은 절대 지지는 긍정에 그대로 있고 다소 지지 3분지1은 긍정에, 3분지2는 무응답으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갤럽조사에서 지난 주 보수층에서 긍정(51%)가 부정(42%)보다 높았다. 이번 주는 부정(48%)가 긍정(44%)보다 높아지며 보수층에서 ‘데드크로스’가 발생했다.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긍정(52%)이 부정(39%)보다 높았다.
부정적 이유로는 인사(23%), 자질부족·무능함(10%), 독단적·일방적(8%), 소통 미흡(7%), 전반적으로 잘 못한다(6%), 만 5세 입학 추진,경제·민생 살피지 않음(이상 5%), 직무 태도 외교(3%) 등이 꼽혔다.
재미있는 것은 윤통 직무수행 긍정평가 이유는 1위는 모름·응답거절(28%)였다. 2위는 열심히 한다·최선을 다한다(6%), 전 정권 극복(5%), 경제·민생(5%) 등이었다. 반대의견은 구체적인데 지지의견들을 모름이나 추상적이다. 지지층들 멘붕이 보인다.
여론 조사기관이 보수적이고 안정지향적인 통계를 지향함에도 이런 조사가 나온다. 아직 하야까지 거론하는 것은 좀 이르지만 두 달 지나서도 부정평가가 70%쪽으로 나가고 긍정이 20%내외로 나오면 하야가 모두를 위한 평화다. 여하튼 모두를 위해 두 손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