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해변 길을 걸으며(두 번째)
(방근제∼만리포, 2017년 4월 20일)
瓦也 정유순
하늘에는 구름이 잔뜩 끼어 햇빛이 보이지 않고, 바다의 갯바람만 얼굴을 때린다. 얇은 옷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지만 바람 끝은 완연 봄이다. 소근로 삼거리를 지나 고려 말부터 왜구(倭寇)침입을 막고 태안(泰安)지방의 서해를 방어하다 동학란 때 폐허가 된 소근진성(所斤鎭城)을 뒤로하고, 만리저수지의 바닷물 유입을 막아주는 방근제에 도착하여 가볍게 몸을 풀고 오늘의 걷기 시작을 위해 준비를 한다.
<태안해변길(방근제-만리포해수욕장)지도>
방근제는 바닷물이 들어오는 것을 차단하는 제방(堤防)이다. 보릿고개가 있던 1970년대 이전에는 한 뼘의 농토라도 확보하기 위해 제방을 쌓고 바닷물의 유입을 막아야 했던 시절에 쌓은 것 같다. 덕분에 경지정리가 잘된 들녘을 바라볼 수 있고, 해변길을 가로 질러 갈 수 있어서 좋긴 하지만 민물과 바닷물의 소통을 막아버려 자연생태계에 나쁜 영향을 주는 것은 장기적으로 환경에 좋은 일은 아니다.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인간관계에서 제일 중요한 요건이듯이 생태계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방근제 밖 바다-멀리 신두리가 보인다>
제방 밖 바다는 호수 같이 고요한 물결 위에 소형어선들이 망중한(忙中閑)이다. 벚꽃이 활짝 핀 콘크리트길을 따라 태안해안길 소원길로 접어들어 의항항으로 발길을 옮긴다. 마을언덕 숲속에는 봄의 전령 진달래가 수줍게 얼굴을 붉히고 언덕너머에는 의항제방을 쌓아 만든 간석지 들이 바둑판처럼 펼쳐진다. 의항리는 지형이 개미의 목처럼 생겼다고 개미목 또는 개목이라고 부르다가 ‘의항(蟻項)’ 이란 이름으로 되었다. 제방 끝에는 의항항(개목항)이 한가롭다.
<벚꽃>
<진덜래>
<의항방조제>
<의항항>
또한 의항리(蟻項里)는 태안군 소원면에 있는 지명으로 지도를 놓고 보면 태안반도의 일부분으로 북으로 불쑥 솟은 송곳 같은 지형이다. 신너루해변에는 해양관광지(?)를 만들려는지 바다를 향한 가교(架橋)가 길게 늘어서 있고, 백사장 끝 언덕에는 태배전망대가 나온다.
<신너루해변-바다를 향한 가교>
<신너루해변>
태배는 옛적 중국의 시성 이태백이 조선 땅에 왔다가 빼어난 절경에 빠져 수많은 날을 경치에 도취하여 지내다가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 북쪽 해안가 육중한 바위에 시를 적으니 그 후부터 주변 일대를 태배라 불리우 게 되었다고 한다.
先生何日去(선생하일거) 선생은 어느 날에 다녀갔는지
後輩探景還(후배탐경환) 문생이 절경을 찾아 돌아오니
三月鵑花笑(삼월견화소) 삼월의 진달래꽃 활짝 웃고
春風滿雲山(춘풍망운산) 춘풍은 운산에 가득하구나 -이태백의 5언 시-
<태배지명의 유래>
<이태백의 5언 시>
태배전망대에는 <유류피해 역사전시관>이 있다. 태안해변 대규모 기름유출사고는 2007년 12월 7일 태안해상에서 선박충돌로 인하여 발생했다. 당시 해양경찰청 자료에 의하면 사고 당시 원유운반선 허베이 스프릿(Hebei Spirit)호에서 유출된 원유는 1만2547㎘나 된다. 이 사고로 약170㎞에 달하는 해안이 기름으로 뒤범벅이 되어 생태계가 크게 훼손되었다.
<태배전망대>
특히 양식장과 어장, 해수욕장이 큰 피해를 입었었다. 이때 자원봉사자 123만 명이 걸레를 들고 자기 일처럼 닦아내던 자원봉사정신을 기념하고 다시는 이러한 사고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경각심을 깨우치기 위해 유류피해역사전시관을 세운 것 같다.
<유류피해 역사전시관>
뱅이(=방이 防夷)라는 이름이 의미하듯이 “오랑캐를 물리쳤다”는 대뱅이, 굴뚝뱅이, 거먹뱅이, 돌뱅이, 수리뱅이, 질마뱅이 그리고 새뱅이 등 일곱 개의 뱅이섬의 전설은 모두 오랑캐를 물리쳤다는 뜻을 품고 있다. 최근에는 동학혁명 때는 조선을 삼키려는 야욕으로 청(淸)과 일본(日本)이 서로 진압군이 파견되어 충돌하자 “칠뱅이섬이 궐기하여 청나라 군대를 바다로 밀어내어 청∙일 전쟁을 육지가 아닌 바다에서 벌어지게 했다”는 그럴듯한 전설을 만들어 내고 있다.
<뱅이섬의 오랑캐 퇴치작전>
<뱅이섬>
태배전망대 바로 아래에는 구름포해변이 있다. 구름포는 모래해변과 좌우의 기암절벽이 조화를 이뤄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다. 지형이 반달처럼 둥글게 구부러진 아랫부분을 ‘구름’이라고 부르는데서 연유하여 ‘구름언덕 끝자락’이라는 뜻의 구름미[雲山尾]라고 불린 지역이다. 이후 운산(雲山)을 운포(雲浦)로, 다시 1996년에 ‘구름포구’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구름포해변>
구름포해변 고개를 넘어 의항해수욕장 초입에는 또랑섬이라고도 불리는 화영섬이 있다. “어느 밤 폭풍우에 휘말려 모두 사라지고 남은 것은 바위섬과 흰파도라네 ∼♩(김원중 노래 바위섬 가사 일부)” 바위섬 화영섬은 의항해변을 감싸고 의연하게 서풍(西風)을 막아주는 파숫군 역할을 한다. 조선조 때 안흥항(安興港)으로 들어오던 사신(使臣)이 풍랑으로 표류하다 이 섬에 상륙하였는데, 사신들을 환영(歡迎)한다는 뜻으로 ‘환영섬’으로 부르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화영섬’으로 변해졌다고 한다.
<화영섬>
의항해수욕장은 1980년 개장한 이래 가족피서지나 청소년들의 캠핑장소로 사용되고 있는 관광지다. 거의 조약돌로 구성된 백사장은 포근한 곡선모양의 해안은 여성스런 맛을 물씬 풍기는 곳인데, 멀리서 눈인사만 하고 망산고개로 접어든다. 수망산(140m)에 위치한 망산고개는 의항해변과 백리포해변을 넘는 고개이다. 소원면 의항리와 원북면 신두리 사이의 만(灣)이 한 눈에 보이는 곳으로 시원하게 탁 트인 바다를 조망하는 뷰 포인트(view point)이다.
<의항해수욕장 안내판>
<망산고개 가는길>
<망산고개에서 본 풍경>
서해안의 절경 중 물이 맑고 모래가 좋은 방주골이라고도 불리는 백리포해안과 원래 고기를 잡던 어막이 많아서 ‘막동’이라고 불리던 곳이 1955년 만리포해수욕장이 개장하면서 피서인파가 이곳까지 몰려들어 ‘천리포해수욕장’으로 불리게 된 해변을 우회하여 공익재단 법인으로 새롭게 출발한 <천리포수목원>으로 바로 간다.
<백리포해안>
<천리포해수욕장 입구>
천리포수목원은 벽안의 귀화인 민병갈(Carl Ferris Miller, 1921. 12. 24∼2002. 4. 8, 미국 펜실베니아주 출신)박사가 이 마을 노인들의 부탁을 받고 1962년부터 일군 사설 수목원이다. 특히 남의 나라에 와서 식물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관리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한 것이 우리에게 주는 큰 선물이다. 수목원이란 ‘다양한 식물자원을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관리하여 종 다양성 확보와 유전자 보존을 담당하는 것이 참 기능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천리포수목원>
<천리포수목원 입구>
또한 천리포수목원에는 약 6,500여종의 식물들이 있는데 그중 목련종류가 약400여 품종, 호랑가시나무 종류가 약370여 품종으로 가장 많고 침엽수 매자나무 진달래 참나무 단풍나무 분꽃나무 녹나무 순으로 종류별로 수목관리대장에 기초자료가 충실히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환경부는 이곳을 ‘멸종위기야생동·식물서식지외보전기관’으로 2006년 9월 21일에 지정하였다. 이 수목원의 4월 목련은 봄을 활짝 피우는데 자목련은 멀리서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천리포수목원 안내도>
<천리포수목원 내부>
천리포수목원 정문에서 도로를 따라 고개를 살짝 넘으면 만리포해수욕장의 백사장이 아주 넓게 펼쳐진다. “똑딱선 기적소리 젊은 꿈을 실고서∼♬(박경원 노래 만리포사랑 가사 일부)” 1970년대 까지만 해도 충청도 내륙 서쪽 끝에 위치하기 때문에 육로 교통이 불편하여 서울에서 만리포해수욕장에 오려면 인천 연안부두에 가서 똑딱선을 타고 왔어야 빨랐다. 당시 피서철에 만리포에 갔다 오면 무슨 벼슬을 한양 어깨를 으쓱하기도 했다.
<만리포해수욕장-남쪽방향>
만리포해수욕장은 태안팔경 제1경으로 불릴 만큼 경관이 아름다우며, 태안해안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활처럼 휘어진 모래사장은 아주 멀게 이어지며 수심이 완만하고 백사장이 넓어 해수욕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특히 남북 양쪽 끝에는 천연으로 새 찬 바람을 막아주는 언덕이 있어 백사장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것 같다.
<만리포해수욕장-북쪽방향>
그러나 2007년 12월 발생한 기름유출사고후유증은 지금도 숨어 있다. 기름찌꺼기가 복병으로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래가 파도에 의해 유실되고 있어 인위적으로 이를 공급해야 한다니 이 또한 안타깝다. 혹시 솔밭과 해안 사이를 구분하기 위해 설치해 놓은 콘크리트 구조물과 높게 솟아오르는 건물들이 자연의 흐름을 방해하는지 따져봐야 될 것 같다.
<생명이 그리는 그림-씨조개가 움직인 선>
<만리포해수욕장 모래톱>
첫댓글 어제 다녀온 태안 해변길의 지리적,역사적 배경을 다시 읽어보니 좋으네요. 와야님 덕분에 상식이 늡니다. 감사합니다
자연은 위대한 스승이라고 한다지요~~
자연이 가르쳐 주는대로 몇 자 적어 보았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만리포해수욕장을 기억하겠지요..
만리포해변가를 맨발로 걸은 추억과 함께~
이태백 오언시도 좋네요..
만리포해수욕장의 모래는 단단하여
발이 빠지지 않는다는 게 특징이지요~
지금도 파도소리가 들리는 것 같네요~~
오늘 장기여행 떠나느라 급히 후기를 썼더니
몇 군데 오자가 있어 읽으시는데
불편을 드려 송구합니다.
여행 다녀와서 다 수정하고
답댓글 올리겠습니다.
편안하게 읽어 주시고
조금이라도 읽으시는 분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와야님의 후기엔 상세한 설명이 있어 많은 도움이 됩니다
특히 눈여겨 보지 않는 씨조개의 선 사진은 압권 입니다
감사드립니다
해안가의 모래나 갯벌은
많은 생명들의 보금자리라고 합니다.
씨조개보다 더 작은 생명들도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또 다른 그들만의 삶을 만들어 갈 것 같군요~
공부많이합니다. 발자국하나하나의 흔적에
사연이 담겨있는 태안해변에 저또한 넘힘들었던 하루로기억합니다~
좋은글과 후기 감사합니다.
담길에서 또뵐께요~^*^
이번 태안 길에 제일 힘들었던 총무 세라파나님~~!
예약된 식당의 펑크로 당황하셨겠지만
덕분에 늦은 식사라도 더 맛 있었고
더 즐거웠습니다.
나그네가 길을 잃어 버린다는 것은
또 다른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 봅니다.
수고하신 세라파니님 덕분에
저는 더 즐거웠습니다.
고맙습니다.
모래에 그림을 그리는 생물체가 씨조개라는 것과
멋있어서 그냥 담아온 곳이 화영섬이라는 것도
와야님 덕분에 알았습니다
사진보며 공부하고
아침부터 기분좋게 출발합니다
늘 감사드립니다~^^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온 산하에 현호색이 한창이더군요.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은 많은데
그걸 잊고 사는 게 우리가 아닌 가 생각해 봅니다.
사진과 함께 자세한 설명이 많은 도움을 주시네요
길찿느라 앞만보고 걸어서 보지못한곳을 ~~
수고 많으셨습니다~~^^
수니꺼님!
태안 길 진행 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죠?
걷는 모습과 자연을 보는 눈이 각기 달라
더 힘이 드실거라고 생각해 봅니다.
그럼에도 매끈한 진행에 감사드립니다.
와야(정유순)님 파이팅입니다.!! 요 근래 중앙일보에 새로 나온 책에서도 소개 되었습니다.
따뜻한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정유순의 세상걷기> 책이 나왔다는 게
저의 축복입니다.
재미 있게 읽어 주시면 더 고맙고요~~~~
와야님의 전문가적 역사의 숨결이 느껴지는 사진들... 감상 잘했습니다. 늘 고맙습니다..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의 지식 보다는
자연이 가르켜 주는대로
적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