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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 삶의 이야기 방 통곡의 서대문 형무소를 찿아서
마초 추천 0 조회 312 24.03.05 13:40 댓글 7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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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4.03.05 13:43

    첫댓글
    1908년 경성감옥으로 문을 연 이후 애국인사와 항일투사들이 체포, 투옥되어
    가장 많은 곤욕을 치른 곳이다. 1912년 서대문감옥으로, 1923년에는서대문
    형무소로, 1967년 7월에는 서울 구치소로 여러 번 개칭되었다가 1987년 11월
    15일 서울 구치소가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함에 따라 서울시가 1988년 옥사·
    담장·망루 등을 대거 철거하고 독립공원을 조성하였으며1992년 광복절 제47
    주년에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으로 개원하여 乙巳勒約의 조약문이 전시되어
    있습니다.경성감옥을 전후한 대한제국의 역사를 상기시켜 주지요

    억압정치를 하기 위해 민족을 가둘 옥사들이 필요했던 일본제 국주의자들.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한 의병장들의 모습 의연한 모습들.허위 의병장의
    유시가 가슴에 와 쿵 하는 소리를 낸다.끊임없는 민족해방을 위한 산고의
    모습들이 보입니다.류관순 의사의 모습에서는 우리의 지금 모습이 부끄러
    울 뿐입니다

  • 작성자 24.03.05 13:46

    지난 3.1일 현충원을 들러 서대문 형무소 역사의 현장을 찾아갔습니다.
    서대문 형무소 저 곳에서 선친이 1년 동안 옥고 치른 곳입니다.
    사형집행 체험실 의자에 앉아서 스위치를 넣으면 덜컹 하고
    의자가 밑으로 15cm정도 떨어지면서
    덜컹하고 멈추는데 선뜻했습니다

    3.1절이 되면 유난히 아버지 생각이 나지요.
    3.1절 행사장에 아버지는 초청되어 독립선언문 낭독과 만세삼창을 하셨다.
    어릴 때 늘 아버지로 하여금 3월1일 일경과 맞서 투쟁했던 생생한
    그 날은 회상하면서 현장의 상황을 말씀하시곤 했지요.

    참고로 마초 킴 선친은 독립 유공자 이시고
    저 마초 킴은 국가유공자 입니다

    ~단결~!!

  • 24.03.05 15:19

    저도 얼마전에 다녀왔는데 대충 둘러만 보고
    왔는데 마초님의 자세한 설명을 듣고보니 직접
    다못본것이 아쉬웟는데 대리만족을 하게 됩니다
    독립유공자이신 선친과 국가유공자이신 마초님
    께 뜨거운 박수를 보냅니다 ㅉㅉㅉ

  • 24.03.07 10:50

    서대문 형무소하면
    조국을 위해 희생하신 순국선열들을 떠올리게 되고
    그 분들의 고난에 숙연한 마음 가눌 길 없습니다.

    하지만 그 분들 못지않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간 분들도
    있다는 것이 우리나라의 흑역사입니다.

    서대문 형무소는 2개 분기로 나뉘어집니다.
    1908년 경성감옥으로 출발하여 1945년까지
    37년간 일제 강점기.
    1945부터 1987년까지 42년간 우리시대입니다.

    일제시대야 더 말할나위 없이 잔혹했지만
    해방 후, 우리 시대 서대문 형무소에서도
    우리 손으로 우리 사람을 고문하고 처형했던 어두운 역사가 있었습니다.

  • 24.03.07 10:52

    이승만 정부에서 농립부장관을 지내고
    국회부의장 까지 지냈던 조봉암이
    1956년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 입후보하여
    이승만 후보의 턱밑까지 득표하여 간담을 서늘하게 했습니다.

    차기 대선에서 위협을 느낀 이승만대통령은
    조봉암을 간첩혐의로 체포하여
    서대문형무소 사형대의 이슬로 사라지게 했습니다.
    이 사건은 2011년 재심에서 원심판결을 파기 했습니다.

    엄혹했던 유신시절.
    박정희대통령의 유신통치에 반대하던 대구지역 인사들이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1975년 4월 8일 도예종 등
    사건 관련자 8명에 대한 사형이 확정된 18시간만에
    서대문 형무소에서 형을 집행했습니다.

    이 사건의 재판장은 민복기였으며
    그의 아버지는 이완용과 함께
    경술국적(庚戌國賊)의 한 사람인 민병석입니다.

    이 사건은 아프리카 야만국에서도 있을 수 없는
    <사법살인>이라고 전 세계적으로 지탄을 받았습니다.
    이 사건은 2007년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습니다.

    아래 사진은 그 당시 하루에 8명의 목을 걸었던
    올가미 실제 사진입니다.

  • 24.03.05 23:12

    오랜만에 선배 님의 글을 접합니다.
    무거운 글 속에 담긴 애환과 변화 하는 지금을 잘 조명한 사진과 글입니다
    일제 시대에 의한 글
    그리고 해방후에 일어난 일에 대한 댓글도 가슴 서늘 하게 하네요
    좋을 글 잘 읽고 갑니다

  • 24.03.06 06:09

    독립유공자의 후손께 경의를 표합니다.목숨걸고 투쟁했던 선조들의 피의 역사로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했지요.제가 조봉암선생의 후손 입니다.
    10년전쯤
    카페회원이 서대문형무소 담당공무원이라 따라서 가본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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