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분...정도의 침묵이 흘렀다.
수진에게는
다섯시간 이상으로 견디기 힘든-
고통의 시간...이었다.
눈물로 희뿌얘진 수진의 시야엔-
어쩐지 고소한 듯,
입가에 조소를 띠고 수진을 바라보는
세빈이 들어왔고...
어찌할바를 모르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앤디가 보였고...
뜻밖의 에릭의 행동에
당황하는 빛이 역력한
나머지 신화 멤버들도 보였다...
다급한 상황에서...
벗어 나길 바라는 의지로 인해...
갑작스레 떠오르는 개연성 없는 단어들로...
...머릿속이 터져나갈 것만같았다....
"어떻게 된건지 말해봐-"
닦달하는 에릭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오히려
평정을 잃은 건-
에릭쪽인 것같았다.
자신을 위협적으로 내려다보는 에릭을
똑바로 응시하며-
어금니를 꾸욱 깨물면서
울음을 억지로 참고 있는 수진은
보기에도 안쓰러울 정도였다.
"...뭐하는 짓이야, 문에릭-"
보다못한 혜성이
수진의 손목을 쥐고 있던 에릭의 손을
억지로 풀러내고는
에릭을 수진에게서 떼어놓았다.
"미쳤어-?
너답지 않게 왜 이래?"
에릭을 밀어제치던 혜성이
수진의 겁에 질린 얼굴을 흘깃하며
에릭에게 뇌까린다.
"진정해, 임마-"
한 치의 미동없이
그 자리에 우뚝, 못박힌채로 서있던 수진이
갑자기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뛰쳐나가버린다...
"수, 수진 누나-!"
앤디가 당황한 얼굴로 수진을 뒤쫓으려 했지만
민우에게 붙잡히고 만다.
"...따라가지마.
...혼자 있고 싶을거야,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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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라...
해가 많이 짧아져서 그런지,
초저녁임에도 불구하고
밖은 많이 어두워져 있었다...
그런 어둠 속에서
수진은...
흡사 누군가에게 뒤쫓기기라도 하는 듯,
필사적으로 뛰고 있었다.
"...우욱....."
꽉 다문 잇새로 울음이 새어나온다.
울음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수진은 억지로 입술을 잘근, 깨문다.
'울지...않아...'
수진은
마치 선전포고라도 하듯,
결의에 찬 눈빛을 하고는,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스윽 닦아 낸다.
'절대로 울지 않는다...'
쉬지 않고 흐르는 눈물을 닦느라
눈 주위는 새빨갛게 부어
따끔따끔거리기...시작했다.
오늘은 그가 실수한거니까...
그가 오해한 것 뿐이니까...
나중에 내가 반연이라는 걸 알게되면,
분명히 내가 운 것때문에 미안해할테니까...
그러니까...
난 안울어.....
내가 우는거야 상관없지만...
나중에 그가 가슴 아파하면 어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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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진...누나...가방 놔두고 가버렸네..."
수진이 일이 몹시나 마음에 걸리는 듯,
아까부터 얼굴이 밝지 못하던 앤디가
수진의 가방을 발견하고는
에릭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내가 가져다 줄까?
이젠...오지 않을테니까..."
말끝을 흐리는 앤디의 말투엔
분명히 에릭에 대한 책망이 담겨 있었다...
"...내가...."
잠시 망설이는 기색이었지만,
에릭은 이내 말을 잇는다.
"내가...갖다줄게...."
이 한마디를 겨우 내뱉고는,
에릭은 다시 입술을 굳게 다문다.
"...또 가서,
손목이나 붙잡고
그림 왜 찢었냐고 닦달할거면,
차라리 앤디가 가방 갖다주게 놔둬."
합판을 정리하던 혜성이
에릭쪽으론 시선도 돌리지 않고
차갑게 말했다.
"......"
잠시...미쳤던거다.....
...내가...왜.....?
에릭은 아예 일할 의욕을 잃었는지
가만히 멈추어 서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오른 손을 들어
가만히 응시한다...
'많이...아팠겠지...?'
아까부터...
수진의 얼굴만 떠올리면 느껴지는,
가슴 속에 스멀스멀한 불쾌한 감정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같았다.
...아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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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동-딩동-'
조금의 간격도 두지 않고
다급하게 울려대는 벨 소리에
수진의 어머니는 얼굴을 찌푸리며 현관으로 나온다.
"...수진이니...?"
대답이 없었다.
오로지
날카로운 벨소리만-
연신 '딩동,딩동'거리며
귀를 울려댈 뿐이었다....
"...아니, 얘가-"
수진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한 어머니가
혀를 차며 문을 연다.
"...너-
뭐가 그리 급해서-"
수진에게 따끔하게 한마디 훈계하려던 어머니는,
현관 앞에 서 있는 수진의 모습에
입을 다물고 만다.
가방은 어디다 내버려두고 왔는지
몸만 덩그라니 서서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에
퉁퉁 부은 눈-
얼마나 이를 악물었길래
피가 맺혀있는 입술...
어디를 보는지 종잡을 수 없는
허한 눈빛을 하고 서있는...
딸 수진의 모습에....
어머니는 경악하고 만다.
"수진아?!"
집에 돌아오자..
긴장이 풀린 탓인지
다리를 후들거리던 수진이
결국 의식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진다....
"수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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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대백과가전 <114> - 에릭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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