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선배가 미니홈피 방명록에 “삶이 비루하여 온통 거짓말만 하는 것 같아 글이 안 써진다”고 적어 놨다.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며 만났던 이들 가운데 ‘글을 잘 쓴다’고 생각했던 몇 안 되는 이중에 한 명이다. 그 형은 펜대를 잡다가 결국 마이크를 잡게 됐다. “서른 초반에 처자식이 있는 삶이 무어 비루하냐”고 답글을 달았다. 이십대 후반까지 주변에는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서른이 넘어서자 주변에는 결혼을 해 가정을 꾸미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 흐름에 전혀 동참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 내 삶이 더 비루하다고 덧붙였다. ‘유부남이 총각의 자유로운 삶마저 탐내는 건 욕심이다’고 쓰고 싶었지만 참았다. 사실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내 주변의 서른 초반의 인생에 대해 나는 경외심과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한 삶을 누군가와 함께 살겠다는 결심과 그 결심에 대한 책임감의 무게 그리고 깊이를 나는 가늠조차 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서른이 넘었어도 이 사회가 요구하는 ‘서른의 자격’혹은 ‘어른의 자격’에 미달했는지도 모른다.
김광석의 노래 ‘서른 즈음에’가 얼마 전 대중음악평론가들이 뽑은 1990년 이후 우리를 흔든 노랫말’ 1위에 올랐다. 90년대 중반 대학에 다니면서 선배들 어깨 넘어 포크기타를 배울 때 손쉽게 불렀던 노래가 바로 김광석의 노래였다. 복학 했던 형들은 동아리 방에서 담배를 피워 문 채 김광석의 노래를 구성지게 불렀다. 그 모습에 반해 기타를 배웠다. ‘거리에서’ 라던가 ‘변해가네’,‘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나의 노래’,‘일어나’ 등은 대학 시절 나를 위로해주던 노래였다. 군대가는 형들과 ‘이등병의 편지’를 부르며 훌쩍거렸다. 짝사랑에 다친 마음을 ‘사랑했지만’으로 달랬다. 하지만 ‘서른 즈음에’는 쉽게 부르지 않았다. 서른이 되어 그 노랫말이 마음에 사무칠 때 불러보자는 마음에서였다. 그때 서른 이란 나이는 너무나 멀어보였다. 나에게 서른은 21세기 이후의 일이었다.
생전의 김광석 모습을 딱 한 번 봤다. 대학 1학년 가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종로 영풍문고에서였다. 당시 김광석은 청계천 쪽 출구에 있는 부스에 앉아 팬 사인회를 하고 있었다. 사람으로 붐비지는 않았다. 몇 번 주위를 배회하며 김광석의 모습을 봤다. 긴 머리에 눈가에 주름이 보였다. 어느 정도 팬 사인회가 마무리 되자 부스에서 나왔다. ‘아. 키가 작은 사람이었구나.’ 그리고 ‘생각보다 머리가 크구나’ 이런 외향적인 인상이 먼저 강렬하게 다가왔다. 청바지에 남방을 걸치고 있던 김광석은 어색한 듯 자리를 떴다. 그 뒷모습을 보며 따라가서 악수라도 청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가수가 있어야 할 곳은 노래를 부르는 곳이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소극장 공연을 하던 그였기에 그곳에서 악수를 청해야지 하면서 뒤돌아섰다. 그해 겨울방학. 학교에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던 도중 버스 라디오에서 김광석이 자살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망연한 기분에 잠깐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 그의 공연장에 끝내 가지 않았던 것이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았다.
이제 이십대 후반으로 접어드는 후배는 요즘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듣다보니 센치해진다고 했다. ‘서른 즈음에’ 관한 기사를 보니 ‘정작 서른 즈음보다 20대 초·중반에 더 절실하게 들리는 노래. 훗날 겪게 될 회한과 불안에 대한 담담한 비가’ 라는 평이 담겨있었다. 해서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다시 들어봤다. ‘비어가는 내 가슴 속에 더 아무것도 찾을게 없네’ 라는 가사가 유독 마음에 와 닿았다. 그 가사가 지금의 내 마음의 풍경과 같기 때문이다. 허나 후배는 그 가사보다는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라는 가사가 더 마음에 와 닿을 것이다. 아직 서른을 넘어서지 않아서다. 역설적으로 청춘이 지나는 과정 속에 하루를 보내고 있어서다. 막상 서른이 되어보니 가버린 청춘은 돌이킬 수 없어 채념할 수 있지만 비어버린 가슴은 채울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로 현실을 더 아프게 한다. 기대는 곧잘 좌절과 한쌍을 이루는 까닭이다.
김광석은 1964년 1월 22일에 태어나 1996년 1월 6일까지 살았다. 만32세를 채우지 못하고 세상과 작별을 했다. 당시 결혼을 했고 남부럽지 않은 집이 있었으며 그리고 어린 딸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 굳이 궁금해 하지 않으련다. 다만 김광석은 ‘마흔 즈음에’,‘쉰 즈음에’,‘예순 즈음에’를 부를 수 없지만 누군가가 부를 그 노래를 혹은 우리 스스로 부를 그 노래로 이승의 삶을 연민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안타까운 것은 만약 김광석이 살아있었더라면 지금쯤 그의 ‘마흔 즈음에’를 들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이다. ‘서른 즈음에’와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까지의 간극을 그는 끝끝내 살아가며 채워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대학1학년 때 봤던 김광석에 대한 내 느낌이 지금 대학 1학년생들이 보는 내 또래에 대한 느낌일 수도 있다는 사실. 그만큼 나도 나이를 먹어 이십대 초반의 청춘들과 십여년 차이가 난다는 현실의 자각. 이제 기타를 잡고 ‘서른 즈음에’를 불러도 겉멋이 아닌 마치 내 이야기 인양 부를 수 있다는 쌉쌀한 만족. 그리고 청춘의 시절에 꿈꾸던 서른의 모습은 아닐지라도 지금의 우리네 삶이 비루하다며 자학하기엔 세월은 또 돌아오리라는 희망..... 이렇듯 그의 노래로 연상되는 여러 가지 상념은 밤을 새워도 이어질 듯싶다. 이럴 때 그의 유작이라 할 수 있는 ‘부치지 못한 편지’가 어울린다. 노래의 후렴구는 이렇다.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되리니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 돌아 보지 말고 그대 잘 가라.”
어느새 김광석 만큼 살아왔다.
첫댓글 으악. 역시 월영님이시군요. 저도 김광석님 노래 참 좋아하는데~ ^^ 짧은 생이라 안타깝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리워하고 노래를 기억해주는 것. 참 아름답지 않나요?
광석이형님의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를 무척 좋아합니다. 바람이 부는 날이면, 어렵사리 담배불을 붙여 '바람이 불면, 나를 유혹하는 안일한 만족이 떨쳐질까 / 바람이 불면, 내가 알고 있는 허위의 길들이 잊혀질까'란 구절을 되뇌면서 안일한 만족과 허위의 길들을 날려버린단 생각으로 담배연기를 후후 뿜어댔습니다. 근데 이놈의 담배를 암만 피워대도 안일한 만족과 허위의 길들이 남아있네요. 이북에는 물난리가 났고, 정상회담은 연기됐으며, 나라에서는 전쟁을 가정하고 오늘부터 을지연습이라는 걸 한답니다. 앞뒤가 안 맞는 이 아침에 월영 님 글 보고 괜히 울컥해져서 오버했네요. 월영 님도, 다른 님들도 항상 스파~르타~! ^^
저도 이 카페가 처음 생긴 2003년 발을 들여놓고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으니 카페 산증인?인데요.월영 님 글처럼 글솜씨를 뽐내는 천박한 글이 아닌 마음이 느껴지는 글은 흔치 않았습니다.저와 동갑내기가 아닌가 생각되는데 언제 술 한잔 꺾으며 월영 님 인생 사는 얘기 좀 들었으면 좋겠네요..참고로 전 남잡니다.^^
가슴에 잔잔하게 와닿는 글이네요. 저도 김광석이 그립습니다.
164에 숏다리에 휜다리는 아니시겠죠?^^ 월영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일 꼭 이루셔서, 언젠가 마흔이 되시면, 검은색 가죽점퍼에 머리 박박 깎고 체인 막~ 감고...그렇게 할리데이비슨 타고 세계 일주 해보시길^^ 그렇게 세계 어느 한 지점에서 비슷한 사람이 보이면 저라고 생각하셔도 될 듯합니다^^ 둘다 머리 박박 깎고 체인 막 감고 부릉부릉하고 달리면 꽤 멋질 것같아요~ 그 그림에서 생뚱맞은 사족을 그려본다면 제등에 이제 돌이 지난 아기가 매달려있다면??^^;크흐. 진짜 상상해보면, 그림 나오나요? 아무튼, 광석이형을 좋아하거나 그의 노래에 심취하는 분들의 따뜻한 마음이 예쁘게 영글어 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모터 사이클 다이어리가 생각나네요..오토바이 타고 지나다니다 왠지 친숙하고 비슷한 또래의 여행자가 있다면 저라고 생각해 주세요..^&^
어찌 그런 훌륭한 분에 대한 이야기를 저랑 이어주시는 지^^
잘 읽고 갑니다.
서른의 의미, 삶의 의미를 생각게 하는 글이네요... 왠지모르게... 쓸쓸해지기까지 하네요....
제글에 제가 답글을 다는게 멋쩍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답글을 적어주신 분들에게 일일이 답글을 다는건 더 계면쩍어 이렇게 통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합니다. 글에 대한 과분한 칭찬 때문에 제 주위 분들이 가식쟁이 월영이라고 합니다.ㅋ.ㅋ 글을 쓰는 스스로와 생활인으로 살아가는 제 자신과의 괴리 때문이겠지요.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남루한 글에 호응을 해주시니 내심 뿌듯하거니와 글을 쓴다는 행위에 대해 다시금 마음을 잡아보게 됩니다. 글이 위선적이고 위악적인 제 삶을 포장하지 않도록 늘 염두에 두고 긴장하겠습니다. ^^
언제쯤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요? 잘 읽고 갑니다.
글이 길면 읽기 싫어짐에도 불구하고 월령님의 글은 그냥 술술 읽혀 내려갑니다. 참 사람을 매료시키네요. 제가 "월령"이란 닉네임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다면...술한잔 같이 했던 것 같은데..저를 기억하실런지..(아나운서 말고 기자 하는 건 어떠냐고 계속 설득하셨었죠)... 사뭇 다른 느낌이군요.
프레스센터였던거 같은데..그때 제가 말이 많았죠..-.-
월영님이 누구신지 잘 모릅니다. 카페에 가입했다 탈퇴하고, 다시 가입한 지 이제 2개월 남짓된 탓으로 돌려봅니다. 김광석의 얼굴도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의 음악이라곤 아는 게 '서른 즈음에'가 전부인 82년생입니다. 글은 진심을 담아야 빛이 난다고 생각됩니다. 님의 글에서 아직 서른을 채우지 못한 나이이지만, 깊은 공감과 함께 뭉클함을 가슴 가득 담아 갑니다. 부럽습니다. ^^
학교 다닐 때 선배들이 통기타를 들고 김광석님의 노래를 부를 때면, 왠지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그저 세월의 한자락을 붙잡고 싶겠거니 했는데.. 이젠 제가 그 노래들로 위로를 받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저도 나이를 먹어가나 봅니다.
역시나 가심에 스며드는 글빨은 세계최고.... 백만년 만에 카페 방문해서 형 글 찾아 읽고 간다ㅎㅎ
네번째 문단이 성큼 와닿네요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몇달 넘게 제 미니홈피에 적혀있던 구절이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