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시마는 할 말이 많다.
그만큼 애정하는 곳이기도 하고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싶은 예술의 섬이기도 하다.
헌데 십년 전에 갔어도, 지금 2023년에 다녀왔어도 여전한 나오시마를 보면서 정말 다행이다 싶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여기저기 우후죽순 격으로 카페나 레스토랑이 생겨나 분위기를 흐릴 텐데
전혀 그런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편의점 하나와 자그마한 상점과, 몇몇의 조촐한 카페와 담배가게...그곳 담배가게의 할아버지는 보이질 않았다.
그리고 나오시마 미야노우라항의 "마린 스테이션 나오시마"안의 상점이 최대치 이다.
어쨋거나 "이우환 갤러리"를 나와서 다시금 걸어나와 얼마 전에 생겼다는 구사마 야요이의 "미러볼"을 보러갔으나
"베네세 뮤지엄"과 함께 티켓을 구입해야 했고 시간도 촉박하여 또 포기....그런데 이번엔 다리 아픈 룸메가
또 다시 아예 걷지 못하겠다고 해서 이미 나오시마를 다녀온 쥔장이 함께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나머지 일행들은 다른 작품들을 찾아보러 떠나버렸다.
아쉽고 안타깝지만 또 어쩌겠는가?
그저 버스 정류장의 미남 청년에게 버스 시간이나 묻고 들고왔던 우리나라 과자를 인사차 선물하는 수밖에.
헌데 그 청년이 잘 생겨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잠시 했다...조금 후에 교대차 찾아든 청년과는 확연히 비교가 되었으므로.
그렇게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자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기어코 나오시마를 다시 오게 된 이유가 사라져 버리는 그 시간,
"베네세 뮤지엄"도 구사마 야요이의 "노란 호박"도 날아가 버렸다.
그래도 놓치지 말아야 할 노란호박 곁에 자리한 놀이동산 같은 야외정원 풍광도 눈길을 끈다.
"카럴 야펠"의 야외조각은 이곳의 모든 조각 중에 가장 먼저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또 아기자기함과 알록달록함으로 치장한 "니키드 생 팔"의 작품도 눈에 들어오는 순간 저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또 그 곁자락에 반사유리와 스테인리스 강철로 만들어진 "댄 그레이함"의 건축물도 눈길을 끌지만 이번엔 모두 패스.
그래도 내려갈 버스를 타고 "쓰쓰지소" 정류장에 도착을 하니 먼저 뮤지엄 투어를 마친 다른 일행들이 인사를 한다.
웃는 것이 웃는 것이 아닌 채로 가볍게 인사를 하면서도 아쉬운 마음에 해변으로 향한다.
소나무 그늘에 앉아 쐬는 바람에 그나마 마음을 던져 놓고 망중한을 즐기다 보니 건너편 "노란호박"이 시선을 끌지만
룸메를 두고 갈 수 없어 또 주저 앉아 다른 일행들이 야요이의 작품 "노란호박" 삼매경에 빠져드는 모습을 지켜만 보고 있다.
유일하게 타인의 손길도. 눈길도 받지 않는 쓰스지소의 자유로움도 저 멀리 하늘로 날아간다.
그렇게 나오시마 미술관 투어를 허망하게 끝내고 "이에-집- 프로젝트"를 위해 버스에 탑승을 하고
그나마 "혼무라" 마을이나마 즐겼으면 좋겠다 싶었지만 혹시나는 역시나가 되어 회계를 맡은 담당자가
제 사진 촬영 삼매경에 빠져서 뒤늦게 오는 바람에 시간 제약도 있는지라 역시 어느 한 곳도 입장을 하지 못하고
그저 바깥 풍광과 이러이러한 곳이라는 설명만 들었고 추가로 쥔장의 설명이 보태졌다...
난 이미 예전에 보았다는 스스로 위로를 하며 괜찮은 척 했지만 추천을 한 사람으로서 민망할 일이다.
이미 다녀온 적이 있었던 지라 그 어느 곳도 소홀하게 생각하며 아무 의미 없이 그냥 지나가면 아니되는 일이건만 에효.
회계담당 후발 일행의 늦음도 문제였으나 빡빡하게 정해온 여행사의 시간도 넉넉치 않다...출항 시간이 맞물려서 말이다.
안타깝다..."혼무라 이에 프로젝트"의 구석구석 안도 다다오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는데 뭔 일이라니 싶었다.
낡은 옛집을 어떻게 변모 시켰는지가 중요한 포인트 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집 프로젝트 관람권을 사서 골목을 도는 재미, 개인적으로는 담배가게 할아버지에게 관람권을 샀던 기억이지만
현재는 혼무라 라운지 겸 아카이브에서 구입하는데 선택권이 주어진다....전부 관람하지 않아도 될.
십여년 전에는 담배가게 건너편을 알려준 할아버지 손길을 따라 첫번째로 "카도야"를 선택해서 모틍이 집을 찾아야 했는데
간판이 너무 작아서 찾기가 쉽지 않은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지만 이 역시 "불편함을 감수해라"에 충실하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집에 신발을 벗고 들어가서 빠르게 지나가는 숫자를 경험하고 다락방을 찾아내는 재미.
그런 쏠쏠한 재미를 이들은 즐기지도, 누리지 못한다는 것이 안타깝기도 했던.
그리고 "안도 다다오와 터렐"이 합작한 작품으로 검정색 박스집 앞에는 늘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있고
그중에 만나는 한국인들과의 반가운 인사는 "너희도 왔니...대단한 걸"은 십년전에 느낀 감정이다.
칠흑같은 어둠을 뚫고 방향감각을 잃어버린 채 손으로 벽을 더듬어야 자리를 찾게 되고 의자에 앉아 무작정 기다리는 일.
기다리다 지칠 때쯤 등장하는 한 줄기 빛...그것이 전부여서 나오는 사람마다 뭐임? 이런 표정들이었던.
"장소의 조건에 따라 시간의 길이를 바꾼다. 사람들이 충분히 오랜 시간을 들여 나오시마에 왔기 때문에
우리가 여기에서 조금의 시간을 더 붙잡더라도 모든 사람이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릴 것이다"
"제임스 터렐"의 말이긴 해도 과연 그럴까 싶었다.
죄다 불만족스런 얼굴과 이해 못하겠다는 표정들로 가득하니까 말이다.
세번째로는 "고오신사"를 찾아들어 땅속과 땅위를 하나로 연결해주는 느낌을 느낄 수 있다.
동굴의 좁은 통로를 지나 만나는 빛의 세계는 무언가 의미심장 하기도 하여 한컷의 장소이기도 하고
동굴과 본당을 연결한 유리계단이 절정을 이루며 낮은 언덕 위에서 바라보는 혼무라의 느낌도 남다르다.
그곳에서의 한 컷은 정말 신비로움 그 자체였던 기억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네번째로는 "고카이소"라 불리우는 집에 가짜 동백꽃 몇 송이가 덩그라니 놓여져 있다.
정원에는 실물 동백꽃이 놓여져 있고 마루에 앉아 여러 생각이 교차하는 느낌을 가져보기도 했던
바둑판 모양의 다다미방이 기억에 남겨져 있다.
다섯번째 가볼 곳은 마을 입구에 있던 "치과"의 변신이고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했었기에
아마도 불편했던 기억이 먼저이고 다시 찾아보려 애썼지만 장소가 기억나지 않아 헤매기만 했고
가에루...개구리가 상징적으로 놓여 있던 장소도 찾지를 못했다.
시간이 넉넉했으면 아마도 반드시 찾아냈을 일이지만.
마지막으로 소금창고 였던 "이시바시"는 마당에 커다란 돌다리가 있으며
방안에 들어가면 센주 히로시의 폭포그림이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알지 못했던 일본화로 유명하다는 "센주 히로시"의 작품이란다.
이런 곳을 보지 아니하고 돌아선다니 기가 막히긴 했다.
나야 아쉬울 것은 없지만 다시 들여다보고픈 마음도 있었는데 이번엔 기회가 아닌 듯 싶었다.
단 안도다다오의 박물관은 그낭 지나칠 수 없어 한컷으로 마무리 하였다는.
드디어 항구 입구로 이동을 하여 나오시마의 상징인 "구사마 야요이"의 "빨간호박"을 보러 갔다.
구사마 야요이의 일명 땡땡이는 어린 시절 아버지로 부터 성폭행을 당한 후 정신 질환자가 되어
꿈 속에서 나오는 벌레들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했고 구십이 넘은 지금도 병원을 들락거리며
작업을 하고 있는 열혈 작가 이기도 해서 개인적으로는 작품을 찾아 많이 다니기도 했다.
무튼 일부는 "아이러브유" 목욕탕으로 올라가서 외부 구경을 하고 내부는 들여다 보지 못했다고 했다.
왜냐하면 내부 작품인 큰 코끼리는 그야말로 목욕을 하러 들어가야 볼 수 있는 작품이므로 다들 고사 했을 것 같긴 하다.
해서 터미널의 상징인 "마린 스테이션 나오시마" 로 삼삼오오 몰려들어 그곳에서 유명한 '소금 아이스크림"을 탐닉 중이고
프리츠상을 거머쥔 두 남녀의 작품엔 그다지 시선을 두지 않는 것 같았다...단숨미와 절제미의 최고봉인 작품인데 말이다.
좌우지간 일본은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우는 "프리츠커" 상을 받은 사람은 7회에 걸쳐 8명이라고 했다.
그중에 한 명은 "안도 다다오" 이며 마린 스테이션을 만든 두 남녀 "세지마 가즈요와 니시자와 류에" 건축가가 그들이다.
이 둘은 프랑스 랑스에 들어선 '루브르 박물관"의 분관 설계를 맡기도 했다.
과연 우리에게 "프리츠커" 상을 거머쥘 건축가는 언제 등장하게 될까나?
그렇게 아쉬움과 미련을 남겨두고 나오시마 섬을 떠난다.
지나가는 길에 "세토내해"를 눈에 담고 점점이 떠있는 섬들과 "붉은 유리 등대"를 마음으로 들인다.
그리고 이번 저녁엔 무제한 샤브샤브에서 고기 파티가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무제한 이라는 미끼는 그다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기껏 채워진 양 만큼만 소고기, 돼지고기를 흡입하고
마지막으로 우동을 신청하여 한입 거든 후 밖으로 나와 가이드 박명희씨와 긴 이야기를 나누며 고마웠다고
웬만한 가이드들과는 비교가 되질 않는다는 칭찬을 나누며 마지막 밤을 위해 마트로 들어갔다.
버스를 타고 갈 요량이라고, 마지막 밤을 진하게 보내자고, 혹은 선물들을 담아가겠다고 보따리를 채우다
길치인 어린 양이 생기거나 까만 밤이 무서워 징징 거리거나 무거운 짐을 떼어맞기고 사라진 언니들을 원망하며
화를 내던 막내를 찾아오거나 온통 난리굿판을 벌이고 다시 "위베이즈 다카마스 호텔"로 돌아와
가족들에게 일본에서의 마지막밤 안부를 전하고 다시금 수다 삼매경에 빠져 들다가 지쳐서 각자의 방으로 흩어지고 보니
너무 늦은 밤이더라....다음날 일찍 일어날 요량은 있나 싶도록 말이다.
첫댓글 아우 승질나~~~!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