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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여탈권 (렘95)
찬송 : 하나님은 너를 만드신 분
성경 : 렘42:1-22절
8주년 감사예배를 기쁨으로 하나님께 올려드렸다. 눈물과 감동이 있는 은혜로운 예배로 하나님께 드리는 행복한 시간이 되었다. 특히 한 분은 200개의 수건을 친히 제작해서 오시는 분들에게 기쁨으로 드렸으며, 이천에 계신 선교사님은 밤새 커피를 볶아 오셔서 모든 분들에게 커피로 섬겨주셨으며 정말 많은 사역자들과 후원자들이 바쁘신 가운데 오셔서 이 기쁨의 예배에 참석하여 새로운 기름 부으심의 현장을 목격하며 함께 충만함을 얻는 자리가 되었다. 모든 영광을 주님께 올려드린다. 이제 새로운 시작이다. 아자.
거룩한 주일 아침 겸손히 주님 앞에 서서 오늘도 먼저 주님의 말씀을 기다린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기에 등과 빛을 내 삶에 비추며 온전한 예배자로 나가기를 소망한다. 주님 말씀하사 저의 삶의 길과 발에 등불과 빛이 되어 주소서.
본문에는 이제 애굽으로 향하던 군대의 지휘관과 요하난과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이 예레미야에게 찾아와 우리가 어디로 가야할지를 하나님께 기도드려 알게 해 달라고 요청한다. 1-3절
‘이에 모든 군대의 지휘관과 가레야의 아들 요하난과 호사야의 아들 여사냐와 백성의 낮은 자로부터 높은 자까지 다 나아와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의 탄원을 듣고 이 남아 있는 모든 자를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해 주소서. 당신이 보는 바와 같이 우리는 많은 사람 중에서 남은 적은 무리이니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보이시기를 원하나이다.’
결과를 가지고 이들의 이런 이야기를 추론해 보면 바벨론이 두려워 애굽으로 가면서 뭔가 축복을 받고 싶은 마음에 예레미야에게 찾아온 것이다. 그들은 결코 애굽이 아닌 다른 선택을 하고 싶지 않다. 하나님이 자신들의 길을 지지해 주시기를 원한 것이다.
삶의 수많은 자리에서 이렇게 하나님의 지지를 원하면서 예배하지만 정작 자신의 생각을 바꾸기는 원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생각을 묻는 이들이 있다.
이제 8주년 예배를 마친 내게 주님은 혹시 내 모습이 그런 것은 아닌지 물으신다. <여호와께서 우리가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보이시기를 원하나이다.>
8주년 라마나욧선교회의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보이시옵소서. 이것이 바로 나의 기도이다. 하나님의 정미하신 손길 앞에 말문이 막힐 정도이다. 어쩜 오늘 바로 이 구절을 여기다 준비해 놓으셨을까?
이 정미하신 하나님의 물음이 그래서 더 떨린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다고 고백하며 기도하지만, 정작 자기가 계획한 것과 다를 때는 틀렸다고 무시해 버리는 일이 주재권을 바꾸지 못한 신앙의 한계이다. 이 질문을 통해 너의 주재권이 하나님께 있느냐고 주님은 물으신다. 그 어떤 대답에도 예! 하며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었느냐고 말이다.
유다의 군 지휘관과 요하난을 중심으로 한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따르겠다고 분명히 고백한다. 5-6절
‘그들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우리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당신을 보내사 우리에게 이르시는 모든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가운데에 진실하고 성실한 증인이 되시옵소서. 우리가 당신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보냄은 그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좋든지 좋지 않든지를 막론하고 순종하려 함이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면 우리에게 복이 있으리이다 하니라.’
이들은 분명 <좋든지 좋지 않든지를 막론하고 순종하려 함이라.>했다. 이르시는 모든 말씀대로 행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들은 예레미야를 통해 10일 후에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너무도 놀랍게도 이들은 순종하지 않았다. 이유는 하나님의 이들을 향한 답이 이들의 생각과 달랐기 때문이다. 10절
‘너희가 이 땅에 눌러 앉아 산다면 내가 너희를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너희를 심고 뽑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너희에게 내린 재난에 대하여 뜻을 돌이킴이라.’
분명 하나님은 이 땅에 두렵지만 이곳에 눌러 앉아 살라고 하셨다. 그들의 두려움을 아시기에 주님은 이렇게까지 말씀하셨다. 11절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는 너희가 두려워하는 바벨론의 왕을 겁내지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를 구원하며 그의 손에서 너희를 건지리니 두려워하지 말라.’
바벨론의 군대까지 죽였는데 우리를 살려둘까? 그들은 믿기 힘들었을 것이기에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겁내지 말라고 두려워 말라고 반복하며 말씀하신 것이다.
또한 이들이 가려고 하는 애굽으로 가는 길은 이들이 살 길이 아니라 죽을 길임을 분명히 말씀하시며 경고까지 하신다. 16-17절
‘너희가 두려워하는 칼이 애굽 땅으로 따라가서 너희에게 미칠 것이요 너희가 두려워하는 기근이 애굽으로 급히 따라가서 너희에게 임하리니 너희가 거기에서 죽을 것이라. 무릇 애굽으로 들어가서 거기에 머물러 살기로 고집하는 모든 사람은 이와 같이 되리니 곧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을 것인즉 내가 그들에게 내리는 재난을 벗어나서 남을 자 없으리라.’
두려움으로 하는 선택의 결과는 남을 자 없는 죽음임을 분명히 경고까지 하시며 하나님은 이들이 유다에 남기를 말씀하셨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 ‘칼이 ... 따라가서... 미칠 것이요, 기근이 ...들어가서 ... 임하리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유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분은 바벨론이 아니라 하나님임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두려움은 바로 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바벨론이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바로 불신인 것이다.
오늘 내게 주님은 물으신다. 라마나욧선교회의 생사여탈권이 그 어떤 사람이 아니라 분위기가 아니라 하나님께 있음을 믿느냐고 말이다. 아멘. 아멘. 아멘.
라마나욧선교회의 내일이 대표되신 주님이 인도하시고 그분의 손에 달렸음을 명심하며 주님의 말씀이 비추는 곳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그 길이 쉬우냐 어려우냐가 아닌 주님이 인도하시는 길인가 아니냐를 분별하며 걸어가야 한다.
두려움에 유다는 실패했지만 너는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묻고 계신 주님 앞에 오늘도 나를 부인하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겠다고 고백할 뿐이다. 이제 더 이상 내 생각은 중요하지 않다. 주님이 가시는 그 길을 겸허히 순종하며 따를 뿐이다. 주님, 저는 당신의 종입니다. 이 종으로 오직 당신의 뜻에만 반응하며 당신을 따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