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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8:1-4> 1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늘이 반 시간쯤 고요하더니 2 내가 보매 하나님 앞에 일곱 천사가 서 있어 일곱 나팔을 받았더라. 3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4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두루마리에 봉인된 일곱 인 중에서 마지막 일곱 번째 인을 떼시는 장면입니다. 1절을 다시 보면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늘이 반 시간쯤 고요하더니’ 마지막 인이어서인지 인을 떼자마자 어떤 현상이 나타나는 게 아니라 반 시간쯤 고요한 침묵의 시간이 있었다는 거죠. 보통 폭풍전야라고 하지 않습니까? 온 세상을 뒤집을 폭풍이 불기 전날 밤은 오히려 가장 조용하고 고요해지는 현상을 말하는 거죠. 본문의 고요함도 그와 같은 것이겠지요.
2절에 보면 ‘내가 보매 하나님 앞에 일곱 천사가 서 있어 일곱 나팔을 받았더라.’ 그래서 일곱 째 인은 다른 인들처럼 떼자마자 어떤 재앙의 현실이 나타나는 게 아니라 일곱 천사들이 일곱 나팔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서 등장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 읽어가겠지만 일곱 천사가 한명씩 나팔을 불 때마다 일곱 인을 뗄 때의 재앙보다 더 심한 재앙들이 일어나는 광경을 보여주지요. 이렇게 일곱 인의 재앙은 일곱 나팔의 재앙으로 이어지면서 그 재앙이 더 심해집니다.
그런데 나팔을 불기 전에 한 장면을 말해주고 있지요. 3절을 보면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금향로가 등장하고 금제단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금향로 안에는 많은 향이 있다고 하지요. 그리고 모든 성도의 기도가 그 향들과 합쳐져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향과 기도가 합쳐진 것이 하나님 계신 보좌 앞에 있는 금제단에 드려지고 있지요. 제단에 드려졌다면 제단 불에 의해 태워져서 하나님께 올려지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그 다음 4절은 이렇게 말씀하지요.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이렇게 여러 성도들의 기도가 제단에서 태워지는 향이 되어서 하나님께 올려지는 장면을 보여주지요.
일곱 천사가 차례로 불게 될 일곱 나팔의 재앙에 앞서서 왜 이 장면이 왜 있는 것일까요? 살인이나 강도 같은 형사사건에 내가 피해자가 되었다고 할 때에 내가 피해자인데도 나에게 해를 끼친 가해자에게 직접 뭔가를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물론 경찰이 체포해가서 수사하고 검찰이 원고가 되어서 재판을 대신 해주긴 합니다. 그 과정에 피해자의 의견이 사실 거의 반영되지 않지요. 경찰 검찰 법원의 판사는 법에 따라서 일할 수 있을 뿐이지 피해자를 위해서 일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경찰이나 검찰의 수사결과에 대해서, 그리고 법원 판결에 대해서 만족하고 속시원해 하는 피해자는 그렇게 많지 않지요. 그 판결을 통해 내 피해가 보상되고 내 마음이 평정을 되찾게 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반면 하나님께서 일곱 나팔을 통해서 이 땅에 심판의 재앙이 임하게 하실 때에는 이 땅에서 믿음을 진실하게 지키다가 억울한 고통을 당하고, 멸시와 조롱을 당하고, 심지어 순교의 죽음까지 당했던 성도들이 그 고통과 죽음의 과정 속에서 하나님께 절실함과 절박함으로 드렸던 모든 기도들이 헛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에 모두 반영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거죠. 심판은 당연히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심판이지만 그 심판에는 참된 성도들의 진실한 호소와 눈물이 담겨져 있고, 그래서 심판당하는 자들에게는 공포와 두려움이겠지만 진실한 믿음의 사람들은 오히려 그 심판 속에서 하나님의 참된 정의와 공의를 보게 되고, 그 참된 정의와 공의가 이루어져가는 것을 보면서 그동안 받았던 몸과 마음의 상처와 슬픔과 억울함이 완전하게 치유가 되는 거죠.
계속 말씀드리지만 일곱 인으로 인한 재앙이든, 일곱 나팔로 인한 재앙이든 그리고 뒤에 16장에서 일곱 대접으로 인한 재앙도 나오는데 이 재앙들은 진실한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공포와 두려움으로 읽어야 할 말씀이 아니라 지금은 잘 실현되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완전하게 실현되어지는 것을 보면서 오히려 위로와 감사의 마음으로 읽어야 할 말씀입니다. 물론 우리의 생애가 아직 다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믿음의 길을 벗어나 잘못된 길로 갈 가능성은 언제든지 있지요. 이렇게 잘못된 길로 나아가고 있거나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을 때에 이런 재앙의 말씀들은 우리에게 경각심을 가지게 할 수는 있습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하시고 우리는 그냥 수동적으로 받아드리는 것만이 기독교 신앙은 아니라는 거죠.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세상 모든 역사를 우리와 함께, 그리고 우리들을 통해서 주관해 가심을 알고 믿고 또 경험하게 되는 것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수동적으로 따라가야하는 부분도 많지만 그보다 더 많은 경우 예수님과 함께 동역하는 부분이 훨씬 많습니다. 지금 기도하러 오셨는데 기도 안하면 지옥에 갈까봐 억지로 오셨나요? 아니면 부족학 연약한 나의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일에 함께 동참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믿음의 길을 가는 차원에서 오셨나요?
오늘의 말씀은 하나님의 심판도 하나님 독단적으로가 아니라 우리의 기도와 함께 행해지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의 기도, 우리의 헌신, 우리의 섬김, 우리의 모든 경건의 노력들, 그 어느 것 하나도 무의미하거나 헛되지 않습니다. 이 무더위 가운데서도 주님 앞에 새벽을 밝히며 기도하는 우리의 수고와 노력도 그 모든 것이 본문의 표현처럼 하나님 앞에 올려지는 금향로와 금제단을 통한 아름다운 향기들인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