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 관봉에 우뚝솟은 부처님 도량/영겁 세월을 살아온 관본 큰 바위에/이십년 세월 하루같이 청정혼 담고 담아/님의 살로 고이고이 다듬었나이다/위엄하신 약사여래불로 나투시어/무명을 밝혀주는 등불이 되어 주소서.”
20여명 배우들의 간절한 목소리가 연습실을 울린다. “쨍쨍쨍” 산새소리 틈새로 돌을 쪼는 정소리가 들리고. 바위를 쪼아 부처님을 조성하는 의현스님의 모습이 등장한다.
오는 25일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갓바위의 첫 합창 장면이다. 지난 9일, 의현스님 역을 맡아 열연하고 있는 배우 강태기(56, 법명 청봉.사진)씨를 만나기 위해 서울 경운동에 위치한 뮤지컬 ‘갓바위’ 연습장을 찾았다.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눈물이 나도록 감동적입니다. 마지막 장면에 어머니를 외치는데, 외칠때마다 눈물이 쏟아지곤 해요. 어머니를 살리려고 온 산을 헤맨 끝에 약초를 구해왔을 때 돌아가신 어머니를 본 의현스님의 한이 절절히 와 닿습니다.”
강태기씨는 불교와 인연이 깊다. 불자 집안에서 태어나 많은 스님들과 인연을 맺으면서 살아왔다. 또 그의 아들은 동국대 불교학과를 마치고 지금은 석사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그의 법명 청봉(靑峰)은 조계종 종정을 역임한 서암스님에게 받았다. 지난 여름에는 복원불사가 진행중인 원심원사 절터에 한달간 머물면서 잡초를 뽑고, 엉망인 길을 다듬으며 지냈다. “가진 것이 몸 뿐이니” 그렇게라도 불사에 동참하고 싶었던 때문이다.
“나를 비워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불교의 철학과 연극철학이 같아요. 배우가 다른 역을 소화하려면 이전의 ‘나’를 비워내고 극중 인물로 대신 채워 넣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생로병사’라는 지극히 자연적인 현상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해탈을 말씀하셨듯, 모든 연극도 결국 삶과 죽음, 슬픔과 기쁨을 극복하는 이야기 아닐까요?”
강태기씨는 20년전, 서암스님에게 편지를 한 장 받았다. ‘내가 움직이는 혀는 관음혈이요, 연기생활은 보고 듣는 깨달음, 즉 시청혈이다.’ 배우로서 대중에게 깨달음을 전하는 인물이 되라는 뜻이 담긴 말이었다. 강씨는 그 말을 지금도 가슴 깊숙이 묻어놓고 산다. 수시로 그 말을 되새기며 배우로서, 불자로서의 길을 서원한단다.
“100여명의 신도들이 모여있는 법당이나 절 뜨락에서 모노드라마를 하고 싶어요. 제악막작(諸惡莫作) , 즉 자신이 악한 일을 한 만큼 벌을 받는다는 내용의 줄거리로 만든 연극을 준비하고 있어요. 앞으로 가장 하고 싶은 일입니다.”
“아, 그 웃기는 녀석이 기도의 영험을 무시해요. 글쎄…” 불교학을 공부하는 아들과 ‘교리싸움’ 하는 이야기를 하려는 순간, “자자, 다음 장면 가자.” 잠시의 휴식시간이 끝나자 정광진 감독의 불같은 목소리가 연습실로 울려 퍼진다. 어느새 강씨의 걸음이 무대로 옮겨지더니, 눈물을 뚝뚝 흘리며 연극에 몰입한다. 천상 배우다.
안직수 기자
[불교신문 2260호/ 9월9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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