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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혀를 다스리려면 성령을 의지해야 한다. 우리의 부패한 본성은 여간해서는 죽지 않기 때문이다. 칼빈은 죄가 서서히 죽는다고 말한다. 인간의 마음에는 온갖 불의가 가득하다(마15:18-20 참고). 불의한 것이 말을 통해 나오기 시작할 때는 얼른 입을 가리고 악한 말을 입 밖에 내지 않도록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
부모들이여, 혀를 어떻게 사용하는가? 가족들 사이에서 악한 말들이 오가는가? 자녀들이 부모의 말을 두려워하는가? 말로 악을 저지르는가, 아니면 유익을 주는가? 자녀들의 혀를 다스리려면 먼저 부모가 자신의 혀를 다스려야 한다.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에 의지해 혀를 잘못 사용하는 악을 피하고 건설적인 말을 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그러기 위해 피해야 할 것 네 가지와 실천해야 할 것 네 가지가 있다.
피해야 할 것
하나님의 백성이 해서는 안 될 말이 있다. 성경에는 그런 말을 금하는 경고의 말씀들이 많다. 거짓말, 불경스런 말, 음란한 말, 속된 말, 분노가 가득한 말, 원망하는 말, 불평하는 말 등을 피해야 한다. 성경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1)남을 정죄하거나 비난하는 말
다윗은 시편에서 말이 날카로운 칼날처럼 악과 거짓의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종종 말한다. 그는 악인에 대해 "그의 입에는 저주와 거짓과 포악이 충만하여 그의 혀 밑에는 잔해와 죄악이 있나이다"(시10:7)라고 말한다. 악한 혀는 그런 말들을 토해 낸다.
잠언 6장 16-19절에 보면,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 일곱 가지 가운데 세 가지가 말과 관련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거짓된 혀'와 '거짓을 말하는 증인'과 '형제자매를 이간하는 자'를 미워하신다. 따라서 우리는 남을 정죄하거나 비난하는 말이나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런 악한 일에 혀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특히 자녀들 앞에서는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부부끼리도 그런 말을 자제하라고 서로 권고해야 한다. 다른 사람을 헐뜯고 비난하는 말을 하거든 사랑으로 부드럽게 꾸짖어야 한다. 예를 들면, "다른 사람에 대해 험담하지 않도록 조심합시다"라고 말해야 한다.
전에 한 가정을 심방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집 아버지가 자녀들이 보는 앞에서 나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나는 "일단 심방을 마치고 자녀들을 잠자리에 들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둘만 있는 자리에서 얼마든지 저에 대한 불만을 토로할 수 있을 텐데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그럴 필요 없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내가 목사님을 나쁘게 생각한다는 것을 다 알고 있으니까요"라고 말했다. 더 이상 대꾸할 말이 없었다. 그날 밤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그 사람이 자녀들에게 해를 끼쳤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녀들이 보는 앞에서 목회자를 비난했다. 그들이 자라면 과연 어떻게 될까? 커서도 교회를 다닐 수 있을까? 교회를 만족스럽게 여길까, 아니면 목회자의 말을 일일이 비난하는 가족의 습관을 그대로 지속할까?
성령께서는 우리의 입을 가려 험담과 비난을 일삼지 않도록 도와주신다. 더욱이 성령꼐서는 영혼의 깊은 곳을 감찰하여 내면을 변화시키실 수 있다. 그분은 사랑의 마음으로 말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남을 헐뜯거나 비난하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다소 미심쩍은 구석이 있더라도 다른 사람들의 말을 선의로 받아들여야 한다. 자녀들의 경우에는 특히 더 그러하다. 늘 의심과 판단을 일삼아서는 안 된다. 많은 사람들이 부모가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기를 좋아하는 가정에서 자란다. 우리는 부모의 그런 습관을 자녀들이 본받지 않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2)불경스럽고 속되고 음란한 말
한 번은 나의 아버지가 일을 하다가 망치로 엄지손가락을 잘못 내리친 적이 있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나쁜 말이든 좋은 말이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40년 전의 일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기억이 새롭다.
우리는 항상 조심스런 태도로 혀를 통제해야 한다. 자녀들 앞에서는 특히 더 주의해야 한다. 불경스럽거나 음란한 말을 입 밖에 꺼내면 수년 동안의 교육과 훈련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 어쩌다 한 번 자제력을 잃고 말을 함부로 하더라도 자녀들에게 크게 영향이 미친다. 심지어 저주하는 말이 아니라 단지 좋지 않은 말을 하더라도 자녀들은 무심코 지나치지 않는다.
"가쉬"나 "갈리"와 같은 용어는 하나님을 완곡하게 표현하는 말이다. 옛날 사람들은 저주나 욕을 할 때 하나님의 이름을 직접 부르는 대신 그런 용어들을 사용했다. 그러나 그런 식의 '완곡한 저주'도 십계명의 세 번째 계명을 범하는 것이다. 요즘 내가 종종 듣는 완곡한 표현은 "Oh, my ward"이다. 이 말은 "Word of God,"또는 "Oh, my Lord"에서 유래한 듯하다. 사람들은 흥분하거나 화가 났을 때, 또는 실망했을 때 그런 완곡한 표현이나 문구를 사용하곤 한다. 우리는 그런 표현을 사용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자녀들은 항상 순결한 말을 들으면서 자라야 한다.
3)분노의 말
나도 아이들에게 몇 번 분노의 말을 퍼부은 적이 있다. 그럴 때마다 후회가 남았다. 나는 화가 나서 거칠게 말한 뒤에는 항상 미안하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거친 말을 내뱉을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성경은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엡4:26)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분'은 우리의 실망감에서 비롯되는 분노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의로운 분노를 의미한다.
화가 날 때는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그럴 때는 말을 자제하는 것이 가장 좋다. 잠시 밖을 거닐거나 숫자를 세거나 혼자서 조용히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 좋다. 즉, 상황에 대처하기 전에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성숙한 부모로서 사랑으로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아이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해야 한다. 화가 치밀어 올라 입에서 무슨 말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태에서는 자녀들을 올바로 교육하기가 어렵다.
4)불평과 원망하는 말
성경은 불평을 달고 사는 여자를 비유하기를 '비 오는 날에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잠27:15)이라고 한다. 불평이 가득한 사람을 빗대기에 매우 적절한 표현이다. 그런 사람은 "이렇게 하는 것도 나쁘고, 저렇게 하는 것도 나쁘다"라는 식으로 늘 불만을 토로한다. 그런 사람과 함께 사는 것은 계속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를 듣고 사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는 광야에서 항상 불평을 일삼았던 이스라엘 백성을 닮아서는 안 된다. 그들은 물이나 양식이 부족하거나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맛이 없다고 느낄 때마다 불만을 토로했다. 그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 마물러야 했던 이유가 바로 그런 불평 때문이었다(시95:8-11참고). 불평은 가정의 기쁨을 파괴하고 이기심을 부추긴다. 또한 불평은 하나님께서 주신 복에 감사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그러므로 자녀들에게 이러한 습성을 내비쳐서는 안 된다.
실천해야 할 것
성경은 잘못된 언어 습관의 사례를 많이 언급할 뿐 아니라 긍정적으로 말하는 습관에 대해서도 많은 교훈을 제시한다. 성경은 배우자와 자녀들에게 긍정적으로 말하고, 늘 즐겁고 명랑한 말을 하라고 명령한다. 다음의 네 가지 사항을 기억한다면 긍정적으로 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자녀들의 언어 습관을 훈련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1)우리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기억하라.
우리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기억하면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지 못할 것이다. 언젠가 승강기 안에서 한 여성을 만났다. 놀랍게도 그녀는 내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어머니는 항상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라고 말씀하셨어요"라고 말했다. 지옥이나 죽음을 제외한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믿고 살아가는 삶은 참으로 아름답다.
내가 열두 살 때 어머니에게 실망한 적이 있었다. 어머니가 나의 문제에 무관심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문제가 더 나빠질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나는 버럭 화를 내면서 "엄마는 항상 그런 식으로 말해요"라고 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더 나빠질 수도 있단다. 우리는 그렇게 되어도 마땅한 사람들이야"라고 말했다.
우리는 모두 죙니이다. 우리는 부모의 사랑을 받거나 자식을 낳아 기를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다. 혀를 길들이려면 우리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자녀들을 가르친다면 혀를 통제하기가 좀 더 쉬워질 것이다.
2)배우자에게 긍정적으로 말하라.
자녀들이 우리에게 바르게 말하기를 원한다면, 아내나 남편도 서로에게 그렇게 말해야 한다. 자녀들은 부모가 서로를 대하는 태도를 기억하고 훗날 자신의 배우자를 대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거친 말이 오가는 가정은 또다시 그런 가정을 만들어 내기 쉽다. 내가 아내를 사랑과 존경으로 대하면 자녀들도 결혼해 가정을 꾸렸을 때 그렇게 행동할 것이다. 우리의 자녀들은 말보다는 행동을 통해 더 많이 배운다.
3)자녀들에게 긍정적인 것을 강조하라.
악한 말을 하지 않도록 가르치려면 말에 본을 보여야 한다. 정직하게 말하되 사랑스런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말하고, 누군가가 칭찬받을 일을 하는 것을 보거든 근야 지나치지 말라. 지난주에 자녀들을 얼마나 자주 칭찬했는가? 그들을 사랑한다고 얼마나 자주 말했는가? 단점보다 장점을 언급해 주었는가? 나쁜 짓을 했다고 꾸짖기보다 잘 순종해서 고맙다는 말을 더 많이 했는가?
자녀들이 올바로 행동헀을 때는 격려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심각한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엄히 꾸짖어야 마땅하지만, 옳은 일을 할 때마다 칭찬을 아끼지 않아야만 그 징계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우리는 "너는 참으로 소중한 아들이다 .나는 너를 무척 사랑한다. 그러나 이런 일을 저지르다니 유감이로구나"라고 말해야 한다. 우리가 그들의 잘못을 고쳐 주려는 이유가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면, 자녀들은 훈계의 말을 경청할 것이다. 평소에 잘한 행동을 칭찬하며 긍정적인 것을 강조하는 습관을 보여 준다면, 우리의 징계가 책망을 위한 책망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자녀들이 혀를 길들이도록 돕는 방법
우리의 혀를 길들이는 데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하듯이, 자녀들이 혀를 길들이는 데도 그분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야고보서 3장 8절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나"라고 말하지만, 성령께서는 우리를 도우실 수 있고, 우리는 자녀들을 도울 수 있다.
자녀들에게 말할 때는 존중하는 태도로 말해야 한다. 아울러 작은 일을 크게 만드는 일도 피해야 한다. 자녀들의 사소한 말에도 일일이 크게 흥분하는 부모들이 더러 있다. 물론 그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거나 그분이나 다른 권위자들에 대해 공손하지 않은 말투를 사용할 때는 침묵을 지켜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자녀들이 사소한 말실수를 했을 때는 어떻게 대하는 것이 좋을까? 찰스 스펄전은 "한쪽 눈을 감고 한쪽 귀를 막으라"라고 조언한다. 그들이 부적절한 말을 할 때마다 일일이 꾸짖는다면,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 크게 실망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적절하지 않은 말을 할 때마다 누군가가 일일이 잘못을 지적한다면 그 심정이 어떠할지 생각해 보라. 우리는 그런 사람을 결코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도 자녀들을 그런 식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
자녀들이 혀를 길들이도록 도울 수 있는 방법은 많다. 그 가운데 특히 중요한 방법 두 가지를 살펴보자.
1)부모가 먼저 덕을 세우는 말을 하라
자녀들은 부모를 본받으며 자라기 때문에 말하는 방식도 부모를 따라가기 마련이다. 그들은 말하는 방식에 대해 가르치는 말보다는 말하는 태도를 통해 더 많은 것을 배운다. 특히 부모의 가르침과 행동이 서로 모순될 때는 그 모습을 더 쉽게 닮는 경향이 있다. 자녀들 앞에서 언행이 일치되어 좋은 본을 보여 주어야만 그들에게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우리는 항상 말을 통해 경건한 지혜를 드러내야 한다. 야고보서 3장 17절은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순결하고 화평하고 양순한 태도로 말해야 한다. 심지어 자녀들을 훈계할 때도 그런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우리는 자녀들을 개인적으로 조용히 타일러야 한다. 예를 들면, "너는 옳고 선하고 진실한 말을 많이 한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네가 어제 사촌들에게 한 말은 아주 이기적인 말이었다. 네가 사람들에게 좀 더 잘 말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를 바란다"라고 말할 수 있다.
자녀들이 공손하지 못한 태도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할 때는 책망과 징계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어느 경우가 되었든 분노를 표출하기보다는 사랑으로 알아듣게 타일러야만 스스로 잘못을 깨우칠 가능성이 높아진다. 적대적인 태도로 자녀들을 나무란다면 원하는 목적을 이루기 어렵다. 그런 방법은 자기 방어적인 심리만을 더욱 부추길 뿐이다. 우리 자녀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려고 애쓰는 나이이기 때문에 자신을 인정해 주는 말을 듣고 싶어한다. 따라서 자녀들을 나무랄 때는 우리가 그들을 사랑하고 고맙게 여길 뿐 아니라 그들을 유익하게 하고자 책망한다는 것을 알게 해야 한다.
우리는 사랑과 온유함이 담긴 살아 있는 편지가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야고보서 3장 13절은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라고 말한다. 부모가 지혜롭고 온유하게 행동하는 가정은 참으로 복되다. 부모가 조용하고 온유하고 자상한 성품을 지닌 경우에는 자녀들도 품행이 단정한 경우가 많다. 그러면 그 부모들은 어떻게 자녀들에게 남을 사랑하고 배려하는 태도를 길러 주었을까? 그들이 말과 행동으로 사랑과 친절과 온유의 본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본을 보이는 것은 자녀들의 혀를 길들이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자녀들이 말로 심각한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한쪽으로 조용히 불러 함께 기도하면서 혀를 길들일 수 이게 해 달라고 주님께 간구해야 한다. 잘못의 정도가 매우 심각할 때는 눈물로 기도해야 한다. 나의 어머니는 우리 형제가 잘못된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눈물로 호소한 적이 많았다. 때로 기도는 꾸짖는 말보다 더욱 강력한 효과를 나타낸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 간구하면 자녀들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다.
2)거짓말을 용납하지 말라.
거짓말은 매우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에 결코 가볍게 다스려서는 안 된다. 다섯 살 된 자녀가 거짓말을 했다면, 그 일을 심각하게 여기고, 하나님이 장차 거짓말한느 자들을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계21:8)에 집어 던지실 것이라고 말해 주어야 한다. 하나님은 거짓말을 심각한 죄로 간주하신다. 따라서 부모도 그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사내는 사내다워야 해"라거나 "귀엽지 않아?"라거나 "성장하는 과정일 뿐이야"라는 식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 그런 식의 반응은 자녀에게 거짓말하는 습관을 심어 주어 훗날 크게 후회할 일을 자초하기 쉽다.
어떤 경우에는 자녀가 거짓말을 너무 자주해서 평생 거짓말만 하며 살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우리는 그런 행동이 일시적인 과정에 그치지 않고 끝까지 지속될까 봐 우려한다. 그러나 그렇게 놀랄 필요는 없다.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고 단호하게 잘못을 꾸짖어 타이르면 거짓말하는 습관을 고칠 수 있다. 거짓말은 애정 결핍, 두려움, 그릇된 상상, 자신을 과시하고 싶어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거짓말을 절대 용납하지 않고 단호히 징계하면, 일 년 이상 지속되지 않는 잠깐의 과정으로 끝나게 만들 수 있다. 따라서 낙심하지 말고 인내해야 한다.
자녀들이 거짓말을 할 때는 그들의 삶을 구석구석까지 세밀하게 조사해 보아야 한다. 잠시 동안 경찰관 노릇을 해야 한다. 정직하지 않은 말은 무엇이든 묵과해서는 안 된다. 신뢰는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우쳐 주고, 신뢰를 저버렸을 때는 다시 회복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가르쳐야 한다. 다시말하지만, 거짓말은 단호하게 징계해야 한다.
3)남을 괴롭히는 행위를 고쳐 주라.
자녀들이 서로를 놀릴 때 상대방이 다소 상처를 받았더라도 여전히 서로를 존중하며 모두가 웃고 넘어갈 수 있다면 큰 문제는 없다. 어떤 가족들은 서로를 놀리기를 좋아한다. 그것은 사랑의 표현일 수 있다.
그러나 상대방의 자존심을 무너뜨릴 만큼 심하게 괴롭히거나 놀린다면, 그것은 사랑의 표현이라는 한계를 넘어서는 일이다. 비록 겉으로는 웃더라도 마음에 상처를 받을 수 있다(잠14:13참고). 부모는 자녀들이 서로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지, 다른 형제들에게 놀림이나 괴롭힘을 당하는 자녀는 없는지를 잘 살펴봐야 한다. "계속 그렇게 하면 벌을 내리겠다"라는 식으로 괴롭히거나 놀리는 행위가 도를 넘지 않도록 주의를 주어야 한다. 자녀들에게 서로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 집안에서 남을 괴롭히는 못된 행위를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고 말해야 한다.
가족들 사이에 그런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다음과 같은 점을 주의하라.
서로 말다툼을 하는 자녀들을 징계하는 한 가지 방법은 잠시 동안 각자의 방에 들어가 있으라고 하는 것이다. "너희는 지금 서로에게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고 있다. 각자 방으로 돌아가서 잠시 가만히 있거라. 아무에게 말도 하지 말고, 전화도 걸지 말아라. 침묵을 지키고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여라. 말을 함부로 한 죄를 용서해 달라고 빌어라"라고 말하라.
아울러 자녀들에게 성경 구절을 암기하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다음 말씀은 자녀들이 암기하여 묵상하기에 좋은 구절이다.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롬12:10.17).
혀를 길들여야 할 자녀가 십 대인 경우에는 젊은이들에 관해 가르치는 양서를 읽으라. 그러면 그들을 더욱 깊이 이해하여 올바로 양육할 수 있다.
혀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에 사용하라
자녀가 "엄마 사랑해요"라고 말하고 진정으로 어머니를 사랑한다면, 그 말은 어떤 금은보화보다 더 귀하다. 사람의 말은 온갖 유익을 끼칠 수 있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말로 선한 일을 하라고 가르쳐야 한다. 예를 들어, 나는 감사절이 되면 식탁 위주를 돌면서 아내와 칼빈과 에스더와 루디아에게 고마운 일을 몇 가지 말한다. 그 다음에는 아내가 그렇게 하고, 세 자녀도 차례로 그렇게 한다. 시간이 좀 오래 걸리기는 하지만 그렇게 하고 나면 모두가 사랑을 흠뻑 느낀다. 이것은 우리 가정의 좋은 전통이다.
그리스도는 다락방 강화(요13-17장 참고)에서 훌륭한 본을 보여 주셨다. 그분은 말과 행동으로 제자들에게 사랑을 보여 주셨다. 그분은 그들을 나무라셨지만 심하게 말하지는 않으셨다. 그분은 온유한 태도로 꾸짖어 잘못을 깨우쳐 주셨다. 그분은 제자들에 대한 사랑을 거듭 확언하셨고, 하나님의 사랑에 그들을 의탁하는 기도로 가르침을 마무리하셨다.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살아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13:1)
가족들에게 '그리스도를 본받으라'고 말하라.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릇된 말씀을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다. 그리스도께 나아가 혀를 길들일 수 있도록 성령의 능력을 허락해 달라고 기도하자.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신 대로 사랑하고, 그분이 말씀하신 대로 말하고, 그분이 행하신 대로 행할 수 있는 은혜를 구하자"라고 말하라.